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온다는 건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그리고 미래가 함께 오는 것1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한 사람의 인생이, 한 세계가 온다는 것입니다. 예술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도 그러한 것입니다. 한 중견 미술가는 자신의 28년 전 작품을 꺼내 리모델링하듯 다시 작업하여 올해 전시를 열었습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소품처럼 찍어 둔 영상을 이미지로 재조합하여 비대면 시대에 맞는 미디어아트를 구현해 내는 감독들도 자주 보입니다. 연구자들은 인간이 쌓아 온 자본의 쓰레기를 비판하며 반성과 성찰의 시간으로서 인류학적 해석을 앞다퉈 내놓습니다. 이렇듯 새롭게 다가오는 예술은 결국 우리의 과거와 현재 속에 미래가 웅크리고 있음을, 그 안에 씨앗이 있다는 걸 다시금 확인시킵니다.

판. 새로운 판이 열리고 있습니다. 급작스런 전염병, 전 세계적 재난은 우리의 세계, 세계관을 흔드는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코로나 재앙이 자본에 종속된 지금, 인간의 폭력과 파괴의 대가로서 인간에게 내린 벌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많은 미술가들은 앞장서 이를 전시로 승화시키며 지속 가능한 생태의 미래를 고민합니다. 도구로서의 환경과 생태가 아닌 공존하는 지구의 주인공으로서의 자리를 재점검하는 전시들이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공연에서는 몸에 집중하며 좀 더 체험과 움직임에 몰입하는 것 같습니다. 예술과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실감미디어 콘텐츠의 다량 생산 속에서 예술이 관객들과 어떻게 만나야 할지에 대해 끝없이 시도합니다. 이 때문인지 “노력했지만 많이 틀렸다”는 말은 실패했다는 말보다 오히려 성공했다는 말로 치환되어 들립니다. 실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예술은 이미 사유 재산화할 수 있는 세계로 들어섰습니다. 현재 건설되는 가상 세계에서 복제 가능성과 희소성이 공존하는 예술이 어떻게 판을 흔들고 주도할 수 있을지 예술가들이 함께 풀어 갈 숙제가 되었습니다.

예술의 새로운 판을 만들어 갈 인물들을 집중적으로 만나 이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제대로 예술하는 예술학교’의 미래를 위해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차분한 열정의 김대진 신임 총장이 제2의 도약을 위해 제시하는 비전을 들어 봅니다. 시행착오가 허용되는 예술학교 안에서 보다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도록 소통하며, 부단히 정진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겠다는 목소리가 귀에 꽂힙니다. 몸으로 사유하는 사람, 안무가 김형민 교수는 무대는 이야기가 드러나는 곳이라며 창조적 공간을 연구합니다. 끊임없는 질문 속에 움직임을 찾아가는 그녀의 춤 작업은 철학적 사고의 과정이라 더 흥미롭습니다. 사회의 모순과 개인의 관계를 탐구하며 그 이면을 가공하지 않은 영상을 통해 보여 주는 차재민 작가 역시 그 대열에 합류합니다. 머릿속 단 하나의 이미지를 일관되면서도 과감하게 스크린에 그려 내며 관객들의 마음을 훔치는 윤대원 감독의 패기와 도전도 시선을 붙잡습니다.

타인과의 접촉이 금지된 상태에서 종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본의 아니게 맞닥뜨린 반성과 성찰의 시간 속에서 내장된 갖가지 도구들을 꺼내어 새로운 판을 설계합니다. 앞으로 어떤 세계가 오든 다른 세계를 만나든 기꺼이 덮을 수 있는 뿌리가 든든한 씨앗을 찾았습니다. 살며 살아가며 이 시간을 잊지 않고 종종 꺼내어 보겠습니다.

편집실
1 정현종, <방문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