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감독 김홍준

영화감독, 평론가, 교육자 그리고 이제는 예술감독까지. 동시대의 대한민국 영화사(史)에서 그간 김홍준 교수가 남겨온 족적을 어느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있을까. ‘그저 영화가 좋아서’라는 김홍준 교수의 말처럼,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각양각색의 그의 영화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과연 빛바래지 않은 영화를 향한 그의 애정을 만나게 된다. 어느 한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 영화인 김홍준의 발자취에는 더께가 앉을 새 없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제2회 충무로뮤지컬영화제 포스터

예술감독 김홍준의 오늘

충무로뮤지컬영화제 준비로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충무로뮤지컬영화제는 엄연히 말해서 뮤지컬적 요소에 영화를 접목시킨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는 축제의 장입니다. 공연과 영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새로운 라이브 포맷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인 셈이죠. 기존의 영화제라는 제도적인 틀 속에서 뮤지컬이라는 특성을 살리면서 시대에 맞는 새로운 관객층과 새로운 탤런트를 발견하는 것이 이 축제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뮤지컬영화뿐만 아니라 한국 내 뮤지컬 장르에도 자극을 주고 지원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제2회 충무로뮤지컬영화제의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밥 포시’와 ‘<라라랜드>’입니다. 밥 포시는 20세기 뮤지컬을 대표하는 인물이에요. 올해 그의 탄생 90주년이자 타계 30주년을 기념하고자 합니다. 한편 <라라랜드>는 최근에 만들어진 뮤지컬영화로서 전 세계적 열풍을 일으켰는데요, 좀 더 다양하고 색다른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을 준비해보았습니다. 사실 <라라랜드>는 고전 뮤지컬영화의 포맷에 새로운 내용을 담은 일종의 복고적인 노선을 밟고 있는 영화예요. 그래서 특별히 이번 영화제에서는 고전 영화 섹션에 있는 뮤지컬 영화들을 두루 권하고 싶습니다. 외국에서는 뮤지컬 양식을 활용한 스릴러라든지 사회드라마 같은 시도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요, 이번 영화제를 통해 국내에서도 뮤지컬영화를 하나의 장르라기보다는 표현양식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글스토리>

영화처럼 김홍준처럼

학부 시절 전공은 인류학이었는데 영화라는 꿈이 어떻게 현실이 되었나요. 영화는 제게 꿈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영화가 목적 지향적이었던 적은 없었으니까요. 그동안 영화감독이기도 했고, 영화제 프로그래머이기도 했고, 영화과 교수이기도 하지만 매번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영화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으며 그것이 나의 사회적인 정체성이 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게 해 온 것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네요.

<장미빛 인생>와 <정글스토리> 이후 더 이상 상업영화를 제작하지 않으신데요. 무엇보다도 당시에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상업영화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저한테는 영화감독으로서 세 번째 영화를 찍는 것보다도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우선적인 가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그 후 학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땐 그 일만으로도 정신이 없더군요. 지금은 교육자로서 또 영화제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확고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24시간 365일을 전력투구를 해도 어려운 상업영화 감독의 역할을 다른 일과 병행하면서 한다는 것은 도의적으로도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 이르렀죠.

영화 제작뿐만 아니라 단역 출연 경험에 영화제에서 활약까지 하다 보면, 매번 관객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관객 없이 영화는 존재할 수 없으니 관객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존재죠.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첫 번째 관객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를 찍는 것이 중요하겠죠. 제작자의 입장에서 관객은 변덕스럽고 때론 원망스러운 존재일 수 있겠지만 끝까지 관객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영화를 계속해 나갈 수 있는 힘이 되겠죠.

평소 즐겨보는 장르가 따로 있으신가요. 영화 볼 시간이 많지 않아서 볼 수 있을 때 가리지 않고 다 봅니다. 영화 자체가 장르인데 따질 필요가 있나요. 무서운 영화는 잘 못 봅니다. 마음이 약해서… (웃음) 그때그때 취향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영화를 고를 때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나 개인적인 정서 등에 좌우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가지 것들>, <장미빛 인생>(왼쪽부터)

‘구회영’이라는 필명으로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 세가지 것들>이라는 책도 쓰셨는데요.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본명을 쓰고 싶지 않았어요. 그 책은 90년대 초반 문화 전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폭발적이었던 상황 속에서 의뢰를 받아서 <로드쇼>라는 잡지에 매달 글을 연재하던 것을 엮은 것인데요, 당시 지면에 실릴 글을 쓴다는 것이 처음에 좀 쑥스럽더라고요. 그래서 필명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사람들이 나중에 ‘구회영’이 ‘구십년대를 회고하는 영화광’의 약자라고 이름 붙여줬죠. 사실 우연히 눈에 띈 신문 부고란에서 돌아가신 어느 분의 친척 이름을 쓴 건데, 저도 누군지는 몰라요 (웃음).

앞으로 영화와 관련해서 도전해보고 싶은 시도는 무엇인지요.영화에 관한 새로운 시도라면 무엇이든 괜찮아요. 사실 되고 싶은 건 하나 있는데. 흥행감독이 되고 싶어요 (웃음). 한번은 한 절친한 감독이 놀린 적이 있거든요 “형은 흥행감독의 기분이 뭔지 모르지?” 그래서 그 기분이 뭘까… 그렇습니다 (웃음).

김홍준 그리고...1)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서 시나리오 수업을 담당하고 계시는데요. 개인적으로 시 나리오 창작과 교육은 서로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나리오 교육자로서 저는 작법 보다는 그 단계 이전에 해야 할 것, 인터뷰라든가 자료 조사 혹은 공간에 대한 감수성 같이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 어떻게 스스로를 훈련할 수 있을지 그러한 도구를 학생들 손에 쥐 어 주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저에게 있어 시나리오를 쓰는 것과 영화를 만드는 것은 근본 적으로 같은 일이에요. 시나리오를 통해서 연출을 가르치는 셈이죠. 시나리오는 아직 만 들어지지 않은 영화를 문자 형태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좋은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해 서는 먼저 좋은 영화 연출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원의 <마스터 클래스>는 한예종 최고 인기 수업 중 하나로 꼽히는데요. 올해로 벌써 7년 차가 됐네요.영상원 초기에 영화감독 자격으로 특강을 했는데 동업자 내지는 동병상련의 느낌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어렴풋이 언젠가 이러한 구성의 수업을 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많은 학생들이 영화를 찍느라 영화 찍을 자금, 스태프 를 구하느라 바빠서 정작 영화 볼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최근의 한국영화들을 보여 주고, 관계자들을 초청해서 일종의 영화제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 게스트로 다시 와줬으면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실현되더라고요. 그 런 것이 학생들에게는 또 자극이 되기도 하죠. 매번 섭외라든가 저작권 동의를 받는 일 등 어려움이 많지만 영화학교다운 수업 중 하나라는 점에서 계속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트위터 김홍준봇2)으로도 유명하신데, 유머 멘트를 종종 연습하시는지요. 봇이 나온 이후로 의식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한동안 열심히 연습했었는데 요즘 봇 활동이 뜸해서 다시 평소로 돌아갔네요. (혹시 기억에 남는 멘트가 있으신가요.) 후배들이나 제자들한테 특히 해주고 싶은 말로 ‘잘 나갈 때는 즐겨라’라는 말입니다. 물론 오만해서는 안 되겠지만 뭔가 성취를 했고 주변에서 주목하고 칭찬해준다면 그 순간만큼은 목에 힘을 주며 기뻐하고 즐겨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 건 금방 잊히거든요. 그러다 그 순간이 지나면 실망할 게 아니라 ‘원래 세상의 이치는 이렇지’ 하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스승으로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건강을 항상 중시했으면 좋겠어요. 건강을 희생해도 된다거나 그렇게 해야만 더 예술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세상이 때론 뒷걸음질하는 것처럼 보여도 길게 놓고 보면 조금씩은 더 좋아지고 있는 것 같거든요. 특히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나부터 건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평소 특별해지지 않기 위한 나름대로의 규율과 훈련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가령 시사회나 영화제만을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개봉일 혹은 주말에 관객들 틈에 섞여서 영화를 보는 시도 같은 것을 의도적으로 해보는 것이죠.

끝으로 학생들에게 어떤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는 것.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신이 가르치는 것을 학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또 그걸 떠나서 학생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즐거움을 느끼고 있으며 이 시대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나가려고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굉장히 궁금해 하고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글 | 유예빈
사진 | 김경수
영상 | 박억
1) 몇몇 질문을 수집하는데 있어 도움을 준 영화과 박성호 학생 고맙습니다. 평소 김홍준 교수님의 팬을 자처하고 있다 합니다.
2) 김홍준 교수의 어록을 정리해놓은 트위터 계정 @kimhongjun_b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