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異常한 일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알록달록 단풍색이 사라지고 거무스름한 잎이 쪼그라진 채 말라 갑니다. 매년 어김없던 수능 추위도 사라졌습니다. 포근하고 정겨운 눈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기대 이상以上의 일들도 벌어집니다. 한국 드라마가 OTT에 개봉만 하면 실시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출연한 아누팜 트리파티 배우는 드라마 개봉 후 417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월드 스타가 되었습니다. K-콘텐츠라는 이름으로 소환된 이전의 작품들이 역주행한다는 뉴스가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단계적 일상 회복에 들어선 지금 우리는 낯설고 이상했던, 그러나 아름다운 예술의 이상理想적인 모습을 어떻게 그려 내고 있을까요? 다음을 향한 시도는 누가, 어디서, 어떻게 쌓아 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라’로 들어갑니다. 한국 사회의 면면을 담은 재기발랄한 영상들이 속속 스크린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습니다. MZ세대들의 취업과 출산, 젠더 이슈 영화부터 한국 전쟁기 민간인 학살이라는 은폐된 역사와 유명 아이돌의 몰락과 그 ‘덕후’를 다룬 다큐멘터리까지 다양합니다. 팬데믹으로 타격이 컸던 전시와 공연은 그 자리에 정지하지 않고 계속 탈출하고 도피하며, 그 장으로부터 벗어나 예술의 대안적 미래를 고민하며 동시대 예술의 지형을 매끈하게 다듬어 가고 있습니다. 또한 무용과 영상의 움직임이 배가되며 전혀 다른 움직임을 파생해 내는 댄스 필름의 진화에 주목합니다. 몸짓이 충돌, 분절, 파편화된 움직임으로 편집되기도 하지만 화면에 우연히 담긴 움직임들이 영상의 여백을 채우면서 새로운 무대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차이가 차별의 근거가 되지 않는 미래를 만들기 위한 여성 예술인 커뮤니티들의 활약과 연대를 더합니다. 극작, 영상, 디자인, 건축, 시각 예술 등 각 분야에 걸친 그물을 걷어 내기 위한 물결들이 곳곳에서 일렁이고 있습니다.

명창의 단절된 소리를 복원하며 없어진 유파를 살리고, 새로운 유파를 형성하겠다는 당당한 소리꾼 채수정 교수는 판소리의 대중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전통과 창작의 연결 고리로서 체계적 교육 시스템,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고픈 그녀의 득음 이야기가 시원한 동편제 목소리로 펼쳐집니다. 이어 만나는 작곡가 최종윤 교수는 자신의 주장과 자기 객관화를 체화시켜 삶과 음악에 녹여 내는 예술가로서 또 다른 울림을 전합니다. 작품을 대하는 기본 자세나 작품 안에서 끊임없이 나아가고 싶다는 욕심을 또박또박 전하는 그에게서 웅장하면서도 뜨거운 넘버, 부드러우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넘버가 공존하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최근 개봉한 열사 전태일의 이미지를 우리 옆의 흔한 청년 <태일이>로 따뜻하게 그려 낸 홍준표 감독은 제작 전 과정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했습니다. 3년이란 시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철학을 지키며 청년들을 위한 메시지를 그려 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꼭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국내외 무대에서 호평 받으며 진정한 음악가, 연주자로 올곧게 성장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첼리스트 한재민과의 만남은 ‘10대’와 ‘대학생’의 타이틀을 동시에 가진 영재의 남다름을 ‘찐’으로 보여 줍니다. 모두가 가지 않은 길을 가되 먼 과거로부터 배우고 싶다며 음악의 밑그림을 충실히 그리고 있는 둘의 속 깊은 대화를 같이 듣고 싶습니다.

30년 전 기존 교육의 틀에서 이상하다고 치부되던 친구들을 받아 주는 곳이 생겼습니다. 그 친구들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보고 그들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는 곳이 되고자 했습니다. 서른 살, 이립而立, 마음이 확고하게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로 접어듭니다. 초기에 세웠던 마음과 뜻을 그 이상 담기 위해 눈과 귀를 열고 더 많이 보고 듣겠습니다. 새로운 기획과 혁신적 지면으로 내년에 찾아뵙겠습니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