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8min, 모두의 영화제1)

영상원 방송영상과 / 영화과 졸업영화제

<1295min, 모두의 영화제>라는 타이틀은 영화과 졸업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들의 분량을 더한 것으로 감독 각자의 개성과 노력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또한 방송영상과 졸업영화제에서는 흰 가면과 셔츠, 그리고 청바지로 통일된 학생들이 자신만의 동작과 걸음으로 각자의 운율을 만들어내며 트레일러를 장식했다. 트레일러조차 하나의 소중한 작품이었다.

2017년 2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제13회 방송영상과 졸업영화 제와 제19회 영화과 졸업영화제가 열렸다. 기나긴 기다림 끝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와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케이씨네와 압구정 CGV 아트하우스 두 곳을 찾았다. 방송영상과 졸업 영화제는 <그날>,<빨간 벽돌> 등 16편의 작품이 상영되었고, 영화과 졸업영화제는 <오제이티>, <자유로>, <윗층의 꼬마>, <예술의 전당>, <홍어> 등 총 69편2)의 작품이 28섹션으로 나뉘어 상영되었다. 다양 한 구성과 개성 있는 스토리를 통해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함께했던 시간의 경로와 그 끝맺음을 보여주며 청춘들의 열정과 질문을 담아냈다.

과거지만 현재이기도 한 이야기

‘졸업생들의 13월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은 제13회 방송영상과 졸업영화제에서는 다큐멘터리가 강세를 보이며 인간의 수많은 감정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담고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이었던 친할아버지와 인민군이었던 외할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정수은 감독은 <그날>에서 어린 시절 목격한 외할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하여 주변인들과 가족, 그리고 자신에게 계속해서 고통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한편 주현숙 감독은 <빨간 벽돌>에서 30년 전 일어난 구로 동맹 파업, 그 선택의 순간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많은 작품들이 누군가 해야 할 일들 혹은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대다수가 지나쳐버리는 일들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과거의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들의 현재이기도 한 이야기들이었다.

정수은 감독의 <그 날>, 주현숙 감독의 <빨간 벽돌> (왼쪽부터)

도래할 미래의 모습은 무엇일까

제19회 영화과 졸업영화제는 총합 1295분의 영화들이 다양 한 소재와 주제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올해에도 여지없이 매진행렬을 보였다. 다양한 영화 가운데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소재 및 설정과 기법 등에서 새로운 시도와 도래할 미래의 모습을 선보인 작품들이었다. 김승혁 감독의 <2년 후 내일>은 핵전쟁으로 인해 인류는 종말을 맞게 되어 이를 막기 위해 미래에서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온다는 내용이었으며, 정윤희 감독의 <New Era>는 진화를 거듭한 인공지능이 인간을 공격하게 된 세상을 그리고 있다. 또한 최수진 감독의 <오제이티>는 ‘On the Job Training’의 약자로 인공지능 신입사원을 훈련시키게 된 만년대리가 그 뒤에 감춰진 회사의 음모와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영화의 엔딩은 통쾌할지언정 인공지능이 인간의 업무 중 어떤 영역과 범위까지 대체가능할지, 그렇게 되면 인간의 역할은 무엇일지에 대한 질문은 관객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최수진 감독의 <오제이티>

우리들의 이야기

각종 영화제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가 있다면 현 사회의 모습들일 것이다. 박종인 감독의 <오늘의 뉴스>는 구질구질한 삶을 살아가던 백수가 선행 한번 해보려다 살인범으로 오해를 받게 되는 모습을, 홍명교 감독의 <흔들리는 사람에게>는 직장에서 상사에게 구박을 받으며 일하는 계약직 사무직이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다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연제광 감독의 <홍어>는 중소기업 신입사원이 홍어집에서 대리와 함께 전무를 접대하게 되는 내용으로 직장 초년의 청춘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장면이다. 홍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신입이 상사가 보는 앞에서 그가 권한 홍어를 먹어야만 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폭력 및 성추행, 더 나아가 하극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내내 노심초사하게 된다. 살면서 겪어야만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연제광 감독의 <홍어>

일상에서 자유로 드라이브

일상의 일탈을 소소하면서도 멋지게 그려낸 리얼리티 작품들도 많았다. 이준섭 감독의 <예술의 전당>은 승객이 두고 내린 스마트폰을 팔며 수입을 챙겨온 택시기사가 비오는 밤 우연 히 바이올린 하나를 손에 넣는 이야기다. 바이올린을 팔아버리려다가 우여곡절 끝에 원래 주인인 학생에게 콩쿠르 예선 당일 돌려주게 된다. 마지막 장면은 택시기사가 예술의 전당 관객석에 앉아 콩쿠르 예선에서 자신이 돌려준 바이올린이 켜는 음악을 듣는 것으로 끝난다. 그 모든 과정은 그가 처음 겪는 것들이다. 우리가 언젠가 어디선가 처음 예술을 마주했던 것처럼. 황슬기 감독의 <자유로> 또한 주인공이 택시기사다. 힘들게 택시운전을 하며 중국에 유학 중인 딸에게 돈을 보내는 한 여자, 그리고 화려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현실과 괴리가 있는 친구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인생에서 자신들을 억죄고 있는 것들을 서로가 대신하여 창과 방패가 되어주며 마침내 그들은 ‘자유로’를 드라이브한다.

‘졸업’이란 단어는 ‘Graduation’ 뿐 아니라 ‘Commencement’ 로도 번역이 된다. ‘Commencement’는 ‘졸업, 학위 수여식’ 이외에도 ‘시작, 개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졸업 영화제는 곧 예술가로서의 새로운 첫걸음이다.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단 작품과 작업이 끝난 지금부터 예술 활동은 다시 새롭게 시작된다. 앞으로 계속 이어질 청춘들의 활동을 기대하며 응원한다.
Commence work! 아직 2088분은 끝나지 않았다.

황슬기 감독의 <자유로>, 이준섭 감독의 <예술의 전당> (왼쪽부터)
글 | 이교영
1) 영화과 졸업영화제 타이틀 <1295min, 모두의 영화제>에서 차용. 추가된 793분은 방송영상과 졸업영화제 작품 분량을 더한 것이다.
2) 전문사 36편, 예술사 31편, 한일합작 1편, 한중합작 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