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목소리들이 울리는 비상경보

공연·희곡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극단 골목길

아나운서
긴급 속보입니다. 걷잡을 수 없이 탈영병의 숫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군 당국이 발표한 예상과는 다르게 현재까지 집계된 탈영병의 숫자는 이백칠십 여명이 넘는 것으로 저희 취재진이 단독 입수했습니다. 현재국방부는 진돗개 하나 발령 초비상상태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예술계에 비상이 걸렸다. 예술인 블랙리스트 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란의 중심에 연출가 박근형이 있었다. 이로 인해 2015년 창작산실 지원 작품으로 선정되었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결국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고 만다. 그러나 2016년 3월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그 모든 수모를 딛고 남산예술센터에서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랐다. 연일 매진사례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월간 한국연극 2016 연극 베스트7,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 해의 연극 베스트3, 제53회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시청각 디자인상을 수상하며 그 작품성을 당당히 인정받았다.

웅대한 당위 아래 스러져간 개인들의 목소리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에서는 다양한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네 가지 이야기들이 교차된다. 2016년 대한민국 경남에서는 탈영병이 속출하는 중이다. 1945년 일본 가고시마에서는 일 본 공군 부대 가미카제에 조선인 청년이 입대한다. 2004년 이라크에서는 미군 부대에 식료품을 납품하던 한국인 청년이 이슬람 무장단체에 납치 및 감금된 상태다. 2010년의 대한민국 서해에서는 백령도의 초계함이 침몰했다. 연극 사이사이 우렁찬 음악들이 울려 퍼진다. 일본어와 영어, 한국어로 된 비장한 느낌의 노래들이다. 가사 뜻이 궁금해 나중에 알아보니 대부분 군가들이었다. 그중 <도키노사쿠라同期 の桜(동기의 벚꽃)>라는 일본 군가 하나를 소개해 본다.

貴様と俺とは同期の桜
同じ兵學校の庭に咲く
咲いた花なら散るのは覚悟
見事散りましょ国のため

너와 나는 동기의 벚꽃
같은 병학교의 뜰에 핀
피어있는 꽃이라면 지는 것은 각오
멋지게 지자 나라를 위해

나라를 위하여 멋있게 질 것을 고양하는 내용이다. 미국 군가와 우리나라 해군가도 비슷한 내용이었다. 국가와 시대는 다를지언정 군인 정신은 하나인가보다. 이 군가의 가사처럼 일본 공군 부대 가미카제에 입대한 일본인과 조선인 청년들은 ‘대 일본 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 지만 조선인 청년 마사키는 그저 어머니가 보고 싶을 뿐이다.

마사키
하지만 저는 그냥 어린애처럼 크게 어머니를 부르고 싶습니다.
어머니. 지금 이 순간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연극은 웅대한 전쟁의 당위에 스러져간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살려내려는 것 같았다. 초계함 에피소드에서는 사고가 난 초계함에 타고 있던 다양한 계급의 군인들이 그날 그 시각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이야기한다. 이들의 하루는 소소한 일상에 다름없다. 생일을 맞은 일병에게 초코파이를 모아오라고 시켜놓고 선임들이 몰래 초코파이 케이크를 만들어 준다든지, 결혼을 약속한 군인 커플이 장난을 친다든지, 세 살배기 아들과 전화통화를 한다든지 등등... 모두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이다.

오대위
두원이가, 우리아들이 또 빠, 빠, 빠 그러면
제가 며칠 있으면 집에 갈 거야.
이제아빠가… 그럼 또 빠, 빠, 빠.
… 근데 이거 아빠 맞나요?

한편 이라크에서 이슬람 무장단체에게 납치된 동철은 한국인 파병을 놓고 벌이는 협상의 인질이 된다. 이슬람 무장단체는 동철의 비디오를 찍어 한국 방송에 보내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동철은 결국 한국이 미국과 같은 편을 섰다는 죄로 죽게 된다. 더 강한나라의 편에 서서 개인의 희생에 침묵하는 국가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이 침묵을 뒤로 한 채 무대에는 결혼행진곡이 울려퍼진다.1년 뒤 결혼을 약속한 약혼녀 난희와 동철의 결혼식 행진곡이 진혼곡이 되어버린 셈이다. 우렁찬 군가 혹은 기쁨의 결혼 행진곡 아래 개인들의 울부짖음은 사그라져 간다.

탈영병의 속출, 국가는 비상!

아나운서
긴급 속보입니다. 걷잡을 수 없이 탈영병의 숫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군당국이 발표한 예상과는 다르게 현재까지 집계된 탈영병의 숫자는 이백칠십 여명이 넘는 것으로 저희 취재진이 단독 입수했습니다. 현재 국방부는 진돗개 하나 발령 초 비상상태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까운 동시대인 2015년의 대한민국. 이곳에서는 탈영병이 속출하고 있다. 무려 이백칠십 여명이 넘는 탈영병의 숫자에 국방부는 비상이 걸렸다. 이 탈영병들 중에는 제대를 한 달 남기고 탈영한 말년 병장도 있다!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탈영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 준다.

탈영병
어차피 제대해도 세상에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비전도 없고, 직업도 없이 비실 비실거리며 사느니 차라리 지금 총이라도 있을 때 세상으로 바로 가자! 아주 잠깐이라도 내 식대로 살자는 거죠.

그러니까, 군대나 세상이나 똑같아서 탈영했다는 것이다. 다른 에피소드들에서 개인의 희생을 강요했던 군대 시스템이 사회 전체로 확장된 모습이다. 군대를 벗어나 마음대로 행동하는 군인이 탈영병이듯이, 사회의 기준을 벗어나려는 사회부 적응자들 또한 갈 곳 없는 탈영병 신세다. 체제에 순응해도 반항해도 똑같은 처지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자, 바로 이 지점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진돗개 하나 발령 초 비상상태’라는 상황이다. 탈영병의 속출이 ‘초 비상사태’를 유발한 것이다. 비상경보가 울릴 때 비로소 잠들었던 사회가 깨어난다. 탈영병들의 존재와 그것이 불러 온 비상상태는 왜 부적응자들이 나오는지에 대한 질문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 작은 변화 의 가능성들이 살그머니 고개를 내밀 것이다.

개인들의 울부짖음으로 경종을 울릴 수밖에 없는 사회라니 참으로 애석하다. 그렇게 스러져간 한 사람한 사람의 소중함이 잊히지 않기를. 무대에 오를 때마다 이들은 계속해서 살아날 것이다. 마침 좋은 소식이 있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남산예술센터에서 5월 13일부터 6월 4일까지 다시 무대에 오른다. 무대 위에서 울리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극장을 찾아가도 좋으리라.

글 | 김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