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상황을 앞두고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한 순간, 나는 뮤지컬 넘버의 힘을 빌린다.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다시 시작할 용기가 요구되는 때마다 찾아 들었던 넘버 ‘저 바다에 날’.
늦가을의 비가 내리던 날, 푸석푸석 건조한 마음을 촉촉하다 못해 푹 적셔 준 넘버를 작곡한 주인공, 음악극창작협동과정의 최종윤 교수를 만났다.
고민, 탐색, 도전, 마침내 운명
한길만 가기에는 새로운 것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학생 시절에도 원래 전공인 클래식뿐만 아니라 각종 상업 대중 장르를 두루 섭렵했거든요. 군대를 제대하고 이 길을 계속 가는것이 맞을까 고민하던 때 마침 해외여행 붐이 일었어요. 비자도 나오겠다, 큰 도시에 가 보고 싶어서 뉴욕으로 여행을 갔는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고 그 무대에 크게 매료되었지요. 장르에 대한 동경과 기대, 젊은 시절 가지고 있던 패기와 실험정신으로 뉴욕에서 더 많은 도전을 하고 싶었고, 유학을 결심했어요. 지금의 자신을 만나기까지 충분히 고민하고 탐색했기 때문에 먼길을 떠날 수 있었어요. 많은 예술가가 그렇듯 저만의 색깔을 찾는데에 시간이 걸렸지만 그 덕분에 뮤지컬 작곡가의 길로 접어드는 것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여러 파트가 빚어내는 하모니, 뮤지컬
누구나 예술에 대한 욕구가 있어요. 이를 저마다 지닌 재능으로 표현하곤 하죠. 뮤지컬의 매력은 그런 사람들이 만나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 생각해요. 홀로 표현하기보다 서로 다른예술 언어와 기술이 만나, 종이 위에 쓰여 있는 1차원적인 것을 입체적으로 구성해요. 여러 파트에서 완성한 결과물을 새로운 예술적 표현으로 엮어 내면서 시너지를 내는 것은 사람 만이 즐길 수 있는 예술적 희열인 것 같아요. 제가 음악에서 표현하려 했지만 미처 담아내지 못한 것을 무용이나 미술 파트에서 실마리를 풀어 완성해 내는 걸 볼 때마다 엄청난 희열을 느껴요. 예를 들면 원래 음악이라는 것은 마디마디가 유기적으로 연결이 돼야 하는데 뮤지컬의 시퀀스 송은 그렇게 하지 않고 여러 장면을 단편적으로 잘라서 붙여요. 음악 자체로는 말이 안 되지만 무대에서 배우, 연출, 조명, 무대 등 여러가지가 만나면 비로소 언어가 돼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있어요. 언제나 저를 전율하게 하고 그들에게 고마워지는 순간이죠. 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드라마를 이야기한다는 점도 이 장르만의 특징이에요. 복합적인 장르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것 만큼 멋진 것이 또 어디 있을까요? 이런 표현을 해내는 구성원이라는 것만큼 좋은 직업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만큼 만족감도 큽니다.
<마리 퀴리> (2021) ©라이브(주)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한국에서 처음 <셜록 홈즈: 앤더슨가의 비밀>로 작곡상을 받았고, 또 감사하게도 올해 초 <마리 퀴리>로 작곡상을 받았습니다. 두 작품 모두 처음 대본을 읽을 때 소재에서 강한 매력을 느꼈어요. 제목과 시놉시스에서 이미 확신과 기대가 있었고요.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지가 명확하면 작곡가는 음악적 상상력을 극대화하기 쉬워요.
물론 작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많은 난관이 있었어요. 작가와 작곡가가 토대를 만들지만 무대에올라가기 까지 수 많은 이야기꾼의 도움을 받아야만 합니다. 연출, 안무, 음악감독, 배우 이 모든 분야와 소통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이러한 과정에서 이견을 좁혀 가는것이 사실 작품을 쓰는일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마리 퀴리>의 첫 트라이아웃이 매우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오랫동안 관객 피드백을 분석하고 다시 작품을 객관화하여 바라보면서 원래 하고자 하는 작품의 방향을 명확히 잡을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도 같이 작업했던 작가가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집중하여 큰 난관들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제 파트를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열심히 작업할 수 있었고요.
깊은 고민으로 빚어내는 울림
제가 작곡한 넘버 중 가장 애착있는 넘버는 뮤지컬 <마리 퀴리>의 ‘죽음의 라인’과 ‘그댄 나의 별’입니다. 뮤지컬 <마리 퀴리>의 중심 키워드인 ‘과학자’와 ‘여성’, 이 두 소재를 엮어 줄 수 있는 제3의 음악적 아이디어가 필요했어요. 위대한 발명과 참혹한 현실이라는 특정 상황, 과학자라는 특정 직업을 넘어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정서와 언어로 풀어내려 노력했고요.
<마리 퀴리>의 넘버가 섬세한 것이 특징이라면, <곤 투모로우>의 넘버는 웅장하고 뜨겁습니다. 그 중 ‘저 바다에 날’은 작품의 맨 마지막에서 김옥균이 부르는 노래로, 혁명의 실패로 인해 그렇게 염원하던 나라를 이룩하지 못한 한을 담고 있습니다. 이미 죽은 인물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무엇일까 깊게 고민하면서 완성했던 곡인데요. 죽음 이후 그 인물의 생각과 삶은 살아있는 타인에게는 가닿을 수 없기 때문에 온전히 이 인물의 입장에서 상상해야 했어요. 인물이 사후에도 무엇을 원한다는 것은, 상황과 감정의 깊이로 볼 때 절규보다는 모든 이들의 염원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사람다운 온도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만 그 인물의 심정이 극을 보는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지 않나, 하고요. 그래서 <곤 투모로우>의 다른 곡들과 달리 유려하고 부드럽지만 가슴을 울리는 곡을 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곤 투모로우>가 오랜 시간을 기다려 12월에 재공연을 앞두고 있는데요, 역사 속 인물의 내면을넘버를 통해 한 겹 한 겹 알아가게 만드는 재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안무와 음악, 무대와 연출의 섬세함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극적인 아름다움을 끌어냅니다. 절제된 색감에 비해 강렬한 인상의 음악과 무대가 조화를 잘 이루는 점 또한 이 작품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초연과 달리 설정이 변화된 지점이 있어요. 더욱 촘촘한 드라마와 인물의 미스터리가 보강되었는데요, 극장에 오셔서 꼭 한 번 느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인삼각 달리기 같은 음악극창작협동과정
한예종 전문사 과정인 음악극창작협동과정은 해마다 4명의 작가와 4명의 작곡가가 입학합니다. 이 구성에서 보다시피 우리 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협업’입니다. 좋은 창작자, 동시에 좋은 협업가를 길러 내는 것이 우리의 목표예요. 글을 쓰는 작가와 음악을 작곡하는 작곡가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표현하는 법이 서로 달라요. 그 다름에서 탄생하는 것이 바로 음악극이고, 좋은 음악극을 만들기 위해서는 협업 파트너와 서로 발을 맞춰 걸어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를 중점으로 커리큘럼이 짜여 있고요. 입학하는 작가와 작곡가는 글과 음악에 유려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전문인입니다. 이인삼각과 같은 이 협업의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 작곡가의 기술적 안정이에요. 한 사람이 유난히 잘한다고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고, 파트너가 잘 하면 나도 묻어서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그래서 작가와 작곡가가 수업을 통해 소통 능력과 공감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현재 많은 졸업생이 현업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을 뿐 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졸업 작품이었던 <명동 로망스>, <에어포트 베이비>, <난쟁이들>,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니진스키> 등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대표 작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매년 꾸준히 대본상을 수상하기도 하고 음악적인 성과들도 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음창과 선후배, 동기들끼리 함께 마음을 모아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협업에 대한 기본적인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조합들이 나오는 것 같아 저 또한 이들의 작품이 기대됩니다.
<곤 투모로우>(2016) ©아시아브릿지컨텐츠
가장 이상(weird)하거나, 가장 이상(ideal)적이거나
이상한 학생들은 너무 많아서 지면이 모자랄 테니(웃음), 기억에 남는 이상적인 학생들 이야기를 할게요. 이상적인 학생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어요. 매력적인 기호, 뚜렷한 주관, 자기 객관화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요, 이런 학생들은 기억에 남을 뿐 아니라 유사한 어느 분야로 가더라도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각자 맛있어하는 음식이 다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음악이 다르듯 이야기에 대한 기호도 달라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다 좋아 할 수는 없지만 관객과 만나고자 하는 작가, 작곡가가 관객을 매료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알아보는 것은 큰 재능입니다. 또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한 뚜렷한 그림을 가지고 있는 학생은 작품을 끝까지 써 내려갈 수 있어요. 간혹 좋은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엮을지 몰라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있는데요, 단편적인 소재와 아이디어는 있지만 정작 말하고자 하는 것이 없어 결국은 소재마저 잃게 되는 안타까운 경우 였습니다. 공연은 자신의 주장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주관이 절대 요소라는 것을 상기시켜요. 마지막으로 자기 객관화를 통해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이 시대에 필요한 것인가를 바라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이야기의 힘에 중독되어 시대를 거스르는 작품을 만들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성공한 작가와 작곡가의 경우 이러한 순간에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냉정함을 발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작곡가와 교육자, 두 직업의 밸런스 작곡가로서 ‘저’는 진지한 고민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 대중 앞에 선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수로서 ‘저’는 내가 아닌 학생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욕구를 이해하고, 동시에 그 학생이 어떤 것을 표현하고 고민하는지 지켜보면서 같이 헌신하고 발을 맞춰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요. 정말 다른 두 포지션에서 다른 다이내믹이 생기는 게 매우 재미있습니다. 온전하게 나 자신을 바라보며 달려 나가는 직업과 타인의 걸음마를 위해 묵묵히 한 걸음씩 같이 걸어가는 일을 함께 하다 보니 제 마음의 밸런스도 잘 맞춰지는 것 같아요.
학생들이 이 일을 시작하기 위해 흘리는 땀방울을 보면서 저 또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시간이 흐르면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 훌륭한 예술가로서, 제가 함께하지 않아도 혼자 바로 서서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교수로서 가장 뿌듯하고 벅찹니다. 제자들이 한 명의 동료가 되어 흘리는 땀방울을 볼 때 예술가로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제 안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거나 잘못된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요.
지난한 레이스, 그 출발선에 서기 전에
뮤지컬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협업’입니다. 내가 아닌 타인과 하나의 생명을 만들어 내고 이를 성장시키는 거죠. 부모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처럼 지난한 노력의 연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을 만들다 보면 나의 지향점과 파트너의 지향점이 달라 갈등을 겪기도 하고, 우리가 잘 해내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함께하는 파트너를 믿고 끝까지 나아가겠다는 믿음이 더없이 중요해요. 갈등을 회피하기보다는 직면하고 더 나은 선택지를 위해 함께 고민하겠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협업이 시작되면 그때부터 작곡가는 수십 곡의 곡을 쓰며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게 됩니다. 언제끝날지도모르는긴시간동안집중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건강뿐만 아니라 육체적 건강도 중요해요. 마라톤을 하는 사람은 달리면서 밥을 먹지 않습니다. 달리기 전에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야만 합니다. 정신적 영양분은 육체적인 것보다 더 시간이 걸려요. 그렇기 때문에 뮤지컬 작곡가로서 작가를 만나 협업을 시작하기 전 음악의 기술적 준비와 장기간 작업을 위한 정신적 안정이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꾸준하게, 탄탄하게, 흐트러짐 없이 학생을 이끄는 든든한 안내자
최근에 요즘 유행하는 MBTI 검사를 해 보았는데요. 제 성향에 적합한 직업을 추천해 주더라고요.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예술가가 아니라 군인이나 농부가 나왔습니다. 말만 들어도 지금의 제 모습과는 정반대 성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저는 새로운 환경보다는 안정적이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철저함과 확실성으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을 선호합니다. 작업하거나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이런 성향이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전 학생들에게 고전적인 기술을 우선 완성하고 그 위에 디테일을 완성할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작품이 대중과 만날 때 오해는 사지 않는지, 나의 의도가 오류로 받아들여지는 않는지 점검하고 이를 최소화해서 작품이 보편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요. 이런 걸 보면 저의 MBTI 성격이 교수법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죠?
스스로 강의 평가를 한다면, “해야 할 것을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흐트러짐 없이 꾸준히 해 나갈 수 있게끔 안내하는 교육자, 튼튼한 기초 공사를 바탕으로 나만의 음악적 세계를 쌓을 수 있도록 지도하는 좋은 교육자”라는 문장이 완성되면 좋겠습니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역사와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 창작 뮤지컬 역사 중 가장 큰 사건을 꼽아야 한다면 조금 쑥스럽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극창작협동과정의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해외에서도 다양한 공연의 형태를 연구하는 노력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지만 그 중 음악극이라는 한 부분을 전문화하고 학제화하는 것 자체는 매우 실험적이고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극창작협동과정은 2009년 학과가 생긴 이래로 수많은 창작자를 배출해 왔고요. 탄탄한 커리큘럼으로 음악극과 창작이 무엇인지 학습하고, 10분, 20분, 45분 공연과 졸업 공연까지 실제 협업 과정을 겪게 합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실험하며 스스로 어떤 말을 대중에게 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학교는 이 시기를 충분히 고민하며 보낼 수 있도록 돕습니다.
창작하고자 하는 학생에게 질 좋은 교육을 통해 실천해 내는 근력을 길러 내게 끔 도운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그동안 배출한 수많은 졸업생이 현재 한국 창작 뮤지컬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요. 그러므로 뮤지컬이나 기타 음악극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며 기술로 완성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정립한 것은 한국 뮤지컬의 발전을 한국을 넘어 세계의 역사에 남게 하는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불변하는 보편적 가치의 소중함을 음악으로 말하는 사람
뮤지컬은 상업 공연예술이기도 하지만 뮤지컬 역사 속 중요한 작품을 되돌아보면 결국 다른 예술처럼 시대를 넘는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인권운동가 또는 사회문화비평가로서의 뮤지컬 작곡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제 작품들을 통해 인간에 대해, 변하지 않는 보편적 가치의 소중함에 대해 사유하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어느덧 신인 창작자가 아닌 중견의 위치에 와 있는 저를 발견하고 큰 책임을 느낍니다.
나이와 경력이 많아지면서 저절로 오게 된 자리 같기도 하고, 원치 않는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자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부담됩니다. 하지만 예술에 대해 책임감 있는 자세로 한 세대를 표현 하는 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없는 실험 정신이 이끄는 새로운 도약
저는 여전히 새로운 예술적 표현이 있을까 늘 궁금합니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해외의 새로운 트렌드를 찾아다녀 보곤 했는데요. 작품 안에서 끊임 없이 실험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능동적인 노력을 하기에는 제약이 많아 개인적으로도 답답하고 아쉬워요. 얼마 전 시작한 ‘단계적 일상 회복’을 계기로, 다시 새로운 도약이 있기를 기대하면서 현재 위치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작곡가는 수학자와 가깝다고 했던가. 그는 수식을 정리하듯 오류가 없도록 대답을 논리정연하게 다듬고 또 다듬었다. 내뱉는 모든 문장에서 진지한 고민과 이상할 만큼 이상적인 성실함이 느껴졌다. 이렇듯 탄탄하게 악보 위에 음표를 쌓아 올리고, 굳건하게 학생들을 지도하는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연습실에 들어 가기 전 플랜 B에 이어 플랜 C까지 생각한다는 철저함에 감탄했고, 중간중간 예기치 못한 추가 질문에 수줍은 웃음을 터뜨리고 마는 인간미에 감화되었다. 그가 앞으로 정성으로 빚어낼 결과물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