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2023 WINTER48

난:
마주쳤던 어려움을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렵다”하고 중얼거립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나도” 하고 답합니다. 이렇게 압축적인 몇 마디로 많은 설명이 대신 됩니다. 어떤 불안감 위에 이런 절망감과 저런 곤란함이 켜켜이 쌓일 때,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들추는 대신 “살기 힘들다”고 간단히 시인하고 자조적으로 동감합니다. 우리의 공감대는 막연한 어려움 위에 모입니다. 내일이라도 세상이, 아니면 내가 망할 것 같다는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언젠가부터 늘 있었던 것 같은 이 알 수 없는 위기감을 잠시 멈춰서서 빤히 바라봅니다.

모두가 뱉어내는 힘들다는 말 뒤에는 어떤 각자의 난감함이 있을까요. “힘들다”로 생략했던 속내를 펼쳐냈을 때, 어떤 대화가 가능해질까요. 48호 〈난亂〉은 거대한 위기감을 형성한 작은 어려움들을 면밀히 살핍니다. 스크린 속 연애 프로그램이 안겨 주는 감각, 개원 30주년을 축하할 때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진로 걱정, 어떤 날짜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는 쓰라림… ‘살기 힘듦’의 감각을 구성하는 것들. 〈난〉에는 어려움을 마주하고서 해야 하는 이야기와 더불어, 어려움 안에서만 가능한 시도도 담았습니다. 고립된 언어를 가진 자들이 모인 뗏목 공동체, 장벽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미술가, 세상에 질문하고 스스로를 만나는 청소년극, 한 마을의 공동체와 미시사를 모으는 예술가, 전자 음악계에 뛰어든 여성들. 이들이 위기를 껴안을 때, 어려움은 두려움이길 멈춥니다.

“위기(crisis)라는 단어는 최고점과 분리의 시점,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임박한 순간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기원”했습니다.1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전형적인 재난 상태, 말하자면 변화에 대한 개방성과 몰입의 상태”.2 위기는 안락하지 않지만, 도망치기보다는 마주할 때 하나의 변환점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난세를 응시하되 절망하지 않고, 위기를 믿어보되 파헤쳐 보도록 할까요. 어렵지만 어렵다고만 말하지 않아봅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공감의 지점을, ‘망할 것 같은 느낌’으로부터 ‘이 위기를 바꿔보자는 의지’로 옮겨봅니다. 추운 겨울 속에서 춥다고만 이야기하지 않고, 따뜻함도 그려볼까 합니다.

1
Samuel Henry Prince, Catastrophe and Social Change: Based upon a Sociological Study of the Halifax Disaster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20), 16p, 레베카 솔닛(정해영 옮김), 『이 폐허를 응시하라』, 펜타그램, 2012, 125p에서 재인용.
2
레베카 솔닛, 위 문헌, 33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