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에는 6개원에 한 개씩, 총 6개의 예술 이론 전공이 있다. 자료 조사하기, 페이퍼 작성하기, 발제 준비하기, 논문 쓰기로 점철된 이론과 학생들의 학교생활은 물론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상상하는 예술 학교 학생의 모습과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예술 이론을 탐구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작품과 텍스트 사이, 그리고 창작과 이론 사이에 존재하기를 선택한 이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열정을 힘껏 불태우고 있다. 예술 이론을 전공한 4인의 팀원으로 이루어진 팀 통조림을 만났다.
4인 4맛 통조림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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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은 2022년 JTBC 제작 예능 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 – 알쓸인잡〉 3화의 내용 중 일부를 수정해
차용했다.
교차와 교차가 만나
반갑습니다. 팀 통조림과 멤버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예술 이론을 재료로 교차적 글쓰기를 통해 문화예술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는 팀 통조림입니다. 팀 통조림은 음악학과 예술경영을 공부한 김영비, 미술이론과 예술경영을 공부한 윤세화, 한국예술학과 연극학을 공부한 이고운, 한국예술학과 미술이론을 공부한 조연희까지 총 4명으로 이루어진 팀입니다.
‘팀 통조림’의 팀명은 “통조림-되다”라는 은어에서 비롯되었는데요, 여기서 ‘통조림’은 만화가나 작가들이 감금된 상황에서 마감에 쫓기며 촉박하게 작업하는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론 전공생들에게는 익숙할 ‘통조림-되기’를 4명이 함께하며, 글을 계속 생산해 나가자는 의지를 담아 팀명을 지었습니다.
개인 작업에 익숙한 예술 이론 전공생들이, 게다가 각자 다른 원에서 어떻게 만나 팀을 결성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조연희 2023년 졸업을 앞두고 진로 고민이 많았어요. 졸업 이후에도 글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에 대한 방법으로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수익을 얻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세화와 함께 학교 공연전시센터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마침 세화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친구여서 같이 해보자며 의기투합해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함께 교내 학생 자치 기구 인권위 활동을 했던 고운은 물론 글도 잘쓰고, 팀원들이 서로 존중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친구여서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영비와는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전공과 음악에 대한 애정이 깊고, 성찰을 끊임없이 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함께 하자고 제안했어요. 이 외에도 여러 확장하는 시도를 거쳐 현재는 4인 고정 체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고운 저는 예술 이론이 예술 전반과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이 이론과에 대해 갖는 선입견처럼 책상에 앉아서 세상을 통달하는 학과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우리 팀의 취지처럼, 예술 이론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마련해 예술 이론의 확장 범위를 넓히는 것이 이론 전공생으로서 풀어야 할 사명 중 하나일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팀 통조림은 계속해서 우리를 알리고 자리를 지킬 필요가 있는 예술 이론 공동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각자 어떤 마음으로 이 팀에 합류하셨나요? 그리고 팀 통조림은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나요?
윤세화 팀원들을 믿고 따르며 함께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연희와 둘이서 팀을 만들 때만 해도, 졸업을 앞두고 마감에 시달리는 글 쓰는 삶이 모든 이론과의 공통된 숙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팀 통조림’이라는 이름도 제안하게 되었고요. 물론 각자의 전공 분야를 깊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바깥의 것들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한 팀이 된 것 같아요.
저는 지금의 팀 통조림이 안전한 공동체라고 느껴요. 제가 부족하고 궁금한 부분에 대해서 부끄러움 없이 터놓고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지금까지 함께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팀 통조림은 공동체이기도 하지만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장소이기도 해요.
김영비 음악원에서 공부하면서 석관동과 서초동 캠퍼스 간의 거리가 멀기도 하고, 이론과끼리 큰 교류가 없다는 것이 외로웠어요. 그래서 4학년 재학중에 연희가 먼저 제안을 해줬을 때 너무너무 반가웠습니다. 이런 선례가 없었다는 게 아쉬웠기 때문에 구체적인 결과물이나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해도 이렇게 활동해 보면서 함께 부딪혀 나가는 것 자체가 만족스러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팀 통조림에는 리더가 없어요. 그래서 주도적인 팀 리더가 멱살 잡고 끌고 가는 그런 팀들보다는 추진력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팀 통조림 나름의 규칙을 만들고 넷만의 문화를 형성하면서 지속해 온 데는 수없이 많은 회의, 논의, 의견 교환들이 가장 공이 컸습니다.
조연희 일주일에 한 번은 무슨 일이 있어도 회의를 해요.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요. 그리고 어찌 됐든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 익명투표와 다수결을 진행해요. 마감이 닥치면 화상 회의를 켜두고, 4시간 동안 글을 쓰기도 했어요. 모두가 웹캠을 켜놓고 말없이 작업하다가, 화면이 꺼지면 ‘어디 갔어? 화면은 왜 꺼?’라고 서로 물어보는 거예요. 좋은 의미에서 서로가 서로를 감독하는 거죠.
이고운 다 본인이 감독관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각자의 철창에 갇혀서 서로를 감시하는 느낌입니다.
팀 소개에 ‘교차적 글쓰기’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는데요. 팀 통조림이 생각하는 교차적 글쓰기란 뭔가요?
윤세화 어떻게 교차가 가능할지 지금도 실험 중이긴 한데 작년에는 각기 다른 분야와 장르를 공부한 서로의 공통된 주제들을 찾아보려고 했었어요. 기획의 일부로서 분야의 상호 교차 지점을 탐구해보기도 했어요. 예를 들면, 한국예술학과 미술이론의 어떤 교차하는 지점인 주제들이나, 미술이론과 음악학의 다양한 지점들에 대해서 검토하고 공통된 관심사를 찾아본다든지, 혹은 서로 다른 분야의 이벤트(공연, 전시)를 보고 이야기해 본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앞으로도 다른 방식으로 계속해서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조연희 저는 저희 네 명이 모두 상당히 종합적인 시각과 경험을 지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팀원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재학 당시 본인 전공 수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타과 수업을 수강했다는 점인데요. 다른 분야와 친해지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라서 그 사람의 정체성에 이미 다양한 교차 지점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네 명이 만나면서 더 많은 대화가 나온다는 점이 팀 통조림의 다양성이자 지속 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고운 가지고 있는 각자의 배경이나 각자의 자원, 각기 다른 관점의 차이들을 적용해서 논의한다는 뜻으로 교차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교차라는 단어의 의미에 타인의 관점도 나의 사유로 포함할 수 있다는 것, 다양한 입장을 인정하고 인지하면서 여러 축을 가진 ‘나’를 발견한다는 태도가 모두 포함되는 것 같아요. 각자의 사유에 더해지고 나눠지는 가능성, 그렇게 더 다양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포괄하기 위해 ‘교차한다’ 혹은 ‘교류한다’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김영비 글을 쓰면서 각 장르, 카테고리 간의 장벽이 단순히 지식이나 예술 문법 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주제에 접근하는 방법론 자체가 너무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예를 들면 교차적 글쓰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구성’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쓸 때도 미술과 음악에서 각각의 의미가 너무 달라서, 이때까지 배워온 접근 방식을 다 허물어야 했어요. 앞서 기존 연구자들이 해왔던 연구 방법들, 역사적 지식과 이론들이 어느 한 분야에서만 사용되는 것을 넘어서서 장벽을 녹이고 더 다양하게 사용되도록 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교류이자 교차입니다.
『쉽고 간편한 예술 통조림 101 : 예술 취향 스타터 팩』은 어떤 책인가요?
이고운 『쉽고 간편한 예술 통조림 101 : 예술 취향 스타터 팩(이하 『쉽고 간편한 예술 통조림 101』)』은 팀 통조림이 첫 번째로 시도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입니다. 클래식 음악, 희곡, 시각예술, 국악 분야와 관련해 어떻게 즐길지, 무엇을 참고할지에 대한 힌트를 적어서 다음의 예술 감상 혹은 예술 취미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손쉽게 캔을 열어 통조림을 먹듯이 원하는 섹션이나 챕터를 골라 순서에 상관없이 보실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각자의 예술적 베이스와 지식을 활용해서 조금 더 예술을 알고 싶은 분, 예술을 취미 삼고 싶은 분, 그런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누가 떠먹여 주면 좋겠다는 분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만든 ‘예술 사용 설명서’ 혹은 ‘예술 감상 설명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연장에서 박수는 언제 치지?: 클래식 공연 매너, 알아만 두기」, 「전시 보기와 작품 보기는 어떻게 다를까?」, 「‘씬’은 어디에 있는데? 막(幕)과 장(場)」, 「국악곡을 들을 때의 팁! 호흡을 느껴보자!」 라는 각 챕터의 제목처럼, 누구나 흥미를 느끼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썼어요. 그러다 보니 예술 감상 초심자들에게 추천하는 책이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도 다른 장르를 재미있게 접할 수 있답니다.
윤세화 디자인은 디자이너분과 협업했지만, 교정, 교열, 편집까지 팀 통조림 안에서 책 제작의 과정이 다 진행됐어요. 저희 넷 중에 아무도 정식으로 출판을 해본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직접 부딪혀보는 단계들을 거쳐 완성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대다수가 예술 감상에 대한 교육이 부재한 공교육의 범위 안에서 예술 교육을 받았고, 자신의 분야가 아닌 것에 대한 낯섦이나 불친절을 모두 겪어 봤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지점에서 궁금하긴 한데 물어보기는 난감한 궁금증들을 해소해 보고 싶기도 했고요. 초심자, 비전문가라고는 하지만 사실 경험은 누구나 하잖아요. 체계화되지 않더라도 각자가 느끼는 점이 있을 텐데 더 주체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을 같이 해보자고 말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어떤 지식을 주겠다기보다는 ‘예술, 참 재미있는데 한 번 들어와 보실래요?’라는 친근한 태도가 이 책을 기획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입니다.
첫 출간 이후 팀 통조림의 다음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김영비 첫 번째 프로젝트인 『쉽고 간편한 예술 통조림 101』은 기획부터 출판까지 모두 처음 시도해 보는 일들로 가득했기 때문에 아픈 손가락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끝까지 이 친구를 잘 끌고 나가면서, 아쉬운 지점들은 하나하나 기록을 해두고 그다음 프로젝트 때 보완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조연희 책 작업을 끝내고 다음 프로젝트 〈CAN YOU CAN(캔 유 캔)?〉을 웹상에 공개했는데요. ‘한예종 이론과 비-장르 논평 매거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총 4개의 섹션으로 제작했습니다. 여기에 공개했던 ‘교류적 글쓰기’, ‘당신을 초대합니다’, ‘한예종 이론과 합격하기’, ‘라운드 테이블’이라는 4개의 기획을 각각 발전시키면 어떨까 하는 얘기들을 나누고 있어요. ‘당신을 초대합니다’ 같은 경우 각자의 분야에 서로를 초대하는 방식이고, 함께 모여 워크숍 형태로 합창을 해보거나 배우 수업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실험을 하는 단계입니다. 육 개 원의 이론과 분들을 모두 모시고 7명이 진행한 라운드 테이블 기획도 있고요. 어떤 프로젝트든 결과물은 글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막연하거나 혹은 엉뚱하거나, 팀 통조림의 미래
이고운 예술계를 포함해서 글쟁이들을 위한 근로 기준이 명확하지 않거나 보수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팀 통조림이 이 질문을 계속 화두로 던지면서 예술 이론가, 혹은 예술을 매개로 다양한 글을 써내는 사람들이 글로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김영비 한국의 예술 이론 전공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현장이 드문데, 팀 통조림 활동이 계속 유지가 되어서, 이론 전공자들이 더 활발히 교류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누군가는 너무 이상적인 바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통조림 안에서 작게나마 이 현장이 가능하다는 걸 직접 느끼고 있기 때문에 더 확장되기를 염원하고 있어요.
조연희 각자 생업도 따로 있는 상황에서 팀 통조림 안에서만이라도 각자가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글을 쓰고, 진짜로 하고 싶은 것들을 탐구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좀 더 멀리 본다면 훗날 예술 이론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팀이 되고 싶다는 얘기를 나눴었어요. 후배 이론가들이 글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된다든지, 아니면 팀 통조림이 하나의 실험적인 팀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를 줄 수 있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윤세화 글 쓰면서 먹고살기 힘들다고 하지만, 저는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어요. 아직은 저나 팀이나 초기 단계라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 더 많은 인풋이 필요한 단계라고 생각하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글을 읽어주는 동료 관계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일인 것 같아요. 학교 밖에서도 제가 탐구하고 연구한 것들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사실 굉장히 소중한 거잖아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많은 독자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글을 자기 글처럼 읽고 피드백을 주는, 이런 동료들을 유지하는 게 어렵고도 중요한 목표인 것 같아요.
재기발랄한 팀 통조림과의 대화는 현재 예술계에서 이론의 위치, 글 쓰는 이들의 먹고사니즘, 많은 사람을 예술의 세계로 초대하고 싶은 열기로 가득했다. 팀 통조림 안에서 교차와 교차가 만나 단단한 매듭이 되길, 팀 통조림의 바램 대로 이 매듭이 모여 예술 이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안전한 그물망이 되길 바라본다.
글 김수림
스스로 불러온 일들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한 해를 보냈다. 첫 번째
그림책이 세상에 나와 바쁘게 책의 모험을 따라잡고 있다. 책
이야기와는 별개로 이 원고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완성되었다.
예술사에서 영화와 미술이론을 공부했고, 전문사 과정으로 미술이론을
공부하며 전시와 교육을 기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