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익숙한 단어가 되어버린 ‘나비효과’란 세계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개념으로, 하나의 사소한 사건이 복잡하고 거대한 결과를 야기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흔히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가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또 다른 예로는 우발적 핵전쟁이 있다.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대의 어느 날, 소련의 조기 경보 시스템을 통해 미국이 소련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감지 결과가 나타났다. 당시 핵 반격의 결정권자였던 페트로프 중령은 시스템의 오류를 직감하여 반격을 지시하지 않았고, 이후 중령의 직감대로 미국의 공격 신호는 소련의 경보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발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중령이 경고 시스템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직감을 선택한 것이 핵 반격과 제3차 세계대전을 방지했다고 평가되는 이 사건은 개인의 선택이 갖는 장기적인 영향력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또는 한 개인의 선택이 때에 따라서 인류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극히 자명한 말이지만 과거의 결정이 현재를 좌우하고, 현재의 결정이 미래를 좌우한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상반기에 공개된 넷플릭스 S.F 시리즈 〈삼체〉(2024)를 보며 자연스럽게 나비효과가 떠오른다. 〈삼체〉 역시 한 개인의 선택이 가져온 무시무시한 결과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건은 196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에서부터 출발한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홍위병들은 인민을 초월한 절대적인 힘을 인정하거나 변증법을 부정하는 지식인들을 반동분자로 간주하고는 탄압하기 시작한다. 작중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예원제는 완고하고 정직한 물리학자였던 그의 아버지가 홍위병들에게 구타당하여 죽음을 맞는 끔찍한 상황을 멀리 숨어서 목도하게 된다. 사상범의 딸인 예원제는 곧 노동형을 선고받지만, 뛰어난 과학 지식을 가진 탓에 정부의 기밀 프로젝트에 스카웃되어 홍안 기지에서 전파를 이용한 성간 통신 연구에 참여하게 된다. 홍안 기지에서는 극비리에 외계 문명에게 메세지를 발신하고 있었고, 예원제는 태양의 전파 복사와 증폭을 이용하는 아이디어를 고안했으나 당국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어느 날 예원제는 상부의 감시를 피해 외계 행성과의 접촉에 성공하여, 외계 문명에 사는 익명의 존재에게 자신이 도울 테니 지구를 침략해 달라고 요청한다. 예원제의 메시지는 지구로부터 4광년 거리에서 살아가는 삼체 행성에 도달하고, 그들은 예원제의 응답에 따라 지구를 침략하기 위한 여정에 오르게 된다. 예원제의 개인적인 결단과 행동의 파급력이 나비효과처럼 퍼져나가, 어느덧 인류 멸망은 삼체 문명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인 400여 년(4광년의 거리를 광속 1%로 도달하는 시간)의 모래시계를 거꾸로 뒤집은 셈이 된 것이다. 〈삼체〉의 원작은 중국의 S.F 소설가인 류츠신의 동명 소설 『삼체』 3부작이다. 원작은 중국과 우주를 배경으로, 예원제의 선택으로부터 반세기가 지나 삼체인의 침략에 맞서는 중국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한편, 각색된 넷플릭스의 〈삼체〉는 문화대혁명이라는 실제 역사적 배경과 예원제의 서사는 그대로 유지한 채, 그로부터 반세기 후의 현재 시점에서 삼체 문명의 존재와 그들의 지구 침략 계획을 깨닫게 되는 영국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편 원작 소설의 1부에 해당하는 내용을 개괄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된 〈삼체〉는 과학자들의 잇단 자살 사건으로 인해 옥스퍼드 출신 과학자 다섯 명이 한 형사와 함께 사건을 파헤치는 수사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중 나노 소재를 연구하는 과학자 오거스티나가 경험하는 시각적 환영과 초자연적인 현상은 삼체 문명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미지의 존재가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시화하여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소 아쉬운 건 원작에서 예원제가 인류를 파멸시킬 선택을 하게 된 과정이 치밀하게 묘사된 데에 반해 〈삼체〉는 매체 특성상 그러한 발단의 내막이 대폭 축소되고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 간의 미묘한 감정에 치중한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삼체 문명의 이야기가 원작만큼 치밀하게 서술되지 않는 한계를 보이나, 그만큼 인물들의 뒤얽힌 감정이 극의 몰입도를 높이기에 한계를 상쇄할 만하다.
서사의 무대를 영국과 중국으로 이원화시켰다는 점을 감안하고서라도, 예원제가 ‘인류 멸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버튼을 누르기까지의 과정은 과거와 현재의 교차를 통해 한정된 에피소드 내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특히 노동형에 처한 예원제에게 한 기자가 당시 금서였던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몰래 전해주어 숨어서 읽는 장면은 원작에서 그가 아버지의 죽음과 더불어 인류를 향한 희망을 완전히 저버리게 된 계기를 해명한다. 환경을 파괴하는 살충제의 영향에 대해 말하는 카슨의 책은 그에게 대자연의 시각에서 인간의 악행을 떠올리게 했고, 곧 인간은 스스로 도덕적 자각을 할 수 없기에 인간 이외의 힘이 인간을 심판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했다. 자신보다 어린 홍위병들이 비이성에 사로잡혀 아버지를 반동분자로 내몰아 죽이고, 국가는 날마다 인민의 편의를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산림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에 환멸을 느낀 예원제는 인류의 적으로 돌아선다. 예원제에게 공감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이유는 그가 감각하는 인류의 문제가 결코 낯선 것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주의와 환경 파괴는 이미 작품 너머의 현실에서도 대두되는 초국적인 사안이지 않은가. 예원제의 극단적인 심경의 변화는 원작자 류츠신의 인류 역사에 대한 비판 어린 사유를 짐작하게 한다.
각색에 있어 〈삼체〉가 또 한 가지 탁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현대의 화두로 떠오르는 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다른 시대와 문명 또는 계(界)를 상상하게 만든다는 점인데, 단적으로 VR 게임을 통해 시각화한 이미지들이 그러하다. 과학자들의 집단 자살 사건이 발생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옥스퍼드 과학자 진과 잭이 우연히 삼체 문명의 비밀 추종자 집단이 설계한 것으로 추정되는 VR 게임 헤드셋을 얻는다. 연결된 선이 하나도 없는 매끈한 은색의 헤드셋을 착용하자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장대한 인류의 문명으로 재현된 삼체 행성의 풍경이다.
진과 잭은 각각 코페르니쿠스, 프랜시스 베이컨 등 실존 과학자들의 이름을 빌려 직접 게임 속에 등장하며, 각 단계에 이르러 삼체 문명이 풀지 못한 천체 물리학의 난제를 밝히는 임무를 수행한다. VR 헤드셋을 착용하면 인물들은 곧바로 실존하는 세계만큼 정교한 가상 현실을 체험하게 되고, 실제 고통 또한 경험할 수 있다. 원작에서 ‘V 장비’로 불리는 이 장치는 360도 시야가 가능한 헬멧과 센서가 달린 옷으로 묘사되지만, 〈삼체〉는 그보다 훨씬 고도화된 장치로 헤드셋을 시각화한다. 흔히 메타 퀘스트, 애플 프로 비전 등 현재 상용화된 VR 기기들은 디테일에서 차이가 있지만 모두 〈레디 플레이어 원〉(2018)에서 등장한 기기와 유사하게 모니터가 장착된 고글 형식의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삼체〉의 VR 기기는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없는 외계의 왕관처럼 보인다. VR 게임에 내재된 기술을 파악하는 것의 어려움은 “고도로 발전된 기술은 마술과 구별할 수 없다”는 아서 클라크의 명언에서 짐작할 수 있듯 도래할 과학기술의 매끄러움과 초월성을 반영한다.
이 의문스러운 VR 게임이 폭로한 삼체 문명의 비밀은 장대한 만큼 섬뜩하다. 시리즈의 제목이기도 한 ‘삼체’는 천체 물리학의 난제인 ‘삼체문제(three-body problem)’에서 비롯된 것이다. 뉴턴이 제시한 중력 이론은 두 개의 천체에 입각한 것인데, 여기에 한 개의 천체가 더해지면 천체들의 궤도를 예측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진다는 것이 삼체문제의 핵심이다. 진과 잭이 가상 현실에서 체험하는 삼체 행성의 문명은 세 개의 태양을 가진 행성에 사는 외계 존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세 개의 태양이 불규칙한 궤도를 만들어내며 운행하기 때문에, 삼체 행성에 사는 존재들은 태양의 운행이 정상적인 ‘항세기’와 비정상적인 ‘난세기’가 마구 교차하는 행성 환경 아래, 번성과 멸망을 200여 차례나 반복해야했던 기이한 역사를 보여준다. 가령 게임의 첫 단계에서 진은 곧바로 태양이 행성에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오면서 대지가 불구덩이처럼 들끓는 난세기를 맞이하는데, 이때 삼체인들의 몸은 탈수되어 살가죽만 남긴 채 보관되었다가 태양의 움직임이 정상화된 항세기에는 물에 들어가 탈수된 몸을 불려 생명을 이어나간다. 난세기가 되면 삼체 행성의 문명은 용암 속으로 타들어 가거나 눈보라에 뒤덮이고, 그렇지 않으면 중력을 잃고 상공을 떠다니다 분해되고 마는 잔혹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게임 속 예측 불가능한 혼돈의 상태는 물리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태양 운행의 규칙성을 발견하려는 진의 노력을 짓밟으며 삼체 세계가 얼마나 위험천만하고 속수무책의 연속인지를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VR 게임이 구현한 세계는 사실 삼체 세계의 운명을 설명하고자 던진 은유에 불과한데, 외견상 게임의 배경이 고대에서부터 중세로 이행하며 동양과 서양의 역사를 빌려 쓰는 것은 흥미롭다. 게임의 첫 단계는 중국의 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며, 탈수인을 보관하는 창고는 이집트와 아즈텍 문명의 피라미드로 구현된다. 또 다른 단계는 중세 서양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인물 역시 단계별로 주 문왕, 쿠빌라이 칸(원작에서의 진시황), 쿠페르니쿠스, 뉴턴 등 동서 문화권의 역사적 인물들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등장하면서 진정한 가상 현실의 변화무쌍함을 보여준다. 역사 속 인류 문명의 이미지를 동시대의 과학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재창조한 세계를 통해 작품이 원작을 충실히 시각화하고자 한 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삼체〉는 불길하고 염세적인 S.F다. 중국 근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한 개인의 복수심은 동시대 과학이 몰락하는 과정과 곧 지구에 도래할 외계의 존재를 지구에 차츰 각인하고, 과학자들이 해결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은 과학 지상주의를 비웃는다. 가상 현실, 인공지능, 나노 소재 등 여전히 가능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현대 과학기술이 초래한 폭력적인 상황들의 잔상이 인류 역사의 광기와 발전에 대한 미래 세대의 책임과 윤리를 상기시키는 것은 기분 탓일까?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원작이 주는 지적 깊이를 음미하며 이 시리즈가 도약할 다음 단계를 기대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글 정라온
영상이론을 전공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노동의 미래에 관심이 많다.
최근 들어 인공지능보다 글을 잘 쓰는 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