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2023 WINTER48
빼뻘마을 전경 ©김현주

“다 엮여 있더라고요”
빼뻘마을프로젝트

빼뻘마을 전경 ©김현주

강실이 선생님께

전시장 한 모퉁이에 오랜 세월을 맞았을 것이 분명한 사물들이 있었다. 삐뚤빼뚤한 손 편지, 외국어로 마구 낙서가 되어 있는 천 원권과 달러화, “임대료 수입 장부”라 써진 두꺼운 공책, 어떤 집의 가훈, 샛노란 시위 팻말 등등. 개중 “강실이 선생님께. 선생님 죄송해요. 저 때문에 화가 많이 나셨죠. 그건 저의 진실이 아니에요. 초롱이와 펴지 대신 용감하게 사과를 하겠어요. 정말 죄송해요.”라 쓰인 편지글이 눈에 띄었다. 다음으로 천 원권에 휘갈겨진 “I HATE MY BRANCH MANAGER”, ”SSDD SAME SHIT DIFFERENT DAY”라는 낙서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뭐지, 이것들? 묘한 매력을 지닌 물건들이 어떤 출처를 갖고 있는지는 근처에 부착된 설명글을 읽고 나서 알 수 있었다. 이 물건들은 빼뻘마을에서 왔다. 작품 제목은 〈빼뻘아카이브〉(2022). 그렇게 지난겨울1에 빼뻘마을과 김현주, 조광희 작가와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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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 개입》 (2022.11.18.~2023.1.21.), 아르코미술관.

빼뻘마을은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주둔했고 6.25 전쟁 이후에는 미군이 들어서 1960년대에 본격 기지촌으로 형성된 역사를 갖고 있다.2 의정부시 고산동 일대, 수락산 밑 캠프 스탠리 미군 기지 경계를 따라 길게 자리 잡은 이 마을은 자연히 “경제 활동의 대부분을 미군에게 의존”3해 왔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특히 2018년경부터 급격히 미군 규모가 감축된 후 “주민 고령화, 노후된 주택, 토지세 상승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원주민과 이주민 간의 갈등”을 마주하고 있다.4 김현주와 조광희는 2018년 빼뻘마을의 존재를 알고 난 후 2019년에 마을에 직접 찾아오면서 이곳에서의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기지촌’이라는 명사 너머를 들춰보고자 한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거대한 정치적, 역사적, 사회적 배경 속에서 호흡하고 있는 다종다양한 미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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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달로, 《기억항해》 (2023.11.18.~ 2023.11.19.) 전시 서문, 커뮤니티예술공간 송산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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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각주와 같은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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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각주와 같은 문헌

미시사를 발굴하고 만들어 가는 그들의 빼뻘프로젝트는 빼뻘의 현재를 재구성하고 빼뻘에 체현된 과거를 역사화하는 두 방향을 지닌다. 전자는 관계 맺기로서의 문화예술교육과 “예술적 리추얼”5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작가들은 마을에 연 예술 공간 ‘빼뻘보관소’와 ‘커뮤니티예술공간 송산반점’에서 주민들이 공동체적 경험을 직접 만들어 내길 바라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그 형태는 서예, 시 짓기, 수공예 워크숍 열기, 음식 만들어 나누어 먹기, 마을 축제 열기, 그저 모여 수다 떨기 등으로 다양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참여와 과정 그리고 관계 맺기다. 이러한 참여적, 과정적 활동을 기반으로 다양한 미시사를 모으는 빼뻘의 역사화가 시작된다. 이들의 미시사 채집은 주민과의 인터뷰 뿐만 아니라 주민이 워크숍에서 직접 만든 창작물, 오래된 공간에 남은 흔적, 주민에게서 기증받은 물건 등을 다양하게 아카이브 하며 진행 중이다. 구술사와 함께 여러 가지를 수집하는 이유는 주민의 창작물, 애장품, 삶의 방식, 인적 관계, 삶의 터전 등에서 얼핏얼핏 드러나는 개인성 자체가 오랫동안 쌓여왔고 지금도 쌓이고 있는 역사라서다.

그러니 빼뻘의 현재화와 역사화는 긴밀히 결부되어 동시에 일어난다. 김현주가 생각하는 빼뻘프로젝트는, 예술가가 깔아본 “판 하나에서 끊임없이 예술가와 참여자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과정과 결과”다. 따라서 예술가 혹은 예술작품이라는 단어에 부여될 법한 비대한 자의식 혹은 공공미술이라는 단어에 부여되어 왔던 시혜성이 경계된다. 빼뻘프로젝트의 중추에 있는 주민의 존재는 빼뻘이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고착되지 않고 계속해서 현재화되기 위해 필수적이다. 한 사람의 생애야말로 빼뻘을 둘러싼 역사적 상황의 체현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역사를 전개해 나간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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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와 김선진이 나눈 인터뷰(2023.11.19.). 이후 해당 인터뷰에서의 인용은 큰따옴표로만 표시하고, 각주 표기를 생략했다.

텍스트 사이 인터뷰 사이 텍스트 사이
인터뷰 사이 텍스트 사이 인터뷰 사이

김현주와 조광희는 단순히 ‘기지촌’으로 소급되지 않는 빼뻘의 미시사를 수집하고 만들어 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시사 발굴이란 무엇인가? 미시사 발굴이란 거시사로 대표되는 ‘단일한 절대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다양한 진실들을 모은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주민의 작은 역사들이 큰 역사를 가리키고, 큰 역사가 작은 역사들에 영향을 미치지만, 둘이 서로를 대체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시사는 미시사들일 때 의미를 갖는다. 모든 미시사를 대표할 수 있는 단일한 미시사란 거시사와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한 미시사들을 수집하고자 작가들이 채택한 접근법 중 ‘인터뷰’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잠시 인터뷰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누군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일은 다양한 미디어가 생산해 온 친숙한 콘텐츠다. 그러나 우리 지척에 풍부한 인터뷰는 사실 제한된 인터뷰일지 모른다. 가령, 화보 지의 스타 인터뷰나 재태크 유튜브 채널에 올라오는 전문가 인터뷰 콘텐츠는 누군가가 업적과 성과를 이루어 냈을 때 가장 먼저 촉발되는 것이 인터뷰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뉴스에서 짧게 컷 편집되어 등장하는 대변인, 대표자, 전문가(주로 유명 대학의 교수)의 인터뷰는 어떠한 이들에게 인터뷰의 기회가 주어져 왔는지를 확인시켜 준다. 다큐멘터리의 인터뷰 시퀀스는 다큐멘터리의 서사 속에서 인터뷰가 어떻게 배치되어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가를 보여준다. 이 안에서 인터뷰는 카메라 앞에서 솔직한 고백 같기도 하고, 결코 내막을 말해주지 않는 거짓말 같을 때도 있고, 시청자가 듣고 싶어 하는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짧은 연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자주 목격하는 인터뷰는 특정 대상에 편중돼 있으며 질문-응답의 구조 속에서 ‘진실’의 유용성과 진정성이 중요해지는 자기 완결적 형식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인터뷰가 시험지와 구분되는 이유는, 질문과 대답 그리고 진실과 거짓으로만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시험지가 오답을 걸러낼 수 있는 것이라면 인터뷰는 군더더기와 찌꺼기를 놓치지 못 하는 것이다. 시험지의 질문은 수험자로 하여금 정답으로 곧바로 직진하도록 강제한다. 반면 인터뷰어의 질문은 인터뷰이의 답변이 고민을 위한 침묵, 미묘히 바뀌는 표정, 목소리의 떨림, 제스처, 말더듬과 헛기침을 거쳐오기를 기다린다. 인터뷰의 질문은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생각하는 바를 경청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지언대 인터뷰는 열린 대화이며 그 자체로 다른 목소리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시도가 될 가능성을 품는다. 그래서 “거시사 속에서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미시사들을 두텁게 쌓아보겠다는 목적의식, 또 다른 진실들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는 인터뷰라는 접근법과 근사하게 걸맞다. 가령, 〈뺑 뺑뻘 빼뻘〉(2019~)은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마을의 정경을 담은 영상 작업이다. 작품 속 “주민들의 ‘말’은 기지촌으로 명명”되는 전형화된 풍경이 아닌 “고유한 삶의 지형”으로 빼뻘을 재구성한다.6 작품 속 등장인물과 마을의 정경은 보도기사가 재현하는 ‘쇠락한 마을’이나 ‘영토분쟁의 현장’으로 소급되지 않는 삶의 궤적들을 ‘빼뻘마을’이라는 주춧돌 위에 켜켜이 쌓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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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 개입》 (2022.11.18.~2023.1.21.), 아르코미술관, 캡션.

〈안쪽 풍경〉(2023) ©김현주

중요한 것은 〈뺑 뺑뻘 빼뻘〉이 인터뷰를 통해 많은 목소리를 교차시킨다는 점이다. 여러 주민들의 인터뷰가 이어지기 때문에, 하나의 진술은 결코 자기 완결적으로 매듭지어지지 않는다. 등장인물 중 한 장년 남성은 어렸을 적 반항적으로 살길을 모색했고 미군 근처에서 먹을 것을 얻어먹곤 했던 생애를 풀어놓는다. 한편 한 여성은 빼뻘로 이주해 와 성 노동을 했던 경험과 그 안에서 여성들끼리 나눴던 연대를 증언한다. 마을에 살고 있거나 살았던 주민이 작가에게 자신의 생애를 풀어놓는 와중에, 바로 그 화자가 아니면 말하지 못할 작고 사사로운 사건들이 튀어나온다. 성 노동자들이 미용실에서 같은 머리 스타일에도 더 높은 값을 지불해야 했던 관례에 한 언니가 문제를 제기하자 돌아온 “클럽에서 일하잖아.”라는 미용사의 말을 받아치지 못했던 이야기는 인터뷰에 참여했던 다른 주민은 서술하지 않는, 혹은 떠올리지 않는 일화다. 빼뻘마을이라는 한 집단 내부의 경계와 타자의 존재를 예상케 하는 이 이야기는 “어떤 것의 대표도 전형도 평균도 아닌 개별의 개성적인 개인의 이야기지만”, 빼뻘마을의 “거대한 사회변동과 역사적 상황 그 자체이기도” 7 하다. 두 사람의 말은 한미 관계를 비롯한 세계 정세 속 군사주의와 맞물린 한국의 경제 성장 정책을, 그리고 그 ‘실효’를 더듬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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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마사히코(정세경 옮김), 『망고와 수류탄: 생활사 이론』, 두번째테제, 2021, 8p.

〈뺑 뺑뻘 빼뻘〉은 인터뷰와 인터뷰를 인터뷰inter-view시킨다. 한 사람의 사적인 진술이 다른 사람의 말과 얽히고설킨다. 개인의 역사가 거대한 역사를 가리키는 동시에 재구성할 수 있는 이유는, 주민들의 다양한 진술들에서 교집합이 선명한 만큼 여집합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증언들이 중첩될 때, 그 진술들이 채우지 못하는 영역과 진술들 사이의 간극이 드러난다. 그 간극은 비어있는 공백이 되지 않고,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진실이 된다. “주민들의 삶을 각자에게 직접 들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이분들의 삶을 볼 수가 있었어요.” 나와 나눈 인터뷰에서 김현주가 말한, 빼뻘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다종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소회다. “…다 엮여 있더라고요.” 그렇다. 불일치하는 진술들의 간극은 애써 메워지지 않는다. 다만 그 단차로 인해 모든 것이 다 엮인다.

지난 11월 진행된 이동형 거리극 〈기억항해〉(2023)는 보다 본격적으로 상이한 텍스트들을 교차시키며 진실들을 엮는다. 관람자는 헤드셋을 쓰고 마을 곳곳을 걸으면서 주민과 작가의 목소리를 듣고 퍼포머가 펼치는 무용을 관람하게 된다. 그러니 〈기억항해〉에는 마을을 설명하고 주민의 증언을 정리해 주는 김현주의 목소리, 주민들의 목소리, 배경음악, 퍼포머의 무용 퍼포먼스, 빼뻘마을 곳곳의 장소와 풍경이라는 다양한 텍스트들이 중첩돼있는 셈이다. 그중 마을의 할머니들이 시 짓기 워크숍에 참여해 직접 지은 시와 낭송은 주요 텍스트다. 할머니의 시 속에는 빼뻘마을의 “쓴맛”과 “단맛”, 시집 와서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아 집을 산 기억, 그렇게 “고향”이 된 빼뻘에 서린 추억들이 등장한다. 할머니들이 실제로 일했던 양복점과 음식점을 비롯한 마을의 장소들을 직접 걷다보면 빼뻘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그들의 삶이 피부에 와닿는다.

그러나 “장소 그리고 장소에 대한 기억, 기록에 대한 실체는 고정된 것이 아닌 몽타주 또는 파편화된 것에 가깝다.”8 그러니 〈기억항해〉의 텍스트들도 상호 일치해 서로를 뒷받침하는 경우보다는 서로 상이하고 비연속적일 때가 더 잦다. 저자들(퍼포머, 작곡가, 작가)의 첨언은 각종 텍스트 사이의 차이를 메꿔주기보다는 더욱더 벌려놓는 결과를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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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다름, 모든 낯섦》 (2023.11.14.~2023.11.15.) 에 전시된 〈빼뻘-시공을 몽타쥬하다〉 캡션, 커뮤니티예술공간 송산반점

중간중간 등장하는 작가의 차분한 목소리는 빼뻘마을의 토지세와 지주, 건물주를 비롯한 경제적 측면과 정치적 역사를 환기하면서 할머니의 개인적 노동과 가족사에 다른 결을 부여한다. 그리고 걷기를 통해 “온몸이 가지고 있는 레코더의 기능”이 활성화될 때는, 몸에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들이 여타 텍스트의 의미를 새로이 재구성할 정도로 독해에 간섭하기도 한다. 그중 캄캄하고 반쯤 무너진 미군 전용 클럽 무대에서 이뤄지는 무용 퍼포먼스는 특히 강렬하다. 무대 바깥으로 자꾸만 발을 뻗는 퍼포머는 이내 다른 퍼포머에 의해 제지당한다. 급박하게 반복되는 탭댄스의 발소리는 헤드셋에서 할머니의 목소리로 흘러나온 “쓴맛”의 의미를 재구성한다. 돈을 벌어야 하고 당장 잘 곳도 먹을 곳도 일할 곳도 없는 여성들이 찾아와 일했던 미군 전용 클럽의 공간성은 “고향”이라는 단어를, 열심히 일을 해 돈을 모았다는 시구를 다른 맥락 위에 놓는다. 작가의 말, 주민들의 목소리, 퍼포먼스, 관람자가 걸어 다니는 빼뻘의 공간들은 완벽히 합치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상응하며 의미를 유동시킨다. 그렇게 텍스트text와 텍스트 사이inter에서 복잡다단하고 입체적인 빼뻘의 지형이 드러난다. 김현주와 조광희의 미시사 수집은 단일한 정답을 골라내는 작업이 아니라, 상이한 진실들의 불일치성까지 함께 모으는 일이다.

“다 엮여 있더라고요”

독해자가 강력히 몰입하게 만들어 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흡입하듯 소멸시키는 텍스트만큼이나, 자신을 깨부수고 바깥의 현실을 끌어들이는 텍스트는 매력적이다. 희고 조용하고 깨끗한, 화이트큐브로 통칭하는 전시장은 외부의 맥락을 차단해 관람자가 작품의 내적 서사와 완결성에 몰입하게 만든다. 이렇게 작품을 향한 집중도를 조정하는 전시장에도 어떤 작품들은 외부의 맥락을 덕지덕지 끌고 들어온다. 매끈하고 견고한 내적 완결성을 거부하는 작품은 자신의 존재감을 다른 것들과 나누는 산만함과 자기 파괴성을 지닌다. 김현주와 조광희의 작업이 꼭 그랬다. 작품 속에 모인 목소리들은 더 멀리 퍼져나갔고 작품 바깥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자꾸 또 다른 사람, 또 다른 곳, 또 다른 시간을 환기했다. 나는 〈뺑 뺑뻘 빼뻘〉속 성 노동자의 인터뷰를 보며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위치한 성북구의 집창촌 미아리 텍사스를 떠올렸다.9 〈기억항해〉 감상을 함께한 영상 필진 안소정은 해군 기지와 관련한 아픔을 겪은 제주 강정마을이 떠올랐다는 소감을 나눠주었다. 아르코미술관은 혜화에 있고 빼뻘마을은 의정부에 있고 강정마을은 제주에 있는데, 우리 머릿속에선 이곳저곳이 한데 모여 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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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 집창촌 미아리 텍사스에 대해 알게 된 것은 2년여 전, 공공미술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다 집창촌의 공간 일부를 빌려 진행된 전시 《알로호모라, 아파레시움! 미아리, 더 텍사스》 (2015.10.17.~2015.10.30.) 를 다룬 학술논문을 읽고 나서였다. 공교롭게도 이 전시를 기획한 이가 김현주 작가였음을 원고 작성 며칠 전에 알았다.

〈뺑 뺑뻘 빼뻘〉 옆에는 방처럼 구획된 전시 공간이 마련되어 〈낭독의 방—밖에서 들리는 목소리들〉(2019, 2022)이 설치되었다. 〈낭독의 방〉은 작가가 주민과의 인터뷰를 가지고 만든 책을 관람자가 마이크 앞에서 직접 읽으면 전시장 외부에 설치된 스피커로 그의 목소리가 방송되는 작품이다. 빼뻘마을 구성원의 증언이 다른 이의 목소리를 빌려 전시장 바깥에서 발화되는 것이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는 해봤지만, 서울 바깥에서 살아본 적은 없는 나의 목소리는 빼뻘마을에서 재봉 노동을 하던 이의 생애사를 빌려 전시장 바깥의 알 수 없는 이에게 말을 건다. 임대 사업을 하던 사람의 이야기도, 자식이 잘 찾아오지 않는 할머니의 목소리도 여성, 남성, 청소년, 중년 등 다종다양한 관객을 만나 진동한다. 빼뻘들의 역사는 새로운 증인을 만나 공명하고, 퀴어링(queering)되고, 다성(多聲)이 된다. 성대의 상이한 떨림으로 새롭게 울리는 문자, “타자의 이야기가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가 이렇게 거쳐서 나오”는 체험. 빼뻘프로젝트는 역사와 역사, 텍스트와 텍스트, 몸과 몸, 삶과 삶이 서로에게 끼어드는 순간을 끌어안는다. 계속해서 다른 맥락(context)들을 가져오고 스스로 다른 맥락 속으로 침투한다.

김현주와 조광희는 그간 빼뻘프로젝트를 마을 안에서만 전개해 오다가 2022년 아르코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외부에 활동을 전시했다. 김현주는 고심 끝에 전시에 참여하기로 한 이유가 “또 다른 빼뻘들”이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빼뻘마을의 역사가 비단 한국 곳곳의 기지촌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전쟁터, 휴전국, 침체된 공동체, 성 노동자, 빈곤층…이 조용히 써 내려가고 있는 미시사들로 이어지길 바란 것이다. 김현주는 직접 빼뻘에 들어가 기지촌이라는 장소성을 “직접 제 몸으로 체험하고 겪고, 직접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주목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피상적으로 임하지 않고 “온전히 내가 몸으로 체화한 것들을 작업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그곳에서 전개되어 온 빼뻘프로젝트는 빼뻘이 아닌 다른 곳의 몸, 빼뻘을 직접 경험하지 않아 간극을 간직한 몸들과 공명한다. 그야, 우리는 바로 그렇게 다 엮여있는 거니까.

글 김선진
예술사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하고 방송영상을 부전공하고 있다. 현실에 발 딛고 서 있는 비평을 하고 싶다. 올 겨울에는 알렉산드르 로드첸코, 김재원, 존 A. 워커가 좋다.

영상 안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