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까 이 글이. 기획의 주제를 받고, 사실 그 생각에 꽂혀 있던 와중에 이런 기획 주제를 받았다 하는 편이 더 맞겠지만, ‘언어의 없음’과 다른 삶의 가능성이란 문제를 놓고 줄기차게 씨름한 어떤 이의 사례를 옆으로 치운 채 딴 착상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 사유와 실천엔 생활이 우릴 속인다고 속삭이는 간사한 난이 없다. 그것이 난이라 한다면 그 난은 이미 난 길에 일어 굳은 고랑을 흔드는 회오리의 반란쯤 될 것이다. 또, 부정법을 써 “le tracer”(선 그리기, 길 내기, 옆으로 뻗기, 추격하기…)라 정의되는 그 글쓰기는 인간을 제 본래의 ‘동물’ 쪽으로 해방시키지, 쓰는 인간의 씁쓸한 자의식이 치는 덫에 걸릴 줄 모른다. 요컨대 이 예는 우리의 난(亂)을 정(正, 靜)의 힘으로 변성시키고, 무개성의 공간 안에 다른 생각과 행동과 삶의 가능성이 버무려진 독특성의 자리를 언제나 여전히 낼 수 있음을 일깨우며, 그러니 너는 어디로도 가지 않고 어디로든 가라고 독려하는 헤테로피아적 실천의 본보기다. 내가 난의 정수라 이르기로 마음먹는 까닭이다.
우리가 난의 우울을 이겨내도록 돕는 난. 우울을 그로부터 떠나가는 능력으로 바꿔 산 자가 새로이 살 수 있도록 원조하는 그것은 현실적인 조언보다 수수께끼에 가깝다. 그건 종종 평범한 몇 마디 문장의 형태를 띠고, 또 딸린 일화나 배경지식 역시 수수한 말로 대동하고 온다. 그럼에도 해명되지 않는 비밀의 환함으로 우리 앞에 빛나며, 우린 마치 성인전(hagiographie)이나 마술 환등을 대하듯 그것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일어난 일이 그 밖에 있는 우리 자신에게서도 미미하나마 같이 일어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주어진 지면이 적지. 난 명료한 논리에 기반해 난의 이론을 요약 설명하지는 못하고, 뭐랄까, 침묵 속의 심지처럼 희망과 실망을 넘어 실천엔 실천의 실천만이 있을 뿐임을 내게 불 밝혀 보인 ‘행적’의 몇 대목을 이번엔 내가 불 비춰 다시 들여다보는 기분으로, 등불에 기대어 어떤 옛날이야기를 혼자 불러내고, 좇아가고, 그러다 발견한 그 깃 두어 장을 줍는 기분으로 적겠다. 난의 행적, 뗏목 이야기를.
페르낭 들리니(Fernand Deligny, 1913~1996). 들뢰즈・과타리의 『천 개의 고원Mille plateaux』(1980) 중 들리니와 그의 지도가 잠깐 언급되는 대목에서 나는 즉시 그 이름에 마음이 끌렸었다. 다양한 타이틀이 이 이름을 수식한다. 영상작가, 시인, 철학자, 분열분석론 학자이자 정신병전문의, 사회운동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두를 하나의 특이한 실천 속에 한데 아우른 교육자. 들리니 자신은 스스로가 교육자네 예술가네 불리는 걸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고, 대신 사람이 그런 허영심이 없는 상태에서 제 속의 지성과 열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의 실천은 2차 대전 후의 반-정신병원(anti-asilaire) 운동을 대표한다. 동시에 이 대표한다는 표현이 무색하게 전체 정신의학 및 치료의 맥락에서 비주류적인 위치에 놓인다. 그러나 또 그와 동시에, 그의 지적 동료라 할 들뢰즈·과타리(들리니는 특히 과타리가 주도한 급진적 『연구Recherches』지[1965~1983]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의 시각에서 합당하게 조명하면, 그가 점한 위치란 절대 척도인 다수자의 위치를 탈주하는 소수자의 위치, 즉 대문자로 표기될 ‘인간’ 주체를 넘어 비인격적 주체의 역량을 생성해 내는 소수자-되기의 그것이기도 하다. 들리니가 선택한 방법은 일반적인 의미의 정신 질환 치료에 부합하지 않는다. 라캉의 정신분석에도 대립된다. 분열분석은 언어라는 유일 시니피앙의 전횡에 맞서 그것 너머에서 어떻게 다양한 삶의 가망이 생겨나는지 탐색하고자 하며, 따라서 그가 “시도”라고 부른 연구와 실천은 언어가 결여된 존재들을 ‘치료’해 인격 주체로 인간 사회에 복귀시키는 일을 목표하는 기존 보호(수용)소들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도는 소통과 교감에 기반하는 공동체를 향해 ‘이해 불가능성의 윤리’라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달리 말해, 이를 기점으로 사회나 ‘국가(폴리스)’의 반대편에서 ‘새로운 배치 가능성(노모스1)’이 타진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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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적 공간의 분할 및 분배’와 관련된 ‘법 중의 법’(슈미트).
폴리스가 주어진 ‘코드’들에 의해 공간의 코드화/탈코드화를
실행한다면, 노모스는 공간의 ‘영토화/탈영토화’를
행한다(들뢰즈・과타리).
그는 그럼 제도 의학의 감금과 가혹한 통제 체벌 관례, 교정 논리를 탈피해 무엇을 했나. 1939년~1943년경부터 이미 자기 방식의 비행청소년 보호소를 운영하기 시작한 들리니에게는 1967년, 치유 불가능하다고 진단된 중증의 자폐 아동 장마리와의 만남이 결정적이다. 그는 장마리, 크리스토프 B를 위시한 자폐 아동들, 비행 청소년, 고아, 소아정신분열증 환자 등을 데리고 프랑스 중남부 세벤 산맥 지역의 모노블레로 가, 이들이 사회 규범과 언어를 강요받지 않고 자기들에게 고유한 비언어적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 삶터를 마련한다. 터라는 지칭엔 부연 설명이 따라야겠다. 들리니가 그 삶의 자리를 다름아닌 “뗏목(radeau)”이라 명명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에게도 절실한 것이 이것, 뗏목이니까.
산속에 자리 잡은 그 대안 공간은 역설적으로, 또 의미심장하게도, 고정된 땅이 아니어야 했다. 뗏목? 돛대도 닻도 키도 없이, 언어 없이, 구속복 없이, 흐르는 물 위에 아슬아슬 뜬 플랫-폼. 매 순간 바깥에 반응하고 매 순간 바깥과 제 자신에 그 반응의 효과를 돌려주는 몸에 의해 이동하는 한편, 그 이동을 통해 역으로 부단히 몸을 생산하는, 다시 말해 접촉으로 몸과 바깥을, 세계의 운동을, 세계의 있음을 생산하는 떼-발바닥. 완전히 분리되지도 접합되지도 않은 나무토막들 간의 거리들이 젖어 드는 물을 헤치며 밀어내니, 뗏목은 산악지대 부락의 돌과 우물과 농가들 사이를 유동한다. 저마다의 침묵에 갇혀 울부짖거나 자해하는 어린 백치들의 고독을 “연결망” 위의 생으로, 임시적이고 즉각적인 몸 체험의 반복 속에 이어지고 갱신되는 선들의 삶으로 실어 간다. 물론 들리니 편에서 보자면 뗏목의 궤적은 그의 잉크의 항적이기도 하겠지. 그는 뗏목의 실험-연구-창작-생활에 전문적인 의사나 교사, 보호자를 두지 않았다. 그 지방 사람들 중 자발적으로 그곳에 찾아든 비전문가 성인들, 가령 청년, 실업자, 레지스탕스 운동가, 노동자와 기술자, 장인 들이 네트워크를 이루곤 이 말로 섞일 수 없는 존재들 옆에 멀되 “가까이 있는 이들(présences proches)”로 머물며, 절대적인 멂으로서의 근접성 속에서 다 같이 빵을 굽고, 헛간을 고치고, 그림을 그리거나 바느질을 하며 살았다. 모두가 무보수로 움직여 자급자족하는 살림터는 당연히 가난했다. 뿐만 아니라 가난을 제 당연한 조건으로 지켰다. 이들은 ‘일한다’는 단어를 쓰지 않았으니 결국 다 같이 같은 꿈속에 들어있었다고, 같은 꿈을 꾸었다고 묘사하는 게 맞겠다. 뗏목의 잠과 꿈. 전설 같네. 들리니는 한결같은 생을 인근 그라니에 마을에서 마쳤고, 이 실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이십 권 정도의 저작과 영상 작업을 남겼다. 그의 생전에 그랬듯 아직도 그라니에에는 늙은 장마리와 크리스토프, 그리고 초기부터 그들을 지키며 들리니를 보조한 구성원들, 그러니까 장마리보다 더 나이 든 지젤 뒤랑과 자크 랭이 서로의 무한 거리 속에 함께 산다. 무릇 운동의 끝이 어떻게 끝나는지 환상 없이, 의연하게 시사해 주는 이 졸아붙은 후일담마저도 전설 같다. 아니, 실은 이런 것이 우리가 이곳의 획일성 안에 열고 살아야 할 이질적 공간의 산 표본만 같다. 내 마음을 움직이고 덥히는.
뗏목이 일군 두 결과물에 나는 주목한다. 그 하나는 들리니의 지시에 의거해 1969년부터 10년 동안, 자폐 아동들의 일상적 이동을 위의 뒤랑과 랭이 따라가며 그린 지도들이다. 이 자료들은 들리니의 텍스트와 용어 목록을 포함한 이중언어 도록 『지도들과 발걸음의 선들Cartes et linges d’erre/Maps and Wander Lines』(L’Arachnéen, 2013)로 출판됐다. 제목만으로도 생각할 점이 많다. ‘erre’는 ‘errer(방황하다)’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이고, 그 점에 기울어져 책을 열면 십 년 내내 세벤 지역 인근을 여행하는 자폐아의 궤적에서 방황하는 작은 괴물의 간단없는 고통이 불거질 것이다. 우리에겐 그 궤적의 기구한 무-의미함이 이 지도들의 시적인 분위기를 구성하는 중추로 비칠 것이다.
그러나, 좀 틀렸다. 저 프랑스어 단어가 품은 뜻에 일단 속력을 낸 배가 그 뒤에 저절로 진전하는 속도, 달리 말해 ‘진항 속도’, 혹은 그렇게 붙은 속도에 힘입어 가는 동물의 발자취, 발걸음, 걸음걸이 또한 있다는 사실에 눈길이 미치면 그때부턴 그 자취에서 상이한 풍경이 가시화된다. 언제나 같은 공간에 언제나 새롭게 표시되는 걷는 존재의 발걸음 에어리어(area, 프랑스어로는 aire, 공교롭게 erre와 발음이 같다)가 비로소 추적된다. 그것에 나머지 결과물, 즉 뗏목 생활 속 장마리의 나날을 기록한 르노 빅토르의 영상물 〈여기, 이 어린애Ce gamin, là〉(1975)를 덧대어 보자. 이 다큐멘터리를 볼 때 불쌍한 타자를 향해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자신을 확인하게 될까 봐 염려되는가? 그런데 이내, 당신도 거기서 내가 느낀 바를 느끼게 될 테다. 언어를 가졌으되 그 상투성의 바깥을 찾고 싶어서, 언어 너머 몸에 가 닿을 미지의 언어를 찾을 수 없어서, 그 불가능이 야기하는 원천적 소외감과 하지만 그런 문제 따윈 하등 관심 없이 시끄럽게 북적대기만 하는 여기 현실 사이에서 선택을 내릴 수 없어서 헤매고 고민하는 우리 각자의 형상이, 불현듯, 반복이 같은 것의 반복이라는 착각의 바깥에서 생명의 불굴을 드러내는 장마리, 제가 볼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여타의 존재들을 끊임없이 찾고 추적하는 가운데 저만의 몸짓으로 우리 일상의 행위들을 “장식하는” 장마리, 역사에 의해 고착화된 인간의 땅에 저항하며 춤추는 장마리의 모습과 중첩될 테다. 그렇다면 장마리의 발걸음-영토를 보면서 되새길 바는, ‘저들’의 장애학 윤리 이상으로, 이른바 ‘창문 없이’ 저마다 최선의 가능 세계를 구현한다는 모나드의 원리인 걸까. 이 먹먹한 작품은 기묘한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몰입하게 하고, 이런 거 너무 근사하다고 호들갑 떨지 않도록 막으며, 어린아이가 뭔가를 볼 때는 항상 그 안에 들어가 있듯, 우리는 여기 있으면서 그곳에 가 있다. 우리 모두 안의 말못하는 어린애들이 그 뗏목 위에 올라 고함치고 걷고 노래하고 노력하고 있음을 목도하는, 말하는 우리 모두. 그러고 나면,
우리가 누구든, 무엇을 하든, 슬퍼하든 기뻐하든, 남든 떠나든 되돌아오든, 생성이라는 큰 차원에서 볼 때 우리가 긋는 생명의 궤적들은 끊기지 않는다는 가르침이 내 안의 하찮은 난을 진정시켜 준다. 온갖 일에 툭하면 누추한 셈법을 동원하려 드는 내가 그 셈을 잊도록 다독인다.
마지막 깃 하나가 남았다. 앞서 나는 평범한 몇 마디 문장으로 도래해 우리를 밝히는 수수께끼에 대해 언급했었다. 그 얘기로 이 글을 마치자. 출처는 들리니의 자전적 기록 『두려워하기와 믿기Le craindre et le croire』(L’Arachnéen, 2007) 중 한 부분이다. “나는 정신병원을 사랑했다. […] 많은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어 그 사람과 생을 같이하겠다고 결심하는 일이 매우 있음 직하듯, 그렇게 그곳을 사랑했다.” 그가 스무 살 무렵, 처음으로 고향의 아르망티에르 정신병원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일어난 일이다. 난 이 구절을 접하고 아연했다. 이상해서가 아니라, 하긴 이상하기는 하지. 정신병원과 사랑에 빠지다니, 소명은 과연 제정신을 어지럽히면서 드나 봄, 그런데 그 이상함 때문이 아니라, 이를테면 사랑의 난이라 부를 수 있을 그 불길의 순정한 파급력에 놀라고 이어 감동해서다. 난 중의 난. 이 그윽한 난은 우리 안의 난을 가라앉히는 데 그치지 않고, 역으로 우리 안에도 순수한 불꽃을 틔워 우리가 밝고 깨끗한 자리로 가게끔, 그 자리가 되게끔 정화하고 고양시킨다. 나는 해독하거나 분석할 데라고는 없는 저 구절 역시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구절을 읽는 짧은 시간을 따라 맑은 종소리가 같이 울리고 사라지네. 이런 난은 모든 경계와 의심을 덮고 넘는 무애(無礙)의 힘을 가지리라. 그 힘이 범람해 우울을 쓸고, 새 땅에 새 행보를 그려 나가라고 다시금 우릴 추동하는 것이리라.
본문 중 “ ”로 표시한 용어들은 들리니 자신의 것이다. 이 글은 『지도들과 발걸음의 선들』, 〈여기, 이 어린애〉, 상드라 알바레즈 드 톨레도, 카트린 페레, 기욤 시베르탱블랑/이고르 크르톨리카의 글과 논문들, 그리고 2023년 봄 프랑스 세트에서 열린 전시 〈페르낭 들리니, 뗏목의 전설〉을 다룬 기사들을 자유롭게 참조했다.
글 김예령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강사. 파리 7대학에서 루이페르디낭 셀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땄다. 그 연장선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