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2024 WINTER52

배신하지 않았고
화해하지 않았지만

배신하지 않았고 화해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한강의 글 곳곳에서 꿰매다 준 문장을 가만히 놓고 봅니다. 어려이 보다가 쉽게 원망합니다. K에게. 지난 12월 3일. 당신이 먼저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느냐고. 자유며 민주를 갖다 붙이며 그 뜻을 배반하지 않았느냐고. 당신의 출생과 역사에 새겨진 폭력을 다시 호령하지 않았느냐고. 그 절망을 감히 복기시키지 않았느냐고. 타협하려 했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K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였습니다. 당신은 나를 모른다. 당신은 우리를 모른다. 그래서 도무지 사랑할 수가 없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순간, 강렬했던 것은 환희보다 애도였고 기쁨보다 의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한강의 작품성이 다다를 수 있는 높이를 의심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조차 아직 소화되지 못한 말들이, 문장이, 이국의 언어로 내가 모르는 드넓은 지평선까지 도달했다는 감각, 그 얼얼한 감각을 미처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육체가 스러진 증인의 형형한 구술, 파묻힌 역사에 손을 뻗쳐 피를 쏟아내는 현재형의 손가락, 제주 4·3의 아우성들, 무덤에서 출발하여 불꽃으로 타오르는, 끈질기고도 애정 어린 희망. 이토록 청명하게 조국의 얼굴에 칼을 긋는 언술이, 너무도 섬세해서 감히 닿을 수 없을 것이라고,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던 이야기가 세계에 울리다니. 감각의 시차는 마침내 전율로 이어졌습니다.

12월 3일. 우리는 국회로 나섰습니다. 약 1시간 만에 급박하게 담을 넘어 마주 앉은 이들. 멈추지 않고 논평과 성명을 발표한 언론과 노조. 이 모든 시간이 위증되거나 도망가지 못하도록 역사로 붙잡아 기록한 이들. 1면이 전면 교체된 신문을 집어 든 다음 날의 아침, 이 사태는 마치 꿈 같습니다. 일단은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생각하자고, 누군가에게 꿈은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빗대는 임기응변이지만, 한 여자는 꿈을 꿨어라고 말한 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꿈이 진실을 폭로하는 수치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여자의 언니는 속삭입니다. 어쩌면 꿈인지 몰라.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닫지. 그러니까, 언젠가 우리가 깨어나면······. 그 뒤의 생략된 선언. 그러니까 이것은 전부가 아니어야 해. 그저 비참하게 ‘주어진’ 시간이 우리의 전부가 아니어야 해.

밤의 시간에 찾아오는 것들. 이제 우리는 한강의 여자들이 깨우친 피와 살이 마르는 통각을, 생의 부당함을, 꿈이 폭로한 것을, 피부로 느껴야 합니다. 이 어둠의 한복판에 서서. K에게. 당신은 여전히 굳건한가요, 산산이 부서졌나요. 혹은 당신도 나처럼 상처입었나요. 누군가는 우리가 K를 지켜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직 화해하지도 못한 K를, 내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당신을 향한 애정과 증오. 나는 무엇을 쥐고 방향을 찾아야 할까요. 내가 화해하지 못했고 배신하지도 못한 조국의 역사와 현재의 소용돌이에 서서, 내가 비롯된 곳과 가야 할 곳을 응시합니다. 후퇴한 만큼의 반성과 용서한 만큼의 수치를 안고. 투항 아닌 고함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이전 것을 불사르기 위한 밤으로.


본문 중 일부 문장은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작별하지 않는다』 속 문장을 수정하여 옮긴 것입니다. 현실을 꿈(‘없던 것’)으로 취급하고자 하는 이는 영혜의 남편이고, 꿈(‘없던 것’)이 현실을 압도하게 된 이는 영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