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크누아 오케스트라 콘서트

오케스트라의 어원인 오르케스트라(orquestra)는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 무대와 객석 사이의 넓은 공간을 뜻한다. 또한 루소는 <음악사전>에서 오케스트라를 ‘여러 가지 악기의 집합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무대 위 수많은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 그리고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이 오케스트라인 것이다. 관객은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한 악기의 리듬에 집중하지 않고 각각의 리듬이 만들어낸 전체적인 하모니를 만나고자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극장에서 5월 19일 <2017 크누아 오케스트라 콘서트>가 열렸다. 음악원 1, 2학년 연주자들로 구성된 이번 콘서트 무대가 학생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최근 서초동 캠퍼스는 리모델링 공사로 인해 다분히 분주하고 시끄러웠다. 그러나 그 소음은 음악원 학생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소리였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어 오케스트라 연습실이 있는 4층까지 자신들의 악기를 들고 다니고, 부족한 연습 공간을 공유하는 음악원 학생들의 모습은 이미 일상이 되었다. 긴장감이 흐르는 연습실,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운 분위기. 그러나 학생 개개인의 진지한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서로 닮아 있었다.

<2017 크누아 오케스트라 콘서트> 리허설 현장

크누아 오케스트라만의 리듬

음악원 1, 2학년은 크누아 오케스트라, 3, 4학년은 크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매 학기 수업의 일환으로 오케스트라 전체 공연을 준비한다. 크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박지훈 악장은 크누아 오케스트라에 대해 “학생 때 접하기 어려운 곡들을 배우고 연주한다”며 “지금 1, 2학년의 노력은 다음 무대인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도 빛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무대를 위해 학생들이 합을 맞춘 연습 시간은 15주간 3시간씩 총 45시간이다. 협연자와 지휘자, 그리고 다른 파트와 음을 맞추기 위해 모두가 함께 하는 전체 연습은 공연 2주 전부터 총 3번의 연습이 전부였다. 그래서 공연 당일 무대 위에서의 리허설도 이들에게는 수업일 만큼 1분 1초가 소중했고 더욱 특별했다. 리허설의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지휘자는 무대 위의 학생들, 그리고 객석 곳곳의 지휘과 학생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했다. 파트별로 어떤 소리가 부족한지, 곡 중간중간에 무엇을 더 보충해야 하는지, 전체적인 느낌은 어떤지. 리허설 내내 객석에서 집중하고 있던 지휘과 이만열 학생이 지휘자 선배님께 당당하게 말한다. “전체적인 흐름이 좋아요. 1악장의 중간 부분은 좀 더 파워풀하게 연주해야 할 것 같아요.”

무대 전체를 크누아 오케스트라만의 리듬으로 채우기 위해 쌓은 이 시간들은 단순히 수업 발표가 아닌 하나의 완성된 공연이었다. 여름의 초입에 들어선 날씨에도 공연장에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 모두 땀을 흘리고 연주를 잠시 멈춘 손은 절로 부채질을 하게 된다. 리허설이 끝나고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자던 황미나 지휘자의 말에 환호성을 지르던 모습에서 1, 2학년의 활기와 순수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악기를 드는 순간만큼은 너무나도 진지해지는 표정에 모두가 천상 연주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7 크누아 오케스트라 콘서트> 리허설 현장

하모니를 위하여

하나의 하모니를 위한 연습과 수업 시간이 학생들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비올라를 전공하는 김장훈 학생은 “오케스트라는 악기의 정체성을 알게 되는 특별한 순간이다. 주 멜로디가 여러 악기로 옮겨 다니면서 서로의 조화를 알게 되고 그 속에서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은 무엇인지 더욱 선명하게 해주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혼자만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무대는 아니지만 함께해서 더욱 특별한 시간인 오케스트라. 함께 어우러지기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맞춰가야 하는, 어렵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다.

상대적으로 현악기가 많은 오케스트라에서 관악기 파트에게 이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한 학생은 “주인공은 현악기일지도 모르지만 노력의 결과로 선발된 관악기 학생들과 함께해서 즐거웠다”며 미소를 지었다. 플루트를 전공하는 김채연 학생은 공사 중인 캠퍼스에서 연습을 하며 악기를 관리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더 인상적이라고 했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잘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하모니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할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무대를 위한 개인 연습은 전체 연습만큼 중요한 필수 과정이에요. 오케스트라는 누구보다도 각자의 역할에 더욱 집중하기 때문에 스스로 발전하기 위한 소중한 시간인 것 같아요.”

모든 구성원이 개인 연습은 신중하게, 모두가 모이는 연습에서는 어느 하나의 리듬도 무너지지 않게 해야 하는 오케스트라 공연 준비, 그러한 노력의 과정을 거친 연주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악기 소리를 좀 더 크고 존재감 있게 내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무대에서의 완전한 하모니를 위해서는 그러한 욕심은 접어둬야 한다. 가끔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소리를, 가끔은 무대 전체를 울려야 하는 커다란 소리로 연주해야 한다. 지휘자의 손길 아래 모든 연주자들이 서로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리듬을 만든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각각의 리듬들이 의미를 가지며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그 순간 아름다운 멜로디가 탄생한다.

<2017 크누아 오케스트라 콘서트> 리허설 현장

한걸음 더

황미나 지휘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지휘과 출신이다. 크누아 오케스트라에서의 시간을 경험했던 선배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이기에 학생들에게 이번 공연은 더욱 특별하다. 그녀의 가장 큰 역할은 학생들이 “선배들의 열정을 이어가고 있는지 지켜보며 제자이자 후배들을 이끌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앞으로 계속 한 계단씩 천천히 올라갈 것이다. 황미나 지휘자처럼 후배와 제자들의 손을 잡아 앞으로 이끌면서. 그러다 힘들어서 발걸음을 멈추게 될 날도 있겠지만 한숨 돌리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크누아 오케스트라의 한 학생이 말했다. “우리들에게는 중요한 수업입니다. 관객이 들을 수 있는 공개적인 수업이라는 점이 특이하죠.” 진지함과 신중함을 표현하는 검은 의상, 다양한 악기, 연습실과는 다른 화려한 조명, 눈길을 떼선 안 되는 지휘봉, 세심하게 박자를 맞추는 발, 그리고 응원이 되는 관객의 박수소리. “우리가 잘하고 있는지 봐주세요. 한 걸음 더 나아가도 되겠죠?”라고 눈을 빛내며 말하는 학생들의 리듬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수업이자 공연을 마치는 동시에 모두 잠시 악기를 내려놓고 뒤를 돌아본다. 한 명의 연주자가 되기 위해 15주간, 아니 악기와 마주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삶을 어떻게 걸어왔는지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마지막 수업이자 공연 무대가 끝난 뒤 뒤풀이에서 눈물을 흘리는 학생도 있다. 모두의 땀과 노력이 묻어난 전체 연습실과 개인의 악기 소리로 바랜 작은 연습실에서의 시간을 떠올린다. 힘들었던 일들, 서로가 있어 힘이 되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가며 한 학기와 이별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가야할 길이, 갈 수 있는 길이 무한하게 펼쳐져 있다.

글 | 이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