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2023 WINTER48

벽장에서 떠나 장벽을 세운
사람을 위한 변론

벽장

성대가 비좁은 듯한 남성의 목소리가 기독교 교리를 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본인이 현세대의 소수자라며 혼전순결을 주장하고, 동성애와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을 권할 뿐이었다. 2023년의 커피숍에서 밀레니얼의 열풍-웰빙라이프를 듣는 경험이 참 반갑고 하찮았다. 하찮은 그는 어디 가서 기독교인임을 ‘커밍아웃’하기에 어렵다고 말한다. ‘Coming out of the closet’ 그자에게 벽장이 고작해야 교회라면 아주 꼴불견인 변용이다. 그런 사람이 교리를 전하다니… 신의 이야기마저 신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어쩐지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상당수의 사람들을 홀리는 종교 이야기부터, 모험을 떠나는 영웅의 이야기, 남루한 삶을 발랄하게 버티는 퀴어 주인공에 이르기까지. 텍스트가 우리에게 담지해준 미래는 ‘점차 부서지는 완전한 세계’에 대한 확신일 것이다.

‘벽장’이라는 말은 ‘자신의 벽장을 더디게라도 무너뜨리기’로 약속한 사람의 말이다. 언젠가는 전통과 관습, 재생산과 성 관념, 안정성 모델과 불응할 수 있기를 상상하는 자의 말인데… ‘교리를 전하는 자의 커밍아웃’은 교회를 무너뜨리고 신을 무찌르는 상상에 관한 것인가. 벽장. 문이 있는 밀폐된 공간이며, 보관을 위한 시간과 안정이 보장되는 공간이며 어둡고 좁은 곳이다. 또 한편으로는 대단하지 않은 벽장. 그 안으로 들어가 봐야 별것 없다는 말은 들어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각자가 말하지 않는다면 대의로만 남아버리는 곳이며, 아직도 근처를 두리번거리는 사람에게는 환상과 악몽이 뒤섞인 장소이다. 이 닫힌 세계에서… 벽장에서 뛰쳐나와 결핍된 외로운 세계에 맞서는 이야기. 우리는 자주 그러한 이야기에서 감동한다.

〈13〉(2021), 각종모에화(강세윤), 디지털드로잉 ©강세윤

나는 유독 아름다움에 쉽게 매혹되는 편이다. 엄마가 말하길 애초에 슈퍼스타로 태어났다는 레이디 가가도, 무언가 달라지자마자 중력을 거스르는 서쪽 마녀도. 최근에는 여성에서 다시 물고기로 돌아가는 김비 작가의 여정1에 이르기까지. 충만한 세계는 미래에 성취해야 할 것으로 빈번히 유예되지만, 그 과정을 세밀하게 벼려내어 보여주는 디바들에게서 힘을 얻는다. 자신의 세계를 부수고 길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는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게 한다. 나는 자꾸만 감동하는 바람에 뭐라도 해야지만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빠르게 위로하고 빠르게 결론을 내린다. 가령, 무지개를 찾아 떠났지만 결국 그것을 찾을 수 없어 “아아, 무지개!”하고 절규하는 소년2에게, 나는 뜬금없이 프라이드 깃발을 쥐여 주며 위로할 수 있다. 소년은 다양성을 찾고 있던 것이다!

1
〈연극연습3. 극작 연습_물고기로 죽기〉, 김비 작, 정은영 구성/연출, 고주영 기획/제작, 국립정동극장_세실, 2023.10.20.-10.22.
2
〈13〉(2021), 각종모에화(강세윤), 디지털드로잉, 작품의 내용 중에서 강세윤이 김동인의 ‘무지개’를 묘사한 장면을 인용했다.

섬광 장벽

2021년 당시에 나는 ‘배리어프리’를 처음 알게 되어, 그것의 윤리적/미학적/존재론적/정치적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있었다. ‘벽장을 나와 장벽 부수기’와 같은 진로는 대번에 결정되지 않지만, 안정성과는 어긋나고 비규범성을 기대한다면… 접근성에 뜻이 생기는 일은 당연했다. 주변의 몇몇은 배리어프리가 예산 낭비라든지, 미학 실천에 방해된다든지, 당사자가 아닌데 실천하는 것이 기만이라든지 혹은 적나라하게도 못생겨서 싫다든지의 불만을 말하여 나를 ‘배리어프리 폭군’으로 각성시킨 탓도 있다. 동시에 명사 ‘퀴어’가 아닌 형용사 ‘퀴어함’을 추구하며, 지루한 실험영화 따위만을 보여주는 창작자/연구자들에 대한 의심이 생겼다. 창작자와 등장인물 모두 퀴어가 아니고 소수자에게도 기여하지 않는 영상이라면, 영상이 다시금 편집과 촬영의 모호함에게 공을 돌린다면 “어째서 퀴어한 영상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지금이라면 ‘퀴어한 영상’이 실험영화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현재의 문화접근성 혹은 소수자의 문화접근성에 개입하는 ‘찾아가는 영상’이 되는 편이 낫다고 단언했을 테다. 허나 2021년 당시는 모든 게 새로웠기 때문에 의심은 적었고, 믿음은 컸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소격 효과, 히토 슈타이얼의 빈곤한 이미지, 바흐의 판타지아, 카피레프트 문화와 글리치 기법 등이 내가 비규범적이라고 믿는 효과였다. 나의 창작물이 이렇다면, 서브컬처가 일상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반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상단 〈확대-핵-판타지아〉(2021), 박민영, 2채널 비디오, 하단 〈만날 뻔해서 반갑습니다〉(2021), 박민영, 스크리닝 조각,영상, 향료 ©이도현

〈확대-핵-판타지아〉(2021)는 ‘제때를 찾지 않는 혈연공동체’에서 ‘친밀한 퀴어공동체’로의 이동을 기록하고자 제작했다. 2채널 인터뷰 영상이 관객을 사이에 두고 그들끼리의 대화를 이어간다. 퀴어공동체는 자본화된 혈연공동체를 기대하며 ‘풍족한 지원’을 원하거나 ‘떳떳한 시민 됨’을 약속한다. 다른 화면에서는 나의 혈연 공동체가 삶의 동행을 위한 필수 조건을 읊는 듯하다. 이를 관조하는 내레이션은 양측 모두의 기대를 저버릴 것을 알지만, 분명 주저할 필요가 없는 선택임을 단언한다. 넓어진 외연을 상상해도 ‘가족’이라는 말을 듣고 나면, 결국 내가 아는 ‘그 가족’으로 돌아오고야 마는 저주. 그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앞날을 기대할 만한 것으로 여길 필요가 있었다.

이때 섬광 장벽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배리어프리’에 매료되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진동 강한 음악을 만들었고, 자막으로도 정보가 부족할까 봐 아이패드에 대체 텍스트나 인터뷰 자료를 제공하고, 작업 외적으로는 큰 글씨와 점자를 넣었지만… ‘뭐라도 하는 일’의 관성대로 장벽까지 만들었다. “전시장에는 감광성 뇌전증 혹은 광과민성 발작 같은 빛에 예민한 관객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몇몇 섬광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라는 말로 ‘섬광 장벽’은 작업에 응당 필요한 것으로 남아 있었다. 2021년 〈확대-핵-판타지아〉를 제작할 당시에 섬광은 작업의 정체성에 가까운 형식이었다. 작업이 ‘퀴어와 가족구성권’에 관한 것이기에 ‘자꾸 깨워서 현실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식의 소격효과. 그 징그러운 선민의식을 알고 있음에도 소중한 사람들을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보기 불편하게 만드는’ 섬광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스스로 다시 묻는다. 섬광이 꼭 필수적인 형식이고 정말 소수자의 문화접근성을 확보한 형식인가. 아무리 새로움이 고갈된 세상이더라도 창의력은 필요할진대, 섬광이 리스크를 감수할 정도로 창의적인가? 변명은 길지만 죄명은 짧은 법. 극장에서는 수어 통역사를 향한 조명과 문자 통역의 불빛을 우선으로 두고, ‘암전’을 기꺼이 포기했다.3 회색빛 암전을 보며, 창작물의 구성요소가 전부 미학적 성취로만 환원될 수 없다는 걸 빨리 알았어야 했다. 내가 그동안 보고 배워왔던 공연 예술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로드킬 인 더 씨어터〉, 〈물고기로 죽기〉, 〈노래 노래 노래〉는 암전 없이도 강렬했다. 열 개의 장벽을 부수고 하나의 장벽을 세웠다면, 내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는 섬광 없는 〈확대-핵-판타지아〉를 다시 만드는 일이다. 분명 ‘암전’하지 않는 일, ‘섬광’하지 않는 일처럼… ‘하지 않는 일’을 기꺼이 택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3
〈환대의 조각들 2023〉, ‘예술작품의 접근성’포럼, 다이애나랩 주최, 이음아트홀, 포럼의 내용 중에서.

투명 장벽

새빨간 표지가 인상적인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 불구의 미래를 향한 새로운 정치학과 상상력』에서는 흥미로운 부록이 실려 있는데 바로 ‘활동가들이 제공한 자료’이다. 장애 접근성과 젠더 안전을 위한 체크리스트, 화장실과 젠더에 관한 성명서, 무향 공간을 만드는 방법과 이유 등이 적혀있다. 나는 여기서 ‘무향 실천’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환경성 질환이라고도 불리는 화학물질과민증이 있는 사람들은 향기가 있는 제품 대부분에 노출될 시에 심각한 신체적/신경학적 증상을 느낀다고 한다. 책에서는 ‘화학물질 노출의 증상으로는 현기증, 메스꺼움, 불분명한 발음, 졸음, 입·목·피부·눈·폐 자극, 두통, 경련, 피로, 착란, 간·신장 손상 등이 있다’고 알린다.4 담배 냄새부터 향수, 바디워시 등에 이르기까지 개인이 사용하는 제품에 대한 규제는 없는 까닭에 환경성 질환의 장벽은 높아졌고, 이를 완화하기 위함이 ‘무향 실천’을 하는 이유이다. 이를 보고 떠오른 장소는 다름 아닌 영화관이었다. 현실감과 기술력을 자랑하며 4DX/4D 플렉스 등 흔들리는 의자를 뽐내는 영화관은, 각 좌석에서 8가지 종류의 향수를 관객에게 뿌리기 때문이었다. 일전에 디즈니 코리아에서 일하는 지인은 내 전시에 찾아와서, 섬광 주의 문구를 읽으며 “이 문장 우리가 쓴 거다?”라고 말했다. 영화 〈크루엘라〉(2021)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빠르게 깜빡거리는 영상을 고려해서 디즈니 코리아팀은 광과민성 발작에 관한 경고문을 영화관 앞에 두기로 했다. 나는 해당 문장의 도움을 받았다. 이번에는 내가 도움을 주리라 기대에 부풀어서 지인에게 환경성 질환과 무향 실천에 관해 설명했다. 아쉽게도 영상을 검수하는 그의 권한은 아니었고, 시설에 관한 일이라 극장 측에서 안내해야 하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더 찾아보다 알게 된 사실은 4DX 기술 이전부터 영화관의 답답함을 해결하기 위해, 편백 나무 향을 이미 영화관에 뿌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망감이 영화관에 머물지만은 않았다.

이전에 제작한 〈만날 뻔해서 반갑습니다〉(2021)는 경제활동과 간병의 병행으로 인해 ‘돌봄 노동이 극대화된 가족공동체’에 대한 인터뷰 영상이자 영상 편지이다. 스크린에는 ‘환희’라는 흔한 ‘기쁨의 이름’을 가진 아이가 등장하는데, 그의 가족들은 아직 알 수 없는 (어쩌면 미래에 등장하거나, 없을 수도 있는) 환희의 동반자에게 영상 편지를 남겨 준다. 아름답게 등장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적나라한 등장은 꺼려지는 인터뷰이의 마음을 조율하며 작업을 구성했다. 스크리닝 조각과 인터뷰 영상, 향료로 제작된 〈만날 뻔해서 반갑습니다〉는 ‘누군지 모를 동행인’을 유념하고 있었다.

이때 투명 장벽을 만들었다. 대부분 시청각적인 요소로 구성된 작업을 볼 ‘누굴지 모를 동행인’은 시각장애가 있을 수도, 청각장애가 있을 수도, 미술이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떠올렸다. 그 때문에 시청각적 요소를 다시 설명적인 동일 감각으로 변환하기보다, 후각을 통해 작업의 분위기를 연출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한동안 나에게 배리어프리란 정보 값을 ‘전달-하는 일’로 느껴졌기에, 다른 감각 정보가 추가되는 일은 전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사전 조사 없이 순진하게 만든 것도 아니다. 접근성을 고려하는 작업은 모래성인가. 새로운 정보가 파도처럼 밀려오면 언제나 부서질 준비를 해야지만 다시 접근성을 발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겸허한 마음이 무색하게도, 퍽 뿌듯했던 작업이 투명한 장벽을 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실망감이 몰려왔다. 내게 주어진 또 다른 과제는 향료 없는 〈만날 뻔해서 반갑습니다〉를 다시 만드는 일이다. 나에게 불변하는 작업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4
엘리슨 케이퍼(이명훈 옮김),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불구의 미래를 향한 새로운 정치학과 상상력』, 오월의 봄(2023), 426p.

무한 장벽

난점이 명확하다면 하나의 사건이 ‘그저 확신뿐인 100퍼센트의 가능성’보다 중요할 때를 떠올리자. 이러한 가치들은 지속해서 말하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잊혀지는 난관에 놓여 있으니 말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은 10만 명 넘게 동의한 지 한참 지났고, 군형법 92조의 6 추행죄 합헌 선고가 허무맹랑한 동성애에 관한 개꿈 이야기임5을 알고,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계속되는 도시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자칭 ‘동행 매력 특별시’를 주장한다. 분명 101퍼센트, 102퍼센트, 120퍼센트, 1,200퍼센트가 되더라도 누군가는 숫자 오르는 것만 구경할 듯하다. 이러한 참담함 앞에서 숫자가 더는 오르지 않게 하나의 사건을 만드는 일이 중요해 보였다.

제22회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사 졸업 전시 《안녕을 위한 베타테스트》가 학내 선례 없던 배리어프리 관람을 준비했던 것도, 졸업 이후 첫 개인전 《우리의 미래가 협소하지 않기를 바라며》나 《Win in Wings》 등의 전시에서 접근성을 고려한 까닭도, 단지 ‘해야 할 일을-하는’ 사건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술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장벽을 택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유는 장르의 토양이 그런 것이라든지 대체 불가능한 형식이 있다는 주장이든지 다양할 테다. 비슷하게 자연환경을 사회적 배치 탓으로 돌리긴 어렵다는 말이 떠오른다.6 자연환경이 장애인을 봐주지 않는다(심지어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고 하지만, 그 말의 최소 의미는 도시가 장벽을 부숴야 한다는 뜻이 되어 돌아온다. 하지만 ‘동행 매력 특별시’는 장애인이 도시에 적합하지 않다고 밀어내고, 시설에 머물게 하며 이동을 범죄화한다. 자연도 도시도 있을 곳이 아니라는 말에는 결국 악의만 남는다. 이딴 도시에서 소수자의 문화접근성을 포기한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히 예술적인가. 혹은 창작자로서 인간으로서 얼마나 윤리적인가. 그 정당함에 대한 질문들이 ‘하는 일’로 나를 이끌었다면 이제는 ‘하지 않는 일’을 바로 보려 한다.

이때 무한 장벽이 무섭지 않다. 떠나지 않고 남아서 바꾸기7의 가장 큰 이점은 실수만큼 다시 하면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이다. 하다가 막혀 ‘하지 말 것’을 알았을 때, ‘하지 않음’을 반영할 수 있는 것은 남은 자의 축복이다.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이에 따라서 창작물의 구성요소가 바뀌는 것은 그토록 유별난 일도 아니며 사실 꽤 신나는 일이다. 100퍼센트의 가능성마저 자체로 매력적인 이유는 언제든 적확한 모습으로 ‘하나의 완전한 사건’을 만들 수 있는 ‘부서진 상태’로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가능성 또한 무한하여 어떤 장벽도 무섭지 않다.

5
심기용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상근활동가), “헌법재판소가 꾼 동성애 꿈”, 《친구사이 소식지》
6
4번 각주의 책에서 소개한 톰 셰익스피어의 말을 재인용했다. 엘리슨 케이퍼는 “자연환경을 사회적 배치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에 반문하며, 자연환경은 ‘자연’,‘자연스러운’, ‘환경’이라는 말들의 배열이자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점에서 은유적으로도 구축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328p
7
오혜진,「지키고 싶었던 것들」 『디스토피아로부터』, 《씨네21》

참고문헌

1
『가족을 구성할 권리 (혈연과 결혼뿐인 사회에서 새로운 유대를 상상하는 법)』, 김순남, 오월의 봄(2022).
2
『가족을 폐지하다-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세계를 상상하는 법』, 소피 루이스(성원 옮김), 서해문집(2023).
3
『우리도 해보고 있다 우연히, 작게, 문득, 계속』, 이재환, 최선영, 2022 비대면 문화예술교육 콘텐츠 개발 사업 〈만날 사람은 만난다〉 기록집(2022).
4
「접근성 확장, 관객을 실제로 만나는 일에 대하여」, 구자혜, 『웹진 믿미』vol.5, 2022 봄.
5
임승태, ‘앱스’에서의 인터뷰, 『abs』5호, 2023.

글 박민영
친족이나 혼인이 아니더라도 서로 돌보는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소수자의 문화접근성에 관심을 두고 배리어프리 방법론을 탐구하며, 주로 영상을 제작하는 미술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