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미안하지만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면 될까요?”
“Excuse me, but how can I pronounce your name?”
새 학기가 시작되면 곳곳의 강의실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이렇게 묻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바로 외국인 학생들을 만났을 경우다. 한예종에는 교환학생, AMA+ 장학생2 등의 국제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국적을 가진 학생들이 학교의 구성원으로 함께하고 있다. 지난 10월, AMA+ 장학생으로 음악원을 졸업한 몽골 지휘자 텔문-오치르(Цогтхүүгийн Тэлмүүн-Очир)를 만나기 위해 몽골로 향했다. 이 여정은 나의 첫 몽골 방문기이자 AMA+ 장학생 동문과의 추억이기도 하다.
Every new semester starts with professors asking their students this question in class. It’s for international students. Students from various countries accepted through exchange initiatives, AMA+2 and other international programs, form part of the community at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Last October, I traveled to Mongolia to meet Telmuun-Ochir Tsogtkhuu (Цогтхүүгийн Тэлмүүн-Очир), a former AMA+ scholar from the School of Music who is now a professional conductor in his home country. This journey marked my first visit to Mongolia and a memorable experience shared with an AMA+ alumnus.
1
몽골어로 ‘한국’을 가리키는 말. ‘무지개가 뜨는 곳’이라는 뜻이다.
2
AMA+ (Art Major Asian plus Scholarship) 장학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
전액 국비 장학제도이다. 전 세계 개발도상국 출신의 예술 엘리트들을
장학생으로 선발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
졸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2005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1
The Mongolian word for ‘Korea’, which also means, ‘where the
rainbow rises’.
2
AMA+ (Art Major Asian Plus Scholarship) is a fully-funded
scholarship program of the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The program selects elite art students from developing
countries, and supports them to complete and graduate from the
regular curriculum of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The
initiative began in 2005.
칭기즈 칸 국제공항에서 울란바토르(Улаанбаатар) 까지는 자가용으로 3시간 남짓 걸렸다. 초원을 가르는 2차로 도로를 달리면서 창밖으로 드넓은 땅이 끝나는 지점을 찾으려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군데군데 풀을 뜯어먹는 말, 소, 양떼를 만나는 일은 곧 익숙해졌다. 그러다 도심으로 들어서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울란바토르 시내는 수흐바타르 광장(Сүхбаатарын талбай)을 중심으로 주요한 정부 기관, 학교, 백화점, 문화시설 등의 건물들이 모여 있어 여러 장소를 걸어서 오갈 수 있다. 광장에서 칭기즈 칸 동상을 마주 보고 서면, 오른편에 위치한 옛날 서양식의 선명한 붉은색 건물이 눈에 띈다. 텔문-오치르가 수석지휘자로 재직하고 있는 몽골국립오페라발레극장(Mongolian State Academic Theatre of Opera and Ballet)이다. 서양과 몽골 작품을 아우른 오페라, 발레가 격주로 공연된다는 극장의 바깥벽에는 커다란 공연 포스터들이 나란히 붙어 있다. 곳곳에서 보이는 각종 기념물과 세월의 흔적들이 올해로 개관 62주년을 맞이한 극장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지휘자 텔문-오치르는 이 극장과 특별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The drive from Chinggis Khaan International Airport to Ulaanbaatar took a little more than 3 hours. Cutting through the grassland on a two-lane road, I kept blinking, trying to figure out where the vastness outside the window would end. Soon enough, I got used to seeing horses, cows and sheep grazing here and there. Then, once I arrived in the city center, a whole new world unfolded before my eyes. Downtown Ulaanbaatar, centered around the Sükhbaatar Square (Сүхбаатарын талбай), has major government agencies, schools, department stores, cultural facilities and more - all within walking distance of each other. Facing the statue of Chinggis Khaan in the square, an old Western-style building in vivid red stands on the right. It’s the Mongolian State Academic Theatre of Opera and Ballet, where Telmuun-Ochir serves as the chief conductor. The theatre showcases a balanced repertoire of Western and Mongolian opera and ballet every other week, as advertised by large posters on its outer wall. The glorious memorials and traces found throughout the hall testify to its 62 year of history. The conductor has a special connection with this theatre.
그가 극장의 수석지휘자로 취임한 것은 2023년 2월이지만, 그는 이전에도 10여 년 동안 극장의 바이올린 단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지휘자들의 평균적인 커리어와 비교해 보면 그는 나이에 비해 매우 일찍 수석지휘자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연주자로 활동했던 경력과 당시 극장의 여러 상황이 맞물려 가능한 일이었다. “(제가 한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당시에는 극장의 수석지휘자가 없었기 때문에, 바로 누군가를 임명해야 하는 시기였어요. 극장에 있던 연주자들이 극장장님께 저를 수석지휘자로 임명해달라고 말했고, 저 스스로도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고 있었어요. 잘해야겠다는 긴장되는 마음과 책임감은 당연히 있었죠.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저를 다른 눈으로 보는 느낌도 들었어요. 제가 이제는 연주자가 아니고 지휘자로 들어온 거니까요. 극장이 저를 몹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중에는 (제가 한국에서) 어떻게, 얼마나 배웠는지 확인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어서 약간의 도전 같은 느낌도 있었죠. 그래도 아주 좋았어요. 원하던 일자리로 들어왔으니까요.”
It was in February 2023 that he was first appointed the chief conductor, but he had previously served as a violinist at the theatre for 10 years. His promotion happened relatively early in his life considering the average career path of his peers. This was made possible by the way his experience as a performer and the circumstances at his workplace aligned at the time. “Back then (after I graduated and returned from Korea), the chief conductor position was vacant and someone had to be appointed. The performers at the theatre recommended me to the director, and I also felt that I was ready for the role to a certain extent. Of course, I was nervous because I wanted to do a good job, which sparked a sense of responsibility in me. At the same time, returning as a conductor rather than a performer made me notice that people were seeing me in a different light. The theatre was waiting for me, partly because they wanted to see what and how much I’ve learned (in Korea). It kind of felt like a challenge, but I still loved it. After all, I was back to my desired workplace.”
몽골에서 젊은 지휘자로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텔문-오치르는 6세부터 몽골국립음악무용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몽골국립오페라발레극장에서 바이올린 단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와 병행하여 몽골국립문화예술대학교에서 음악 편곡과 지휘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서양의 클래식 음악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한국에서 지휘를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은 그런 모든 음악적 경험과 주변인들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Telmuun-Ochir, a highly anticipated young conductor in Mongolia, began studying violin at the Mongolian State Conservatory at the age of six. After graduating, he launched his career as a professional violinist with the Mongolian State Academic Theatre of Opera and Ballet. Alongside his work, he studied music arrangement and conducting at the Mongolian State University of Arts and Culture , where he developed a deeper interest in Western classical music. All these musical experiences, combined with the influence of his surroundings, led to his decision to study conducting in Korea.
“몽골국립문화예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또 여기서 일을 하면서 여러 나라 지휘자들을 보게 되었는데, 지휘자라는 직업이 궁금해져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휘자는 많은 사람과 함께 (음악적으로) 좋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오케스트라의 많은 연주자 친구들이 저에게 지휘를 공부하라고 권유하기도 했죠. 그래서 당시 극장의 수석지휘자로 계시던 저의 선생님께 도움을 받아 지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너는 유학을 가야 해.’ 라고 말씀하셨어요. 처음에는 러시아로 가려고 했었는데 이런저런 조건들이 맞지 않아서 못 갔어요. 그래서 계속 학교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한예종을 졸업한 친구가 이 학교를 추천해 줬어요.” 몽골은 전문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교육하는 기관이 한국만큼 많지 않다. 사람들이 텔문-오치르에게 많은 기대를 안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다. 졸업 후 자국으로 돌아가 극장에서 지휘하는 것이 한국에서의 힘든 시기를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었다고 말할 만큼, 그는 조국과 극장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I was able to see conductors from around the world while studying at the Mongolian State University of Arts and Culture and while working here. It intrigued me and made me think about having this profession. To me, a conductor was someone who could create a great (musical) atmosphere by collaborating with others. Many of my orchestra colleagues also recommended that I study conducting. I did, with the help of my teacher, who was the chief conductor of the theatre at that time. He said, ‘You should study abroad.’ At first, I tried to go to Russia, but things didn’t work out. I kept looking for schools until one of my friends who graduated K-Arts recommended her alma mater to me.” There aren’t many institutions offering classical music education in Mongolia compared to Korea, which explains the expectations people have for Telmuun-Ochir. Picturing himself conducting in his own country after graduation was the driving force that helped him get through the tough times in Korea. His homeland and the theatre held a special place in his heart.
한국으로 건너와 공부하기 시작한 2019년부터의 시간은 치열했다. 언어의 장벽, 한정적인 자금, 시간 안에 공부를 마쳐야 한다는 생각은 AMA+ 장학생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마음의 부담이다. 그러한 특수성을 안은 채 여느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것과 다를 것 없는 매 학기를 헤쳐 나간다. “오케스트라 지휘 전공 학생들은 아주 바빴어요. 리허설도 준비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그랬거든요. 제일 어려운 점은 사는 곳이 학교랑 멀리 있어서 통학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었어요. 알바를 할 시간이 없잖아요. 장학금을 받고는 있는데 생활비나 월세나 그런 것들을 충당해야 하니까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죠.
His time since 2019, when he began studying in Korea, had been intense. The language barrier, limited finances and the need to complete the degree within the given timeframe are common burdens of AMA+ recipients. All students are given the same semester, but these scholarship holders face greater struggles due to these particularities. “Those who majored in orchestra conducting were very busy. You had to prepare for rehearsals on top of your studies. The hardest part was the long commute, since I lived far from the school. This left me with no time for part-time jobs. Even though I got the scholarship, I still had to earn money for living expenses or rent. So, there were economic difficulties as well.
첫 오케스트라 리허설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보통 오케스트라가 튜닝하면서 준비를 하고, 그다음 정치용 교수님이 들어오시면 리허설이 시작되거든요. 그 날은 선배들이 리허설을 하는 날이어서 저는 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교수님이 들어오시더니 ‘거기는 내 자리고, 네 자리는 여기야.’ 하시는 거예요. 제가 자리를 잘못 앉은 거죠(웃음). 처음에는 언어가 힘들었어요. 선생님 말씀 잘못 알아듣고, 그런 일들이 많았죠. 그래도 그건 점점 괜찮아졌어요. 정치용 교수님께서 잘 가르쳐 주셨어요. 교수님께는 지휘 테크닉뿐만 아니라 리허설을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또 지휘자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어요. 다른 지휘 교수님들께도 많이 배웠어요. 김은영 선생님의 〈오페라지도법〉 수업도 기억에 남아요. 우리가 대부분 시간을 오페라 수업 준비로 보냈거든요. 그 수업은 여기 극장에서 활동할 때도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I still remember my first orchestra rehearsal. Normally, the orchestra prepares by tuning their instruments, then professor Chung Chi-yong enters the room and commences the rehearsal. That day was for the upperclassmen, so I just took a seat. But then, the professor came in and told me, ’That’s my seat, and yours is over here.’ I was in the wrong seat (laughs). At first, the greatest challenge was the language. I often misunderstood my professors’ words, and it happened several times. But it got better over time. Professor Chung Chi-yong was an excellent teacher. In addition to conducting techniques, he taught me how to lead a rehearsal as well as the speaking skills necessary for this profession. I’ve also learned a lot from other professors of the department. I remember professor Kim Eun-young’s ‘Opera Coaching Techniques’, because we spend most of our time preparing for opera classes. The knowledge I gained from that class directly helps me in my work here at the theatre.”
10월 12일 저녁, 몽골국립오페라발레극장에서 텔문-오치르가 지휘하는 오페라 〈리골레토〉를 관람할 수 있었다. 이번 〈리골레토〉는 극장의 가을 시즌을 여는 첫 번째 공연이라고 했다. 그의 지휘는 젊은 지휘자의 초심과 포부를 보여주듯 응집된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깔끔했다. 그는 버리는 움직임이 없는 경제적인 지휘를 추구했고, 덕분에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성악가들에게까지 명확한 큐를 전달할 수 있었다. 긴 시간 동안 오케스트라 피트의 연주자뿐만 아니라 무대 위 성악가들까지 이끌어야 하는 오페라 공연 특성상, 효율적인 지휘의 추구는 필연적이고 영리한 전략일 것이다. “오케스트라 작품 지휘는 오페라 작품을 할 때보다 연주자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요. 그러면 연주자들과 서로의 커넥션을 바로바로 느낄 수 있죠. 지휘자가 마치 배우가 된 것처럼 지휘를 하면, 그것이 바로 연주로 드러나요. 반면에 오페라는 많은 사람들이 무대 위에 있어요. 거기에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해주죠. 그래서 성악가들의 연기와 지휘 테크닉이 잘 맞아야 해요. 머리를 더 잘 써야 하는 것 같아요. 오케스트라가 준비가 잘 되어야 작품의 분위기나 그런 것들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 있어서는 더 어렵다고 할 수 있죠.”
On the evening of October 12, I was able to see the opera Rigoletto, conducted by Telmuun-Ochir at the Mongolian State Academic Theatre of Opera and Ballet. The opera marked the opening program of the theatre’s autumn season. His conducting carried a condensed energy that embodied the spirit and ambition of a young conductor, yet remained clean. Certainly, there was a pursuit of economy in his conducting - not a movement wasted, and clear cues given to vocalists moving around the stage. Such pursuit of efficiency must be essential and a clever strategy, as opera requires conductors to guide performers both in the pit and on the stage. “When it comes to orchestra conducting, you are closer to your performers compared to an opera setting. You can immediately sense the connection between yourself and them, as well as among the performers. The conductor does his job like an actor, then it translates into the performance. Opera, on the other hand, involves many people on stage. The orchestra provides accompaniment, which is why the vocalists’ acting and your conducting technique must be perfectly aligned. You have to be smarter here. The orchestra must be thoroughly-prepared to fully convey the mood of the piece and much more. In that sense, you can say that leading an opera is far more challenging.”
극장의 예술감독인 바트톨가(С.Баттулга)는 텔문-오치르와 그의 지휘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작품에 있어서 지휘자의 역할이 매우 크고, 그 역할이 예술감독인 저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발레든 오페라든 결국 음악을 통해 관객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죠. 이 무대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예를 들어 어떤 시대를 어떤 방식으로 나타낼지 그런 것들은 예술감독이 결정할 수 있지만, 그 외 모든 역할은 지휘자에게 달려있습니다. 악보에는 작곡가의 지시어가 적혀 있고 악보를 보는 모든 사람은 그 지시어대로 음악을 연주하죠. 그런데 텔문-오치르의 음악은 어떻게 들어도 ‘아, 이건 텔문-오치르의 지휘구나’하고 알 수 있어요. 그는 작곡가가 표시해 둔 지시 사항을 준수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만의 색채를 입혀서 지휘 합니다.”
The artistic director of the theatre S. Battulga (С.Баттулга), about Telmuun-Ochir and his conducting, said, “I believe that a conductor’s role in a production is crucial, perhaps even more so than mine as an artistic director. Whether it’s opera or ballet, your connection with the audience happens through music after all. An artistic director can decide what to do with the stage, for instance, how to portray a certain period, but everything else relies on the conductor. A score is filled with the composer’s instructions, which musicians adhere to in order to play the music. But when you listen to the music by Telmuun-Ochir, you can tell that it’s conducted by him. He does more than just follow the composer’s directions, he adds his own character to the piece.”
지휘로 자신만의 색채를 입힌다는 것은 단순히 그 순간에 박을 어떻게 젓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무대 이전의 과정에서 만드는 연주자들과의 호흡에서 이미 결정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텔문-오치르는 리허설에서 연주자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휘자다. “(리허설에서는) 연주자들의 분위기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지휘자는 연주자들의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해요. 또 제가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리허설이 매끄럽게 진행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을 듣고, 악보를 보고, 교수님 말씀대로 악보를 사랑해야 해요. 악보를 많이 보면서 이 부분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리허설에서 어떻게 말을 해야 연주자들에게 의도를 전달할 수 있을지, 이 부분에서 내가 하는 지휘가 다른 지휘자들과 무엇이 다른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죠. 또 리허설의 시간을 잘 분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곡의 난이도 같은 것들을 고려하기도 해요. 어려운 곡을 먼저 리허설 하는 편이에요. 어쨌든 제일 중요한 건 준비입니다.”
Adding your own character is not merely about how you stroke your baton from moment to moment. It may be decided through the unison with the performers created in the process prior to the stage. For Telmuun-Ochir, the performers come first in rehearsal. “(In rehearsal,) The atmosphere among the performers is very important. A conductor should be able to understand their words. In addition, I need to be prepared in advance so that the rehearsal runs smoothly. To achieve this, I have to listen to the music, look at the score and love it, just as my professors advised. I examine the score and think about how I should move at certain points, what to say in rehearsals to help the performers understand my intentions, how my conducting differs from others in this part, and so on. Wise time allocation matters, too. Sometimes, the level of difficulty of each piece should be considered. I start rehearsing trickier pieces first. In the end, preparation is the key.”
텔문-오치르에게 지휘란 무엇이냐고 묻는 물음에 그는 ‘지옥으로 놀러 가는 일’이라고 답했다. “지휘는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이에요. 그런데 저희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지옥에 있는 동물들은 지옥을 좋아한다’라고요. 어려운 일이지만 그걸 너무 원하면, 그 직업을 사랑하고 아주 좋아하면 거기는 더 이상 지옥이 아니게 된대요. 지휘는 저에게 어렵지만 너무 즐거운 활동입니다.” 그는 아직 몽골에서 연주되지 않은 작품들을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이를테면 규모가 큰 작품들, 특히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 같은 것들 말이다. 또한 몽골 사람들에게 클래식 음악이 왜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클래식 음악이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인내를 가능하게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앞으로 몽골의 클래식 문화를 더욱 발전시키고 싶다는 그의 바람에 조국과 음악을 향한 순수한 마음이 비쳤다.
When asked what conducting means to him, the musician answered, “Hanging out in hell.” He added, “Conducting is really a difficult and intense job. But one of my professors said that ‘the creatures in hell love their hell.’ Although it’s hard, if you want it, love it, and like it so much, then you’re not in hell anymore. For me, conducting is a demanding but joyful activity.” His hope is to showcase works that have not yet been performed in Mongolia. For example, large-scale pieces such as Gustav Mahler’s symphonies. He also wants to help the Mongolian people understand why classical music is important. The conductor believes that classical music enables perseverance in human life. His desire to further advance classical culture in Mongolia reflects his genuine passion for his homeland and music.
글 김예현
음악원 음악학과 전문사 재학생. 원고를 다듬으면서 몽골에서 사 온
목도리를 개시했다. 일교차가 클 때, 차가 심히 막힐 때, 음식이
푸짐하게 나올 때 몽골을 떠올리게 되었다.
Kim Ye-hyun
Kim Ye-hyun, currently a graduate student in the Department of
Musicology at School of Music, started wearing a scarf she bought
in Mongolia while she was polishing her manuscript. She is
reminded of Mongolia whenever there is a wide daily range, heavy
traffic, or oversized portions of food.
10월 14일 저녁, 울란바토르 시내 어느 레스토랑에 몽골 AMA+ 장학생 동문들이 모였다. 참석한 동문은 음악원, 무용원, 영상원, 전통예술원 출신 학생들이었다. 졸업생들이 자국에 돌아가 지속적인 커뮤니티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서, 이런 자리가 아주 오랜만이라고 했다. 저마다의 전공과 학교를 다닌 시기, 한국에서 지낸 기간은 모두 달랐지만 마치 명절에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가족을 만난 것처럼 반갑고 정겨운 분위기였다. 타지에서 생활하고 학업을 이어간다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를, ‘이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실감했다. 그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값지게 얻어낸 젊음의 빛나는 한 조각이었다. 화기애애했던 현장을 지면에 나누고자, 분위기를 풀기 위해 준비해 갔던 랜덤 질문 카드와 답변 중 일부를 남긴다.
Mongolian AMA+ alumni gathered at a restaurant in downtown Ulaanbaatar for dinner on October 14. The former scholarship students were from the Schools of Music, Dance, Film, TV & Multimedia, and Korean Traditional Arts. They said such an occasion hadn’t happened in a long time, as it’s not easy to maintain a lasting community once the graduates return to their home. Each had attended K-Arts for different majors, times and durations, but everyone seemed happy to see each other, almost like a holiday family reunion. I was able to really understand the struggle of living and studying in a foreign country through stories they could ’finally talk about with a smile.’ Korea, to them, was a valuable and shining piece of youth they’d earned. To share the heartening atmosphere of the night with readers, below are some of the random card questions I’d prepared for icebreaking and their answers.
Q1.
몽골과 한국의 문화적 공통점으로는 무엇이 있나요?
허스바야르 (А.Хосбаяр) /
무용원 이론과 전문사(09학번)
저는 무용이론을 전공했는데요.
한국과 몽골 춤에 비슷한 특징이 많이 있어요.
몽골 사람들은 한국 무용을 쉽게 배우고,
한국 사람들도 몽골 무용을 쉽게 배워요.
특히 어깨춤이 아주 비슷해요.
Q2.
어떤 계기로 한국에서 공부하게 되셨나요?
오르서 아마르자르갈 (О.Амаржаргал) / 전통예술원 음악과 해금전공 전문사(12학번)
어릴 때 몽골에서 몽골국립음악무용학교를 다녔는데, AMA+ 장학생으로 먼저 한예종에 들어간 친구들을 보고 이런 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2005년에 한국에 공연을 하러 갔었는데, 그때 몽골 악기들이랑 비슷한 악기들이 많이 있었거든요. 겉모습은 똑같이 생겼는데 연주법이나 소리도 약간 다르고, 그런 점들이 신기해서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Q3.
지금 한예종에서 아마장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
아리온자야 자르갈사이한 (Жаргалсайханы Ариунзаяа) / 음악원 기악과 피아노전공 예술사(18학번)
외국에서 공부하느라 힘드시죠. 그래도 인생에 단 한 번 하늘에서 주시는 기회 같은 이 장학금을 받고 최고의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은 너무나도 기쁘고 좋은 일입니다. 끝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모두들 많이 배우고 졸업 잘 하시길 바랍니다. 특히 건강을 많이 지키셔야 해요.
Q4.
한예종에서 공부하던 시절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신가요?
앙카하나 (Aнхааханаа) /
영상원 영화과 예술사(13학번)
되게 많은데요. 최근 일로는 AMA+ 장학생 동아리인 가온누리가 기억나요. 왜냐하면 학교 다니면서 외국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의 교류가 많지 않았거든요. 저도 한국 친구가 많지 않고, 친구 사귀는 게 어려웠어요. 가온누리 동아리 하면서 한국 학생들과 교류를 많이 할 수 있었죠. 또 다른 나라 AMA+ 장학생들도 많은데 보통 바빠서 서로 못 만나거든요. 그래도 동아리 핑계로 같이 영화도 보고 액티비티도 할 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제일 선명한 것 같아요.
Q1.
What are some of cultural commonalities between
Mongolia and Korea?
Khosbayar Altantsetseg (А.Хосбаяр) / Dept. of Dance Theory, School of Dance, enrolled in
2009
As a dance theory major, I see similarities between Korean and Mongolian dance. Mongolians find it easy to learn Korean dance, and vice versa. The shoulder movements, in particular, are very much alike.
Q2.
What made you study in Korea?
Amarjargal Orsoo (О.Амаржаргал) / Dept. of Korean Traditional Music, School of Korean
Traditional Arts, enrolled in 2012
I attended the Mongolian State Conservatory when I was young. There, I saw friends being admitted to K-Arts as AMA+ scholars, which is how I learned about the university. Later, in 2005, I had the chance to perform in Korea, where I noticed that their instruments were similar to Mongolian ones. While they had the same appearance, the technique and sound were slightly different. This intrigued me and sparked my decision to study in Korea.
Q3.
Any words for students currently studying at K-Arts
through the AMA+ program?
Ariunzaya Jargalsaikhan (Жаргалсайханы Ариунзаяа) / Dept. of Instrumental Music (Piano), School of Music,
enrolled in 2018
A. Studying abroad can be tough. Still, studying at one of the best schools on a scholarship is a once-in-a-lifetime opportunity and a wonderful experience. I hope you do your best, learn as much as you can and graduate successfully. Most importantly, take good care of your health.
Q4.
Any episodes from your days at K-Arts?
Аnkhaahanaa (Aнхааханаа) /
Dept. of Filmmaking, School of Film, TV & Multimedia,
enrolled in 2013
Perhaps too many to count. To share one of the more recent episodes, I remember Gaon Nury, a club for AMA+ students. There wasn’t much interaction between foreign and Korean students at the school. I had only a few Korean friends myself, and it wasn’t easy to make new ones. The club helped me connect more with Korean peers. There were AMA+ students from many other countries, but we rarely met because everyone was so busy. The club gave us opportunities to go watch movies or enjoy activities together. That remains as my most vivid and favorite mem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