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이자 KBS국악대상 판소리상, 명창박록주기념 전국국악대전 판소리 일반부 국무총리상, 임방울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 등을 수상한 굵직한 이력의 명창 채수정 교수를 만났다. 넘치는 아이디어로 밤에 잠도 오지 않을 정도의 열정을 지닌 그는 한바탕 소리를 하듯 모두를 우리 음악의 세계로 끌어당기는 이야기꾼이었다. 판소리와 사랑에 빠지게 된 만남부터 단절되었던 소리의 복원 작업, 국악 교육과 연구에 관한 열정과 제도적 뒷받침에 대한 깊은 고민까지, 이제 그 이야기를 풀어내 보려 한다.

교수님께서 판소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국악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판소리를 시작했어요. 원래는 가야금 전공을 지망했는데, 학교 교가를 열심히 부르는 저를 보고 선생님이 “너는 판소리다.”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중학교 때까지는 서양음악 교육을 받았고 합창단을 하면서 벨칸토 창법으로 소리를 냈는데, 판소리는 이와 다르게 통성으로 질러서 소리 내는 방식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당시에 안숙선 선생님이 학교에 나오셔서 농부가 민요를 가르쳐 주셨을 때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지금까지도 좋은 소리를 들으면 그때 그 느낌이 다시 생각나곤 합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 고향이 전라남도 진도예요. 고모가 다섯 분이 계신데 명절이면 모여서 육자배기, 진도 아리랑을 부르셨어요. 어릴 적에는 ‘고모들 노래’라고만 생각해서 제가 이 전통의 소리를 하는 직업인이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지만, 그 노래들이 제게는 ‘조기 교육’이 되어 처음 부를 때부터 판소리가 어색하지 않았어요.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판소리만의 힘 또는 매력이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판소리는 사랑 이야기예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를 판소리의 5바탕이라 하는데, 이 이야기들을 보면 인생의 희로애락과 삼강오륜이 다 노랫말에 들어 있잖아요. 인생의 이야기와 자연의 이야기가 사랑이라는 가치로 표현되어 있어요. 또 판소리는 목소리로 그림을 그리는데 그걸 ‘음화’라고 해요.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다 소리로 표현하죠. 인간의 목소리로 가사를 부르는 것을 ‘노래’라고 한다면 ‘소리’는 자연이에요.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 이제 우주의 소리까지 불러야 될지도 몰라요. 이 모든것이 포함된 판소리에는 인류와 자연의 가치가 담겨 있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또 발성에서 머리나 가슴을 안쓰고 단전에서 밀고 나오는 호흡으로 하기 때문에 동굴 속에서도, 폭포수 밑에서도 소리를 하죠. 자연에서 연마하여 득음의 소리를 얻어 내는 것이 판소리의 매력 이에요. 이렇게 문학적인 가치와 음악적인 가치가 맞아떨어지는 거죠.

올해 9월에 진행하신 판소리 렉처 콘서트 <동편제 박록주바디 심청가 복원 발표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오래된 테이프에 녹음된 음원을 바탕으로 소리를 복원하는 오랜 과정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바디’는 어떤 사람의 이름을 단 유파(流派)를 일컫는 말로, 박록주 명창의 소리를 이어받는 것을 ‘박록주바디’라고 합니다. 동편제라는 모둠 안에서 박록주 선생님이 개발하고 정리한 심청가인 거죠. 저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박송희 선생님, 그 위의 선생님이 박록주 선생님이시니 제게는 할머니와 같은 존재세요. 1세대 여류 명창으로, 춘향가와 흥보가로 국가 무형문화재가 되신 분이고 ‘판소리 보존회’나 ‘여성국악동호회’라는 큰 단체를 이끌었던 거물이시고요.
그런데 박록주 선생님이 심청가는 전승을 안하시고 집에서 혼자 불러 녹음만 해 놓고 돌아가신 거예요. 국악음반박물관의 노재명 선생님이 20여년 전 이 녹음을 제게 처음 들려주셨어요. 그때는 제가 이미 서편제 심청가를 공부해 놓은 상태였고, 75세에 돌아가신 선생님께서 72세 때 부르신 노래다 보니 큰 매력은 못 느꼈죠. 귀한 자료이니 먼저 가사와 사설을 정리해 『박록주·박송희 창본집』을 냈는데, 그 이후로 이 소리가 문득문득 계속 생각났어요. 그래서 틀어보면 조금 좋고, 또 틀어 보니 더 좋고, 이래서 ‘박록주 선생님이 이걸 유언처럼 남겨 놓으신 거구나’ 했죠. 그런데 이 테이프가 박물관에 들어가 버리면 끝나는 거예요. 유형의 것은 박물관에 전시되면 빛을 보기도 하지만 무형의 것이 박물관에 들어가면 죽는 거거든요. 소리는 우리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수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유기체적인 물질이기 때문에요. 선생님이 녹음을 해 두신 건 누군가 이걸 듣고 공부를 하라는 의미에서 그러셨던 것 같다는 깨달음이 들었어요. 판소리 완창을 발표한다는 건 자기가 공부한 것을 연마해서 결실을 드러내는 건데요. 이전까지 선생님께 직접 듣고 배우던 사람이 혼자서 녹음기를 듣고, 계속 다시 듣고 늘려 듣고 하려니 연습 과정은 힘들었어요. 그나마 같은 계보의 소리니까 따라 할 수는 있었지만 제 자신이 무능하게 느껴졌어요. 올해 공연날을 잡고 나서는 강원도 치악산에 들어가서 여름 내내 녹음기 선생님을 모시고 공부했고, 그렇게 완창을 하게 되었죠.

명창의 소리를, 그리고 전통을 ‘복원’하는 작업의 의미에 관한 교수님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동편제 심청가는 전승되지 않아 없어졌었어요. 이번 박록주 선생님의 소리를 복원하며 단절되었던 소리를 제가 지키게 된 거죠. 처음에는 먼저 배워 둔 서편제 심청가를 지우고 돌아가신 선생님 소리를 부르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학교에 와서 가르치면서 본질과 가치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됐고 용기가 났어요. 공부를 하면서 동편제 어법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되었고, 이걸 잘 가꿔서 채수정의 심청가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또 다른 소망이 생기더라고요. 앞으로 박록주‘제’ 채수정‘바디’ 심청가를 만들어서 가르칠 수 있다면 없어진 유파가 살아나는, 또 새로운 유파를 형성하는 창작의 의미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계보를 잇고 계신 ‘동편제’의 특징, 특유의 음악어법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동편제는 섬진강을 기준으로 동쪽인 전라북도 순창, 남원 지역의 소리인데, 이쪽이 산세가 웅장해서 말도 세게하고 힘있는 소리를 좋아해요. 처음부터 소리를 크게 내고 끝을 탁 끊어 내죠. 그리고 서편제는 섬진강 서쪽으로 전라남도 화순, 광주, 진도쪽 소리인데 부드럽고 장식이 많고 박을 더 자유롭게 넘나들어요. 동편제를 역사적으로 앞선 소리로 보는데요,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잃은 설움이 많았으니 감정을 건드리는 슬픈 느낌의 서편제 소리가 더 유행하게 된 거죠. 이렇듯 동편제와 서편제는 발성의 차이, 추구하는 미적 취향과 표현의 차이가 있어요. 동편제 소리는 분명하고 강하기 때문에 기운이 없으면 못 버티고, 십 리 밖까지 들리게끔 체력이 타고나야 돼요. 서편제가 감정을 건드리니 저도 가끔은 거기에 푹 빠지지만, 동편제를 불러 보면 강하고 다부진 그 느낌이 마음을 정갈하게 하더라고요. 동편제는 감정을 다 표현하지 않지만 거기에 내면이 함축되어 있는 거예요. 사실 슬픔을 자아내야 되는 심청가에서는 동편제의 방식이 단점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어떤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심청가는 슬픔을 자아내는 게 아니라 슬픔을 승화시킨 노래다. 그래서 동편제가 살아나야 된다.” 담담하게 불러서 듣는 사람이 자신의 슬픔을 그 노래에 넣을 수 있는 해석의 여지를 주는 거죠. 그 말을 들었을 때 동편제 심청가가 이런 미적 가치가 있었다는 깨달음이 왔어요. 또 요즘은 슬픈 감정의 노래보다도 동편제가 오히려 더 트렌드가 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특별히 좋아하시는 판소리 대목이 있으실까요?
저는 판소리 5바탕 중 적벽가의 대목 <새타령>을 특히 좋아하는데, 산에 가서 노래하려고 하면 이 노래가 제일 먼저 나와요. 적벽가는 중국의 삼국지를 바탕으로 하지만, 우리 민중이 이해할 만한 내용들과 음악적 해석을 넣으면서 판소리라는 예술로서는 우리 것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죠. <새타령>은 적벽강에서 죽은 백만 군사들이 조조를 원망하는 새가 되어서 그 한을 뿜어내는 노래예요. ‘산천은 험준하고 수목은 총잡하여...’로 시작해 중머리 장단으로 쭉 부르는데 노랫말을 보면 새마다 다 사정이 있어요. 병을 고쳐주고 싶어하는 새, 가난을 극복하려고 하는 새도 있고요. 음악적으로는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들어가는데 새마다 각기 다른 소리를 내야 되고, 그걸 표현하면서 자연에 놓인 내가 마치 적벽강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제 생각에는 그 많은 새는 결국 인류의 아픔을 표현하는 것 같아요. 지금 젊은이들도 군대 가잖아요. 지금도 자식을 훈련 보낸 엄마들 다 울어요. 군인들은 부모님이 그리워서, 애인이 그리워서 울고, 만약 전쟁이 난다면 죽음 앞에 서있는 똑같은 상황인거죠. 동시대에도 해석될 수 있는 그런 이야기고, 그 아픔들을 노래로 승화시키는 정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교수님께서는 한국음악과 국어국문학을 함께 전공하셨는데요, 문학을 깊이 공부하신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판소리는 노래이고 음악이지만, 사설이 없이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문학의 가치가 있어요. 게다가 가사의 짜임은 하나만 있는게 아니라 부르는 사람마다 다르거든요. 그리고 한복을 차려입고 부채를 들고, 고수의 북 장단에 맞추어 공연하는 연극적인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판소리는 문학, 음악, 연극 세 가지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종합 예술이라고 보는 것이죠. 저는 음악으로 판소리를 처음 접했기 때문에, 성악이자 공연의 측면까지는 적극적으로 공부했지만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대학 다닐 때까지도 잘 몰랐어요. 그런데 음악으로 석사 과정 중 이었던 어느 날, 우리 선생님 밑으로 국문학과 교수님들 열 분이 오셔서 판소리를 배우시게 된 거예요. 판소리는 고전문학 중 소설에 해당하는데, 이 노랫말이 문학으로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당신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좋았어요. 그 선생님들 따라서 판소리학회도 가고 학회 발표도 해 보고, 강의도 듣고 하다가 국문학을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국문학과에 가 보니 거기서는 음악을 모르는 반쪽짜리 판소리 공부를 하고, 우리는 문학을 모르는 반쪽짜리 판소리 공부를 하고 있는 거예요. 문학과 음악이 만나야만 제대로 된 판소리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선택을 잘 했다고 생각해요. 그때 국문학 공부를 했던 게 저에게는 이렇게 든든한 무기가 될 수가 없어요. 지금 우리 학교에서는 노랫말 연구, 성악 이론 연구 등 텍스트 연구를 중요시하다 보니까 저는 늦게 알았지만 지금 학생들은 배우면서부터 ‘노랫말을 알고 해야 한다, 모르고 부르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빨리 오는 거예요. 또 음악, 문학, 연극 등 장르간의 교섭이 중요하고, 얼마나 소통을 해야 훌륭한 명창이 되는지를 알아가는 거죠. 저는 학생들에게 그런 면을 강조하고, 책을 많이 읽게 하고, 또 판소리학회나 음악학회나 다 교류 할 수 있게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완창 판소리 <채수정의 흥보가-박록주제> (2021) ©국립극장

최근 대중음악과 융합하는 국악 소리꾼들의 변신, 크로스오버의 시도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판소리의 동시대적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현재 ‘전통 성악의 르네상스’가 다시 왔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활발한 크로스오버 흐름에 대해서는 ‘판소리를 응용했다’는 식으로 이해하지 않고요, 판소리로 훈련된 사람들이 뮤지컬이든 오페라든 대중가요든 어떤 장르라도 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예술원의 정신이 ‘법고창신(法古創新)’, ‘온고지신(溫故知新)’이잖아요. 옛것을 이어서 새롭게 한다는 교육이념이 처음부터 잘 발휘되어 거기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봐요. 토리스, 절대가인, 정초롱, 김나니, 거꾸로프로젝트, 이봉근 등 전통예술원 출신의 팀들이 많아요. 저는 이런 활동은 많이 할수록 좋고 진지하게 고민해서 하나씩 꺼내면 좋다고 생각해요.
저 자신도 판소리의 대중화에 관련한 노력을 해왔어요. 한 20년 전에는 학고재 앞에서 매주일요일 10시부터 12시까지 ‘인사동 거리소리판’을 했는데, 장판 50개를 바닥에 두면 사람들이 거기에 앉아서 들어요. 지금으로 말하면 버스킹이죠. 당시에 ‘현대 속의 판소리가 대중화되지 않으면 죽는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또 대학원 때는 MBC ‘좋은아침 우리가락’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송작가를 6년 정도 하면서 어떻게 쉽게 우리 국악을 표현할지 고민했었죠. 새벽 5시 방송이라 골프 치는 사람들만 듣더라고요. 속이 터지니까 ‘채수정의 짤막 강의 국악교실’도 만들고, 별거 다 했어요. 그 정신이 지금 발현되고 있는 것 같아요. 소리꾼들이 무대를 휘어 잡는게 되고 있잖아요. 저는 그걸 아주 긍정적으로 봐요.

그럼에도 전통 판소리 본연의 가치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전통 판소리는 ‘득음’을 위한 긴 수련이 필요한 숭고한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 밑에서 수련하는데 20년, 득음을 위해 혼자 공부하는 10년, 그 다음에는 우리가 ‘풀어먹는다’고 하는 무대 생활 10년, 나머지는 제자를 가르쳐 이어 가는 10년. 그렇게 판소리 50년 인생이 정해져 있어요. 요새는 조기교육을 하니까 처음 공부하는 20년은 어떻게 채워지는데, ‘혼자만의 10년’을 공부할 기회가 없어요. 20대 때 이미 판에 서야 되고, 새로운 팀 만들어 활동해야 되니 득음을 위해 목이 쉬는 과정을 기다릴 수가 없죠. 산에서 수련하는 ‘100일 공부’는 내 목을 파괴하고 그 기운을 얻기 위한 거예요. 폭포수에서 뚫어져라, 동굴 속에서 자기 온 정신을 쏟아서, 목이 쉰 상태에서도 계속 노래를 하는데 목에 힘만 막 들어가고 소리가 안나와요. 그런데 그때 공력이 붙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데 뱃속에 힘이 들어가고 어느순간부터 조금씩 소리가 나요. 그렇게 수련해야 되는데, 세션들에게 맞춰서 노래 부르려면 아름다운 소리, 높은 소리, 악기와 조화를 이뤄야 되니까 그 수련을 못 해요. 젊어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건 좋지만 또 누군가는 전통을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죠. 그렇지 않으면 우리 전통을 우리가 지키지 못하고 외국의 인류학자들이 정리해 놓은 자료를 보며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어요.
학교에서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이 조금씩 성향이 달라요. 전통에 묶여서 할 수있는 정신과 가치를 가진 친구들이 있고, 새로운 것에 음악적인 감각이 있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마음속으로 구분을 지어 줘요. ‘너는 여기서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서 소통하는 걸로 가자.’ ‘너는 좀 힘들어도 전통 판소리를 지켜라.’ 여러 장르의 음악을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고, 전통 소리 지키는 것도 중요하죠. 그런 젊은이들을 응원하고 싶고, 경제적으로도 지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판소리의 첫 호흡, 단가를 부르다』 (2018)

판소리의 현재 교육 시스템에 대해, 그 안에서 한예종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국악 내에서도 ‘성악’이라는 말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국악 전공 내에서 기악, 성악이 나눠지는 거죠. 지금은 서양의 가곡, 오페라 부르는 사람들을 ‘성악가’라 하지 우리는 판소리든 가야금이든 그냥 ‘국악인’이에요. 옛날 음반을 들어 보면 우리 국악에도 성악이라는 말을 썼는데 그 말을 잃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전통예술원 성악과를 만들어 그 안에 판소리 전공, 민요 전공, 병창 전공, 정가 전공이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전통예술원에는 성악을 공부 할 수 있는 저변이 갖추어져 이제 성악과로 독립할 수 있는 학생과 커리큘럼이 모두 조화를 이루었어요. 한예종은 전통 성악의 르네상스를 이루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학교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전통과 창작, 새로움을 추구하는 교육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전통예술의 판을, 덩어리를 키우는 거죠.

단가의 체계적 학습을 위한 교본 『판소리의 첫 호흡, 단가를 부르다』 (2018)를 출간하셨습니다. 단가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교본을 출간하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제가 교본을 만들게 된 건 소리를 배울수 있는 체계적인 자료와 교육 시스템이 거의 없기 때문이에요. 학생들이 소리를 배울 때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공책에다 적어서 다녀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판소리의 입문의 소리, 훈련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는 단가의 교본을 먼저 만들었죠. 있는 자료들을 한데 모아 묶고 새로 써야하는 부분은 새로 써서, 제가 초등학생부터 일반인까지 가르쳐 봤을 때 필요한 모든 수단을 다 넣었어요. 저는 실질적으로 공부를 하려면 사설, 사설 해석, 현대어에 맞는 풀이, 정간보, 오선보까지 총체적으로 책에 들어가야 창본으로서의 기능을 한다고 봐요. 단가 교본에는 여기에 외국인들이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영문까지 넣었어요. 앞으로 판소리의 5바탕책을 내기 위한 기본 자료들은 정리해 뒀어요. 심청가는 악보와 정간보, 제가 복원하면서 썼던 것들을 책으로 출판만 하면 될 정도로 모아 뒀고요. 적벽가, 춘향가등 5바탕을 다 정리 할 생각이에요. 그래서 판소리 하는 사람들이 교재를 들고 공부를 하는 제대로 된 학습 환경, 교육 여건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진도에 가서 직접 굿을 배우셨는데, 판소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연구 자료를 보면 판소리 기원설이 5개 이상 되는데 그 첫 번째가 ‘무가기원론’이고, 그게 전라도에서 ‘당골래’라고 불리는 예인들이 연행하는 ‘씻김굿’에서 판소리 기원을 찾는 거예요. 그래서 녹음기, 비디오, 책을 들고 진도에 실제 굿 하시는 무당 선생님을 찾아간 거예요. 진도 굿은 집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세습무’인데, 제자도 없고 가족 세 분이서 굿을 하러 다니세요. 저는 선생님이 부르시는 걸 녹음하고 녹화해서 집에와서 가사를 막 적으면서 공부하는데 뭔 말인지도 몰라요. 그런데 어느 날 나보고 굿을 하라고 하셔서 했어요. 그랬더니 제가 무당이 됐다, 신들렸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죠.(웃음) 그때는 판소리 하는 사람이 굿을 하는걸 무시하고 금기시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는지 학생들이 저한테 씻김굿을 배운다고 줄을 서요.이제 제가 할 일은 씻김굿을 잘 연구하고 정리해서 그 정신을 전수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성경, 불경처럼 무가사설이라는 게 창조론부터 다 있는 경전과 같거든요. ‘자시에 승천하니 하늘이 생기시고...’ 무속학 하시는 분들은 또 이런 걸 무속 풀이를 하죠. 힘들어서 무속학까지는 못 했어요. 저는 학생들한테 ‘나는 포기했는데 너희들은 찾아가서 하면 할 수 있으니까 해 봐라.’ 해요.

엄청난 열정으로 연구와 교육을 함께하고 계신데요.
이론 없이 실기는 안돼요. 또 실기 없이 이론을 했을때는 무시를 당해요. 내가 노래를 잘해야 논문을 쓰거나 가르쳤을 때 ‘명창이 굿도 연구했구나’ 하죠. ‘소리를 못하는데 무슨 굿이냐’ 하면 안되니까, 그걸 다 잡으려니 힘들죠. 그리고 다른 장르와의 교섭, 융복합은 꼭 해야 해요. 지금 영상, 미디 이런 것 많이 활용 하잖아요. 저도 그게 맞다고 봐요. 전통을 지켜가되 다른 장르와의 교섭을 많이 해서 좋은 소리가 더 멋지게 들리게 하는것. 그래서 저는 그런 걸 활용 할 만큼 우리도 노래 수준이 자꾸 올라가야 한다, 그건 결국 ‘득음’이라고 생각해요. 득음하는 명창이 없으면 판소리가 죽어요.

<채수정의 판소리 렉처 콘서트-동편제 박록주바디 심청가 복원 발표회> (2021) ©미향아트컴퍼니

어떤 국악인, 어떤 선생님으로 남고 싶으신가요?
저도 소리꾼으로서 평생 득음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어요. 대통령상을 받는다든지 문화재가 되면 ‘명창’이다, ‘국창’이다 하는 호칭을 얻지만 ‘득음한 명창’이라는 건 따로 기준이 없어요. 동시대에는 참 찾기 어렵죠. 득음은 ‘득도’와 같아요. 득도의 경지에 득음이라는 말을 견준 것은 음을 이루는 것이 도를 이루는 것과 같은 자리라는 거죠. 평생 불렀는데 죽기 전에는 언제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또 제가 소리 연습만 하고 있을 수는 없죠. 녹음도 하고 책도 쓰고 가르치기도 해야 하니까요. 시간이 모자라서 자는 시간도 아까워요. 또 열심히 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제가 줄 수 있는 걸 다 쏟아주고 싶고요. 저는학생때 전임 교수님이 안 계셨어요. 지금도 우리나라에 판소리 전공 교수님이 있는 곳이 전남대, 중앙대, 한예종, 한양대로 4군데예요. 얼마나 귀해요. 특별히 판소리를 위한 이론 시간도 잘 없고요. 판소리를 학문으로서 자리잡게 하는 것도 제가 해야될 일이고, 이 정신이 노래로 살아나게 하는 것도 제가 교육해야 하는 일이에요. 사명감이 크죠. 또 이제는 판소리계에서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하고, 제가 소리만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제도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상을 받은 사람들이 흩어져서 힘없이 존재하는 것보다는 이들을 모을 수 있는 제도와 물질적, 정신적 지원이 있어야 하잖아요.

교수님이 현재 준비 중이신 작업이나 무대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작년부터 올해까지 큰 공연을 세 번 하고 나니 올해 제가 체력이 많이 떨어졌어요. 2학기에는 공연을 조금 쉬면서 앞서 말씀 드렸던 창본을 내기 위한 작업과 음악 창작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예술한류 사업으로 지원받아 작곡가 선생님들께 곡을 받으려고 약속해 둔 상태예요.
저는 좀 쉬운 노래를 많이 만들고 싶어요. 판소리의 어법을 담아 판소리의 맛이 나되 지금의 노랫말로 1절, 2절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을요.

한예종 전통예술원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고 기대 하시는지요?
지금도 외국인 학생이 한예종 전통예술원에 와 있는데요. 저는 한예종이 ‘K-판소리’의 메카가 되어 세계인이 판소리를 배우러 오고, 학위를 받아가서 또 그걸 각국에서 가르치게 될 미래를 꿈 꿔요. 전통예술원은 글로벌한 개념으로 세계인들이 우리 것을 배우러 오게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자칭 판소리 ‘전도사’이자 ‘광신도’라고 할 만큼 우리 음악의 가치에 대한 확신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던 채수정 명창과의 대화는 긴 여운을 남겼다. 특히 지면에 상세히 옮기지는 못했지만 득음을 위한 자연 속에서의 ‘100일 공부’ 경험담, 다른 무엇보다도 소리 자체에 집중한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이다. 우리 판소리가 ‘전통 성악의 르네상스’를 넘어 더깊은 득음의 경지로, 더 넓은 세계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해 본다.

글 김명진 사진 박정우 영상 이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