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2024 WINTER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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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와 싸우는 것인가
〈스테이지 파이터〉

내 동생이 올해 수능을 봤다. 한국인은 경쟁 사회에 익숙하다지만, 그 누구보다 치열한 시간을 보내는 수험생의 삶이 이렇게나 딱딱한 숫자로 가득하다는 사실은 제삼자의 시선으로 지켜보았을 때 더욱 적나라했다. 성적을 가르는 9개의 등급은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꼴이다 보니 1등급은 4%라는 일부에게 마치 상처럼 내려지고, 모두가 1등급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말처럼 매정하게 들린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인생은 남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우리는 어째서 내가 아닌 타인에게 짓눌리는 것만 같을까. 분명히 나는 성장했는데, 왜 또다시 좌절하는가.

오락에 의한 춤

2021년, 많은 사람들을 춤추게 한 Mnet의 서바이벌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가수의 무대를 채우는 역할인 줄로만 알았던 댄서들에게 새로이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춤’에 열광하는 트렌드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고, 방송사는 댄서들을 10대로만 모집하거나(〈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 몸치들을 갱생시키거나(〈뚝딱이의 역습〉), 출연자를 글로벌 크루로 확대하기도 했다(〈스트릿 우먼 파이터 2〉). 비슷한 포맷이 변주되는 동안에도 춤은 왁킹1과 보깅2, 힙합과 같은 스트릿 장르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올해 9월부터 방송을 시작한 새로운 시즌 〈스테이지 파이터〉는 우리가 ‘순수무용’이라 부르는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을 전면에 내세워 차별화를 꾀했다.

기다렸던 첫 방송은 최고의 ‘무용수’를 선발하는 〈스테이지 파이터〉인지, 최고의 ‘몸’을 선발하는 넷플릭스의 서바이벌 예능 〈피지컬 100〉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1차 미션 ‘피지컬 테스트’에서는 근력 운동 능력으로 순위를 매기고, 각 무용의 테크닉을 얼마나 끈질기게 수행하는가에 주안점을 두었다. 특히 발레 장르에서는 피루엣 32 카운트 돌기, 지쳐 쓰러질 때까지 바 테크닉 수행하기 등 ‘서바이벌’로서의 기능에 초점을 맞춘 연출이 반복되었다. 보통 한 시간 이상인 공연의 러닝타임을 생각하면 무용수에게 체력이 아주 기본적인 요소라는 점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미션은 본질적으로 체력 테스트에 가까웠다. 오래 돌고 오래 춤춘다고 해서 좋은 춤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방송은 고강도 미션에 휘청거리는 무용수들을 ‘안타깝게’ 비췄다. 이와 같은 연출은 초기 화제성을 견인하는 데에 성공하며 잔인하지만 제법 괜찮은 예능적 전략으로 읽히기도 했다.

2화의 ‘타이즈를 입은 남자들’이라는 짧은 클립도 인상적이었다. 몸에 딱 달라붙는 얇은 타이츠는 무용수의 신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의상이다. 그들에게 지워지는 이 ‘타이츠의 무게’는 무용수들이 자기 관리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해당 클립은 초반부 방송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한 ‘피지컬’을 등장시킨 맥락과 의도를 시청자에게 자연스레 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검은 타이츠를 입은 무용수들을 검은 배경의 세트장에 세우면서 바로 빛을 잃었다. 우리는 방송 내용을 통해 타이츠와 그것이 촉발하는 피지컬 테스트의 당위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는데, 정작 그들은 시청자의 공감을 동일한 색의 배경으로 메워 버린 것이다.

1
왁킹(Waacking)은 스트릿댄스의 한 장르로, 1970년대 미국 서부의 게이 클럽에서 유래되었다고 여겨진다. 화려한 팔 동작과 포징, 스텝, 춤의 애티튜드가 특징이다.
2
보깅(Voguing)은 1970년대 뉴욕 할렘에서 유색 인종과 성소수자들이 향유하던 댄스 파티 ‘볼룸(Ballroom)’씬에 속한 춤 장르이다. 패션 잡지 모델의 부자연스러운 포즈를 묘사하는 것에 기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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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위한 등급

〈스테이지 파이터〉는 무용수를 ‘퍼스트’, ‘세컨드’, ‘언더’의 세 등급으로 나누고, 퍼스트에게는 주역의 기회를, 세컨드에게는 조역의 기회를 준다. 자동으로 군무가 되는 언더 등급은 무언가 보여줄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오디션’으로 변질되다 보니, 연습 과정과 무대 뒷이야기보다는 세 개로 나뉜 등급을 오락가락하는 모습만이 강조되었다. 차라리 연습 도중에 갈등하는 장면을 ‘악마의 편집’하여 방송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2차 미션인 메가 댄스 필름에서 ‘메인 주역’ 캐스팅을 완료하기가 무섭게 ‘메인 주역 후보’ 오디션이 치러지는 것을 볼 땐 내가 다 진이 빠졌다. 한 배역을 여러 명의 배우나 무용수가 맡아 번갈아 가며 공연하는 더블이나 트리플 캐스팅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방송에서는 더블 캐스팅이 주역으로 변경된다는 소식을 필름 촬영 당일 반전처럼 공개하였다. 더블 캐스팅을 마치 메인 주역을 몰아내기 위한 반란 세력처럼 다룬 이 장면은, 무용수들이 작품을 위해 각자의 역할을 완수하려 애쓴 노력과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협력 관계를 모두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과거 시즌들인 〈스우파〉나 〈스맨파〉 등을 떠올려 보면, 크게 화제가 된 것은 잔인한 연출적 농간이 아니라 모두 춤이었다. 〈스테이지 파이터〉에서는 무용수가 기예에 가까운 테크닉을 연달아 뛰는 모습이 숏폼 영상으로 돌아다닐 뿐, 맥락을 모두 아우른 ‘춤’ 자체가 아직 흥행하지 못했다. 물론 순수무용은 오랜 훈련을 바탕으로 하는 장르이다 보니 일반 시청자에게 생소하거나 따라 하기 어려워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춤이 부각되지 못한 것은 단순히 낯설고 어려워서가 아니다. 나는 그 이유를 이 프로그램이 ‘댄서들의 경연’이라는 기획 의도를 취하면서, 아이돌을 선발하는 서바이벌 예능 〈프로듀스 101〉의 포맷과 닮아 있는 연출법에서 찾고 싶다.

기껏 세 장르로 분리해 무용수를 모아둔 것이 무색하게 방송이 진행될수록 장르의 특색은 퇴색되었고, ‘음악에 맞춰 안무 만들기’에만 힘이 쏠렸다. 마치 노래 담당, 춤 담당, 랩 담당 대여섯 명을 섞어 미션 곡 하나 주고 무대를 꾸미게 했던 〈프로듀스 101〉처럼 말이다. 메인 주역이나 조역 같은 이름 역시 메인보컬, 서브보컬 등의 호칭이 익숙한 대중음악계의 말버릇을 그대로 빌려오다 보니, ‘Main Dancer’을 뜻하는 ‘주역’과 ‘주된 배역’을 의미하는 ‘Main’을 두 번씩 써서 부르는 ‘역전앞’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절망적인 점은 무용수들은 작품 안에서 반등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없다는 것이다. 〈프로듀스 101〉에서는 메인보컬을 차지하지 못해도 센터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고, 의상도 팀처럼 보이게 맞춰 입었다. 하지만 〈스테이지 파이터〉는 군무진의 의상과 분장부터 달리하여 그들이 무대의 일원이 아닌 백업 댄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데 그친다. 가운데 선 퍼스트 등급의 주역 무용수는 센터를 벗어나지 않고 솔로 가수처럼 기능한다. ‘백업’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댄서들을 발굴해 낸 것이 프로그램의 멋진 의의였던 시절이 불과 작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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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징하게 직조해 낸, 신랄한 ‘K’

세 번째로 진행된 ‘K콘텐츠 미션’에서는 큰 화제를 몰았던 영화와 드라마의 주제나 음악을 가지고 무대를 꾸렸다. 영화 〈기생충〉, 드라마 〈스카이 캐슬〉, 〈오징어 게임〉과 같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는 고발적 성격의 작품들이 ‘K콘텐츠’라는 이름 아래 여럿 선택된 것은 마치 우연의 장난, 혹은 운명처럼 보인다. 등급이 나뉜 무용수들은 등급에 맞춰 작품을 선점하고 배역을 고른다. 그런 그들이 표현하는 바가 사회 기저에 깔린 계층적 사고와 관련된 문제라는 것이 기막힌 아이러니였다. 계층이나 등급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흥행하는 것은 둘째 치고, 방송사가 ‘K’를 표방하며 골라 온 작품들이 하나같이 닮아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퍼스트니, 세컨드니 나누지 말고 모두 다 행복하게 춤추자고 하기엔, 이 방송에 담긴 ‘K’는 여전히 너무나도 신랄하다. TV 화면에는 너른 무대를 꽉 채우는 아름다운 수평적 움직임이 아니라, 주역 심사를 보다가 군무까지 미끄러지는 장면을 조각조각 컷내어 보여주는 수직적 ‘상승’과 ‘하강’만이 가득하다. 언더 등급도 잘만 하면 퍼스트로 올라갈 수 있다니 〈기생충〉보다는 낫다고 해야 할까, 퍼스트에서도 잘못 삐끗하면 곧장 언더가 되니 〈스카이 캐슬〉과 다를 바 없다고 해야 할까.

배역의 것이 아닌, 나의 이름

사실 애정이 없다면 증오도 없다. 나였다면 이렇게 안 했을 텐데, 와 같은 방구석 전문가식 한탄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이 프로그램을 정말 재밌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동년배의 학우들이 수두룩하게 출연하고 수능 철에 달달 외우는 대학교 명단에는 존재하지 않는 나의 학교 이름이 자꾸 불려서 신기하고 재밌었던 것만큼, 나는 우리가 무용수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게 좋았다. 객석에 앉아 있거나 혹은 영상으로 공연을 접하면,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는 ‘누가’ 추고 있느냐보다 ‘무얼’ 추고 있느냐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들이 소화하고 있는 ‘배역’이 무엇인지, 그 재연이 어떠한 맥락 속에서 기능하고 있는지 받아들이기에 바빠서 개개인의 얼굴을 들여다볼 틈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스테이지 파이터〉의 경연은 달랐다. 방송에 얼굴과 캐릭터가 여러 번 노출되고 유튜브에 ‘직캠’이 풀리는 무용수들은 군무에 동원되어 있을 때도 눈에 띄었다. ‘호두까기 인형’이나 ‘흑조’와 같은 배역으로, 심지어는 군무 덩어리나 동선의 일부로 퉁치느라 잊고 있었던 이름들이 전체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독자적으로도 얼마나 반짝이는지, 그래서 왼쪽 세 번째나 오른쪽 맨 뒤에 서 있는 누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그의 춤이 더욱 궁금해진다. 〈스테이지 파이터〉의 출연자들은 지난 11월 시청자 및 팬들과 만나는 GV 시사회를 가졌다. 무용수가 관객을 만나는 첫 번째 창구가 무용 공연이 아닌 이러한 토크쇼였다는 것은, 내가 단체 속 누군가를 알아차리면서 그들의 춤을 점차 즐겁게 여기게 되었던 바로 그 지점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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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don’t need permission to dance

1등급이 있으면 그 밑이 있다. 누군가 인어공주가 되면 다른 사람들은 마녀나 물고기를 맡아야만 하는 현실은 우리가 일찍부터 배워 온 슬픈 타협이었다. 〈스테이지 파이터〉는 오디션과 콩쿠르라는 끝없는 싸움 근처를 맴도는 무용수들이 택한 또 다른 모습의 경쟁 체제다. 각자가 어디로 향하기 위해 이 피라미드에 뛰어들기를 선택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수많은 이유 중에 분명 ‘단지 춤을 더 추고 싶어서’라는 간절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를 옭아매는 경쟁과 그로 인한 절망감조차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예술을 놓지 않았을 때, 그러고서도 이것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비로소 동력이 된다.

이 글이 내 손을 떠났을 때야 나는 이 방송의 결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름을 외우게 된 그들이 그 어느 자리에서든 여전히 춤을 추고 있기를 바란다. 나는 일부에게만 내어주겠다고 선언된 자리와는 화해하지 않겠지만, 마지막 방송까지 그것을 배신하지도 않으려 한다.

글 오서윤
얼마 전 친구의 영화에 음악 작업을 했다. 상반기엔 그토록 바랐던 시카고 교환학생도 다녀왔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모습은 약간 다르더라도. 꿈꾸던 일들이 하나씩 이루어졌다. 앞으로도 그렇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