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민

저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루프(Loop)물’ 혹은 ‘전생(轉生)물’이라고 불리는 장르를 특히나 좋아하는 편입니다. 대표적인 애니메이션으로는 <슈타인즈 게이트>, <RE: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 <나만이 없는 거리> 등이 있습니다. 이 장르의 공통된 서사적 특징은 현재 큰 고난을 겪고 있는 주인공이 반복적으로 과거로 되돌아가 그 고난이 시작되었던 원인과 마주하고, 그것을 해결함으로써 미래의 더 큰 재앙을 막는 것입니다.

제가 이 장르에 매료된 이유는 저의 본업인 다큐멘터리 영화와의 관계성 때문입니다. 사건의 원인, 혹은 어떤 인물의 본질을 알아내기 위해서 과거로 향하는 것은 루프물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의 공통점입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들여다본 과거를 통해 사유 혹은 성찰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루프물처럼 주인공이 직접 그 과거를 물리적으로 수정하여 미래까지 바꿔 버리는 일 따위는 현실에선 불가능합니다. 적어도 제가 유해 발굴에 참여하기 전까진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한 달 전,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에 있는 유해 매장지에서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직후, 대전 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재소자 약 7000명이 이곳 곤룡골에 끌려와 학살당했습니다. 재소자 중 상당수는 좌익 활동으로 붙잡힌 사상범, 제주 4.3항쟁 당시 군인과 경찰에 붙잡혀 육지로 끌려온 제주 시민, 여순 사건을 일으킨 국방경비대원 등이 다수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사진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이 무려 70년 가까운 시간을 ‘존재하지 않는 자’로 있을 수 있던 것일까요. 한국 전쟁 당시 죽임을 당하거나 실종된 민간인은 10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정도 숫자라면 적어도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 이웃 중에서 피해 생존자, 혹은 유족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유해를 찾아내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지표면으로부터 약 60cm 정도 흙을 걷어 내자 아직 부식되지 않은 정강이뼈와 허벅지 뼈들이 어지럽게 뒤섞여 뭉텅이로 드러났습니다. 불과 60cm입니다. ‘누군가 대한민국의 과거로 돌아가 사람들의 기억을 일시에 지워 버리는 스위치를 눌렀다’는 3류 루프물 정도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집단 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전광역시 동구 낭월동 13 곤룡골 유해 발굴 현장.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 불린다.

발굴 현장에는 다양한 시민들이 저마다 조금씩 힘을 보태고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성미산학교 아이들의 방문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호미와 대나무 칼을 들고 직접 발굴에 참여했고, 흙을 나르거나 현장을 보수하는 중노동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아이들은 이곳에서 목숨을 달리한 200여 명의 이름을 차례로 읊으며 기도를 올렸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더욱 놀랐던 것은, 아이들이 1950년 한국 전쟁 학살 현장을 바라보며 2014년의 세월호를 호명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국 전쟁 민간인 학살과 세월호 참사는 분명 원인과 내용 모두 다른 사건입니다. 그러나 두 사건이 한국 사회에서 은폐되고, 망각을 강요받으며, 금단의 영역으로 터부시되어 가는 과정은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비단 두 사건뿐일까요. 어쩌면 대한민국 현대사는 60cm 정도의 얇은 지층 아래 은폐된, 수많은 사건과 주검들로 쌓아 올린 기만의 역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슈타인즈 게이트>의 주인공 오카베 린타로는 과거로 돌아가 사건의 진실을 대면하기 전 이렇게 외칩니다. “엘 프사이 콩그루.” 얼핏 들으면 근사해 보이는 말이지만 사실 별 뜻은 없습니다. 과거와 직면해야 하는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주인공의 자기 최면에 가까운 말입니다. 저도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두렵고 떨리는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마음의 용기를 주는 주문 하나 정도 만들어 볼까 합니다. 당신의 주문은 무엇인가요?

허철녕(다큐멘터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