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민

메갈리아를 기억하는가? 메갈리아는 대한민국에 ‘페미니즘 리부트’2의 바람을 불러온 사이트로, 2015년 여름에 태어났다가 같은 해 겨울에 사망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죽지 않아서 ‘메갈’이라는 형태로 2021년 현재까지 살아남았다. 주된 사용처는 “너 메갈이냐?”와 같은 문장들. 이 지면을 할애해 메갈리아의 활동이나 성향에 대해 되짚어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 일에는 더 적절한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질문에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 ‘메갈’이기를 자처하는 이유에 대해 개인적 혹은 사회적으로 중요했던 사건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하겠다.

2016년, 서울 강남역 인근의 술집 종업원 김성민은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 노래방 화장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앞서 들어온 남성 6명은 그냥 보낸 뒤, 처음으로 들어온 20대 여성을 주방용 식칼로 찔러 살해했다.

2017년,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뒷자리에 앉은 남자가 나를 향해 “저 얼굴이면 나는 얼굴 못 들고 다녀”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근처에는 나와 친구밖에 앉아 있지 않았다. 불쾌해서 자리를 옮겼고 이후 흡연실에서 다시 마주친 그 남자와 그의 친구는 계속 욕설을 하다가 담배꽁초를 우리 쪽 벽에 던지고 나갔다.

2018년, 모바일 게임 ‘소녀전선’에 추가될 예정이었던 캐릭터 ‘K7’의 일러스트레이터 ROD가 트위터에서 페미니즘 관련 트윗을 리트윗 했다는 이유로 해당 캐릭터 및 일러스트 추가가 무기한 연기(2021년 현재까지 추가되지 않았으므로 사실상 취소)되었다.

2019년, 학교에서 모 수업 첫 시간에 남성 교수가 반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곧장 이어서 앞에 앉아 있던 남학생을 가리키며 “내가 보니까 남자가 자기밖에 없어. 자기가 해” 라고 말했다.

2020년, 여성들을 협박해 성 착취 동영상을 촬영하게 하고 텔레그램을 통해 이를 영리 목적으로 판매 및 유포한 ‘N번방’ 운영자 및 공범, 영상 구매자 등 총 66명이 경찰에 검거되었다.

이 시간 동안 적지 않은 수의 여성 커뮤니티가 생겨났다. 예술계에서도 극작, 디자인, 시각 예술, 건축, 영상 등 다양한 분야의 커뮤니티가 활동 중이다. 그 탄생 배경으로 2016년의 #문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성 예술인들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작품의 가치가 폄하당하지 않기를 원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동료 예술가로부터 성적으로 희롱당하거나, 추행당하거나, 혹은 폭행당하는 일이 없기를 원했다. 또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떤 작업이나 일에서 배제되는 일이 없기를 원했고 작품 속에서 납작한 1차원적 캐릭터로 소환되지 않기를 원했다. 이들 커뮤니티 중 일부는 그 이름에 ‘페미니스트(Feminist)’를 포함하는데, 현재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란 ‘메갈’과 거의 동의어로 취급된다.

그렇다. 글의 처음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질문을 하는 이들에게 ‘메갈’은 솎아 내야 할 대상에 대한 멸칭이겠지만, 위와 같은 사건을 일상적으로 보고 듣고 경험하는 여성들에게는 어떤 결집을 가능하게 하는 이름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고민 끝에 2017년과 2019년의 일들을 함께 적은 이유다.) 이제 메갈리아의 폐쇄 시기를 왜 ‘같은 해 겨울’이라는 두루뭉술한 어휘로 서술할 수밖에 없었는지 말하고 싶다. 메갈리아가 언제 폐쇄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을 찾을 수 없어 내 기억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사이트가 사라지고도 6년간 그 이름이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영향력은 대단한데, 역사는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몇 번씩 관련하여 글을 쓰며 메갈리아의 역사를 인용하(지 못하)는 동안 계속 이게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성 극작가 중심의 극단 ‘글과무대(글舞)’, 여성 디자이너 모임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FDSC-Feminist Designer Social Club)’, 여성 건축인 모임 ‘SOFA(Society of Feminist Architects)’, 여성 시각 예술인 모임 ‘루이즈 더 우먼(LTW-Louise The Women)’, 여성 영상인 네트워크 ‘프프프(FFF- Feminist Filmmakers Forever)’. 이들 커뮤니티는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주 활동지로 삼고 있으며 활동 내용도 해당 채널들을 통해 아카이빙 중이다. 즉 이들의 활동은 이상적인 미래를 위한 발걸음일 뿐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과거를 쌓는 역사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금부터 역사를 다시 써 보자.

2017년, 글과무대
글과무대는 인스타그램의 첫 글에서 다음과 같이 목표를 소개한다. “소수자의 목소리의 발견과 표현 그리고 공유, 여성 구성원들의 주체적 작업 추구, 평등하고 즐거운 창조 과정의 실현”. 2017년 여성 극작가들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은 지금까지 <우리는 처음 만났거나 너무 오래 알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테라피>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 지난 10월에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이것은 실존과 생존과 이기에 대한 이야기>(이하 <실생이이>)를 공연했다. <실생이이>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그 안에 던져진 커플들의 관계에 대해 다루는 이야기로, 작가의 말에 따르면 “적나라하게(진주)”, “사랑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최보영)”을 통해 “현실적으로(황정은)” 쓰였다.3 이들의 활동은 대다수가 배우들로 꾸려지는 타 극단과 비교해 극작가들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특색이 있고, 동시에 반드시 여성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여성의 시선으로 보았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2018년,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
‘그 많던 여성 디자이너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대두된 이 질문은 한국 그래픽 디자인계 구성원의 70%가 여성이지만 매체에 드러나거나 연단에 오르는 디자이너는 대부분 남성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나 이 질문에는 그러한 결과를 만든 과정에 대한 고찰이 빠져 있다. 따라서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이하 FDSC)은 이 질문의 ‘어디로’를 ‘어떻게’로 바꾸었다. 여성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그들이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FDSC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서로가 서로의 참조점이 되는 것이다. 롤 모델이자 동료, 서로의 과거이자 미래. FDSC의 홈페이지에서는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찾기’라는 메뉴를 통해 FDSC에 가입되어 있는 디자이너 회원들을 구인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이외에도 회원들에게 현업과 관련된 내·외부 강연에 참여하거나 강연자가 될 기회를 제공하며, 유튜브 등 채널을 통해 관련 콘텐츠를 다수 공유하고 있다.4 FDSC는 공개적으로 출범을 알리고 회원을 모집한 첫 여성 예술인 커뮤니티로, 이후 등장한 다른 커뮤니티들의 참조점이 되었다.

2020년 7월, SOFA
귀여운 소파 로고처럼 SOFA는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성 건축인 간의 건강한 네트워크 형성을 목표로 한다. 이를 통해 수집한 이야기들로 잡지도 발행한다. 2020년 7월 0기 베타 회원을 모집했고 8월에 1기 회원을 모집해 독서, 글쓰기 등 취미 소모임과 건축 실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스터디를 운영했다. 음주 상태에서 건축 평론을 시도하는 ‘음주 글쓰기 모임’ 같은 재미있는 혼종도 있었다. 올해 1월에는 ‘건축학교’를 주제로 SOFA 잡지 창간호를 발간했고, 8월에 ‘주거: 표류기와 머무르기’라는 주제로 2호를 발간했다. 지난 10월에는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건축에 주목해 건축 현장에서 만나는 여러 문제들을 게임의 형태로 나누는 ‘준공마블’ 워크숍을 진행했다. 해당 워크숍은 회원이 아니어도 참석할 수 있었다.5 건축업은 특히 남성 종사자 비율이 높아 타 예술계 업종보다 여성 간 커뮤니티 형성에 어려움이 크다. SOFA는 잡지라는 수단을 통해 반드시 커뮤니티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었다.

2020년 8월, 루이즈 더 우먼
루이즈 더 우먼, 이하 LTW는 2020년 8월 ‘#안전한미술계를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시작으로 9월에 모임에 대해 설명하는 인덕션 데이를 가진 뒤, 10월에 1기 회원을 모집했다. 2021년 현재 2기 회원까지 모집을 완료한 상태이고 다양한 시각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100여 명의 회원들과 함께하고 있다. LTW가 강조하는 것은 코워킹(co-working) 기반의 예술인 커뮤니티 문화로, 커뮤니티를 통한 네트워킹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협업을 커뮤니티 운영의 주목적으로 삼고 있다. 올해 2월에는 1기 회원들과 단체전 《오늘들》을 진행하기도 했다. LTW 홈페이지에서는 가입 회원들의 명단과 약력 및 포트폴리오를 제공한다.6 이 글에서 소개하는 여러 커뮤니티 중 유일하게 비평 및 큐레이팅을 모집 대상으로 명시하며, 홈페이지의 명단 기준으로 여섯 명의 큐레이터 회원이 존재한다. 홈페이지를 통한 활동 아카이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커뮤니티 운영 목적에 맞게 다른 여성 커뮤니티와의 밋업(meet up)도 비정기적으로 진행한다. 이미 소개한 SOFA, 이제 소개할 프프프와도 밋업을 진행한 바 있다.

2020년 10월, 프프프
“인스타 스토리에 여성 영상인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올렸는데, 지인들이 “네가 만들어”라고 하는 거예요.”7 Feminist Filmmakers Forever, 줄여서 FFF인데 읽기 어려우니까 프프프. 운영진들은 영화 현장에서 서로를 처음 만났고, 남성 중심의 업계 생태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서로 밀어주고 또 끌어주기 위해 여성 영상인 네트워크 프프프를 만들었다. 업계에 흩어져 있는 여성들을 모아 연대하고, 실무와 관련된 지식은 서로 나누며 배우고, 최종적으로는 서로의 작업에 참여해 함께 창작한다.8 지난 9월에는 여성가족부와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을 통해 첫 포럼 ‘DROP THE FRAME’을 주최했다.9 영상인 네트워크답게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며, 관련 영상이 업로드되어 있다. 슬로건으로 내거는 것은 “여성 영상인들의 먹거리 보전 프로젝트”10. 토론회를 대신해 ‘토로회’라는 이름의 행사를 진행하는데 친목 도모및업계내차별사례나누기가주된내용이다.11프프프는 소개한 커뮤니티 중 가장 회원수가 많은데, 별도 인원 제한을 두고 모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에는 남성보다 더 많은데도 막상 현장에 나가면 보기 어려워지는 여성 영상인들 간의 교류를 향한 의지의 발현이다.

그리고 2021년
솔직하게 말해 여성 커뮤니티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다소 의구심이 든다. 여성이라는 조건이 구성원 서로의 안전을 무조건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주장하는 대로 단지 ‘여성’이라는 성별 외에도 너무나 많은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거기에 ‘예술’이 추가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모두 균등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호명했듯이 ‘우리’가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름도 다르고 분야도 다르지만 각 커뮤니티의 결성은 단지 그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커뮤니티의 탄생을 촉발시키는 기폭제가 되었고, 되고 있다. FDSC에서 제공하는 ‘FDSC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의 첫 항목은 이렇게 시작한다.
“다름을 인지하고 존중해주세요 - 우리는 서로 다른 배경과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견 불일치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12
이렇게 다름을 인정하며 차이가 차별의 근거가 되지 않도록 하는 미래를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들의 활동을 지지한다.

문화 연구를 표방하는 수업에서조차 교수가 메갈을 일베의 성별 반전 버전 정도로 취급하고 공통 필수로 지정된 젠더연습에서 메갈리아는 언급도 된 적이 없다. 그때 메갈리아에 있었던 여자들, 메갈리아를 지켜본 여자들, 그래서 메갈리아에 조금이라도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여자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모두 이상한 여자가 된다. 극단적인 성향을 가진 여자,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말하는 여자, 성별 갈등을 일으키는 여자. 거듭 말하지만 이 글에서 메갈리아에 대해 되짚어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단지 나는 사람들이 어떤 여론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세상을 보기를 원한다. 스스로를 메갈이라고,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여자들을 이상하다고 낙인찍기 전에 그들이 지닌 이상에 대해서도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이 글은 비슷한 이상을 가진 사람으로서 쓴, 그것의 극히 일부다. 뭉뚱그려진 ‘여자들’을 각각의 여자로, 한 명의 인간으로 다시 바라보는 일은 여자라는 성별에 얽힌 수많은 그물이 모두 걷힌 다음에야 가능할 것이다.

서연재
1 조지 큐커의 <여자들>(1939). 단 한 명의 남성도 등장하지 않고 여성들만, 그것도 무려 100명이나 등장함에도 이 영화는 흔히 알려진 벡델 테스트(이름을 가진 여자가 두 명 이상 등장하는가? 이들이 서로 대화하는가? 그 대화의 내용이 남자에 대한 것이 아닌 다른 것인가?)를 통과하지 못한다. 이름을 가진 여자가 두 명 이상 등장하며 서로 대화하지만, 그들의 대화 내용이 전부 남성 파트너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2 기존의 페미니즘 문화 운동과 최근 일어난 운동 사이에 존재하는 단절과 접속의 지점들을 의식하기 위해 영화에서 용어를 빌려 와 고안된 표현으로, 영화에서 ‘리부트(reboot)’란 기존 시리즈의 연속성을 버리고 몇몇 기본적인 설정들을 유지하면서 작품 세계를 완전히 새롭게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손희정, 「페미니즘 리부트」, 『문화과학』, 통권 제83호, 2015, 14~15쪽 참고)
3 글과무대 인스타그램 참고. https://www.instagram.com/geulmoo/
4 FDSC 홈페이지 ‘FDSC 더 자세히 알아보기’ 참고. https://fdsc.kr/notice/321
5 SOFA 인스타그램 참고. https://www.instagram.com/sofa.seoul/
6 LTW 홈페이지 참고. https://louisethewomen.org/
7 김가은, 「Feminist Filmmakers Forever; 여성 영상인 네트워크 프프프 운영진 인터뷰」,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 2020년 11월 18일. http://news.karts.ac.kr/?p=8414
8 버터나이프크루의 프프프 프로젝트 소개 참고. https://2020.butterknifecrew.kr/projects/17
9 프프프 인스타그램 참고. https://www.instagram.com/fff.prj/
10 김가은, 「Feminist Filmmakers Forever; 여성 영상인 네트워크 프프프 운영진 인터뷰」.
11 “여성 영상인들도 생각과 경험을 나누면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인식하는 게 가장 먼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토론’을 하는 것보다는 가벼운 느낌으로 자신의 신세 한탄을 겸한 ‘토로’를 나눌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FFF x LOUISE THE WOMEN 밋업 기록에서 인용. https://www.notion.so/WCM-FFF-x-LOUISE- THE-WOMEN-ffacda88e52d4ec18da9dc29d75 5fd86
12 FDSC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에서 인용. https://www.notion.so/fdsc/FDSC-v-1-0-2808faf4a4304c31ad472a48b80b62c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