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2024 AUTUMN51

팬텀 아포리아

잠이 그대를 놓아줄 때도, 망각이 그대를 사로잡지 않도록 (…)
─호메로스, 『일리아스』

언젠가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오시마를 올여름에 선뜻 찾게 된 것은 지난 6월 21일부터 시작된 한 전시 때문이었다. 이 조그마한 섬의 한 공간에서 한국의 양혜규와 태국의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두 작가의 공동 전시가 매주 금요일과 주말에만 열리는데, 같은 공간에서 낮에는 양혜규의 작품을, 일몰 직후 저녁 시간에는 하루 한 차례씩 정해진 인원만 위라세타쿤의 작품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전시 안내가 올라와 있는 웹사이트만 봐서는 어떤 전시인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되었다.

나오시마는 일본의 혼슈와 시코쿠 사이 세토 내해에 있는 작은 섬이다. 인천공항에서 다카마츠행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가서, 다시 다카마츠항에서 페리를 타고 50분 정도 가면 나오시마 서쪽의 미야노우라항에 도착한다. 거기서 섬 동쪽에 있는 혼무라항까지는 걸어서도 30분이면 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섬이다. 1917년 미츠비시의 제련소가 들어서면서 한때 활황을 누렸으나 산업이 쇠퇴하고 환경이 오염되면서 20세기 중반부터 황폐화되고 인구도 급감했다고 한다. 그러던 이 섬이 국제적인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오카야마에 본사를 둔 일본의 교육 출판 기업 베네세가 섬의 절반을 사들인 이후 지금까지 30년 넘게 진행해 온 현대예술을 통한 지역 재생 프로젝트 때문이다. 이를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라고 부른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베네세하우스미술관(1992년 개관), 지추미술관(2004년 개관), 이우환미술관(2010년 개관), 스기모토 히로시 갤러리(2022년 개관) 등이 차례로 지어졌고, 오래된 거주지인 혼무라 지역의 낡은 민가를 건축가나 예술가에게 하나의 작품으로 재구성, 개축하게 한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가 1997년에 시작되었으며, 2010년에는 나오시마와 세토 내해의 여러 섬에서 열리는 세토우치국제예술제가 출범하였다.

선량한 자본가, 이 형용모순의 주체가 주도한 예술 프로젝트라는 것에 미심이 없지 않았지만, 나오시마에 도착해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지역 공동체와 환경과 건축과 예술이 공존하는 방식에 적이 놀랐다. 그런데 이 ‘아트 사이트’는 동시대 자본주의가 새로 편성하고 있는 생태주의적 장원(莊園)은 아닐까? 여기서 역사는 어디에 (묻혀) 있는가? 하지만, 아침 산책길에 혼무라 구석구석에서 우연히 마주친 일상생활의 풍경들이나 삼부이치 히로시가 설계한 나오시마 마을회관 같은 건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식의 비판적 상념도 이내 저항에 부딪히고 말았다. 기요미즈데라 같은 문화재 사찰을 전통으로 간직하는 교토와는 전혀 다른 이곳, 안도 다다오의 검은 목조 건물 내부에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설치된 미나미데라 같은 현대미술 작품이 곳곳에 자리한 나오시마에서 탈역사적 동시대의 역사성을 보았다고나 할까? 과거 언젠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절은 이제 이름─일본어로 ‘데라(てら)’는 절을 뜻한다─과 작품 사이에서 떠오르는 장소특정적 유령이 되었다.

〈불의 고리〉 작업을 점검하고 있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Kick the Machine

전시 《불의 고리: 양의 태양과 위라세타쿤의 달 Ring of Fire: ヤンの太陽&ウィーラセタクンの月》이 열리는 곳은 지어진 지 백 년이 넘은 혼무라 지역의 옛 가옥 하나를 삼부이치가 개수한 마타베라는 공간으로 2015년에 완공되었다. 제법 높은 나무 담장이 늘어선 길가에서 살짝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매표소와 대기실이 있고 그 왼쪽에 입구가 있다. 문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아담한 본채와 그 옆에 남북으로 조성된 작은 이끼 정원이 보인다. 정원에 드문드문 놓인 작은 화산 모양 조형물에는 금속제 방울 사슬이 흡사 양혜규의 서명처럼 걸려 있다. 이것은 신발을 벗고 본채 안으로 들어가면 보게 되는 좀 더 커다란 두 점의 설치 작품과 형태적으로 조응한다. 적색과 은색의 방울들로 이루어진 여러 개의 사슬을 보에 매달린 거치대에 걸어 바닥 쪽으로 길게 늘어뜨려 흡사 뒤집힌 화산처럼 보이게 한 것들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론 알 수 없는 사실이지만, 지진 활동의 실시간 데이터를 활용해 거치대를 진동 및 회전시키게끔 되어 있어 그때마다 방울들이 울려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설치 작품이 불러들이는 것은 역사라기보다는 자연사다. 여기서 주술과 자연을 잇는 인류학적 오브제인 방울은 감상용 지진계의 주요 부품이 된다.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은, 유령의 출현을 어렵게 만드는 동시대의 새로운 범신론. 전시 공간의 또 다른 조형물 〈황홀봉헌탑등〉은 양혜규가 이 지방에서 사용되는 봉헌용 등롱인 사누키본도로(さぬき盆灯篭)를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든 것이라지만, 여기서 봉헌용 등롱은 그가 솔 르윗의 작품을 재해석해 만든 블라인드 조합물들처럼 인용의 차원에 있을 뿐 결코 주술적 기원(祈願)을 환기하지 않는다. 이 조형물 또한 실시간 데이터와 연동해 움직이게끔 되어 있는 일종의 감상용 지진계다. 여기서 출현하는 것은 유령이 아니라 루크레티우스적 클리나멘이다.

앤서니 맥콜의 〈원뿔을 그리는 선〉을 감상 중인 관람객. ©Frank Sperling

위라세타쿤의 〈불의 고리〉를 보기 위해 해질녘에 마타베를 다시 찾았다. 양혜규의 작품이 설치된 본채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무언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다다미방을 서성인다. 고개를 들어 위쪽을 보니 세 대의 프로젝터가 눈에 띈다. 이윽고 수직으로 바닥 쪽을 향한 프로젝터에서 다다미 위로 빛줄기가 쏟아져 나온다. 잠든 사람의 이미지, 그리고 모호한 기억의 단편들. 위라세타쿤 신작의 기본적인 요소들은 2015년 광주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개관 페스티벌에서 선보였던 〈열병의 방〉과 대동소이하다. 3채널로 프로젝션 되는 파편적 영상들, 어딘가에서 스며 나와 느릿하게 퍼져 어느덧 공간을 가득 채우는 연기, 이 연기 자욱한 공간을 이런저런 빛의 선들이 가로지르며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입체적 곡면들 등등. 물론, 공연장 내부에서 펼쳐졌던 〈열병의 방〉과 분명히 다른 점들도 적지 않다. 여기서 관람객은 방의 이곳저곳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거닐 수 있다. 30분 남짓한 스크리닝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동안, 마타베 본채 쇼지에 비치던 어슴푸레한 박명은 서서히 짙은 코발트색 어둠으로 바뀌어 간다. 여전히 조용하게 움직임을 계속하는 양혜규의 설치물들은 프로젝터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의 각도에 따라 이따금 방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소리가 제법 크게 울릴 때마다 벽과 바닥, 그리고 쇼지가 같이 진동하면서 촉각적인 차원이 더해진다. 그리고, 역시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론 알 수 없는 사실이지만, 위라세타쿤은 1900년부터 2024년까지 지난 124년 동안 축적된 지진 데이터를 활용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로써 실시간 데이터를 활용하고 우연적으로 작동하는 양혜규의 작업과 역사적 데이터를 활용하고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하는 위라세타쿤의 작업이 일시적으로 중첩된다.

〈불의 고리〉는 위라세타쿤이 영향 관계를 아무리 부인한다 해도 도리없이 그의 선구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앤서니 맥콜의 확장영화 〈원뿔을 그리는 선〉(1973)과 맥콜 자신이 이를 변용한 일련의 ‘입체적 빛(solid light)’ 설치 작업을 떠올리게 한다. 맥콜의 작업(의 최초 버전)은 검은 바탕에 천천히 하얀 선으로 그려지는 원의 형상을 벽면에 투사하는 영사기, 그리고 실내를 가득 채운 연기만으로 구성된다. 이를 접하는 관람객은 그 환상적인 빛의 조각에 감탄하는가 하면, 시네마토그래프 장치의 근간이 되는 프로젝션 기제를 더할 나위 없이 투명하게 드러내는 그 유물론적 담박함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열병의 방〉에서 위라세타쿤은 맥콜의 고요하고 그윽한 물질적 환상을 최면적이고 과대망상적인 스펙터클에 가까운 쪽으로 밀고 나갔다. 19세기 말 바그너가 바이로이트에서 꿈꾸었을 법한 무대 연출의 양식이랄까? 당시로선 위라세타쿤에게 생소했을 공연장 연출의 부담을 이런 과잉의 스펙터클로 떨쳐 버리려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진과 화산 활동이 빈번한 환태평양 조산대를 가리키는 짐짓 거창한 은유를 제목으로 삼은 신작 〈불의 고리〉에서, 위라세타쿤은 마타베의 지리적·건축적·장식적 요소들을 미묘하게 건드리면서 양혜규의 작업에 주술적 기운을 회복시킨다. 퍼포먼스 도중 발생하는 소리로 인한 집채의 미세한 떨림, 지진으로 갈라진 대지의 균열을 환기하는 빛의 금들, 대들보 위에 놓인 기괴한 형상이나 양혜규의 조형물에 비치는 광선과 그것이 드리운 그림자 등이 〈열병의 방〉보다 한결 소박하고 친밀해진 맥콜적 장치와 결합되면서, 〈불의 고리〉는 이런 물질적 요소들의 사이와 간극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어떤 유령적 실체를 부르는 강렬한 주문 같은 것이 된다. 여기에도 역사적 환기는 없지만 지질학적 시간의 요동이 빚어내는 소박한 숭고의 감각은 잊을 수 없다.

호추니엔의 〈호텔 아포리아〉 중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태어나기는 했지만〉(앞쪽)과 요코하마 류이치의 〈후쿠짱의 잠수함〉(뒤쪽)이 중첩되어 보인다. ©유운성

나오시마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이틀이 지난 후, 나는 종료가 임박한 호추니엔의 전시 《시간과 클라우드》를 보기 위해 소격동의 아트선재센터로 향했다. 특히, 일본식 다다미방 형태의 공간을 구성해 선보이고 있었던 6채널 설치 작품 〈호텔 아포리아〉는 여러모로 나오시마 마타베의 장소특정적 설치를 떠올리며 보게 되었다. 2019년 아이치트리엔날레의 커미션을 받아 제작된 이 작품은 다이쇼 시대에 지어진 료칸인 기라쿠테이에서 장소특정적 설치로 전시되었는데, 이 료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구사나기 부대라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출격 전 연회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아이치의 기라쿠테이로부터 아트선재센터 전시실에 가공된 검은 다다미방으로 옮겨오면서 역사적 장소와 결부된 특정성은 잃게 되었지만, 호추니엔의 작업이 자극하는 체험의 강도는 여전히 만만치 않다. 호추니엔은 가장 일본적인 영화감독으로 꼽히곤 하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에서 영상들을 발췌해 거기 등장한 모든 인물의 얼굴을 지운 채로 다루면서, 일견 고도로 탈정치적·탈역사적 형식화에 도달한 듯한 오즈의 영화에 어른거리는 망령의 몸짓들을, 역사학자 요나하 준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국의 잔영(残影)’을 추적해 나간다. 특히, 전쟁 이전 시기 오즈의 무성영화 〈태어나기는 했지만〉과 요코하마 류이치의 선전 애니메이션 〈후쿠짱의 잠수함〉에서 발췌한 영상들이 두 개의 반투명 스크린에 각각 프로젝션 되어 중첩될 때 발생하는 시대착오적 동시성은 굉장하다. 2011년에 출간된 『제국의 잔영: 병사 오즈 야스지로의 쇼와사』에서, 요나하는 전후 오즈의 정묘한 가족영화의 공간을 전쟁기 일본의 “총력전의 산물”로 규정하면서 오즈의 영화에서 전쟁의 부재를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쳐버린 이들이 오늘날의 일본인을 구성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요나하가 지적한 이 부재는 〈호텔 아포리아〉에서 호추니엔이 날카롭게 건드리는 ‘공허’의 개념, 전쟁기에 교토학파 학자들이 제출했던 ‘절대무’의 개념에 대한 숙고로 이어질 수 있을 터다. 항공기 엔진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선풍기가 정면에서 이따금 돌아가는 다다미 공간에 들어서면, 관람객은 절대무에 대한 교토학파 학자들의 언급이 낭독되는 것을 듣게 된다. 그런가 하면, 전시장의 다른 다다미 공간들에서 이 물리적 바람은 신풍(神風), 즉 가미카제라는 말에 대한 역사적 숙고로 이어지기도 하고, ‘무(無)’라는 단 하나의 글자가 새겨진 오즈의 묘비를 찍은 호추니엔의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천황은 절대무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고 운운했던 교토학파의 논변들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한다. 무는 결코 잠잠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리 나지막해도 줄기차게 불어오는 바람이며 언제고 광폭해질 수 있는 바람이다. 텅 비어 아무것도 없고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공허 역시 마찬가지다. 무와 공허라는 형이상학적 허구에 가득한 보이지 않는 정념을 폭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호추니엔의 다매체적 몽타주가 소환해 낸 역사적 유령의 역량이다.

글 유운성
비평가. 저서로는 『유령과 파수꾼들』(2018), 『어쨌거나 밤은 무척 짧을 것이다』(2021), 『식물성의 유혹』(2023)이 있다. 조너선 크레리의 『지각의 정지』(2023)를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