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서 벗어나기

비니셔스 <Sailing>, <아마>, <Safety>
이민휘 <빌린 입>
박지하 <Communion>

자신이 익숙했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이 모험을 시작하는 음악가들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마치 날씨나 기분처럼 듣는 이에게 언어화 할 수 없는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 음악의 소명이라고 한다면 이들이 바꿔놓는 청자의 기분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지 질문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제시하는 청각적 풍경 안에서의 날씨는 어떨까? 폭풍우가 휘몰아칠 수도 있고햇빛이 쨍쨍할 수도 미세먼지를 동반한 스모그일 수도 있을 게다. 어찌 됐든 이들이 만들어내는 날씨가 우리에게 기억될 어떤 광경을 보여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이 지면을 통해 그중 세 광경을 언급하고자 한다. 이들은 모두 그룹으로 활동하거나 협업을 진행했던 음악가들이다. 이 음악가들은 개인적인 커리어에 있어 모험으로 여겨질 수 있는 솔로활동을 시작했다. 자신이 익숙했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이 모험을 시작하는 이 음악가들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비니셔스의 <Sailing>, <아마>, <Satisfy>

비니셔스, <Sailing>

비니셔스(Vinicius)는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Sailing>, <아마>, <Satisfy> 세 개의 싱글을 발표했다. 나는 비니셔스를 재지 아이비(Jazzy IVY)의 <Illvibrative Motif>의 프로듀서로 처음 접했다. <Illvibrative Motif>는 한국 힙합에서 독자적인 바이브를 가지고 활동했던 재지 아이비의 솔로 앨범이다. 각 나그네로 제일 잘 알려져 있는 재지아이비는 여러 이름과 정체성을 소유한 힙합 음악가로서 블랙스플로이테이션 같은 흑인 문화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활동한 랩퍼였다. 비니셔스는 <Illvibrative Motif>를 재즈 힙합의 느낌/바이브로 앨범을 조율하는데, 디트로이트 힙합을 연상케 하는 비트는 재 지아이비의 랩을 위한 청각적 공간을 열어준다. 그 청각적 공간이란 재즈 샘플들로 이뤄진 패치워크이다. 기존에 있던 노래의 일부분들을 분해하고 새롭게 이어붙이는 컷 앤 페이스트 기법이 가미된 비니셔스의 작품들은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널리 사랑받았다.(그들의 이름은 아직도 힙합 음악 게시판에서 회자된다) 하지만 비니셔스가 군대에 간 사이에 재지아이비가 네덜란드로 떠났고, 이들의 합작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비트 메이커로서 비니셔스가 희미해 질 무렵인 13년도에 마찬가지로 오랜만에 힙합 씬에 복귀한 랩퍼 김아일(Qim Isle)의 <V*$*V> 뮤직비디오에서 그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김아일의 독특한 목소리가 신세하의 신시사이저 사운드 사이를 거닐며 자신이 만났던 여성들의 이름을 연호하는 이 노래를, 비니셔스는 쨍쨍한 햇빛이 비추는 컬러풀한 공간으로 시각적으로 번역하며 연출해낸다. 동시에 훌륭한 싱어이기도 한 비니셔스가 발표한 세 개의 싱글은 그가 연출한 뮤직비디오처럼 컬러풀하다. 어쿠스틱 악기들이 맞물리면 서 빚어내는 소리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비니셔스의 목소리는 일종의 어쿠스틱 악기가 된다. 한국 음악계에서 여태 들 을 수 있었던 어반 알앤비(urban rnb)와 전연 다른 사운드는 청자를 놀라게 한다. 번잡한 수식어를 쓰는 걸 잠시 용서해준다면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맑고 청아한 소리들이 모여 관능적인 노래가 된다고. 비니셔스의 정규 앨범을 기다려본다.

이민휘의 <빌린 입>

이민휘, <빌린 입>

나는 이미 이민휘의 앨범<빌린 입>에 대한 앨범 소개 글을 쓴 바 있다. 그러니 이 지면에서<빌린 입>을 추천하는 것은 반칙 일 수도 있다. 밴드 무키무키만만수에서 활동했었고 영화 음악가이기도한 이민휘는 작년 정규앨범<빌린 입>을 발표했 다. 소란스럽고 무정부주의적인 노래로 유명한 무키무키만만수는 장구를 개조한 구장구장을 때려 부수고 굉음과 같은 고함을 지르면서 불타는 남대문을 위한 노래를 불렀던 기이한 밴드다. 무키무키만만수의 팬이었던 이들이라면 <빌린 입>의 이민휘가 그리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무키무키만만수의 <2012> 앨범에서 이민휘가 쓴 ‘식물원’을 제일 좋아한다. 그 노래가 전하는 서정은 자꾸 기억을 돌아보게 하고 과거를 귀신처럼 돌아오게 한다. 즉 청자는 이상한 기분에 빠져들면서 노래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이민휘의 <빌린 입>은 식물원에서 더 나아가 청각적 풍경을 들려주려 애쓴다. 이민휘의 목소리가 제시하는 청각적 풍경은 시어를 닮은 가사가 펼쳐 보이는 서사와 손을 잡거나 격렬하게 부딪히면서 점차 제 몸을 부풀려 간다. 청자가 듣는 풍경은 가사보다도 클 뿐더러 사운드보다도 크다. 중얼대거나 웅성대는 목소리들은 재담을 펼치거나 농담을 하는 대신에 멜랑콜리한 기분으로 청자를 안내한다. 그렇게 청자들이 대면한 풍경은 하나의 단일한 시공으로 맞추어질 수 없는 세계다. 나는 이 앨범을 들었던 시간을 귀하게 생각한다.

박지하의 <Communion>

박지하, <Communion>

어떤 음악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그녀의 음악을 벅스뮤직에서 처음 들었을 때 너무나도 놀랐다. “이건 국악이잖아. 그런데 국악이 아니잖아!” 박 지하는 피리/생황/양금을 연주한다. 그녀가 연주하는 악기들은 입으로 연주하는 한국의 전통 악기들이다. 전통이라는 말을 듣고 떠올릴 수 있는 건 한정적인 음악이다. 90년대생들에게 국악은 퓨전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또 한국의 전통 악기들은 그 특유의 텍스쳐로 서양의 음악을 묘사하는데 그치거나 퓨전이랍시고 국악의 고유한 질감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지하의 음악은 다르다. 프리 재즈 같기도 하고 현대음악 같기도 한 <Communion>은 청자를 불안하게 한다. 전통악기들은 현대 음악의 형식을 빌려 청각적 공간을 뒤흔들어 놓음으로써 청자가 느끼는 안정감을 훼손한다. 이를 통해 박지하는 전통음악에 관한 선입견을 뒤집고 청자의 안온한 기대를 배반한다. 이 시도들은 퓨전 국악을 동시대 국악의 전부로만 생각하고 있던 청자들에게 익숙한 패턴이 아니다. 박지하가 들려주는 음악은 국악의 스테레오 타입과 대결하면서 이룬 성취로서 국악을 동시대의 지형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글 | 강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