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꼭 필요한 무언가를 묘사할 때 ‘빛과 소금’에 비유하는 것을 일상 속에서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비유 자체가 성경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빛과 소금이 그만큼 우리 삶 속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라는 것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그토록 소중한 존재 중 하나인 빛을, 오직 당신만을 위해 리폼하여 판매하는 곳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고객 한 명 한 명을 위한 빛을 제작하여 판매하는 ‘글로리홀’. 빛 없는 삶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 현대인에게 조명 그 이상의 조명을 찾을 수 있는 ‘글로리홀’을 모르고 지나치기엔 우리가 너무 섭섭하지 않을까. 그래서 석관동 캠퍼스 곳곳에도 어느덧 포근한 봄기운이 만연했던 3월의 어느 날, 미술원 깊숙이 자리 잡은 송추동 공방 글로리홀 앞에서 ‘글로리홀’을 만났다.
사실 글로리홀은 유리를 가공할 때 사용하는 불가마의 이름입니다. (인터뷰 시 취재진 은 실제로 송추동공방 안에 자리 잡은 이름의 주인공 글로리홀도 같이 만나고 돌아왔다.) 가마는 빛이 나오는 구멍이라는 점에서 사람을 홀리는 느낌을 자아내는 독특한 공간이고, 그런 점에서 글로리홀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러니까 글로리홀을 이름으로 정할 때, 말씀하셨던 성적 뉘앙스를 염두하고 지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이 이름이 지닌 이중적 의미를 알게 되었지만, 저는 그 점조차 마음에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다른 ‘글로리홀’을 향한 호기심으로 검색을 하던 사람들조차도 이 이름과 관련해 검색을 하다 보면 그것이 결국 글로리홀에 대한 호기심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글로리홀의 이런 행보는 사실 다른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해당되는 현실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보통 주변의 미술전공자들을 보면,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순수 작품 활동만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작품 활동을 하던 친구들조차도 경제적인 이유로 결국 작가의 길을 포기하는 일이 다반사인데,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며 평생 동안 작품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 역시 아티스트들에게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글로리홀을 ‘조명제작회사’로 알리는 일이 제가 그 과제를 푸는 방식입니다.
공식 홈페이지 주소를 보시면 gloryholelight.com이 아닌 gloryholelightsales.com으로 되어있는데, 사실 이 이름에 그런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글로리 홀이 빛을 판다’는 직역대로 글로리홀은 조명을 제작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판매하기도 하는, 제작과 판매 모두를 동등하게 중시하는 곳입니다.
글로리홀에서 제작된 조명들은 상품인 동시에 예술품입니다. 글로리홀의 조명들이 포착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주변에 늘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간과될 수 있는 빛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조명들이 시각적으로만 화려하고 실용성이 없는 물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제 조명들이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들어 그 일상과 함께 하는 것인데, 예술품으로서의 미학과 상품으로서의 실용성이 모두 갖추어졌을 때만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에게 빛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항상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도저에게 있어 빛이란 항상 곁에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늘 새로운 존재인 것 같아요. 같은 빛이라도 어떤 환경에 놓여있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잖아요. 좀 더 설명하자면 (조명에서 나오는) 빛은 빛 그 자체 외에 의도치 않은 다른 빛을 같이 만들어 내는데, 그게 마치 빛이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밤 강가를 달리는 차들을 볼 때면 그 차들의 헤드라이트가 아니라 헤드라이트에 서 나온 빛이 만들어내는 반사빛을 좋아합니다. 달리는 차들의 헤드라이트들을 따라 움직이는 빛을 보면 꼭 빛이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 같거든요.제 조명들 중에서는 <말레비치 프리즘(Malevich Prism)>이 빛의 이러한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에 모티브를 두고 있습니다.
어떤 조명을 특별히 좋아하기 보다는 너무 밝은 빛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연 채광도 너무 밝게 느껴져서 평소 주로 암막커튼을 치고 생활하거든요. 인공적인 빛 중에서는 형광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요, 역시 너무 밝기 때문입니다. 가공된 빛이더라도 인위적인 느낌이 강한 것보다는 따뜻한 느낌을 주는 빛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지금까지 글로리홀이 제작한 조명들은 220V로 모두 가정용 조명의 밝기를 지니고 있어요. 우선 빛만 놓고 이야기 했을 때, 빛이 공간을 가득 메울 때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둠과 함께하는, 어둠 속에 스며드는 듯한 빛이 좋습니다. 분명 어둠을 밝히지만, 어둠을 전적으로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정적이지만 강한 힘을 가 진 빛이요. 조명 전체를 두고 이야기 하자면, 조명을 제작할 때 공산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 너무 화려하거나 과하지 않는 일상적인 소재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빛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비닐, 깃털이나 솜 같은 소소한 재료들을 애용합니다.
글로리홀 라이트터널 프로젝트는 글로리홀이 최초로 시도하는 협업 전시입니다. 지금까지의 작업이 늘 단독으로 이루어졌다면, 이 전시는 무대미술 전공 출신의 친구와 함께하는 프로젝트예요. 하지만 그 친구는 조명을 위한 무대를 만들고, 저는 조명을 제작한다는 점에서 서로 전혀 다른 분야의 작업을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정말 전시 제목처럼 터널의 끝에는 빛이 있듯이 어둠 속 조명이 (장식이 아닌) 주인공인 그런 전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날, 그녀는 많고 많은 글로리홀 작품 중 <뾰족불>을 들고 왔다. 혹시 <뾰족불>이 그녀의 애장품이기 때문에 간택(?)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인지 묻자, 그녀는 웃으며 글로리홀 조명 중 현재 그녀가 갖고 있는 유일한 조명이라고 대답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맞춤식 제작에 돌입하는 글로리홀에 스페어 조명은 없다고. 그렇다면 세상에 둘도 없는 조명을 판매할 때 이토록 소중한 ‘내 조명’을 아무래도 떠나보내기 섭섭하지 않을까 싶어 그 심경을 물었더니 글로리홀은 그녀의 조명들이 만들어내는 빛깔만큼이 나 따스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저는 누군가 제 조명을 사가는 순간, 그 조명은 온전히 그 사람의 것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누군가 제게 ‘여전히 그 조명 잘 쓰고 있어요’라고 말해줄 때 가장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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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gglllttt.org
http://gloryholelightsal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