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민

중세 유럽에서는 ‘마파 문디’라 불리는 그림들이 만들어지곤 했습니다. 1인치도 되지 않는 작은 도식에서부터 3.5미터에 달하는 벽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로 그려진 이 그림의 정체는 바로 세계 지도였습니다. 라틴어로 ‘천(cloth)’을 의미하는 ‘마파(mappa)’와 ‘세계(of the world)’를 뜻하는 ‘문디(mundi)’가 결합한 단어이니 정말 그럴 법도 하지요.

지금의 시선으로 마파 문디를 보면 이 지도는 허술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견문도 기술도 과학도 부족했던 시대의 산물이니까요. 대륙들은 일그러지거나 축소되거나 과장되어 있고, 있어야 할 땅이 없거나 없어야 할 바다가 들어 있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아도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세계 지도와는 아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그들의 눈에 비친 ‘세계’는 그런 모습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만약 그토록 ‘정확하게 부정확한’ 마파 문디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가진 ‘정확하고 온전한’ 세계 지도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문학의 역사에서 세계란 처음에는 외부 세계(outer space)를 뜻했습니다. 인간을 둘러싼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 낸 문화, 공동체, 사회, 국가가 곧 세계였지요. 그러다 곧 그 세계는 근대와 함께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옵니다. 개인이라는 개념이 발명되고 각자의 내면 세계(inner space)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주인공 밖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그러다 20세기에 이르러 또 하나의 세계가 등장하는데, 바로 SF에서 우리가 자주 보아 온 가상 세계(cyber space)입니다. 이 제3의 세계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의 충격에 비하면, 이제는 SF 속 이야기라고 부르기 곤란할 만큼 우리는 이미 깊은 가상 세계 속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 구글과 네이버, 유튜브와 넷플릭스, 비트코인과 멀티버스에 이르기까지, 가상 세계 없이는 일상을 논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 물론 줌을 통한 비대면 수업도 빼 놓을 수 없겠지요.

역사적으로 볼 때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언제나 예술가들의 몫이었습니다. 문학의 예를 들어 볼까요. 많은 사람이 문학을 현실을 모방(mimesis)하여 그것을 충실히 재현하는 예술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문학의 한쪽 측면만을 대표하는 입장입니다. 실재(the Real)는 한쪽에서는 리얼리즘으로 재현되지만, 반대쪽에서는 비틀리고 왜곡된 방식으로도 표현됩니다. SF 비평가 다르코 수빈은 이러한 문학에서 재현되는 세계의 특징을 리얼리즘 소설과 구분하여 ‘서사적 노붐(novum)’이라고 부르기도 했지요. 노붐이란 라틴어로 새롭다는 뜻인데요, 말하자면 새롭고 낯선 무언가, 우리를 거리 두게 하고, 낯설게 하는 무엇이 리얼리즘 반대편의 문학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신화, 민담, 동화, 환상, SF의 공통점이기도 한 이 노붐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가 보지 않은 세계를 구체적으로 그려 보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 볼까요? 이러한 문학은 우리 미래의 실현되거나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그려진 일종의 ‘인지적 지도(cognitive map)’가 되어 줍니다.

2020년 1월 이후 우리가 알던 세계는 무너졌습니다. 정확하다고 믿었던 세계 지도는 놀랍게도 있으나 마나 한 도구가 되어 버렸어요. 묻고 싶습니다. 마파 문디를 들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섰던 중세의 사람들과 분명한 지도가 있지만 국경 바깥으로 나가기 어려운 지금의 우리 중 누가 더 넓은 세계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혹 우리는 허울뿐인 세계 지도만을 믿고 눈앞의 진짜 세계를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모두가 힘들어 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실은 계급, 젠더, 세대, 국적을 빌미로 이미 오랜 시간 치열하게 수행해 오고 있던 일 아닙니까? 우리가 가진 지도에는 우리가 가야 할 곳이 표시되어 있나요?

일찍이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토피아가 그려져 있지 않은 세계 지도라면 거들떠볼 가치도 없다.” 얼핏 듣기에 근사해 보이는 이 말은 자세히 살펴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유토피아는 다들 알고 있듯 존재하지 않는 곳이잖아요. 그게 어떻게 지도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와일드의 말은 이렇게 읽어야 할 겁니다. “존재하는 곳만 그려진 세계 지도라면 거들떠볼 가치도 없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금-여기에 없는 세계를 상상하는 능력입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눈앞의 세계 지도를 폐기하는 용기입니다. 대신 우리가 만드는 예술이 이 혼란한 팬데믹 시대의 바다를 항해하는 저마다의 새로운 마파 문디가 되어 줄 거예요. 그 지도를 손에 꼭 쥐고, 비록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의 배가 닿는 곳에서 다시 만납시다.

글 문지혁(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