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2024 AUTUMN51
사진 김경수

나의 벨 에포크에게
이예은

소나기가 오락가락하던 몹시 더운 여름날, 이예은 발레리나는 인터뷰가 예정된 서초캠퍼스 무용원 실기실의 위치를 우리에게 안내했고, 컨디션이 더 나은 연습실을 제안하기도 했다. 열아홉의 나이에 세계 최정상의 파리 오페라 발레단 정단원이 된 그가 학교를 갓 졸업했음이 실감 나는 대목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빼곡히 적어 온 핸드폰 메모장이나 ‘왓츠인마이백’ 콘텐츠를 부탁하자 꼼꼼하게 챙겨와 준 커다란 발레 가방까지, 그날 그에게서는 그의 춤만큼 순수한 열정이 가득 풍겼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 파리 오페라 발레단

정단원 입단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내부 오디션이 진행되고 나서 치러지는 외부 오디션은 더 적은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했을 텐데요. 치열했던 오디션 현장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올해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스튜디오 컴퍼니(만 17세에서 23세 사이의 젊은 무용수들로 구성된 주니어 컴퍼니)가 새로 생기면서 작년보다 훨씬 경쟁률이 높아졌어요. 저는 아무래도 준단원 생활한 지도 4개월밖에 안 됐으니까, 성과를 기대하기보다 그냥 저만의 춤을 추고, 제가 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려고 했어요. 먼저 1차에는 클래스가 있고요, 다음 2차에서 베리에이션(솔로 안무)을 보는데 시험 한 달 전에 안무 영상이 공개돼요. 3차까지 가면 스무 명에서 서른 명 정도 남는데, 즉석에서 컨템포러리 장르의 작품을 배우고 곧바로 심사를 받아요. 그 자리에서 계약 여부가 결정되죠. 현장이 무섭거나 딱딱한 분위기가 아니기도 하고 제가 준단원으로 있을 때 지나다니면서 마주쳤던 분들도 계셔서 그렇게 많이 긴장하진 않았어요. 또 오디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박세은 발레리나를 비롯해 김선희 원장님, 조주현 교수님, 김용걸 교수님, 김현웅 교수님 등 많은 분이 도와주셨어요. 그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지 않았나 싶어요.

준단원 생활하면서 있었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처음에는 너무 신기했어요. 유튜브에서만 보던 스튜디오에서, 그곳의 무용수들과 함께 춤출 수 있다는 게 믿기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조금 적응되고 나니까 제 연습량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한예종에 있을 때는 많으면 클래스 두세 개에 리허설이나 교수님 공연까지 온종일 연습했던 것 같은데, 발레단에서는 클래스 하나랑 리허설 하나 정도 하니까 몸이 좀 무거워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리허설 끝나면 제게 도움이 될 만한 안무를 추면서 몸을 계속 움직이려고 했어요. 또 원래 준단원은 정단원 중에 공석이 생겨야 작품에 참여할 수 있어요. 그런데 운이 좋게도 저는 이번에 〈라 피 말 가데(고집쟁이 딸)〉이라는 작품에서 ‘닭’ 역할을 맡아서 (웃음) 무대에 올랐고, 〈지젤〉에서도 12인 여자 군무에 참여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죠.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선택한 본인만의 이유가 있을까요? 또한 유수의 발레단에 들어가게 된다면 앞으로는 불안정함 없이 춤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지도 궁금해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오랜 역사가 증명하는 최고의 발레단이기도 하고, 우아한 춤에 깃든 클래식한 느낌이 매력이에요. 사실 파리 오페라 발레단 특유의 발 스텝, 정확한 포지션이나 정교한 턴 아웃(고관절을 열고 발끝을 바깥으로 향하도록 하는 발레의 기본 동작) 같은 것들은 제가 좀 어려워하는 부분이에요. 그래도 자꾸 하다 보니까 실력이 점점 느는 게 느껴지고, 이런 점을 제 장점으로 바꾸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또 팔레 가르니에(파리 오페라 발레단 상주 공연장) 무대는 평평하지 않고 기울어져 있어서 제가 올라갔을 때는 너무 어렵고 힘들었는데, 박세은 발레리나나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실비 길렘 발레리나가 춤추는 걸 보면 그런 게 하나도 안 느껴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막을 이끄는 힘이 보여서 본받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만 42세까지 발레단에서 춤을 출 수 있어요. 심할 때는 하루에 하나씩 바꿔 신어야 하는 포인트 슈즈도 지원해 주고요. 이렇게 무용수가 걱정 없이 발레에 몰두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점 때문에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발레 스타즈 : Ballet Stars〉 ©성남아트센터

타지 생활이란 익숙한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발 딛는 불안감과,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공존하는 일인 것 같아요. 저는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 출국을 앞두고 있었을 때, 기숙사에 냄비나 프라이팬은 있을지까지 걱정하기도 했었거든요. 이를 앞둔 솔직한 지금의 심정이 궁금합니다.

준단원 4개월 동안 파리에 살았는데, 아무래도 언어 면에서 매우 낯설고 힘들었어요. 한 작품에 들어가면 작품에 참여하는 무용수와 디렉터가 모두 모여서 미팅도 하고 안무에 대한 설명도 듣는데, 다 프랑스어로 하니까요. (웃음) 동료들과 교류하면서 영어로 물어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처음엔 가족과 친구들을 두고 한국을 떠나는 것도 그렇고 파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4개월 기간이 끝날 때쯤 그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울 정도로 잘 지냈고요.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예전보다 동양인도 더 많아졌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무용수들도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들도 좋은 자극이 되지 않을까 해요. 또 이번에 가면 12월에 〈파키타〉나 〈오네긴〉 같은 작품에도 참여하게 될 것 같은데, 엄청나게 기대돼요.

나의 움직임

처음 발레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또 한국예술영재교육원부터 무용원 조기입학, 조기졸업까지 9년 간의 학교생활을 한예종에서 모두 거치셨는데요. 이런 교육의 과정들은 예은님의 발레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요?

일곱 살 때쯤 주변에 발레 학원 다니는 친구들이 핑크색 가방 메고, 예쁜 레오타드 입고 다니는 게 너무 부러워서 학원에 갔어요. 처음엔 마냥 재밌어서 다녔죠. 근데 어느 날 학원에서 이제껏 해본 적 없는 강도의 스트레칭을 했는데, 몸이 안 따라주더라고요. 집에 와서 그걸 해내겠다고 막 울면서 스트레칭했던 걸 엄마가 아직도 기억하실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발레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영재원과 한예종에서의 학교생활 역시 무엇보다 큰 영향을 줬죠. 손끝 발끝이나 시선 처리까지 다 자세하게 가르쳐 주신 덕분에 지금 이렇게 기본기를 잘 잡고 춤을 출 수 있는 것 같아요. 아직도 기억나는 게 있는데요, 김선희 원장님께서 초등학교 4학년인 제게 “학생처럼 춤추지 말고 프로 무용수처럼 춰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때부터 어리광이나 투정 부리지 않고, 마음 단단히 먹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파리 오페라 발레단 〈지젤〉 ©이예은

그래서인지 무용원 선생님들께 “어렸을 때부터 주역 무용수로 활동할 만큼 체력이 뛰어나고 마음이 단단하다”는 평가를 받곤 하셨나 봐요. 몸과 마음의 체력을 기르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나요?

춤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초체력이 필수이고, 부상 방지도 중요하기 때문에 근력 운동이나 조깅을 따로 해요. 특히 발레는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어떤 근육을 사용하는지, 몸을 어떻게 쓰는지 생각하면서 해야 하거든요. 저는 필라테스를 병행하면서 항상 몸 상태를 체크하다 보니 큰 부상이나 통증이 악화하는 일도 훨씬 줄어들었어요. 마음의 원동력은 연습 그 자체에서 나와요. 저는 춤추는 게 너무 좋고, 더 잘하고 싶어요. 춤추기 싫은 날도 일단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바부터 잡고 시작하면 그 연습이 또 저를 이끌어줘요. 또 연습 영상을 자주 찍는데, 제 영상을 모니터링하면서 문제점을 해결하는 과정도 너무 즐겁고요. 물론 열심히 하는 만큼 번아웃이 오지 않게 하려면 건강한 휴식도 중요하니까, 요즘은 쉬는 날 있으면 탄천을 천천히 걸으면서 음악 듣거나 친구들이랑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여유 있게 보내려고 해요.

이제껏 시도해 보지는 않았지만 해보고 싶은 안무나 장르가 있을까요?

어렸을 때는 당찬 분위기나 테크닉이 돋보이는 작품을 주로 했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로미오와 줄리엣〉, 깊은 연기를 동반하는 〈오네긴〉이나 〈지젤〉도 도전하고 싶어요. 또 컨템포러리 장르에도 관심이 많은데, 학교에서는 2학년 때 수업이나 콩쿠르가 아니면 해 볼 일이 많지 않아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컨템포러리 작품을 자주 올리는 편이라 앞으로 경험할 기회가 많아질 것 같아요.

춤은 현재에 존재하는 예술인 것 같아요. 하나의 움직임에서 다음 움직임으로 넘어가며 사라지지만 그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연속성이 매력이고, 그 점은 음악과도 닮아 있는 것 같아요. 또한 말없이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만큼 표정과 감정 연기까지 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 같은데, 이런 것들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우선 작품을 시작하면 음악을 반복해서 많이 들으려고 해요. 그러면 전에 안 들렸던 악기도 들리고 다른 감정이 떠오르기도 하거든요. 또 작품의 캐릭터를 토대로 제 감정이나 저만의 스토리를 추가해서 춤을 추려고 해요. 작품 영상을 찾아보고 거울을 보면서 연기를 따라 하기도 하고요. 낯설다고 수줍어하는 것보다는 그냥 계속 부딪히는 게 방법인 것 같아요. 2년 전에 K-Arts 무용단 50회 정기공연에서 조지 발란신의 〈Theme and Variation〉이라는 작품을 했는데, 원래 스토리가 없는 작품이에요. 그런데 음악을 계속 듣고 연습할수록 하얀색 의상이나 웅장한 시작 부분 등이 왠지 결혼식 장면을 떠올리게 하더라고요. 그런 저만의 이야기를 상상하면서 춤을 췄던 게 기억에 남아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발표회

앞으로의 움직임

예은님의 인생에서는 발레를 하지 않았던 시간보다 발레를 하고 있는 시간이 더 길 것 같은데요.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고, 또 어떻게 극복했나요?

중요한 일을 앞두고 다치거나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긴 적이 종종 있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동아무용콩쿠르를 준비하는데, 전날 갑자기 정강이가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스트레스 골절 위험이 있다고 하시는 거예요. 당장 내일이 콩쿠르니까 일단 하긴 했는데 과정이 다사다난했던 거죠. 그래도 무사히 끝내고 1등까지 했어서 기억에 남아요. 이번에 파리 오페라 발레단 오디션 때도 며칠 전에 갑자기 발톱에 피멍이 들어서 토슈즈를 제대로 신지도 못했어요. 뭐라도 해보자 싶어 피도 빼 보고, 시험 당일에 약도 먹고 하니까 좀 나아져서 현장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하게 하려고 했죠.

지나간 일은 금방 잘 털어내는 편인가요? 무대가 아쉬웠거나, 혹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오디션 결과에 대한 기다림과 그 이후의 순간엔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무대 직전에는 최대한 스스로에게 집중해요. 뭘 보여줄지, 어떤 걸 신경 쓸지 머릿속으로 한 번 더 정리하고요. 외운 대로 무작정 추는 게 아니라 동작의 원리를 이해하면서 하다 보면 변수가 많이 줄어들고, 그러면 크게 실수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 무대에 나가서는 그냥 연습한 걸 믿고 무대를 즐기려고 해요. 끝나면 어떤 부분이 아쉬웠는지 돌아보면서 다음 무대를 위한 보완점을 찾는 편입니다. 평소에도 최선을 다했으니까,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냥 담담하게 자신을 다독이려고 해요. 작년에 봤던 파리 오페라 발레단 오디션은 3등이었는데, 2등까지가 정단원 계약이라 약간 아쉽긴 했어요. 그래도 저는 그분들 입장에서 완전 처음 보는 학생이었는데 준단원이 됐으니, 그것도 감사한 결과였죠. 하나 다행인 건 4개월의 계약이 올해 2월부터 시작해서, 제가 학교에서 졸업식이며 졸업 공연까지 다 참여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갈 수 있었던지라 오히려 좋았다고 할 수 있죠. (웃음)

사진 제공 이예은

앞으로의 여정이 더욱 기대되는데요. 어떤 무용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고 계신가요?

아주 어렸을 때 유니버설 발레단의 〈심청〉을 보러 갔는데, 그때 제가 그 작품의 감정에 공감이 돼서 눈물이 났었어요. 또 이번에 파리에서 박세은 발레리나와 마리아넬라 누네즈 발레리나가 〈지젤〉을 추는 걸 보는데, 단순히 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춤에 영혼이 담겨 있다는 게 다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것처럼 저도 온몸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거기에 사람들이 감동할 수 있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무용수가 되고 싶습니다.

이예은 발레리나는 인터뷰 내내 흐트러짐 없는 곧은 자세로 앉아 있었는데,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준비된 그의 모습에서 큰 도약을 향한 기대감이 온전히 전해지는 듯해 나까지 괜히 들떴다.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도 알아채지 못했는데, 글로 옮기며 내가 2년 전 이예은 발레리나가 참여했던 〈K-Arts 무용단 50회 정기공연〉을 보러 갔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라 새삼 신기하기도 했다. 우리가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걸까.

언젠가, 이제 막 새로운 시대를 시작한 그의 무대에 내가 또 한 번 우연한 관객이 될 수 있기를.

글 오서윤
음악학 전공. 2년 만에 하게 된 두 번째 발레 인터뷰다. 뭔가를 이룬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를 즐기고, ‘그저 꾸준히 계속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도, 계속 음악을 하려고 한다.

나와 움직이는 것들
WHAT’S IN MY BAG

서초 캠퍼스를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누가 봐도 바른 자세 위로 업사이클링 브랜드 ‘프라이탁’의 가방을 멘 무용원 학생들을 매우 자주 마주칠 수 있다. 공동구매라도 한 것처럼 다들 메고 있는 저 가방 속엔 뭐가 들어 있을지, 외부인인 나를 종종 궁금하게 했던 그 가방 속을 이예은 발레리나 덕분에 구경할 수 있게 되어 매우 신났다. 그의 가방은 ‘프라이탁’이 아니라 ‘이발레샵’ 로고가 박힌 커다란 토트 백이었는데, 이처럼 ‘발레리나의 왓츠인마이백’은 나의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가볍게 시작한 기획이었다. 하지만 연습 일정이 아님에도 개인 짐 외에 또 무거운 가방을 들고 와야 한다는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해서, 흔쾌히 이 콘텐츠를 승낙한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보부상이라 큰 가방을 좋아한다며 큼지막한 발레 가방을 책상 위로 올린 이예은 발레리나는 우리가 익히 예상할 수 있을 법한 화장품 파우치 같은 것부터, 여름임에도 웜업을 위해 챙기는 두꺼운 숄처럼 예상하지 못한 물건들까지 다양하게 보여주었다. 자세를 점검하는 데 용이하도록 몸에 딱 달라붙는 레오타드와 타이즈 뿐 아니라 스트레칭 밴드, 레그워머, 마사지 볼, 스포츠 테이프 같은 그의 소지품을 보고 있자니, 발레 무용수의 짐은 훈련을 준비하는 운동선수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예은 발레리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 쉬머하게 빛나는 포인트 슈즈는 단연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공연을 준비할 때는 두세 켤레를 같이 들고 다닌다고 전했다. 발레리나마다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포인트 슈즈를 길들이는데, 그는 딱딱한 앞부분(토박스)을 발이 까지지 않게 살짝 부수고 발바닥에 덧대어진 나무(섕크)를 잘라 발바닥 아치에 맞춘다고 했다. 앞부분이 단단한 슈즈를 신기 전에는 발가락에 토싱이라는 것을 덧씌우는데, 바느질할 때 쓰는 골무를 연상케 했다.

사용감 가득한 이 물건들에서, 오늘 하루의 인터뷰만으로는 다 알 수 없는 그의 일상을 잠시나마 엿보는 것 같았다. 가방의 무게도 매일 하는 연습도 고되지만, 빛나는 무대를 향해 오늘도 그는 큰 가방을 들고 움직인다. 꾸준히, 계속.

영상 엄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