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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경수

점과 선을 이어나가며
김연재

힘들 때, 상담이 필요할 때 마음 편히 찾아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교수자의 존재란 정말 귀할 것이다. 미술원 미술이론과에는 그런 선생님이 있다. 2002년 학생으로 미술이론과에 입학해 2023년 정교수로 임명된 김연재가 그렇다. 새 학기를 앞둔 늦여름, 조용한 공기와 밝은 햇살 아래 가지런히 놓인 서적들까지 꼭 박물관을 닮은 공간에서 박물관과 학교 그리고 교육에 관해 이야기했다.

첫 졸업생 출신 미술이론과 전임교원

미술이론과 전임교원으로 임용되신 지 이번 달로 꼭 일 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학기부터는 학과장직까지 겸하시며 무척 바쁜 한때를 보내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지난 일 년간 마주한 변화와 그 감회, 그리고 과에서의 앞으로의 행보를 어떻게 계획하고 계시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전임이 되었다거나 학과장이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해서 그 이전과 극적으로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아요. 다만 학과의 운영을 도맡아야 하는 자리에서 학생들의 성장을 지켜본다는 점에 있어 이전보다 더 강한 책임감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학과 졸업생이 전임으로서 학생들과 함께한다는 것의 의의는 제가 이제까지 밟아왔던 커리어의 전문성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하나의 진로 모델로서 방향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한 학생들의 고민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어느 정도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저는 학생들과 면담을 자주 갖는데요, 사람이 힘든 때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잖아요. 힘든 순간에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서 저를 편하게 생각하고 찾아주시는 것 자체가 고맙더라고요. 제가 학생 때 갈망했던 부분이기도 하고요. 학생들의 4년이 작업과 괴로움으로 점철된 시간이 아니라 내 말을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고 기억될 수 있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박물관(학) 이야기

미술이론과 입학 면접에서 선생님이 제게 “박물관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셨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저에겐 다소 낯설게 다가왔던 분야였던지라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힘겹게 답변했었죠. 그만큼 미술이론 내에서도 박물관학은 생소한 분야인 것 같습니다. 박물관학이 어떤 학문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많은 학생 또는 비전공자분들이 물어보시는 질문 중의 하나가 그런 학문이 있냐는 질문입니다. 다시 말해 박물관학이 어떤 학문적 조류로서 존재했는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요.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미술이론과 입학 후에야 박물관학의 존재를 알았을 정도였으니까요.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Museum을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구분해 사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는 개념적, 정책적 측면에서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죠. 원래는 구분없는 통칭이거든요. 그래서 Museology 또는 Museum Studies를 그냥 ‘박물관학’이라고 단정지어 번역하면 더욱 낯설게 느껴지는 거죠. 박물관은 복합학의 영역입니다. 굉장히 다양한 범주에 입각해서 접근할 수 있는 학문이고, 박물관에 대한 관람자들의 인식에 따라서 계속 새로운 담론의 흐름들이 등장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는 불특정 다수의 방문객이 있는데요, 그 관람자들이 모두 다 박물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전시나 교육 프로그램을 보고 경험하기 위해서 오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동시대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 중 하나는 누구나 박물관이라는 공간에서 그날 하루의 여가를 즐기고, 유의미하게 보내고 귀가하도록 하는 일련의 ‘여정’이라는 점입니다. 박물관의 관람객은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체적, 능동적 차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이제 연구자들은 이 목소리를 차후 박물관 운영에 어떻게 반영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까지 고민하고 있죠. 현재의 박물관을 학계에서는 ‘살아있는 유기체(Museums as Living Organism)’와 같은 존재라 말해요. ‘살아있다’는 말도 중요하지만 저는 ‘유기체’라는 말에 방점을 두고 싶어요. 관람객의 목적과 요구에 따라서 박물관은 계속 생장을 거듭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엘리트를 위한 공간에서 모든 이들을 위한 개방적인 관람자 중심의 공간으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고 박물관학은 바로 그러한 박물관의 흐름들을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2023년 7월 1일 한국박물관포럼 발표 모습, 제공 김연재

박물관학에도 어떠한 학문적 경향이나 추세가 있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앞으로의 전망을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전망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몇 해 전 미국 박물관 협회 사이트에 올라온 「뮤지엄의 미래」1라는 픽션을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어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현재 뮤지엄이 이렇게 운영되고 있다.’는 식으로 가상의 뮤지엄을 그린 글이었는데, 제가 가장 재미있게 봤던 건 뮤지엄이 일종의 ‘커뮤니티 센터’가 될 거라는 부분이었어요. 박물관이 사회 구성원들의 보다 지속가능한 삶을 만족시키기 위한 차원에서 커뮤니티 센터화된다는 거죠. 예를 들어서 박물관 내부 어느 곳에는 종교 성소가 있어 관람객들이 예배를 드리는가 하면, 또 어딘가에는 식물을 키우는 공간이 있어 식용 목적의 야채를 수확하고 이를 커뮤니티 구성원들과 분배한다는 식으로요. 이 사회를 지탱해 주는 여러 근간의 행위들이 박물관에서 수행될 것이라는 전망을 그린 글이었어요. 이처럼 박물관학의 전망을 말하는 건 쉽지 않지만, 최소한 박물관이라고 하는 존재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 역할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정말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이 될 거라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팬데믹 시기 이미 디지털 공간으로서 박물관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도 했고요.

박물관의 공공성에 관한 수많은 동시대적 과제 중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가장 시급하거나 충분히 이야기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최근 가장 주목하고 있는 문제는 박물관과 기업의 스폰서십(Sponsorship)에 관한 것입니다. 세계에 있는 모든 박물관이 지키고 따라야 하는 국제박물관협회(ICOM: 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의 ‘박물관 정의(Museum Definition)’가 있어요. 오랜 기간 동안 박물관 정의에 가장 처음으로 나왔던 단어는 바로 ‘비영리(non-profit)였습니다. 즉, ‘박물관은 비영리로 운영되어야 하는 기관으로서 항구적으로 사회에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 대전제였죠. 그런데 2022년에 개정된 새로운 정의에서 ‘논 프로핏’이 ‘이윤을 지향하지 않는(Not-for-Profit)’으로 바뀌었습니다. 팬데믹 시기 박물관이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국제적으로 박물관이 일정 수준의 이윤 지향적인 행위를 하지 않으면 그 지속성을 도모할 수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국·공립박물관은 정부로부터 굉장히 많은 지원을 받는 반면 외국 같은 경우는 스폰서십에 상당히 의존합니다. 특히 기업의 스폰서십은 중장기로 맺는 계약으로 안정적인 재정을 보장하기에 박물관에게는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죠. 그렇지만 그 이면을 보면 기업은 자연파괴를 일삼으며 창출한 이윤의 지극히 일부를 후원금으로 주고, 박물관은 그게 윤리적으로 깨끗한 돈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이를 활용하여 자신들이 기획한 전시를 뒷받침하는데 씁니다. 때로는 미래의 작가들을 후원하는데도 쓰죠. 그리고 전시 월 텍스트를 통해 이 전시가 어떤 기업의 후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재합니다. 일종의 홍보를 위한 포석인거죠. 그렇게 기업은 자신들의 브랜드 이미지를 ‘사회 친화적 기업’으로서 설정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결국 박물관이 검은돈을 ‘세탁’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겁니다. 아이러니한 부분은 분명 암울한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현실을 무조건 나쁘다고 비판만 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일단 살아남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니까요. 이렇듯 박물관은 무척 모순적이고 복잡한 공간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박물관학은 우리에게 공공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더 폭넓고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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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국박물관협회에서 발간하는 잡지 『Museum』 2017년 11-12월호에 게재된 글로, 2040년 에콰도르 키토에서 열린 미국박물관협회 연례총회에서 가상의 인물 아담 로잔이 쓴 기조연설문을 전제로 한 픽션이다.

2024년 4월 서양미술사학회 춘계연합학술대회 발표 모습, 제공 김연재

한예종의 이론과에서

이론과 학생으로서 한예종이라는 학교의 특성을 최대한 유의미하게 즐길 수 있는 점 또는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론과의 장점으로는 일단 소수 인원제를 뽑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타 학교에서 크리틱이나 세미나를 시도하려 하면 항상 아쉬운 부분은 너무 인원이 많다는 것, 그리고 학생들이 의견 내는 것을 굉장히 부끄러워한다는 겁니다. 쉬는 시간만 되면 말문이 터지는 분들이 일단 수업만 시작하면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거에 대한 굉장한 두려움을 느껴요. 아마도 그 이유는 내 말이 뭔가 답이어야만 할 것 같다는 강박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한예종이 유지하고 있는 어떤 기조를 생각해 보면 학생 개인의 목소리, 생각에 대한 포용력이 다른 학교에 비해서는 분명히 넓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는 교수자에게도 학생이 갖고 있는 어떤 잠재력을 확인하고 그 부분을 표출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그렇지만 자료의 접근성에 대한 갈증은 분명 존재합니다. 예전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발전한 인프라이지만 아무래도 인문대 도서관과 장서의 수부터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갈증은 이론과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실기과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실기과에서 이론과 부전공을 하시기도 하지만 그런 공식적인 루트가 아니더라도 평소 자신의 작업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언어화할 수 있는 대한 부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교가 정책적 반응을 보여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죠.

한예종에 아직 미술관이 마련되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학교 내 미술관 건립에 대한 비전이 있으실까요?

한예종에 미술관이 생긴다면 너무 좋겠죠. 물론 본관에 갤러리가 있지만 사실 과제전이나 졸업전시의 목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일반적이니까요. 미술관은 보다 더 체계적인 운영을 요하는 기관이니, 만약 교내 미술관이 생긴다면 미술원과 다른 원의 협업이 조금 더 실질적인 차원에서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질 것 같아요. 학생들이 미술관 안으로 편입되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어떤 제도적인 뒷받침이 마련된다면 더 좋겠죠. 그런데 저는 우리 학교 미술관의 교외에서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대학미술관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 대학만을 위한 게 아니거든요. 대학 미술관이 위치함으로써 그 주변에 있는 커뮤니티 구성원들에게도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며 협력의 장을 만들어줄, 일종의 포럼으로써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미술관이 그 부분에서 많은 투자를 하며 관악구와 협력하는 사례가 있죠. 만약 한예종의 미술관이 건립된다면, 한예종이라고 하는 이 구성체의 사회적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전해줄 수 있는 제도적 구심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 그리고 교육자, 김연재

제가 인터뷰를 준비하며 리서치한 결과, 선생님께서는 석·박사 모두 뮤지엄 운영과 관련된 연구를 하셨고, 가장 최근에 발표하신 SeMA 운영에 대한 논문을 비롯해 팬데믹과 브렉시트 이후 뮤지엄 운영 등 뮤지엄 운영에 관한 여러 논문을 게재하셨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뮤지엄 운영과 교육〉 수업을 맡아 이에 관련된 내용을 강의하기도 하시고요. 이처럼 뮤지엄 운영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관련해 최근에는 어떤 새로운 주안점이 생기셨나 궁금합니다.

현재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건 비인간 주체가 박물관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행위자 역할을 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박물관은 인간의 주도로 운영되어 왔다는 데카르트식의 사고방식이 상당 기간 이어져 왔습니다. 물론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이후 그러한 인식론에 제동이 걸린 건 사실이죠. 그래서인지 저는 박물관에 관한 보다 더 미시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그러니까 기획자가 기획서를 내놓기까지 수많은 비인간 행위자들이 (컴퓨터나 A4 용지 심지어는 펜까지) 자신만의 주체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박물관학에서 펜과 같은 비인간 행위자의 존재나 역할에 관한 이야기를 학술적으로 다룬 적은 드물거든요. 그 전시를 기획한 기획자의 의도에 주목하는 데 바빴죠. 이런 새로운 이론적 조류의 적극적인 도입과 소개를 통해 우리가 이제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여러 미시적인 행위와 존재들에 대한 가치를 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박물관학을 전공하고 연구, 강의하게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셨나요? 그리고 박물관학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가장 주요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제가 박물관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학부 때 최석영 선생님의 〈박물관학〉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였어요. “내가 알고 있었던 우리 박물관의 역사와 정체성이 이렇게 단절된 형태로 유지되어 왔구나”하는 충격을 받았고 대학원에 가서도 뮤지엄 운영과 관련된 논문을 계속 썼습니다. 하지만 업으로 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러나 막상 귀국하고 나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건 박물관에 대한 학생들의 사고방식을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이었어요. 박물관이 생각보다 더 여러분 가까이 있는 곳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미술이론을 공부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박물관학이 정통 미술사와 조금 거리가 있기 때문에 부차적인 학문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미술사에서 언급하는 그 수많은 작품 그리고 작가들을 수용하는 곳이 박물관이잖아요. 때문에 저는 박물관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서 학생들이 더 유연하게 접근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까지의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지도하고 있습니다.

먼저 경험해 본 이로서 어떤 교육자가 되길 희망하시나요?

제가 생각하는 교육자로서의 본분은 학자로서의 아날로그적인 마인드를 지키되 더불어 학생들의 동시대적 관심사나 이야깃거리들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30분에서 1시간은 꼭 아이돌 노래를 듣거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려고 해요. 학생들에게 ‘나 이런 거 아는데, 장하지?’하고 으스대려는 게 아니라 교수와 제자 사이의 어떤 문을 허물 수 있게 제가 할 수 있는 나름의 준비를 하는 것이죠. 언제는 학생들이 “선생님 뉴진스 아세요?” 하고 물어보길래 〈ETA〉 곡의 멜로디 좀 따라 불렀더니 다들 놀라더라고요. 앞서 말했던 것과 같이 저는 학생들이 졸업 후 대학 시절을 회상할 때 굉장히 행복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왜냐하면, 제가 학생 때는 ‘행복’이라는 말을 쉽게 떠올리지 못할 만큼 이 학업을 어려워했던 학생들이 많았거든요. 다들 혼자만의 고독한 공부라고 생각했고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는 데 있어 한계를 느꼈었어요. 그래서 제 학생들에게는 누군가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고, 너의 활동에, 너의 학교생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이론 공부는 상당히 외로운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연구를 지속하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지, 그 안에서 어떤 즐거움을 찾아나가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같은 길을 걸어갈 학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이 공부를 하면서 행복감은 점, 괴로움은 선 같았어요. 행복은 무척 짧고 순간적이지만, 괴로움과 책임감과 부담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들은 종착지 없는 선같이 계속 이어지죠. 그럴 때 저의 동력은 뻔한 말이지만 제 가족, 미술이론과 교수님들 그리고 학생들이에요. 특히 학생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게 큰 힘이 돼요. 다만 교수자로서나 연구자로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들보다 한 발만 앞서나갈 수 있기를, 그리고 시행착오를 최대한 많이 겪어보고 그 경험을 전해 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학생들에게는 절대로 남과 비교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누구와 비교하는 것만큼 개탄스러운 일은 없는 것 같아요. 본인은 본인이거든요. 그리고 전 인문학은 시간의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과 고민이 투입되지 않으면 발전을 기대하기가 어렵죠. 꼭 발전이 아니더라도 내가 모르는 나를 확인할 수 있는 충분조건이 되지 못해요. 그런데 남하고 비교하는 순간부터는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돼요. 그러니 절대로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만의 시간은 분명히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언젠가 분명히 돌아오니까요.

글 김희재
학교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다가올 가을에는 서울에서 오를 수 있는 옥상에 다 올라가 보려 한다.

영상 이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