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민
“그들은 왜 지구에 남을까? 이 아름다운 마을을 떠나, 보호와 평화를 벗어나, 그렇게 끔찍하고 외롭고 쓸쓸한 풍경을 보고도 왜 여기가 아닌 그 세계를 선택할까? …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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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의 단편소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의 일부이다. 릴리는 완전한 몸을 가진 인간들이 존재하는 세상을 건설하다가 실패하여 지구 밖 마을에 결함이 있는 아이들로만 구성한 유토피아를 만든다. 그 마을에서 나고 자란 데이지는 성년이 되어 지구로 간 순례자들이 왜 돌아오지 않는지 궁금해하며 답을 찾아간다. 해당 인용은 데이지가 장애와 비장애의 삶을 구분하는 것에 유토피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사랑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어떻게 다양한 몸이 공존하여 살아갈 수 있는지 고민하는 과정은 곧 몸의 정상성에 관한 질문이다. 이 글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어 우리가 규정하는 몸의 개념을 재구성하고 재배치하여,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몸을 살피고자 한다. 너무나도 쉽게 이분법으로 나뉘었던 경계를 비판적으로 살피는 것이다.
몸의 정상성을 구분하는 경계들은 우리가 몸으로 경험하는 특정한 감각과 사건으로 그려지고 기억된다. 우리 몸에 새겨진 이러한 경계들은 차별을 생산하며 간편하게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결함이나 질병이 있는 몸을 배제한다. 따라서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몸이 경험하는 사건과 몸이 맺고 있는 관계를 살피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던 방식을 전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몸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 문화, 기술 등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새겨진 차별들은 무엇인지 살피는 것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몸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과정이다. 이는 우리가 몸과 맺는 관계와 더불어 여러 차별을 검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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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의 정상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어 김원영 작가와 함께 『사이보그가 되다』를 썼다. 이 책은 장애를 가진 몸이 기술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에 대해 고찰한다. 장애를 가진 몸이 기계와 결합했을 때 어떻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질지 고민하며, 작가는 사이보그적 존재들이 경험하는 인간-기술 결합의 이중성을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원영은 휠체어를 몸의 일부로 삼는 과정이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이자 온전한 삶의 한 요소로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 반면 김초엽은 보청기를 이물질로 여기고 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신체와 관계 맺는 기계를 몸의 일부로 여기고 누군가는 벗어나고 싶어 하는 다양한 삶의 양식이 있으므로, 인간-기술의 결합은 개인의 고유한 경험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술과 결합한 장애를 가진 몸에 온정주의식의 감동 서사를 그려 바라보는 시각을 지적하며, “완벽하지도 매끈하지도 않은 기술과의 융합과 불화가 실제 사이보그들의 삶을 구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기술이 정상성의 범주를 비판적으로 살피며 장애인이 중심이 되는 기술과학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은 실제로 경험하는 몸을 통해 고통받는 몸, 손상된 몸, 의존하는 몸들을 환대하는 미래를 고민하며 그동안 우리가 어떤 몸의 지도를 그리고 있었는지 살피도록 한다. 이때 주목할 지점은 이들이 자신의 몸과 불화하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지속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불완전한 몸은 계속해서 현실적인 조건의 삶과 갈등하지만 그 갈등의 과정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를 하나씩 살피는 것이 우리가 가진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이분법과는 다르게 사고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이 기술, 문화, 사회가 장애인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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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강보름 연출의 2021년 1학기 전문사 레퍼토리 공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은 장애인과 외국인으로서의 배우들의 경험을 통해 차별의 경계를 고민할 수 있는 연극이었다. 강희철 배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의 입시 제도를 비판적으로 살피고, 실제로 입시 때 겪었던 경험을 공유한다. 연극원 정원 외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의 5개년 합격자 수 0명, 졸업생 수 2명 등을 실례로 든다. 또한 휠체어를 타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다니며 실제 몸으로 겪는 어려움을 지적한다. 화장실, 여닫이문, 도서관의 책장 사이의 간격, 계단 등으로 배제되었던 몸의 경험으로 실제 삶과 몸이 만나는 방법을 비판적으로 살피는 과정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대사로만 전달하는 것이 아닌 영상, 타이핑 된 글 등으로 나타내는 형식은 이들의 몸이 어떻게 예술과 관계 맺을 수 있으며,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 고민한 흔적이다.
공존과 연대가 가능할지 고민하고, 장애인 및 비장애인의 구분과 그로 인한 차별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강희철 배우는 장애를 가진 몸에 관한 정체성을 구성해 간다. 여러 정체성으로 겹쳐져 있는 존재에서 장애를 가진 몸은 자신의 중요한 정체성이 되며, 그것이 어떻게 사회와 관계 맺는지 고민하는 과정이 드러난다. 이를 통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졌던 정상적인 몸의 개념과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보편적인 차별에 대해 살필 기회를 마련한다. 이 연극에 참여한 드라마터그 이서연은 “공동창작자 중 대부분이 내국인이자 비장애인으로, 노력했지만 많이 틀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향점을 향해 계속해서 틀리며 고치기를 반복한다면 언젠가 그 언어가 찾아오지 않을까” 믿고 싶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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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계속해서 실패하고, 실수한다. 그러나 그것을 반성하고 고쳐 가는 과정이 타자에 대해 알아 가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나 역시 당사자성을 고민하며 이 글을 조심스럽게 써 내려갔다.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는 실수가 있지 않았을까 걱정한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무지로 인해 혐오의 말들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지가 차별을 정당화하진 못할 것이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 올리브가 다양한 몸이 공존하는 지구에서 사랑을 찾았듯 우리는 몸에 대한 다양한 지도를 그려 보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기존의 배제와 차별들을 계속해서 고쳐 나가야 할 것이다. 몸이 경험하는 감각과 사건을 살피며 문화, 기술, 사회와 몸의 관계를 살피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문제이자 정체성을 구성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어떤 몸의 지도를 그릴 수 있을까 고민하며 고통과 사랑이 함께 하는 공존은 어떤 것인지 상상해 본다. 우리의 몸을 둘러싼 차별과 차이는 무엇인지, 그 관계들에서 나의 정체성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다양한 몸의 지도를 그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통해 기술과 제도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며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여러 정체성과 관계들을 살펴본다. 차별을 낳는 경계선은 게으른 생각들로 쉽게 발생하기에 끊임없이 질문하며 ‘정상성’과 이분법적인 사고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치열하게 고민하며 겪는 실패와 알아 가고자 하는 노력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사랑으로 함께 맞서는 일이자 누군가의 일상이 조금은 나아지는 일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