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 전박찬

배우 전박찬을 만났다. 그가 출연했던 고 김동현 연출가의 마지막 작품 <맨 끝줄 소년>의 리메이크 공연이 연일 매진사례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 뒤였다. 교실 맨 끝줄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며 글쓰기에 집착하던 기묘한 소년 클라우디오로 열연했던 전박찬 배우는 어딘지 모르게 후련한 표정이었다.

<말들의무덤> ⓒ극단 코끼리만보 (사진_이강물)

<맨 끝줄 소년>

공연이 끝난 지금 심경이 어떠한지 <맨 끝줄 소년>의 가장 마지막 대사가 “이제 됐어요, 스승님. 끝이에요.”잖아요. 마지막 공연이 끝났을 때 ‘진짜 끝났구나. 잘 끝냈다.’ 안도감이 들었어요. 김동현 선생님이 안 계시고,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까 계속 불안했거든요. 초연과 다른 시도를 하는 것이 겁나기도 했어요. 다른 공연에서는 나쁜 평가를 받으면 그걸 안고 다음에 더 잘하면 되는데, 이 공연은 김동현 선생님과 했던 마지막 작품을 다시 한다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더 큰 부담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마지막 공연 때 ‘아, 이렇게 끝나는구나. 진짜 끝났다.’ 생각이 들었어요. 클라우디오가 성장했고, 저도 성장한 것 같아서 속이 후련했죠.

극단 코끼리만보의 단원으로서 특별한 추억이 있다면 2012년에 김동현 선생님과 함께 공연을 준비하던 때였어요. 선생님께서 연습 끝나고 술자리에서 “전박찬” 부르시더니 “너 아직 배우 아니야.” 이러셨어요. 큰 충격이었죠. 그러고 나서 2015년 2월 무렵 술자리에서 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찬이를 봐. 찬이는 자기 노력과 고민으로 좋은 배우가 됐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집에 가서 많이 울었어요. 선생님의 입으로 배우가 됐다는 얘기를 들은 그 순간이 너무 특별하고 기억에 남아요. 예전에는 누가 뭐하냐고 물어보면 배우라고 얘기하는 게 쑥스러웠거든요.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배우’라는 이름에 확신을 갖게 해준 순간이었어요.

배우가 되었다고 인정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제가 즐겁게 연극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괴로웠어요. 명동예술극장에서 <그을린 사랑>을 공연했을 때는 거의 매일 연습실 화장실에서 울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김동현 선생님께서 ‘연극은 즐거워서 해야 돼. 싸워도 즐거워서 싸우고, 술을 먹어도 즐거워서 먹고, 울어도 즐거운 눈물이어야 된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때 ‘아, 연극 즐겁게 하면 되는 거구나.’ 알았어요. 어차피 못하는 건 못하는 건데. 이제는 누가 너 잘 못한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아요. 나는 즐겁게 연극을 할 뿐인 거죠. 그런 모습을 보시고 배우가 됐다고 얘기하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아, 되게 보고 싶네요.

소년에서 배우가 되기까지

배우라는 꿈의 시작은. 저는 학교 다닐 때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밥>이라는 마당극을 봤어요. 그때 연극에 푹 빠져들어서 큰 교복을 입고, 더 클 줄 알았는데 안 컸거든요, 대학로를 종횡무진하면서 일주일에 두 편씩 연극을 봤어요. 시험 기간에도요. 돈 없으면 그냥 극장에 가서 돈 없는데 연극이 보고 싶다 하면 그 당시 90년대에는 들여보내줬어요. 그렇게 공연들을 봤었죠. 큰 교복을 입고 대학로 골목 골목의 극장들을 다 외울 정도로 공연을 보러 다녔던 조그만 소년. 그 소년이 학교를 들어가고 이런저런 시간들을 거쳐서 배우가 된 거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하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어렸을 때부터 누나에 대한 질투가 심했어요. 저는 누나 둘에 막내인데, 큰 누나가 우리 집에서 제일 공부 잘하고 제일 똑똑하고 제일 사랑 많이 받았거든요. 근데 누나가 미술원 2기예요. 그냥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경쟁자가 다니는 학교보다 좋은 학교를 찾아서 가려다 보니 한예종에 오게 된 거예요. 학비가 싸다는 것도 매력이었죠. 또 연극원은 같이 작업할 동지를 만나기 굉장히 용이한 곳이에요. 연극원에서 많은 선배들, 동료들을 만났던 것. 그게 학교에 다니면서 가장 좋은 점이었어요.

‘전박찬’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들었는데. 정말 이름을 바꾸고 싶었어요. 배우의 이름을 갖고 싶었거든요. 그동안 ‘전가람’이라는 특이하고 예쁜 한글 이름으로 살아왔으니까 평범하고 남성적인 이름으로 살고 싶기도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가는데 아버지께서 ‘찬’이라는 이름을 주시더라고요. 빛날 ‘찬’. 외자 이름은 싫다고 했더니 아버지께서 그러면 엄마가 당신하고 60세까지 살아줬으니 고마운데, 엄마의 성씨인 ‘박’을 가운데 넣으면 어떠냐 하셨어요. ‘전박찬.’ 처음엔 마음에 안 들었는데 그 얘기를 듣고 엄마가 우시더라고요. 거부할 수 없었어요. 김동현 선생님께서 그걸 알고 주신 뜻이 있어요. 제가 2010년에 참여했던 극단 코끼리만보의 공동창작 작품 <우리 말고 또 누가 우리와 같은 말을 했을까?> 원고를 보면 이런 부분이 있어요. “쌍계사 길에서 전과 박이 만나, 빛나는 사람이 되어, 가람을 건너, 전과 박이라는 두 단어 사이를 지나 빛나게 가득 찬 사람으로 여기에 왔습니다." 극장. 여기는 극장이거든요. 이게 제 이름의 뜻이 되었어요.

<생각나는 사람> ⓒ극단 코끼리만보 (사진_이강물)

묵직하고 느리게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다면. 제가 관객과 나눌 이야기를 찾을 수 있는 작품을 좋아해요. 제가 하고 싶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연극은 관객들에게 삶의 고민을 던져주는 연극이에요. 쉬운 공연이나 연기를 잘할 수 있는 공연보다 관객에게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고 그걸 제공하기 위해 저 스스로 고민할 수 있는 공연을 좋아해요. 그래서 <썬샤인의 전사들> 같은 경우에는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어요.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들이 작품에 있었거든요. 그것 때문에 할 수 있고, 못하더라도 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가 생각하는 배우 전박찬의 대표작은. 2015년에 극단 코끼리만보에서 근현대사 3부작 <말들의 무덤>, <착한 사람 조양규>, <먼 데서 오는 여자>를 했어요. 저는 이 중 <말들의 무덤>의 주연을 맡았었는데요. 그때 교복을 입은 한 고등학생이 와서 6·25 때 양민학살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는데 이 공연을 통해 알게 됐다고 했어요. 큰 감동이 되더라고요. 이 연극은 언젠가 또 되살릴 가치가 있는 의미 있는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 대표작은 <말들의 무덤>이에요.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때 제가 무대에서 들었던 막대기가 지금도 저희 집에 고이 보관되어 있어요. 언제든 <말들의 무덤>을 하면 그 나뭇가지를 쥐어야 하니까.

연극에서의 리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공연을 하면서 어떤 리듬을 발견한 경험이 있는지. 극단 코끼리만보 소개 글에 이런 말이 있어요. ‘연극이 극장에서의 그런 낯섦과 일상 사이에 소통과 긴장을 제공하기를 소망합니다. 코끼리처럼 묵직하고, 느리게. 그러다 어느 순간, 속도와 무게를 상상의 힘으로 털고, 나는 코끼리처럼.’ 제가 생각하는 연극 속의 리듬은 이거예요. 묵직하고 느린, 그렇지만 어느 순간에 상상의 힘으로 날 수 있는. 연습할 때 저조차도 뭔지 모르겠고, 재미없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연습실에서의 느리고 묵직한 순간들을 견뎠을 때, 무대 위에서 그 응축된 것들이 관객들과 만나는 순간이 찾아와요. 관객들이 미소 짓고 눈물 흘리는 순간들. 그 순간이 리듬을 발견하는 순간인 것 같아요. 저는 코끼리만보의 어린 코끼리입니다.

배우로서 삶의 리듬을 유지하는 일상의 노하우가 있다면. 조바심을 갖지 않는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닌데 욕심을 부려서 더 큰 것을 바라다보면 제 리듬이 깨진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삶 자체를 천천히 가려고 노력하고, 어느 순간 뛰고 있으면 다시 걸으려 해요. 일상의 노하우는요, 저는 정말 살림을 잘해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살림을 하면서 풀려고 노력하죠. 요리를 하거나 작은 화분을 심거나 하면서요. <썬샤인의 전사들> 끝나고 쉬면서는 초를 만들기도 했어요. 더불어 여행을 정말 많이 다녀요.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아침에 나가서 쭉 타다가 내려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그러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슬럼프야 오지 마.” 이러고 있죠.

앞으로의 목표는. 계속 공연을 할 겁니다. 지금도 연습 중이고요. 오는 12월에 극단 10주년이자 김동현 선생님 1주기를 기리는 특별 공연을 두산아트센터에서 준비하고 있어요. 일단 올해 제가 약속한 작업들을 충실하게 할 계획이고요. 목표는 단 하나예요. 무대에서 ‘한 남자’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게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지만, 누군가가 기억할 수 있는 ‘한 남자’이면 좋겠다. 이름 없는 한 남자. 그는 한 남자인 동시에 모든 이름이 될 수도 있죠. 그 남자가 되는 것이 저의 소망이자 목표예요.

<말들의 무덤> ⓒ극단 코끼리만보 (사진_이강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관객들이 연극을 많이 찾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마냥 재밌고 웃긴 공연들은 아닐지라도 <말들의 무덤>이나 극단 코끼리만보의 공동창작 같은 공연에서 관객들이 낯선 무언가를 보고 가져갈 것이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연극을 보며 미소 짓고 눈물 흘릴 수 있는 관객들이 많아지길. 그런 관객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길 소망합니다.

<맨 끝줄 소년>의 주인공 클라우디오에게 문학 선생님 헤르만이 있었다면, 배우 전박찬의 인생에도 소중한 스승이 계셨다. 그리고 클라우디오가 헤르만을 넘어서 그만의 작품을 완성했듯이, 배우 전박찬도 한 발짝 한 발짝 그의 배우 인생을 걸어나가고 있었다. 코끼리처럼 묵직하게. 하지만 즐겁게. 한 사람의 어엿한 배우로서.

글 | 김연수
사진 | 김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