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가장 명확한 시간예술이고, 건축은 가장 공고한 공간예술이다. 전자는 시간이 흘러가야만 들을 수 있고 후자는 그곳에 찾아가야만 감상할 수 있어서다. 각각은 그렇게 발전해왔다. 극단적인 입장 차이 때문에 서로를 빗대거나 탐하는 경우도 빈번히 벌어졌다. 그러나 괴테는 건축을 일컬어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말했다.

정반대에 위치하는 대칭 쌍은 때때로 어떤 의미를 공유하기도 한다. 완전히 다른 감각을 사용하는 것 같으면서도 자연히 형성되는 교집합이 있는 것이다. 예술 장르에서 음악과 건축은 그런 관계를 맺는다. 어디에 가는 동안에는 무언가가 들리기 마련이고, 어떤 음악을 듣는 일은 ‘어디에서’라는 말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음악과 건축이 대조적이라 한들 우리에게 둘은 동시에 와 닿을 수밖에 없다.

그런 맥락에서 리듬은 두 예술 장르가 얼마나 다른지를 일러주고 어떻게 같아질 수 있는지를 도와주는 개념이다. 리듬이란 개체 간에 일정한 규칙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두 예술 장르 모두 개별 개체만으로는 작품이 될 수 없어 리듬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음표 하나는 음악이 아니라 소리고, 벽돌 하나는 건축이 아니라 자재에 불과하니 말이다. 음표들 사이의 높낮이와 빠르기, 강약을 가리키는 음악에서의 리듬이, 건축에서는 물리적인 요소들이 어떤 모양과 간격으로 배치되고 구성되는지를 가리킨다. 전혀 다른 감각을 사용하는 것 같으면서도 음악과 건축은 일정한 체계 내에서 분석 가능한 리듬을 공유하고 있다.

파빌리온 21 미니 오페라 스페이스 ⓒCOOPHIMMELR (L) AU

음악이 건축화되거나 건축이 음악화되는 사례를 찾아보면 리듬의 사용 양상은 뚜렷하게 관찰된다. 더구나 음악에서의 악보라는 시각적 도구는 건축에서 발견되는 리듬이 음악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비교시켜 준다. 시간성을 제외하고 물질성을 부여할 수만 있다면 음악의 비례 체계는 건축물을 구성하는 리듬으로 치환될 수 있는 셈이다.

건축에서의 리듬과 음악에서의 리듬을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는 사례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방식은 음악을 건물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막대한 자본이 드는 건축은 많은 경우에 어떤 인물과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을 집합시키기 위한 연주홀과 뛰어난 음악가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악홀이 기념하는 건 당연하게도 음악이기 때문이다. 이때 건축가들은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공간이 그 자체로서도 음악을 뿜어낼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저마다 특별한 음악적 리듬을 이 건물에서 어떻게 그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와 같은 내용을 고민한다.

음악적 리듬이 유난히 두드러지는 것으로 꼽히는 건축물 중 하나는 쿠프 힘멜블라우가 설계한 ‘파빌리온 21 미니 오페라 스페이스’다. 애당초 건물 디자인이 지미 헨드릭스의 <퍼플 헤이즈>라는 강렬한 록 음악의 한 소절을 복사해 해당 음향 파일의 주파수를 그대로 3D 모델링 프로그램에 연결해 나온 정보 값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건물의 뾰족뾰족한 입면을 만드는 강한 선은 음악의 거친 선율과 그 선들을 잇고, 다양한 넓이의 면은 곡을 구성하는 여러 화성과 호응하는 한편 건축가가 선택한 건물의 재질과 색채는 지미 헨드릭스 음악의 짜임새와 음색에 대한 나름의 해석이다.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라는 시각적 조형에서 디자인 원리를 찾은 프랑크 게리의 ‘익스피어린스 뮤직 프로젝트’가 음악에 대한 건축가의 개인적 해석이라면 힘멜블라우의 디자인은 음악의 리듬과 건축의 리듬을 완전히 공유하고 있다. 여기에서 건축은 물성이 있는 음악으로서 존재한다.

빌라 로툰다
칼 젤킨스, <팔라디오> ⓒWikimedia Commons, the free media repository

한편 두 장르를 연관 지을 때 누구보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은 단연 이안니스 크세나키스다. 근대기 동안 개별화된 장르가 다시 어떤 융합을 추구하게 되는 현대의 작곡가로서 그는 음악가인 동시에 건축가였으며, 작곡 활동을 하는 동시에 당대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사무실에 근무한 이력 또한 가지고 있다. 크세나키스는 음악의 건축화 혹은 건축의 음악화가 아니라 건물 스케치를 고스란히 음악 작곡에 이용하거나 반대로 자신의 음악을 그대로 건물 디자인으로 이어가면서, 아예 음악과 건축을 동시에 상상해 작곡하고 설계하고자 했다. 그의 음악에서의 대표작 <메타스타시스>와 건축에서의 대표작 ‘브뤼셀 필립스 전시관’의 상관성은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격자 종이에 포물선을 그려 음표로 변환해 만든 음악은 61개의 악기가 61개의 성부를 연주하는 복잡성을 지니는데, 이것을 다루기 위해 크세나키스는 설계도를 그렸고, 또 기하학 곡선의 모습을 한 현의 글리산도1)는 ‘브뤼셀 필립스 전시관’의 조형에 그대로 이용된 것이다. 이안니스 크세나키스는 어느 감각과 매체를 나누지 않고 같은 리듬 선상에서 두 장르를 함께 창조해냈다.

이안니스 크세나키스 ⓒANDERSEN, SIPA

일정한 개체 사이에서 맺어지는 특정한 규칙을 가리키는 리듬이 일정하지 않은 개체를 오갈 때도 찾아질 수 있다는 건 흥미로운 사실이다. 개인의 특수한 감성을 넘어서 음악과 건축은 서로 어떤 보편 요소를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다르게 감각을 사용하는 두 장르에서 리듬은 그것을 일러준다.

유사한 질서를 공유하는데 서로 다른 물질적 상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라는 문장의 비유는 그것이 언젠가 녹아 원형으로서 흘러갈 수 있다는 전제를 하고 있다. 건축과 음악 간의 상호 교류가 없었을 때의 괴테의 말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어떤 유효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굳건히 버티고만 있을 것 같은 건축 구조물 사이의 리듬은 시간에 따라 그곳을 지나가는 발걸음을 통해 또 다른 리듬으로 변화하거나 이해할 수 있다. 두 개의 물질 상태를 변이시키는 것이다.

음악을 정직한 시간에 따라 들을 때 비로소 그 사이사이 형성되는 리듬을 느낄 수 있고, 건물 요소요소 사이의 크기와 간격을 비롯한 공간감을 직접 느낄 때에야만 건축에서의 리듬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함께 느낄 때 훨씬 풍요롭게 와닿는다. 여기에는 같은 아름다움을 다른 차원에서 즐기는 재미까지 존재한다.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고 음악은 흘러가는 건축이라는 말은 절대적으로 다음을 전제하고 있다. 두 상태를 얼마든지 뒤바꿀 수 있다는 상상력 말이다.

브뤼셀 필립스 전시관 ⓒFLC/ADAGP
글 | 이지웅
1) 높낮이가 다른 두 음을 급속한 음계에 의해 미끄러지듯이 소리내는 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