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판, 그 위에 선 우리들

한순간에 주위 사람들과 거리를 두어야 할 의무가 생겼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공연장에서 공연을 보고, 전시장에서 전시를 관람하는 당연한 일들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아졌다. 이에 따라 영화를 만들고 공연을 준비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이들의 당연한 일상에도 온갖 변수가 들어선다. 이전에도 변화는 계속해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완전히 바뀌어도 되는 걸까. 예상 가능한 변화의 폭과 적응 가능한 속도를 넘어서는 최근의 상황들은 우리가 서 있는 이 판을 완전히 뒤흔들고 있다. 작은 일상부터 한 사람의 삶, 시대의 흐름까지 요동친다.

학교는 흔들림 속에서 이미 다양한 움직임을 시도하고 있었다. 예술교양학부는 2021학년도 1학기 ‘창의적 사고와 코딩’ 수업을 신설하였고, 한예종 아트콜라이더랩은 세계적인 융합예술 연구기관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와 협업하여 융합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요동치는 상황 속에서 눈앞에 거대한 벽을 느끼고 있을 한예종 구성원들에게 교내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다양한 시도들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창의적 사고와 코딩’ 기말과제 (팀 텔레토비)

위태롭게 서 있을 수만은 없지

급격한 변화는 늘 불안함을 동반한다. 하지만 흔들리는 판 위에서 위태롭게 서 있기만 할 것인가. 이에 대응하는 어떤 움직임은 불안함과 위태로움을 오히려 변화를 주도하는 힘으로 역전시키기도 한다. 예술교양학부의 ‘창의적 사고와 코딩’, 아트콜라이더랩과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협업 프로젝트 같은 어떤 움직임들을 수업 내용 및 인터뷰와 함께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예술교양학부 ‘창의적 사고와 코딩’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문가의 영역이었던 코딩은 어느새 초등학생들도 배울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코딩 관련 서적이나 온라인 코딩 강좌 등도 인기를 끌고 있다. ‘공대에서 배우는 거 아니에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코딩은 사람들과 가까워졌다.

예술학교에도 코딩이 나타났다. 지난 1학기 예술교양학부에 새로 개설된 ‘창의적 사고와 코딩’ 수업에서는 삼십여 명의 학생들이 코딩과 아두이노1에 대한 이해를 키웠다. 그리고 수업 내 팀 프로젝트 작업을 진행하며 만들어낸 다양한 모습의 결과물들은 온라인 전시 형태로 공개하고 있다.

“수업은 코딩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기보다는 ‘코딩을 통해 어떻게 창의적인 사고가 가능할까’라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단순히 코딩을 익히고 정형화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수업이 아니다. 새로운 언어가 지닌 특성과 문화를 익히는 과정으로 코딩에 접근하고, 사물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킹하여 제3의 용도를 만들어 보는 수업이다. 즉, 예술 전공 학생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개념들로 익숙했던 사물을 다시 바라보고자 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수업 전반부는 아두이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는 강의로, 후반부는 팀 별로 선택한 사물을 실제로 해킹해 보는 실습으로 이루어졌다. 수업을 진행한 강민정 교수는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으로 진행한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바가 잘 전달이 되었을까 걱정이 되었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아무래도 수업이 비대면으로 운영된다는 점, 그리고 짧은 시간 내에 작업을 구동하는 기술도 익히고 또 이것을 발전시켜 작업에까지 반영해야 하는 과정 자체가 부담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작업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코드를 습득하는 것이 또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는 부분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학생들의 수강 신청 지표라고도 할 수 있는 선배들의 수강 후기 하나 없는 낯선 신규 수업을 신청하는 모험을 했던 수강생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코딩을 배우고 이를 실제 작업에 연결시켜 보는 과정은 새로운 기술을 매개로 본인의 전공을 사유하는 시각을 넓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한 영화과 학생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시간을 좀 더 자세히 엿볼 수 있었다.

“중학생 시절 프로그래밍에 흥미를 느껴 잠깐 공부한 적이 있었지만, 배움을 오래 이어 가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전공과 직업이 생기면서 그 외 분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초조함을 느끼기도 했고 기회가 된다면 코딩 공부를 다시 해 보고 싶다는 바람을 항상 간직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재작년 교양수업으로 개설되었던 ‘아티스트를 위한 프로그래밍’에서 processing을 재미있게 배웠고, 지난 학기에도 수강편람에서 이 수업이 개설된 것을 발견하고 망설임 없이 신청했습니다. 처음 개설된 데다 과제 양이 많아 보여서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무작정 수강 신청을 했습니다.”

여러 교양 수업 중 이 수업을 선택한 것은 누군가에게는 전공 외에 다른 것을 둘러보지 못한 데에서 오는 일종의 갈증과 초조함에 틈을 내는 시도였다. 무작정 신청했던 한 학기의 수업이 끝난 지금 값이 명확하게 떨어지는 코딩을 배우고 실습하는 과정이 두뇌의 어떤 부분을 환기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는 소감과 함께 팀 프로젝트에서 만난 팀원들과의 작업에 대해서는 이렇게 전했다.

“영상원의 영화과, 미술원 조형예술과와 건축과, 그리고 음악원 기악과 등 모두 다른 전공을 가진 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말 프로젝트는 단순히 프로그램을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와 맥락에 맞춰 어떤 사물을 어떻게 해체-구동할 것인지 구상하고, 그에 따라 코딩을 해 결과물을 영상의 형태로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팀원들의 전공과 각자가 가진 역량이 프로젝트 진행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희 팀에서는 ‘사운드 해킹을 통한 공감각적 심상의 구현’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해킹된 사물과 이를 조작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내러티브가 있는 영상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형광등, 초인종, 라디오 등 여러 가지 사물을 수집하여 이것들이 평소와 다르게 작동하도록 조작하였습니다. 사물들을 해체한 뒤 아두이노로 코딩한 프로그램을 연결하여, 이를테면 인물이 다가가면 불이 꺼지는 형광등이라든가, 누르면 알림음 대신 일상 속에서의 소음들을 들려주는 초인종 등을 제작한 것입니다. 해킹해야 하는 사물이 여러 가지인 만큼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상당했지만, 의도했던 대로 사물들이 작동했을 때의 기쁨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서로 다른 분야를 배우는 팀원들과 아두이노, 사물 해킹을 기반으로 한 작업은 갈증과 초조함의 틈새로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이 수업이 어떤 자극이 되었는지 묻자
“앞으로 영화 작업에서 다양한 전공을 가진 분들과 협업하고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라며 “코딩뿐만 아니라 예술 전공자들이 접하기 힘든 다양한 영역의 학문 혹은 기술을 교양수업에서 접해 보고 싶다”고 전했다. 수업을 통해 경험한 코딩을 단순히 기술과 개념의 습득에만 한정 짓지 않았다. 팀원들과의 작업 과정에서 서로 다른 필드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을 교차시키며 자신의 생각을 확장하고, 작업 방식에 대한 시야를 넓혀 간다. 수업을 통해 얻은 새로운 감각을 발판 삼아 앞으로 더욱 더 넓은 영역을 향해 뻗어 나갈 이들의 발걸음을 응원한다.

한예종 아트콜라이더랩☓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실제 공간과 가상 공간, 실제 인물과 가상 캐릭터 사이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진다. 특히 최근 팬데믹으로 인해 물리적 접촉이 제한되는 현실을 틈타 가상 현실은 많은 것을 대체하며 그 영향력을 키워 나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두 세계의 공존이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실제와 가상 사이를 넘나들며 창작의 길을 개척한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끌어와 고민하며 새로운 실험과 접근을 멈추지 않는 이들을 소개한다.

과학과 예술의 융합, 그 중심에는 세계적인 융합예술 연구기관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가 있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서로 다른 두 분야를 연결 지어 고민해 왔고, 매년 ‘예술과 기술, 그리고 사회를 위한 축제’를 모토로 한 세계 최대 규모의 미디어아트 행사를 개최한다. 최첨단 기술이 접목된 공연・전시를 선보이고, 전 세계의 예술가와 과학자, 공학자가 첨단 예술과 미래에 대해 논의하는 장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은 그 인지도와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에 서울 대표 기관으로 참여하는 한예종은 2021 <가든 서울: CODE H>를 개최한다. 한예종 융합예술센터 아트콜라이더랩은 예술과 기술, 사회의 융합 창작 교육을 연구/기획하는 주체로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와의 교류를 이끌어 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작년보다 더욱 상호교류의 폭을 넓혔다. 글로벌 융합예술 교류사업의 일환으로 글로벌 융합예술 창작 프로그램 <미래 공동체를 위한 유머>를 공동 기획한 것이다. 이 프로그렘에 참여한 학생들은 지난 3~6월 사이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 속한 세계 유수의 전문가들로부터 교육을 받으며 페스티벌에서 선보일 작업을 진행해 왔다.

<미래 공동체를 위한 유머>는 ‘인터랙티브+’와 ‘이머시브 퍼포먼스’ 이렇게 두 개의 클래스로 이루어졌다. 우선 ‘인터랙티브+’ 클래스에서는 우리나라 전통예술 장르인 탈춤에 녹아 있는 유머의 가치를 미래 세대에게 전달하기 위한 아트 게임을 창작했다. 탈춤은 과거 지역 공동체에서 풍자와 해학으로 공동의 연대와 공감을 이끌어 내던 민중예술이다. 이 안에 내재된 다양한 예술적 요소를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쳐 창작한 아트 게임을 통해 가상성을 실험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의 상호작용 방식을 모색한 것이다. 총 16회차로 진행된 이 수업에는 해외 융합예술 전문가가 참여하는 ‘AE(Ars Electronica) 세션’이 3회 포함되었다. 한 프로젝트는 탈춤의 신체 균형 운동과 인간 사회의 균형을 연결 지어 작업의 방향을 설정했다. 또 다른 프로젝트는 사회 내 자율적인 선택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일방적 플레이로 게임을 설계하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실제로 게임을 구현해 내는 데에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다양한 자료와 피드백을 아끼지 않은 멘토들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또한 온라인 전시와 물리적 전시는 서로 다른 접근이 필요하기에 플랫폼 유형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함을 배울 수 있었다고 전했다.

<City on Edge> ⓒ홉스텝

‘이머시브 퍼포먼스’ 클래스에서는 현실과 연결된 가상 현실을 기반으로 한 실시간 몰입형 공연 및 콘텐츠를 창작했다. 이 퍼포먼스는 즉석에서 관객과 공연자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오가지만, 가상 현실 무대를 활용함으로써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마음껏 넘나들며 진행된다. 이 수업 역시 AE 세션 3회차를 포함한 16회차의 커리큘럼으로 이루어졌다. 이때 한 팀은 VR공간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 주목하여 격차를 더욱 증폭시키는 공연을 구상했다. 또 다른 팀은 팬데믹으로 인해 잃은 물리적 공간을 가상 공간을 활용해 복원해 내고, 이를 한국적인 음악과 공간으로 구현해 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전문가들의 피드백과 함께 상상했던 많은 것들을 기술을 활용해 구현해 낼 수 있음을 이해했고 더 넓은 창작 표현의 범위를 갖게 되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16주 간의 교육 프로그램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인터랙티브+’ 클래스에서는 3편의 예술적 메시지가 담긴 아트 게임이, ‘이머시브 퍼포먼스’ 클래스에서는 총 5편의 VR퍼포먼스 결과물이 완성되었다. 이 작업물들은 8월 중 온라인 전시장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수업을 통해 융합예술 창작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특별한 경험을 한 학생들은 이번 작업에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도 프로젝트를 더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끝없이 발전해 나가는 기술과 손잡고, 경계 없는 가상 공간으로 발을 내딛은 이들의 행보를 기대한다.

‘이머시브 퍼포먼스’ 클래스에서는 현실과 연결된 가상 현실을 기반으로 한 실시간 몰입형 공연 및 콘텐츠를 창작했다. 이 퍼포먼스는 즉석에서 관객과 공연자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오가지만, 가상 현실 무대를 활용함으로써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마음껏 넘나들며 진행된다. 이 수업 역시 AE 세션 3회차를 포함한 16회차의 커리큘럼으로 이루어졌다. 이때 한 팀은 VR공간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 주목하여 격차를 더욱 증폭시키는 공연을 구상했다. 또 다른 팀은 팬데믹으로 인해 잃은 물리적 공간을 가상 공간을 활용해 복원해 내고, 이를 한국적인 음악과 공간으로 구현해 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전문가들의 피드백과 함께 상상했던 많은 것들을 기술을 활용해 구현해 낼 수 있음을 이해했고 더 넓은 창작 표현의 범위를 갖게 되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16주 간의 교육 프로그램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인터랙티브+’ 클래스에서는 3편의 예술적 메시지가 담긴 아트 게임이, ‘이머시브 퍼포먼스’ 클래스에서는 총 5편의 VR퍼포먼스 결과물이 완성되었다. 이 작업물들은 8월 중 온라인 전시장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수업을 통해 융합예술 창작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특별한 경험을 한 학생들은 이번 작업에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도 프로젝트를 더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끝없이 발전해 나가는 기술과 손잡고, 경계 없는 가상 공간으로 발을 내딛은 이들의 행보를 기대한다.

<Do you like Bananas?> ⓒMANANA

흔들리는 판, 뒤집을 준비도 된 우리들
이미 판의 변화를 감지한 이들의 움직임은 시작되고 있었다. 이들의 움직임은 변화하는 판 위에 서서 흔들리기보다는 변화하는 판을 주도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학생들이 판을 이끌어 갈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학교는 앞으로도 변화를 주저하지 않으며 다양한 시도를 이어 나갈 것이다.

다가오는 2학기에는 앞서 소개한 ‘창의적 사고와 코딩’ 수업에 이어 ‘빅데이터를 활용한 예술’이라는 교양 수업이 개설된다. 스스로의 생활에서 체득한 빅데이터를 이용한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와의 협업은 9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위기극복을 위한 예술창작’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학술 주제를 공유하고 심화 연구를 추진하는 컨퍼런스를 열며 이어 나갈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한예종 AT(Art & Technology)랩을 중심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문화콘텐츠 R&D 전문인력양성 사업을 진행한다. 인공지능 배우, 버추얼 공연 등 메타버스 핵심 콘텐츠 분야의 창작과 연구를 수행할 예정이다.

이렇게 계속해서 움직임을 이어 나갈 우리는 판이 아무리 흔들리고 변화하더라도, 완전히 새로운 판이 열리더라도 결코 두렵지 않을 것이다. 흔들리는 판, 그 위에 선 우리는 판을 뒤집을 준비도 되어 있다.

글 엄혜진
1 사물에 센서와 통신 기능을 적용하는 방법과 과정을 익혀 볼 수 있는 오픈소스 하드웨어,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컴퓨터라는 의미에서 ‘손바닥 컴퓨터’라고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