우리가 어떤 음악을 떠올릴 때 보통 선율(Melody)을 떠올린다. 선율은 다양한 음의 높낮이와 리듬으로 구성되어있다. 우리는 선율을 기억할 때 어떤 음으로 시작해서 어떤 음으로 이동하는지를 떠올린다. 그런데 리듬은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결국 좋은 선율은 음의 움직임 뿐 아니라, 이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리듬의 선택이 필수적인 것이다.

음악의 경우처럼 삶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삶이 하나의 작품이라면 선율은 작곡가로서 가야할 길, 곧 ‘작품 세계’이고 리듬이란 그것을 만들기 위해 자연스럽게 기반이 되어야 하는 ‘생활’이 아닐까 한다.

삶의 문제에 있어서 나는 가끔 음악기법 중 하나인 대위법을 떠올리곤 한다. 좋은 음악은 보통 여러 개의 선율들이 조화롭게 어울리면서 완성된다. 대위법이라는 기법을 통해서 이 과정을 훈련하고 공부할 수 있다. 대위법 연습을 할 때는 처음부터 리듬을 함부로 쓸 수 없다. 보통 첫 단계에서는 동일한 길이의 음표만을 사용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부터 길이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음표를 사용하여 오랫동안 연습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여러 길이의 음표를 혼합하여 사용하게 된다. 이렇게 조심스럽고 엄격하게 리듬을 다루는 연습을 마치고 난 후에는 팔레스트리나의 미사곡이나 바흐의 푸가처럼 조화로운 리듬으로 완성된 음악에 대해서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기초적인 소양을 갖추게 된다.

나는 삶 속에서의 리듬, 시간의 흐름이 대위법 훈련처럼 여겨진다. 처음에는 그 리듬을 만들어가는 것이 성공적이지 못했다. 각기 다른 길이의 음표들이 자신을 써달라고 아우성치는 것처럼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쏟아졌다. 써야 하는 곡도 많았고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도 많았다. 만나야 할 사람들도 넘쳐났다. 보고 싶은 책, 영화, 공연은 왜 이렇게 많은지. 가야할 맛집 리스트도 늘어만 가고. 바쁘게 지내다보니 건강이 나빠져서 병원 다니고 운동 하느라 더 바빠졌다. 무엇 하나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자괴감이 들었다.

성공적인 리듬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계획표를 짰다. 이대로 지킨다면 완벽한 리듬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서 수면리듬부터 물거품이 됐다. 다음에는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만들어보았다. 아주 섬세하고 정교하게 만들었더니 작성하느라 하루가 다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좀 더 효율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보았다. 중요한 일은 마지막에 여유롭게 하기 위하여 작곡을 마지막 순위에 놓았다. 결국 수많은 자잘한 일들만 하고 음표 하나 그리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가버렸다. 그래서 작곡을 우선순위로 두었다. 남아있는 자잘한 일들이 신경 쓰여서 음표 몇 개 그리지 못하고 하루가 지나가버렸다.

나는 삶의 리듬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를 겪어왔다. 대위법 연습을 하면서 잘못된 진행을 거듭 그렸던 것처럼. 거장들이 만들어낸 아름답고 조화로운 리듬의 음악, 그러한 완벽한 리듬을 삶 속에서도 구현해볼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노력만 하다가 끝나버릴 것 같다. 그렇다면 음악 안에서 구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 그것도 말이 쉽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않으나 삶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즐길 수 있는 작은 여유가 어느 순간 생겼다. 이제는 조급해하거나 전전긍긍하지는 않는다. 어떤 길이의 음표를 먼저 쓰고 더 많이 써야 할지 조금씩 감을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한 여유는 삶에서 수많은 연습 과정을 거치면서 얻어낸 어떤 결실일지도 모르겠다.

글 | 민찬홍(작곡가, 뮤지컬<빨래> 데뷔, <더맨인더홀> 등 다수 작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