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감은 눈을 더 꼭 감았다. 기도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지아야 뭐하니? 안 일어나니? 또 늦는다.” 나해의 목소리가 들린다. 며칠 밤 죽음에 대한 여러 고민 끝에 폭발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아프지 않게 죽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까지, 지아는 자신이 아는 죽음에 대한 모습들을 여럿 떠올렸다. 놀이터에서부터 집으로 걸어가는 길, 아파트 일 층과 땅 사이에 누워 있던 작은 참새의 열린 배 안에는 하얀 실들이 한데 엉켜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모두 미세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참새의 배 안에 있던 벌레들 때문에 참새가 죽어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참새가 배에 상처가 나 죽었는데, 그 틈을 통해 벌레가 들어간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안에서부터 먹히다 배꼽이 열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누군가 내 배를 가르는 것보다 덜 아플까. 그게 무엇이든 덜 아프게 죽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지아야 일어나 학교 안 갈 거야? 꼭 엄마가 깨워야겠니?” 지아는 화를
참는 나해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더 간절한 마음으로 몸을 잔뜩
움츠렸다. 빠른 속도로 세 번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우리 가족 모두가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시간에 폭발하게 해주세요.
우리 가족 모두가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시간에 폭발하게 해주세요.
우리 가족 모두가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시간에 폭발하게
해주세요
라고 속삭이다가 이번에는 소리를 내어서 (마지막으로 하는 기도는 소리를 내서 해야 했기에) 우리 가족 모두가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시간에 폭발하게 해주세요, 라고 말했다. 지아는 그러고나서야 이불에서 기어 나왔다.
지아가 사는 아파트는 학교에서 그리 먼 곳은 아니었는데, 아침마다 아이들을 챙기다 늦는 바람에 나해는 차로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학교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작은 동물원이 있었는데 매일 아침 공작새들이 소란스러운 아이들 소리에 자신들의 허리깃을 활짝 피며 넓지 않은 울타리 안쪽을 걸어 다녔다. 냄새나. 쟤네들은 자기네들 똥 위에서 걸어 다니는 것도 모를 거야. 까르르 저기 봐. 지아와 같은 아파트 7층에 사는 효정이 말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공작새뿐 아니라 염소, 닭 우리에서 나는 냄새가 학교 앞에 진동했고 아이들은 그 냄새 때문에 더 빨리 걸어서 학교로 들어가곤 했다. 아이들은 그 길에서 자주 미끄러져 넘어졌고 종종 다쳤다.
어느 날은 아침에 학교에 가니 아무도 지아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이들은 가끔 그렇게 돌아가며 누구와는 말하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그날은 지아의 차례였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아서 그냥 책상에 앉아 있다가 미술 시간 준비물이었던 조각칼을 꺼내 나무 책상에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지아 주변을 서성이며 선생님이 오시면 혼날 거라며 수군댔다. 지아는 멈추지 않고 조각칼로 챙모자를 쓴 여자의 옆얼굴을 나무 위에 새겼다. 그것은 그 무렵 지아가 자주 하던 낙서였는데 어떤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니었다. 지아는 여자가 새겨진 책상 위에 엎드렸다. 누구든 자신에게 말을 거는 첫 번째 사람이 나의 친구인 거야 다짐하며 지아는 기다렸다.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은 떼를 지어 선생님께 몰려갔고 지아가 한 행동을 일렀다.
“지아, 앞으로 나오렴.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설명 해줄 수 있겠니?”
지아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옆 반에 가서 남는 책상을 가져오고, 이 책상을 밖에 내놓도록 해라.”
별 꾸중 없이 선생님은 지아에게 일렀다. 지아는 지시대로 칼로 조각된
책상을 복도에 세워두고 옆 반에 남는 빈 책상 하나를 들고 다시
교실로 돌아와서는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앉았다.
운동장 조회가 있는 날 아이들은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체육복을 다 갈아입은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나서는데 선생님이 지아를 자신의 책상으로 불렀다.
선생님은 하얀색 플라스틱 접시 위의 초콜릿 칩 쿠키를 지아에게 주었다.
“먹어. 지아 주려고 선생님이 쿠키 남겨놨지.”
지아는 쿠키를 먹으며 선생님 뒤 창문으로 보이는 운동장으로 뛰어가는 아이들을 봤다. 선생님은 아빠보다 늙어 보였고 할아버지보다는 젊어 보였다. 지아는 아빠 허리를 안마하고 칭찬을 받았던 일을 떠올렸다.
“하하 그럴래. 지아가 안마를 얼마나 잘하나 한번 볼까.”
지아는 꾹꾹 양쪽 어깨를 같은 수를 맞춰가며 힘을 다해 주물렀다.
“손 아프니 그만하고 운동장으로 가렴.”
지아의 초등학교에서 여름 프로그램을 위해 각 반마다 다른 국가 테마가 정해졌다. 지아의 반은 스페인이었는데 곧 있을 운동회에 반 대표가 그 국가의 국기를 들고 운동장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지아는 잠시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붉은 드레스를 입고 춤추는 여인을 떠올렸다. 붉은 입술과 붉은 드레스. 카르멘. 그 남자는 사랑한다면서 카르멘을 칼로 찔렀다.
“미국 된 애들은 좋겠다.”
“왜?”
“그냥 제일 세잖아. 누가 쳐들어와도 다 이겨”
“아니거든 북한이랑 중국이랑 힘 합치면 못 이길 수도 있어.”
선생님은 칠판에 스페인이라 적고 아이들에게 스페인에 대해 알아 오라고 숙제를 내주었다.
선생님은 지아에게 자신의 급식을 가져오라고 점심시간 종이 치기 10분 전 먼저 급식소로 가게 했다. 종이 치기 전 학교는 조용했다. 선택받은 아이들만 조용한 복도를 소리 없이 지나고 층계를 오갔다. 각 반에서 선생님이 보낸 아이들이 줄을 서 식판에 음식을 들고, 흘리지 않게 조심히 교실로 걸어갔다. 지아는 교실 앞문에 살짝 기대고 한 손으로 식판을 들었다.
똑똑, 소리를 내면 교실 문이 열렸고, 식판을 선생님 책상에 올려놓으면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점심을 꺼냈다.
두 아이가 차에서 내리고 나서야 나해는 잠시 숨을 돌렸다. 오늘 무엇을 해야 하지?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선 셋째 아이와 집으로 가서 전화해 봐야겠다. 나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마트에 들르기로 한다. 아파트 단지에 3일에 한 번씩 야채 장수들이 오지만, 분명 새로 생긴 마트에서 필요한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버터나 치즈, 애들이 좋아하는 어묵, 수입된 과일이나 애들이 좋아하는 스파게티 면도 팔았다.
먹기 적당한 양만큼 담겨있는 다듬어진 채소들을 보니 아파트 앞에 장이 섰던 날 봤던 노인이 생각이 났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남자들이 출근하고 나면, 다른 남자들이 다시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흙이 묻은 채로 쌓여있는 채소들이며 제철 과일, 가끔은 생선 장수까지 합세해 장이 열리는 것이었다. 나해는 도착한 트럭이 순식간에 시장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주차하면 트럭 장수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새벽부터 물건을 받아 아파트 모퉁이에서, 가방이 열리는 것처럼 트럭의 모든 문이 열리고 시장이 펼쳐졌다. 채소가 들어있던 박스들은 채소가 놓일 상판이 되었고 그 위로 야채 장수는 정성스레 물건을 진열했다.
“아니 그러니까 조금씩만 팔면 안 되냐고, 떨이가 남으면 그걸 몇 개 주던가?”
“할머니 죄송해요. 장사 이제 막 시작해서 아직 떨이가 없어요. 단이 저울 재서 묶인 거라 나눌 수도 없고 영 그러시면 제가 좀 모아둘게. 이따 오후에 오세요.”
젊은 남자는 난처해하고 있었다.
“이따는 무슨, 다시 못 온다니까. 지금 일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야.”
노인은 자신의 짐 가방으로 파단이 놓여있는 박스를 탁탁 쳤다.
“저기요. 저 이거 하나 주세요.”
나해는 단을 묶고 있는 끈을 풀었다. 파를 몇 개 뽑아 할머니께 드렸다.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 없이 파를 챙겼다.
나해는 가끔 장이 설 때마다 닭 모이 주워 오라던 아버지 성화에 동생과 자루 하나씩 들고 장터가 열리는 곳을 쫓아다녔던 걸 생각했다. 떨어진 야채며 곡물을 줍다 보면 장이 파할 때야 자루가 가득 찼는데 무거워서 돌아오는 길은 가는 길보다 오래 걸렸다. 운 좋은 날에는 그런 나해에게 못 파는 과일을 하나씩 손에 쥐여주던 할머니들도 있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배에 든 것도 없이 돌아다니다 얻어먹은 과일은 너무 달았다. 동생에게 나눠주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마트에서 산 물건들을 트렁크에 싣고 있을 때였다.
“어머 너 나해 아니니?”
“누구...?”
“나잖아. 자숙이! 어머 너 어쩜 이렇게 그대로니? 어머 어머!!! 그때도 예쁘장하게 조그맣더니! ”
“자숙이? 넉자?”
넉자가 장난스레 웃음을 지었다.
“하하 어느 시절 이야기야. 넉자! 그래, 나 넉자야! 나해야 너무 반갑다. 너 여의도 사니?”
나해는 반가우면서도 많이 변한 자숙의 모습에 다시 한번 얼굴을 살펴보았다. 까무잡잡하게 태운 피부에 그때 뚝섬에서 만난 넉자가 맞았다. 피부색과는 대비되는 흰옷과 금붙이에,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넉자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자숙이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종합학교에서는 모두가 넉자라고 불렀다. 각진 얼굴과 동네 깡패라는 소문에 걸맞는 별명이었다. 모두에게 무서운 존재였을지 몰라도 넉자는 나해에게는 친절했는데 너무 약해 보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내가 손으로 휙하면 넌 그 바람을 맞고 쓰러질 거 같았다니까. 내가 예쁜 애들을 얼마나 싫어했는데.”
자숙이 툭 하고 나해 어깨를 쳤다. 나해는 넉자에게 이곳에 사느냐고 물었다.
“응 나 애도 있어. 내가 엄마가 돼서 정신을 차렸잖아. 나 엄마 학교도 등록해서 꼬박 몇 달을 다녀서 자격증도 땄어. 웃기지. 엄마 자격증. 하하.”
“그랬구나. 나는 애가 셋이야. 얘가 막내.”
넉자는 다음에 딸을 한번 데리고 가겠다며 선글라스를 꺼내 꼈다. 나해는 그런 넉자에게 다음에 보자고 말했다.
나해는 집에 돌아와 장 본 물건들을 부엌에 정리해 두고 잠을 좀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2시 조금 넘어 화장품 아줌마도 오는 날이어서, 조금 쉬다 아줌마에게 링거를 맞을 생각이었다. 14층에 사는 언니한테 추천받은 화장품 아줌마는 공작아파트에 있는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이렇게 기미 생기면 나중에 지우기 힘들어요. 지금부터 관리를 해줘야지.”
“그래요? 기미가 있어요?”
나해가 물었다.
“젊은 엄마가 피부 관리를 안 하나 봐. 그럼 있다니까. 여기 봐봐 이게 지금 씨앗 같은 거야. 순식간에 퍼진다니까. 그러면 여기는 점점 검어지는 거야.”
화장품 아줌마는 기미를 지우는 것 같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나해의 얼굴을 만졌다.
나해는 이미 나른해지고 있었다.
“오늘 영양주사 놔줘요? 주사 맞고 한숨 자요.”
나해는 이내 잠이 들었다.
섬에는 여자들이 가득했다. 한 여자는 비가 오지 않는 밤이면 하얀 푸들을 안고 어둑해진 허공을 바라보며 웃었다. 연수는 가족끼리 외식을 하고 들어오는 길에 그 여자가 보이면 “저 여자가 너희들을 기다렸나 보다. 인사라도 드려야지.” 라며 아이들을 놀리곤 했는데, 그 여자에 대한 기괴한 소문들이 많아서 아이들은 차 안에서도 혹여나 눈이라도 마주칠까, 여자가 서 있는 곳 반대편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얼굴 주변으로 헤드라이트를 반사하는 금빛 귀걸이가 찰랑거렸다. 그 여자를 볼 때마다 나해는 마음이 철렁했다. 집에 도착하면 A동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따님이 또 나와 계세요.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고 또 차에 뛰어들까 봐 연락드려요.” 그도 그럴 것이, 그 여자는 여러 번, 어떤 이유에서 인지 하얀색 차를 보면 그 앞으로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한번은 푸들을 내던지고 차에 뛰어든 여자가 심장발작을 일으켜 구급차를 부른 일도 있었다.
아파트는 단지마다 평수가 달랐다. 단지가 4개 밖에 없는 곳이어서 어느 단지에 사느냐에 따라 남편들의 벌이가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하다는데, 정작 나해는 남편의 벌이를 정확히 몰랐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남편들이 일터로 나간 섬은 여자들의 소리로 채워졌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도 그 소리를 내는 여자들뿐이었는데, 가끔은 자신이 내는 소리가 자신의 소리였는지 옆집 여자의 소리였는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앞 동에 사는 여자는 나해에게 자신이 매일 한 가지씩 미친 짓을 하는데, 요새는 모두 집을 나가면, 옷을 벗고 집안을 쉴 새 없이 걸어 다닌다고 고백했다. 나해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어떤 늙은 여자는 모두가 나간 뒤에 하얀 강아지를 식탁 의자에 앉히고 함께 밥을 먹는다고 했다. 앵무새를 키우는 옆집의 늙은 여자는 집에 없는 종류의 난 화분을 찾기 위해 매일 다른 꽃집을 방문했고 집안에 공간이 없을 지경이 되었다. 나해는 여자들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누웠고, 화장품 아줌마가 시간에 맞춰 도착하면 영양 링거를 맞으면서 잠에 들었다. 남편의 열쇠 꾸러미에서 못 보던 열쇠를 발견한 나해는 음식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나해가 항상 누워있고 먹지 않아서 야윌 무렵 연수는 동네에 있는 동네에 있는 목욕탕 남탕에 지아와 동생 수아를 씻기러 데려가곤 했다. 큰 아이가 여덟 살을 넘긴 어느 일요일. 연수는 목욕탕에 도착해 딸들에게 수영복을 입혔고 아이들은 가져온 수모와 물안경을 꺼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여러 놀이를 만들어 냈는데, 그 중 ‘개구리 밟지 마’ 놀이는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면 함께 하기 쉽지 않은 놀이였다. 난간에 매달리는 것은 3초밖에 허락되지 않았고 물이 꽉 찬 탕 바닥에는 언제나 개구리들이 바글거렸다. 사람의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아니 발이 스치기라도 한다면) 개구리들은 물속에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밟혀 죽을 것이었다. 아이들은 탕 난간에 매달려 하나, 둘, 셋을 소리 내서 세고, 숨을 고르고는, 다시 탕 중간으로, 발이 닿지 않게, 조심히 물장구를 치면서 물에 떠 있었다. 서로의 발이 바닥에 닿았는지, 닿지 않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물안경을 끼거나, 물 안에서 눈을 뜨고 서로의 발들을 감시하는 것이었는데, 아이들은 서로를 감시하기보다는 개구리를 혹여나 밟았을 때 느끼게 될, 개구리가 터지는 촉감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더 강력했으므로, 물 위에 떠 있기 위해 발과 손을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 개중에는 난간에 3초 보다 더 오래 매달려 있었다며 시비를 거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는 최선을 다했다. 여자아이들과 또래인 남자아이들뿐 아니라 남자 어른들도 이 여자아이들을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지만, 올림픽 로고가 새겨진 검은색 수영복을 입은 여자아이들이 남탕에서 수영하는 모습은 곧 익숙해졌다. 여자아이들은 매번 목욕탕을 갈 때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었고 강압적으로 아버지에게 붙들려 씻김을 당하기 전까지는 신나게 놀았다.
목욕탕 왼쪽으로 보이는 시범아파트 단지 안 공원 안에는 돌로 깎은 곡선으로 이루어진 형태의 조형물이 있었다. 그 조형물을 보다가 누구에게 들은 것인지 아니면 지아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지아는 어느 날, 그 조형물이 놓인 단상 위를 일곱 번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믿게 된 날부터 자전거를 타고 다른 곳에 가는 것을 생략하고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지아는 조형물을 일곱 번 돌기 위한 훈련을 시작했다. 그 훈련에는 속임수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떨어지면 다시 시작하는 것이 다였다. 돌 조형물의 표면은 작은 구멍이 숭숭 뚫려 아이가 맨손으로 대하기엔 거칠었다. 손에 잡히는 튀어나온 부분이 없어서 양팔을 뻗어, 온몸과 얼굴을 조형물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는데, 첫날은 몇 걸음 뗄 때마다 단상에서 떨어졌다. 옆얼굴을 돌에 대고 발로 더듬거리며 디딜 곳이라곤 아이의 발 반밖에 되지 않는 공간밖에 없어서 한번을 채 돌기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지아의 몸 어딘가는 조형물 표면에 긁혀 피가 났고 하루는 바닥에 떨어져 왼쪽 발목이 비틀렸다. 그날 지아는 절뚝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걸어가며 스스로를 측은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아는 포기할 수 없었다. 어제 네 번까지 돌 수 있었다면 오늘은 다섯 번, 그리고 내일은 운 좋게 일곱 번을 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학교가 끝나고 조형물을 돌다 보면 금방 해가 어두워졌고 조형물 주변에 살던 아이들은 어른들이 부르는 소리에 집으로 돌아갔다. 물론 지아도 옅은 회색빛의 돌 조형물이 푸른 회색빛 저녁 공기에 버무려져 잘 보이지 않는 시간이 되면 차가워진 조형물에 손이 시렸다. 어두워진 후에 집에 도착하면 지아의 어머니는 지아를 꾸중했다. 매일 누워 있는 여자가 진짜 자신의 어머니인지 아닌지 궁금했던 지아는 밥을 먹다가 갑자기 이 마귀할멈아, 우리엄마 어디다 숨겼어? 라는 생각을 하며, 앞에 앉은 표정 없는 여자를 노려보기도 했다. 나해는 가끔 바닥에 누워 아이들과 미용실 놀이를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누운 여자의 머리카락을 빗고 묶고 땋았다. 그럴 때면 나해는 곤히 잠에 들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나해는 통화중이거나 누워 있었다. 그러면 지아는 책가방을 던져놓고 자전거를 끌고 나올 때가 많았다. 옆집 숲속에 사는 앵무새 할머니 집을 지나 복도 중간 집 앞에 통로 맞은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다. 자기 몸집보다 큰 자전거를 들고 경비 아저씨에게 인사하며 대리석 계단을 내려왔다.
처음에는 공작아파트 4개 단지 주변을 돌아다녔다. 돌아오는 길이 잘 기억나지 않아 헤매는 날도 있었지만, 곧 큰길을 몇 번 건너서야 보이는 63빌딩까지도 갈 수 있게 되었다.
한동안 지아가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쌍둥이 빌딩이었다. 까만 복장을 한 어른들이 드나드는 유리 회전문을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에 있는 과학박물관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느리게 움직이는 로봇들이 저금통을 만드는 장면이 연출되어 있었는데, 지아는 그 장면을 이미 여러 차례 봤음에도 매일 그 앞에 잠시 머물렀다. 쌓여있는 저금통들과 그 뒤에 서있는 흔들거리는 기계 말고도 박물관 안에는 여러 종류의 볼거리들이 있었지만, 지아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입구에 매일 서있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저금통 공장이 연출된 유리창에 눈도장을 찍고 다시 출구로 나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곳을 지키며 안내하는 사람도, 그곳을 드나들며 청소하는 아주머니도 모두 지아에게 인사를 했다.
지아는 어느 날처럼 그 날도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에 들러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날이 갈수록 시범 아파트 중앙에 위치한 조형물에는 더 많은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지아는 이미 조형물에 붙어있는 아이들에게 일곱 번을 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운 날이어서 아이들의 손등은 모두 벌겋게 일어나 있었다. 조형물을 돌다 보니 몸이 데워져, 지아는 청재킷을 벗으려다 단상에서 떨어졌다. 돌고 있던 다른 아이가 말했다.
“너 다시 시작해야 해.”
“나도 알아.”라고 말하며 지아는 다시 단상에 올라 둥근 조형물의 얼굴 부근을 안았다. (지아는 여러 날 훈련 끝에 그곳을 시작하는 곳으로 정했다.) 지아는 다른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가고 난 후 아주 깜깜한 밤이 될 때까지 그곳에 있었고 일곱 번의 고된 여정을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바닥에 살짝 발이 닿아도 스프링처럼 재빨리 뛰어 올라가며 두 발이 닿지 않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새로운 규칙을 정해주었지만) 완주하고 소원을 빌었다. 집에 가려고 쓰러진 자전거를 바로 세웠을 때는 하늘이 어두워져서, 차라리 아예 집으로 가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공작 아파트 대리석 계단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이내 자전거를 들고 계단에 올랐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지아의 예상대로 나해는 매우 화가 나 있었고 연수는 아직 집에 오지 않았으며 아이는 집에서 쫓겨났다.
집에서 나온 지아는 겨울이 오니까 식량을 모으려고 아파트 단지 중정 안에 있는 앵두나무에 가보았지만, 여름에 따먹었던 앵두는 다 떨어지고 없었다. 앵두랑 비슷한 모양새지만 색이 더 짙고 작은 붉은빛의 나무 열매가 눈에 띄어, 두 손 가득 따서, 집이라 여기기로 한 콘크리트 블록 위에 나뭇잎을 접시처럼 놓고 열매들을 차렸다. 열매 하나를 집어 먹어보니 너무 써서 지아는 이것을 겨우내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며칠 전 또래 남자아이들이 나뭇가지로 자르던 송충이가 생각 났지만, 왠지 털 때문에 먹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동화에서 눈먼 할머니가 지렁이를 고기반찬인 줄 알고 먹었다던 이야기가 번뜩 떠올랐다. 지아가 지렁이를 많이 찾아서 그 이야기에서처럼 말려 눈을 감고, 고기라고 생각하고 먹기로 마음을 먹은 순간, 저 멀리서 지아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아는 계속 숨어 있을까 하다가 소리를 따라 천천히 걸어 나갔다.
겨울이 되어 날씨가 추워졌다. 지아가 자전거를 타기에는 바람이 너무 매서웠다. 어느 날 누워만 있던 나해는 작은 목소리로 지아의 이름을 불렀다. 아이에게 2만 원을 쥐여 주면서 쌍둥이 빌딩 지하에 있는 일식집에서 초밥을 사다 달라고 말했다. 분명 그녀가 다른 이야기도 했었을 텐데, 지아는 나해가 죽어가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기에 초밥을 사 오는 것이 마지막 소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밖은 눈이 오고 있었다. 빨간색 털로 짜인 모자를 쓰고 스키 장갑을 끼고 눈보라를 헤치며 갈 생각에 아이는 마음을 다지고 자신이 갈 길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파카 주머니 지퍼를 열어 종이돈을 넣고 지퍼를 닫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고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찼다. 지아는 빌딩 아저씨들에게 자전거를 맡길 수도 있었겠지만, 그 날은 마음이 급해 빌딩 앞에 도착하자마자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내버려두고, 회전문을 통과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향했다. 지아와 나해가 예전에도 우동을 먹으러 와본 적이 있는 일식당이었다. 지아에게는 이곳이 익숙한 곳이었음에도, 혼자서 식당 안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아는 갑자기 몸이 따뜻해져서 잠시 식당 카운터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런 아이를 발견한 종업원이 가까이 왔을 때 지아는 말했다.
“엄마가 아픈데 초밥이 먹고 싶데요.”
눈이 묻은 장갑을 벗고 벌겋게 언 손가락으로 지퍼 손잡이를 내리고 돈을 꺼냈다. 지퍼의 차가운 이빨은 날이 서서 아이의 손등을 할퀴었다. 지아는 전에 나해와 함께 앉았었던 그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음식을 가져온 종업원은 괜찮겠냐면서 장갑을 먼저 끼라고 말했다. 그리고 장갑을 낀 아이의 손목에 비닐 봉지를 묶어주고, 열려있는 주머니 안에 거스름돈을 넣고는 지퍼를 올려주었다. 지아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를 부축해 앉혔다. 한쪽으로 쏠려있는 초밥 박스를 손 위에 받은 나해는 “우리 딸 다 컸네.”라고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니 식탁 위에 츄파춥스 3개와 ‘엄마 잠시
어디 좀 다녀 올 테니 동생들이랑 사탕 잘 먹고 있어.’라고 쓰여 있는
쪽지 하나가 붙어 있었다. 지아는 동생들이 집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탕을 하나씩 나누어 먹었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텔레비전을 보기도 했는데 이렇게 학교 다녀와서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노는 날도 처음이었다. 깜깜한 밤이 되어도
아무도 집에 오지 않았다.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은 막내가 배고파
울음을 터뜨렸을 무렵이었다. 지아는 다시 쪽지를 펼치고 동생들에게
읽어주었다. 그리고 연수의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항상 전화를 받는
젊은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아직 집에 안 왔어요.”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연수는 집에 도착했다. 연수는 버터와 햄을 잔뜩
넣은 볶음밥을 해 주었다. 지아는 볶음밥이 너무 느끼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밥을 먹으며 연수가 지아에게 물었다. “네가 엄마랑 갔던 엄마
친구들 집 기억나는 데 있니?” 지아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대로
연수에게 말했다. 옆자리에 지아를 앉히고, 뒤 자석에는 수아와 지호를
태우고, 연수는 아이의 지시에 따라 차를 몰기 시작했다. 지아는
창밖을 바라봤다. 전봇대를 지날 때마다 오른쪽 어깨를 움찔했다.
밤길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의 말을 따라 오랫동안 헤매다 그들은 한
집 앞에서 차를 세우고 기다렸지만, 나해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테이블 위에 놓인 어머니의
쪽지를 읽어 보았다. 아무런 의심 없이 사탕을 먹은 지아는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자기가 집을 나가려고 했는데
엄마가 먼저 나가버렸다고 생각했다. 장위에 놓여있는 옥색 스웨터를
입은 여자의 얼굴이 담긴 사진과 쪽지를 들고 지아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서 담배 냄새를 맡고는 액자를 들고 화장실 문 앞에 선 아이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는 오랜 시간 그 문
앞에 서 있었지만 결국 들어가지 않았다.
*다음호에서 -후편-으로 이어집니다.
1
박수지의 소설작법은 음악적이다. 만약 음악이라는 것이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면 말이다. 시간의 전개 안에서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어떤 순간들이 앞으로 다가올 것들에 대한 예감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는 체험, 지금 이 순간의 겪음 속에서 현재 또한
앞으로 다가오는 것에 대한 예감이 되고야 말리라는 너무 앞서가는
예감과 함께 현재 속에 벌써 밀려 들어와 있는 미래를 감촉하는
방식으로 현재의 떨림을 감촉하게 되는 체험, 그럼에도 시간의 그
전개가 과거가 미래를 구속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앞으로 다가오는
것들은 과거에 이미 예고된 것의 실현, 결정된 것의 실행에 지나지
않으니까)이 아닌, 미래가 과거를 해방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해방하며 이어지고 있는(미래는 과거 안에 과거 자신에게 덜 알려진
약간은 낯선 것이 이미 함유되어 있었다는, 과거가 언제나 과거 자신
이상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과거에 선물해 주면서 오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미래는 과거에 이미 확실히 존재했던 예언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미래와 연결가능한 떨리는 숨구멍 같은
것을 사후적으로 과거에 덧붙여주면서 전혀 예기치 못했던 방식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니까) 시간에 대한 체험. 그러한 체험들에 대한
추적, 표현, 생산.
2
박수지의 소설작법이 음악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12개의 절로
이뤄진 이 단편소설(?) 「The Auckland tales」의 열 번째 절
‘음악실과 과학실’에서 우리의 주인공 지아가 ‘모스크바의 종소리’로도
불리는 라흐마니노프의 Prelude Op.3 No.2 C# minor를 연주했다거나 이
음악 영재가 이후로도 다양한 연주회에 나서야 했다는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고, 각각의 장면들이 서로에 대한 예감이면서 서로에게
숨구멍을 만들어주고 또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를 해방시켜주는
방식으로 조직화 또는 탈조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80년대
후반 또는 90년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여의도에서의 중산층 기혼 여성의
삶을 기묘한 고립의 분위기와 함께 ‘섬’에서의 삶이라고 회상하는 그
관점은, 아버지를 제외한 지아 가족이 뉴질랜드라는 거대한 ‘섬’으로의
이주한 이후의 이야기들에 의해 변주되는 것일까? 고립된 섬을 향한
지아의 운명은 지아가 무대 위에서 연주할 때 도돌이표 안에 갇히게
만드는 것일까? (열한 번째 절 ‘깨어서 꾸는 꿈’) 바로 그 섬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 그 섬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지아를 다른 누구도
아닌 지아로 만드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아는 또 다른 어떤 섬을 또
찾아가게 될까? 그런 식으로 그 무수한 섬들이 지아에 의해 연결되면서
이 소설은 섬을 발견하는 동시에 섬이 더 이상 섬이 아닐 수 있게
해주는 것일까? 그런데 지아는 아마도 무수히 많은 곡들을 연주했을
텐데 왜 하필 이 소설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모스크바의 종소리’ 단
한 곡만이 노출되어 있는 것일까. 라흐마니노프 자신이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기 때문에? 이 소설이
함유하고 있는 디아스포라적 영감이 다른 누구도 아닌 라흐마니노프를
불러들인 것일까? 종종 이 프렐류드 안에 표현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모스크바의 그 여러 종탑에서 울려 퍼지는 풍부한 음향들은, 이 소설의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절인 ‘ritual 2, 3’에서 어린 지아의 탑돌기 및
그에 수반하는 간절한 그러나 실제로 외쳐지지는 않은 기도 소리와
희미하게 뒤얽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린아이들에게 밟혀 터뜨려지고
있는 그 달팽이들은(일곱 번째 절 ‘바닷가에서’), 지아와 그 동생들이
밟지 않기 위해 애썼던 목욕탕 속 상상의 개구리들(세 번째 절 ‘ritual
1’)의 변주가 될 수 있을까? ‘바닷가에서’에 나오는 저 인상적인
전설은, 바다에 나가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다 미쳐 스스로 절벽을
들이받았고 그때 만들어진 동굴에 미친 여자가 살면서 사람들을 바다로
끌어들인다는 남반구의 세이렌 전설은, 어린 지아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인생행로에 대한 영감에 찬 암시가 아닐까? 그 굴(窟)이 그리고
굴을 만드느라 파낸 돌멩이들이 나중에 조형예술가가 된 지아에게 말
걸어오고 있지 않은가? 기타 등등. 이 무수한 질문들을 메아리치게
하면서 이 소설은 우리에게 음악을 체험하게 한다.
3
만약 이 텍스트가 그저 각 항들의 ‘연결’의 ‘가능성’만으로 충전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추상적으로 되는 바람에 구체적인
체험을 빚어내거나 스스로를 이해하거나 표현하는 데 완전히 실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연결의 가능성 때문에 간절히 흔들리고
수런거리고 있는 이 개별항들이 그러나 그와 같은 연결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자기 중력을 지닌 복잡성과 간절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에 혹은 흘러넘치고 있기 때문에(어린 지아가 주어진 세계를
수동적으로 또 막연하게 수용하는 대신 그것을 언제나 자기식으로
해석하고 연출하고 시험해 보면서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장면들을 볼
것, 예컨대 리추얼들) 「The Auckland tales」는 그와 같은 실패의
지대를 가뜬하게 건너가 버린다.
4
사실을 말하자면 이 소설은 ‘미완성’이다. 그것은 내가 「The Auckland
tales」의 이곳저곳에 더 삽입될 수 있을 여러 반짝거리는 메모들을
많이 봐왔고 또 현재의 「The Auckland tales」가 끼워 넣어질 수도
있을 더 커다란 「The Auckland tales」의 대강을 들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렸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박수지 작가의 소설작법이 음악적인 한에서, 모든 부분들은
시간의 전개 속에서 그 자신을 다른 것으로 다시 깨어나게 할 다른
부분과의 연결을 기다리고 있고, 그런 식으로 「The Auckland
tales」는 적어도 이론적으로 무한히 확장될 수 있으며, 언제나 아직
덜 쓴 공백들/쓰여지기를 기다리는 공백들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소진되지 않은/소진될 수 없는 이 텍스트의 힘을 스스로 드러내려 할
것이기 때문에 박수지의 소설은 근본적으로 미완성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미에서의 미완성이라는 것은, 완성될 필요가 없다는 뜻이 된다.
아니 완성될 필요가 없다기보다는 그 완성이라는 것이 텍스트의 소진될
수 없는 희미한 가능성들을 너무 성급하게 숨 막히게 만드는 것이라는
뜻이 된다. 이 ‘미완성’이 「The Auckland tales」를 익숙한 이야기의
관습 안에서 편안하게 읽고 쓰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때로는 거의
고통스럽게 만드는 동시에 이 텍스트를 읽어나가거나 써나가는 행위를
몹시 강렬한 체험으로 바꿔놓는다.
5
「The Auckland tales」는 지금의 형태로도 충분히 탁월한
텍스트다. 그러나 나는 박수지 작가에게 충분한 것보다는 지나친 것을
원한다. 「The Auckland tales」가 완성을 향해 가지 않으면서도 보다
풍부하고 섬세하고 주름 많은 ‘미완성’이 되기를, 그러한 미완성으로
드러나기 위한 탁월한 출발점으로 지금의 「The Auckland tales」이
이미 되어 있었던 것이기를 나는 바라고 또 예감하게 된다.
권희철(문학평론가, 연극원 서사창작전공 교수)
글 박수지
연극원 극작과 서사창작전공 전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