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2024 WINTER52
무대미술과 졸업 전시 중 3학년 무대미술과 학생들의 〈레미제라블〉 시노그래피 작업. 폐허인 무대, 밝은 조명, 그 사이 외로이 선 사람의 형상이 마음을 훔쳤다. ©신소원

무대는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연극원 30주년 기념 전시
《연극원, 30년의 헤리티지》,
무대미술과 졸업 전시
《고도를 기다리며 코뿔소를 타는 하녀들》

극장, 그리고 무대의 기억

가야 하는 길의 지도를 오롯이 무대에서 읽어낼 수 있었던 그때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조명이 배우의 발걸음을 밝히고, 배우의 대사가 이미 내 안에 나 있던 길을 발견하고 성큼 걸어들어오던 그 순간은 얼마나 벅찼던가? 그때의 극장은 아득하면서도 푸근한 먼지를 내뿜었다. 한 무대의 일부가 되는 순간은 모험과도 같았으나 결국은 나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 시절 지하층에 자리한 먼지투성이의 극장은 마치 세상처럼 끝없이 넓으면서도 동시에 집처럼 아늑하게 느껴졌는데, 그 이유는 극장에서 벌어지던 모든 일들이 내 안에 이미 나 있던 길을 밝혔고, 잠깐이나마 어느 날 가닿을 무대까지 그려보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두어 시간 무대를 비추면 곧잘 탄내를 풍기며 뜨거워지곤 했던 그 조명이, 본질적으로는 내 안에 있던 뜨거운 무언가와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1

‘30주년’이라는 말에서 오는 이유 모를 벅참에 앞서, 우리의 무대가 별처럼 빛나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이제는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할 수도 없는 아주 오래전 어느 날, 처음 발을 들였던 극장에서 홀린 듯 두 시간을 보냈던 때의 당혹스러움을. 언젠가부터는 막이 오르기 전의 고요함에 설레기 시작하던 때를. 도서관 가장 아래층 구석에 자리한 희곡 코너에서 책 주름조차 생기지 않은 희곡을 찾아 읽으며 손때를 묻힐 때 느꼈던 정복감을. 버스도 가지 않아 오르막길을 한참 헉헉대며 올라 도착했던 어느 극장에서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머릿속에서만 부유했던 무대가 내 눈앞에 형체를 갖춘 채 나타나고, 내가 쓴 대사를 뱉다가 감정이 격해져 눈물 흘리던 배우를. 애써 만든 무대를 며칠 만에 깨끗하게 청소하고, 집 가는 발걸음을 늘이며 터덜터덜 새벽까지 길을 걷던 그날들을.

나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 같지만, 어쩌면 연극원 구성원들에게는 이 같은 순간은 공통된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거쳐 이곳 연극원에 발을 들인 지금 또한 우리가 함께 쌓아가는 기억의 일부일 지도. 나는 그날들을 떠올리면, 루카치의 문장에서처럼 “저 멀리 있는 별이 알려주는 방향이 절대 틀릴 리 없다”고 믿고 걸으며 행복해하는 어떤 이의 모습이 항상 같이 떠오른다. 기억 속의 무대는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꽉 찬 데다, 그 위 주황빛 조명들은 내가 아닌 무대 한가운데를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아닌 딴 데를 비추던 그 빛들이, 마치 여기까지 걸어 나오라 손짓하는 듯 느껴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해를 거듭하며 그 빛을 따라 기꺼이 걸어가기로 결심했던 이유는 조금씩 흐릿해졌지만, 대신 그 빛을 따라 걸은 덕분에 더 많은 기억이 쌓여가고 있다.

1
게오르크 루카치, 『루카치 소설의 이론』, 심설당(1998) 서문의 일부를 변주해 썼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연극원, 30년의 헤리티지》에 전시 되어 있는 〈세자매〉의 드라마터그 노트 ©신소원

기억(Memory), 기록(Recording)을 넘어 유산(Heritage)으로
-갤러리에 ‘전시’된 45편의 공연, 《연극원, 30년의 헤리티지》

나를 비롯한 연극원 구성원들의 기억이 또 조금씩 쌓여갔을 올해, 연극원은 어느덧 개원 30주년을 맞았다. 30주년을 맞은 연극원은 그동안의 교육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30년을 기약하고자, 상반기부터 총 여섯 편의 공연을 올리고 ‘연극원의 날’ 축제 등 행사를 개최했다. 연극원의 구성원이라 해도 이 모든 행사에 참여할 순 없었을 테지만, 그래도 석관동 구내식당 로비에서 상설 전시 중인 한국예술종합학교 기록관의 《1994, 한 막》 기획전시는 지나다가 얼핏 들여다본 경험이 있을 터. 《연극원, 30년의 헤리티지》라는 이름으로 30주년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 또한 일찍이 지나가다 보았던 기획전시를 쉽게 떠올렸다. 연극원의 역사를 담았던 기획전시와는 무엇이 다를지, 특히 연극원이 헤리티지, 즉 스스로의 유산으로 여기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한편으론, 우리가 공동으로 나눠 가질 수 있는 유산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할까, 하는 의문도 있었음을 숨기진 않겠다.)

무엇이 유산인지를 논하기 전, 특기할 만한 사실은 이 30년간의 유산이 석관동 캠퍼스 본관 갤러리에서 ‘전시’되었다는 점이다. 1998년 11월 무대에 올랐던 제11회 정기공연 〈무거운 물〉부터 올해 9월 연극원 3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 극단 돌곶이의 〈설흔〉까지. 지난 30년간 연극원에서 공연된 총 1,000여 편의 공연 중 《연극원, 30년의 헤리티지》 전시에 포함된 공연은 총 45편이다.

그런데 갤러리 벽을 따라 늘어선 공연 사진과 영상을 보다 보면, 약간의 당혹스러움이 깃들었다. 공연이란 그 순간에만 존재하여, 무대에서 일어나는 그 시간 동안만 완전하며 지나간 후에는 더 이상 물리적으로 남아있지 않은 것 아닌가. 공연 사진들이 걸린 벽을 따라 걸으며, 그리고 공연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애썼던 영상이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고 있는 벽을 마주하며. 나에게는 일종의 사진집처럼 느껴지는 것들을 두고 ‘유산’이라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연극원, 30년의 헤리티지》의 전시 전경 ©신소원

그러던 중 설치된 가벽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개인의 작업실을 엿본 느낌이었다. 오래전 공연의 드라마터그 노트, 수업에서 이뤄진 피드백을 메모한 것, 조명과 의상 디자인 스케치, 기획안 등 내밀한 자료들이 막 공연을 올리기 전의 급박함을 보여주듯 날린 필기체와 함께 작업실 책상에서 그대로 끌려 나온 듯했다. 아, 우리의 아늑한 그 지하실, 익숙한 무대에 오르내린 수많은 공연을 가능케 했던 바로 그 작업들. 그러니 이 전시는 ‘기억’, ‘기록’, 그리고 ‘유산’이라는 슬로건 아래 한 편의 연극이 완성되는 과정을 전시하고 있는 셈이었다.

한 편의 공연이 올라가기까지는 수많은 작업 과정이 이뤄진다. 하지만, 이 작업들은 대부분 개인의 ‘기록’(정확히는 포트폴리오 비스무리한 것)으로 남고, 만약 조금 더 즉흥성을 띄었던 공연이라면 이 ‘기록’마저 없이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는다. 나로서는 이 전시에서 공연 사진보다 작업 과정의 내밀한 자료들을 들여다보는 편이 훨씬 즐거웠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내가 연극을 ‘기억’하는 방식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에 공유되지 않았던(공유된다 해도 손대 손의 방식으로 공유되었을)이 작업까지가 진정한 유산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결론적으로, 본 전시에서 이야기하는 연극원의 ‘유산’은 지난 30년간 구성원들의 기억, 그리고 그에 관한 기록물이다. 우리가 하나의 극을 올리며 공유하게 되었던 극장의 기억이 기억만으로 남지 않게끔 해주는 것, 그것이 이 유산들이 ‘전시’된 이유일 것이다. 하나의 무대를 만들며 벌어졌던 모험의 과정이 공통의 기억이 되고, 그 기억들을 잡아두기 위해 기록하고, 그것을 유산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연극원, 30년의 헤리티지》에서 전시된 사진들은 그것들을 만들어낸 연극원의 벽으로 다시 돌아간다. 잘 ‘기억’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나는 기억을 넘어 ‘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앞으로도 유효하길 바란다. 개인의 작업이 공유되고, 유산으로서 기능할 수 있으려면 잘 기록하고 잘 공유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어떤 방식으로 기록되고 기억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공유할지도 함께 논해진다면 유산으로서의 더 큰 의미를 지니고, 기능할 수 있을 테니까.

방예원의 〈두 까마귀〉 ©신소원
김세윤의 〈베랑제〉 ©신소원

우리의 현재 그리고 미래는 무대 위에 있다
-극장에 ‘상연’된 10편의 전시, 《고도를 기다리며 코뿔소를 타는 하녀들》

한편, 《연극원, 30년의 헤리티지》와는 달리 11월 15일부터 20일까지 열린 올해 연극원 무대미술과의 졸업 전시 《고도를 기다리며 코뿔소를 타는 하녀들》은 이어령 예술극장에서 열렸다. 많은 경우 미술대학의 졸업 전시는 교내외 갤러리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극장에서 상연되는 졸업전시라니.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무대미술가는 소품, 의상, 무대 등 보이고 느껴지는 모든 작업에 관여하니, 좌우지간 그들의 작업이 본래 기능하는 곳이 무대이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무대미술가가 어떻게 극을 읽어냈는지, 그리고 시각예술이 연극적 맥락과 연결되는 지점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최적의 장소가 극장이기 때문 아닐까?

올해 무대미술과 졸업생 10명의 작품이 걸린 졸업전시의 제목은 《고도를 기다리며 코뿔소를 타는 하녀들》이다. 제목에서 예상되는 바와 같이,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외젠 이오네스코의 〈코뿔소〉, 장 주네의 〈하녀들〉과 같은 부조리극 작품들을 시각화했다. 해당 극들은 무의미한 상황, 언어의 무력함, 인간의 본질적 불안 등을 다룬, 소위 ‘부조리극’의 대명사라고 일컬어지는 작품들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세 작품은 부조리극이 으레 그렇듯 단순한 무대 장치를 쓰고, 상징적 연출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겉으로 보기엔 무대미술의 역할이 가장 축소되기 쉬운 작품들을 선정한 대담함이 엿보이는 지점이다.

졸업생들은 역할놀이를 하는 하녀들의 모습에서 까마귀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읽어내기도 하고2, 인간에서 코뿔소로 변한 이들을 무대 중앙에 배치한 뒤 관객이 그들을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여기서 인간-코뿔소들은 관객 사이에 배치되므로, 관객은 인간-코뿔소를 보는 동시에 반대편의 다른 관객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3 각자 주어진 부스 안에서 그에 맞춰 작업을 전시한다는 점은 일반적인 미술대학의 졸업 전시와 같지만, 높은 층고의 무대가 주는 공간감과 더불어 관람자가 무대 위를 걸어 다니며 작업과 공연의 상호작용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왜 졸업전시를 극장에서 상연해야만 했는지 명확히 드러난다. 금세 해체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연의 순간을 위해 늘 거리낌없이 구현해내는 것이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무대는 당연히 극장 밖에서도 존재할 수 있지만, 극장 안에 있을 때 가장 빛을 발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한편, 오히려 과감히 작품에서 나가(정말 작품 밖으로 서슴없이 나갔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다림을 탐구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n의 기다림〉, 〈고도 씨에게 사기당한 사람들 모임〉은 극 중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쓰는 중절모와 장화라는 오브제만 차용해, 기다림 자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고자 한다. 나의 기다림은 무슨 의미였으며, 다른 사람들은 기다림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고 싶어하기도 하고(김경민, 〈n의 기다림〉), 기다리는 사람에게서 ‘우리들’을 발견하고 연대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정희주, 〈고도 씨에게 사기당한 사람들 모임〉)4.

2
방예원, 〈두 까마귀〉. 장 주네의 희곡 『하녀들』을 시각화했다. 같은 희곡을 시각화한 다른 작품은 〈서명(署名)의 실〉(강푸름)
3
김세윤, 〈베랑제〉. 외젠 이오네스코의 희곡 『코뿔소』를 시각화했다. 같은 희곡을 시각화한 다른 작품은 〈코뿔소의 환영〉(김동호), 〈RÉSISTANCE〉(윤성호), INFINITE(이승제).
4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시각화한 작품들. 같은 희곡을 시각화한 다른 작품으로는 〈고독한 기다림〉(전민재), 〈시간이 머무는 곳〉(이나영)

김경민의 〈n의 기다림〉 ©신소원
정희주의 〈고도 씨에게 사기당한 사람들 모임〉 ©신소원

졸업 전시는 한 시기의 마무리임과 동시에, 다가오는 미래에 어떤 것을 펼쳐낼지를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들 열 명 졸업생의 작품이 극장에서 상연되었다는 것은, 졸업생들의 작업이 ‘무대’에 오르고 ‘극장’에 상연되기 위해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무대미술의 정체성과 본질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극장이이야말로, 그들 작업이 가장 빛날 수 있는 순간을 보여줌과 동시에 홀로 존재할 수 있음까지 조명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극장과 무대는 ‘제자리’,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인 셈이다.

전시를 모두 관람한 후 올해 졸업생들의 포트폴리오를 보다가, 정희주 졸업생이 기꺼이 하나씩 가져가라며 놔둔 카드 중 하나를 챙겼다. 그 카드에 적힌 문구는 다음과 같다. “최선의 세계에 당신은 없습니까? 그렇다면 당신 또한 고도 씨에게 사기당한 사람입니다.” (이런…) 이 ‘최선의 세계’를 무대로 여기고 있는 연극원생들, 그리고 연극원은 어디로 가야 할까? 역시, 제자리 아닐까? 바로, 무대와 극장에.

글 신소원
연극원 극작과 전문사 재학 중이며, 방송국에서 교양프로그램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무대 위와 화면 속의 이야기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어요. 연극원과 동갑이라 서로의 서른을 축하해봅니다. 서른은 ‘이립(而立)’, 자신의 기반을 다지고 본격적으로 뜻을 세우고 펼쳐나가는 시기라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