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연을, 영화를, 전시를 보는 것이어도 그 자리가 축제라는 데서 오는 설렘은 남다르다. 일정한 시간 안에, 일정한 장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에서 축제는 시작과 끝이 명확한 한 편의 악곡을 연주하는 것이면서, 철저한 준비만으로 예방할 수도 없고 종종은 예방할 필요 없는 별안간의 재미를 준다. 선명한 지시어가 있는 클래식보다도 재즈와 더 닮았다. 또한 시간의 측면에서 축제는 갓 만들어진 작품들과 한 해 동안 자주 이야기된 작품들, 오래되었지만 다시금 사람들의 앞에 나타나 이야기되는 작품들이 만나 서로 다른 리듬을 겹치고 새로운 결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공간의 측면에서는 축제가 벌어지는 지역을 견고하거나 느슨한 울림통 삼아 파장과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축제라는 시공간의 예술 덩어리가 특별히 분방한 리듬을 만들어내는 곳들이 있다. 춘천마임축제는 춘천이라는 고장이 갖고 있는 지리적 특성과 설화, 마임이라는 장르가 포괄할 수 있는 매혹을 동시에 보여준다. 축제의 시작 ‘아수라장’은 춘천 공지천에 내려온 도깨비가 한바탕 난장을 벌이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시내 한복판에 물을 뿌리고 몸을 적시는 전통적인 민간의 축제와 퍼레이드를 마주치게 하는 데서 시작한 축제는 극장을 비롯해 춘천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공연을 거쳐 금요일과 토요일 밤새 불쑥불쑥 몸짓을 보여주며, 함성을 지르고 춤추고 마시고 노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축제에서는 무언극, 마술쇼, 굿, 미디어와 신체예술의 결합, 드랙 쇼, 전통무용, 불 쇼 등 수많은 종류의 마임이 펼쳐지고 병원, 길거리, (102보충대가 춘천에 있던 시절에) 군부대, 운동장, 야외 공간 곳곳이 공연장으로 대뜸 활용된다.

춘천과 때때로 라인업 일부를 공유하는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는 가족 단위의 관객, 유모차를 탈 정도로 작은 아기부터 친구와 같이 온 어린이들이 많다. 거리극축제의 공연은 서울의 위성도시이자 외국인 거주자가 많은 도시, 공단이 있는 도시이자 여러 대학이 위치한 안산의 번화가 25시광장의 찻길을 막고 기다란 거리의 한가운데에서 펼쳐진다. 25시광장은 지하철역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 축제가 열리는 시기는 항상 입하(立夏)의 언저리인 탓에 지하철에서 내려 광장에 도착할 때쯤이면 얼굴이 발개진 채다. 외국인거리에서 온 음식 트럭의 향신료 냄새, 바람개비며 풍선을 든 아이들, 하늘을 날아다니고 벽을 타는 사람들, 동시다발로 쏟아지는 함성과 음악과 재잘거림이 조금씩 여름의 기운을 풍기는 광장을 채우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춘천마임축제 ⓒCIMF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새롭게 둥지를 튼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경기장의 군데군데를 사용하며 비어 있는 공간에 숨을 채운다. 여러 층, 여러 형태로 나뉜 관람석과 운동장, 경기장을 빙 두른 여러 개의 출입구와 유휴 공간, 계단까지 모두 공연장으로 쓰인다. 관객은 각각의 작품을 관람하기도 하지만 길이도 형식도 제각각인 참가작들이 공간을 3D 정간보(井間譜)1) 삼아 어떻게 축제를 채워나가는지도 볼 수 있다. 홍대 거리 일대와 소극장에서 열렸을 때보다 접근성이나 공간의 제약 면에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지만 우연과 의도, 조건과 선택이 만나고 부딪치고 결탁하는 순간들을 목격하고 거기까지 나가기 위한 과정을 상상할 때 드는 감정은 더 남다르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 ⓒASAF

단 한 개의 스크린, 단 하나의 무대만을 쓰는 축제도 있다.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정동진에 있는 작은 학교,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다. 해가 질 무렵부터 시작되는 영화제는 강릉 시내와 한 박자 멀리 떨어져 있는, 대중교통으로 가닿을 수 있음에도 어쩐지 별세계 같은, 정동진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을 마법처럼 활용한다. 쑥불을 피워 날벌레를 쫓고, 텐트와 돗자리, 의자에 앉아 강냉이를 먹으며 에어스크린에 영사되는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느덧 어두워진 하늘에 별이 총총 떠오르고, 기찻길에서는 칙칙폭폭 철로를 지나는 열차 소리가, 학교 바로 뒤편으로 펼쳐진 밭에서는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린다. 상영이 모두 끝난 후에도 사람들은 함께 먹고 마시면서 밤을 지새우고, 정동진 해변으로 비척비척 걸어가 일출을 보고 밤낮이 바뀐 채로 잠이 든다.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찾아오는 것마저도 재미로 느껴지는 곳에서 관객들은 축제만의 리듬으로 영화제가 열리는 사흘을 산다.

정동진독립영화제 ⓒJIFF

마찬가지로 바닷가에서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는 통영이라는 바다 마을과 음악이 마주친 자리에서 벌이는 협연을 볼 수 있는 자리다. 작곡가 윤이상이 태어나 살았던, 봄의 통영에서 열리는 음악제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펼쳐지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연주자의 클래식한 공연뿐만 아니라 신인 작곡가와 연주자,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이는 예술가들,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음악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데 집중한다. 음악제의 일환이자 독립적인 축제로 ‘통영 프린지’가 마련되어 있는 것도 특징인데, 음악 교육을 받거나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지 않은 이들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자리다. 꽃나무에 흐드러진 봄꽃, 바다의 짭잘하고 촉촉하고 따사로운 공기, 푸른 빛깔과 촉감의 하늘과 벌판은 음악적인 시도와 더불어 실내 공연 중심의 음악제가 관객에게 건네는 공감각이라 할 법하다.

통영국제음악제 ⓒTIMF

여름의 부천에 묘한 분주함을 불러일으키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중동신도시의 일상적인 평범함을 도리어 축제의 장점으로 만든다. 한 블록 건너 있는 쇼핑몰과 멀티플렉스는 어느 신도시에서나 만날 수 있는 심상한 풍경이지만, 시간표에 맞춰 바지런히 뛰어다니는 관객에게는 촘촘히 응집한 상영관이 꽤나 도움이 된다. 전주나 부산처럼 내내 영화를 보러 작정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표를 예매한 뒤 해당 도시를 찾는 사람들보다는 적당히 먼 거리를 출퇴근하듯 찾는 이들이 많고, 평소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상영관에서 비밀스러운 접선이 이루어진다. 이곳에서는 ‘판타스틱’ 영화제라는 이름에 걸맞은 영화들이 상영되는데, 그중 랑데부의 즐거움을 주는 건 타지에서 건너온 B급 전투에로코미디를 볼 때다. 이 카테고리로 설명할 수 있는 영화는 매년 빠지지 않고 부천에 등장하는데, 일단 영화가 시작하고 나면 나른한 번잡함이 감도는 신도시의 주민처럼 극장에 등장한 관객들이 나란한 타이밍에 나란히 탄식하고 웃고 싫고 좋음을 소리 내어 표현한다. 이 합주, 특정한 축제를 방문하는 사람들 사이의 이심전심이 만드는 조그마한 활기가 재미있다.

축제 그 자체를 넘어서 도시 전체를 탐방하게 되는 곳도 있다. 다른 축제에 비해 장기간 열리는 데다 여러 장소를 행사장으로 활용하곤 하는 비엔날레의 경우 관객의 시야는 자연스레 비엔날레가 열리는 도시의 군데군데로 뻗어 나간다. 지난해 광주비엔날레는 전시관과 더불어 광주5.18기념관과 대인시장처럼 광주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장소, 아시아문화전당처럼 광주에 위치한 국제적인 예술 공간, 무등현대미술관, 우재길미술관, 의재미술관, 미테-우그로처럼 광주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곳 등 광주 전역을 골고루 행사장으로 활용했다. 참여 작가의 제안, 도시와 비엔날레와 작가의 협의, 작품이 갖는 의미와 물리적 특성, 광주의 지역성 같은 요소가 따로 또 같이 숙고된 결과다. 각 공간과 그 공간에 놓이고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작업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광주 안에 발자국으로 선을 그리는 일이 된다. 518번 버스의 노선, 미술관 거리, 서울역에서 광주역까지, 터미널에서 터미널까지, 여러 굵기와 길이의 선을 그어가며 광주를 그리고 비엔날레를 탐방하다 보면 시간을 묶어두고자 하는 정지된 드로잉, 최후의 서사로 달려가는 영상, 과거의 자국과 현재의 리뉴얼, 그야말로 수많은 시간 축이 공간 축에 수직선을 그으며 더해진다.

축제가 펼쳐지는 장소와 축제가 풀어놓는 시간 한편으로 축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축제를 만드는 데엔 많은 이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스태프와 자원활동가들이기도 하다. 당연히 관객 또한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축제의 선율을 만드는 사람들, 각각의 작품과 이벤트를 마디 삼아 악보로 만들고 어떻게 연주할지 상상해둔 사람들이 있기에 축제는 비로소 시작되고 자신의 리듬을 찾는 것일 테다.

글 | 김송요
1) 우물 정(井)자 모양의 칸에 음의 높이와 길이를 표시한 옛날의 악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