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국내외를 넘나들며 무용수와 안무가로 활약해 온 김형민 교수를 만났다. 존재와 삶, 인간의 갈망에 대해 탐구하고 이를 움직임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 온 김형민 교수는 작업할 때 가장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몸으로 사유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인터뷰 도중 학생들과 함께 만든 책을 보여 주며, 코로나로 가장 혼란스러웠을 학생들이 함께 시도하고 노력해 주어 고맙다며 환하게 웃었다. 모든 질문에 사려 깊고 솔직한 태도로 답변해 준 그와의 소중한 시간이 지면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기를 바란다.
무용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15살 때쯤 무용을 시작했는데, 조금 늦은 편이었어요.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지만 그냥 너무너무 하고 싶어서 끝까지 밀어붙였던 기억이 나요. 어려서부터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긴 했는데 어린 아이들이 으레 다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어떤 특정한 순간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기가 조금 어렵네요. 매 순간 무용에 대한 열정이 점점 더 다져지면서 무용이 제 삶에서 떼어 낼 수 없는 부분이 된 것 같아요.
무용원 3기 졸업생이십니다.
제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개교한 지 얼마 안 되어서 학교 분위기가 굉장히 역동적이었어요. 수업과 연습으로 스케줄이 빡빡했지만 그 안에서 많은 것을 표현하고 도전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였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예술학교에 다닌다는 자부심도 컸어요.
졸업 후 암스테르담 예술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셨는데요. 안무를 더 공부하겠다고 결심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시실 한예종 졸업 후 안하임이라는 곳에 가서 안무 공부를 시작하긴 했지만 금세 공부보다는 공연에 몸을 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베를린에 있는 무용단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더랬어요. 그리고 무용단 활동을 하며 저의 개인 작업을 시작해 조금씩 베를린에서 지원을 받아 가며 안무가로 활동을 하게 되었지요. 활동을 하면서 동시대의 담론들을 더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더 명확한 안무적 언어가 필요하다 생각되었고 결국 암스테르담 예술대학의 안무 석사 과정(DAS Choreography)을 밟게 되었어요. 이 과정에서는 소수 정예의 학생들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가지고 와서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돼요. 학생들 간에 주고받는 피드백도 굉장히 날카롭고 사회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관점도 무척 명확했기에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몸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 더 명확한 시선과 질문을 찾는 큰 계기가 되었어요. 특히 ‘리딩 세션(Reading Session)’ 수업은 교수님께서 가져오신 텍스트를 함께 읽고 토론하는 수업이었는데, 선생님께서 따로 배경 지식을 설명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학생들이 직접 그 배경과 관련 문서를 찾아내어 공부해야 했어요. 그때 나만의 관점으로 철학을 이해하고 다양한 이론들을 나의 작업과 연관 지어 이해할 수 있는 고리를 마련할 수 있었죠.
이주자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삶과 그들이 갈망하는 세계를 탐구한 <GUEST>는 이후 <떠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로 발전되어 서울에서 공연되었는데요. 이때 전문 무용수가 아닌 북한이탈주민들과 작업하셨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작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에게 무대는 드러나지 않는 목소리를 드러나게 하는 곳이고, 사회의 단상을 보여 줄 수 있는 곳이에요. <떠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업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분들의 몸이었어요. 훈련된 무용수의 몸이 아니라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몸을 가지고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의 몸이요. 기량을 보여 주는 곳으로서의 무대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들이 드러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분들의 몸에 화석처럼 있는 역사, 생각, 기억들을 오롯이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I am not on the Blacklist>
2014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공개되었을 때 <I am not on the Blacklist>에서 검열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작업하신 점이 인상 깊었는데요. 교수님께서는 동시대의 문제를 주의 깊게 살피고 그로 인해 생겨난 질문을 던지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검열은 제가 오래 전부터 탐구해 왔던 주제였어요. 제가 암스테르담 예술대에서 공부할 때 구상한 프로젝트의 주제였죠. 한창 리서치를 하던 중 하루는 학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인 극장에서 리포트를 쓰고 있었어요. 학교 건물 전체 조명에 모션 센서가 있었는데요, 제가 오랜 시간 앉아서 별 움직임 없이 글을 쓰다 보니 순간 조명이 꺼지는 거예요. 그런데 제 앞에 펼쳐진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조명이 다시 켜지지 않게 움직이지 말고 계속해서 써 내려가자 했지요. 그 순간 차 한 잔 딱 마시면서 하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 가고 어이없는 게임을 시작했죠. 모션 센서에 내 몸이 감지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며 스튜디오 반대편 테이블에 있는 찻잔을 가져와 보자! 그리고 이 게임 안에서 제 몸은 환경에 의해 생각지도 않은 긴장감과 함께 변형되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결국 컵에 손이 닿고 물을 따르는 순간 불이 딱 켜졌더랬어요. 이때 센서로부터 감지되지 않는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내 몸이 변형되고, 또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면서 검열의 영향이 이런 것일까, 검열에 의한 몸의 변화가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모션 센서 라이트가 제 작업의 중요한 파트너가 되었어요. 그리고 결국에 만들어진 작품에서는 계속 센서 라이트가 켜지지 않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움직임을 찾아가죠. 아마 그것이 검열에 우회적으로 대응하는 우리의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가 공개되었을 때, 제가 연구하고 있던 주제와 교차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인쇄하여 스튜디오 바닥에 나열해 봤더니 그 면적이 제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의 반 이상을 차지하더라고요. 이는 참 큰 의미로 다가왔죠. 과연 우리는 검열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사이 다양한 형태의 검열과 협력하고 있지 않은가. 한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 CCTV, 빅데이터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는 우리의 정체성, 편의를 위해 순간적으로 받아들이는 많은 개인정보 사용에 대한 수락 등등. 이렇게 검열은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이 검열로부터 자유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하는 질문을 던져 보고 싶었어요.
최근 즉흥춤페스티벌에서 조명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하셨는데요. 몸짓뿐만 아니라 조명의 움직임을 이용하여 공간을 채운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으셨나요?
저는 순간적인 현상, 순간적으로 내 눈에 포착된 이슈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것 같아요. 보통 그렇게 작업을 시작하는 편이에요. 즉흥춤페스티벌에서는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기보다 무대에 주어진 환경, 즉 조명과 움직임만을 가지고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소통하고, 또 어떻게 소통에 실패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작업했어요.
소통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팬데믹으로 인해 만남과 접촉을 조심해야 하는 요즘, 어떻게 관객과 상호작용할 수 있을까요?
팬데믹이라 관객과 만나는 게 어렵기는 하지만 소통은 언제나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SNS로 감상을 올릴 수 있고, 메신저로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요. 소통을 어렵게 하는 더 큰 문제는 날카로운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을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예술가에게 피드백은 정말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그리고 가끔 공연을 마치고 나왔는데 관객이 모두 떠나서 한 명도 없을 때가 있어요. 처음에는 조금 놀랐는데, 이내 아 그럴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한국 공연장에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모여 앉아 함께 간단하게 음료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 건축가를 만나게 되면 공연장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서 공연에 대한 감상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요.
그리고 사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전 저와의 소통에 대해 더 집중하는 편인 것 같아요. 내가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싶은지, 또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것이 작업의 반 이상을 차지하지 않나 생각해요.
다양한 분야 및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와 협업해 오셨는데 관련한 경험이나 조언을 나눠 주실 수 있을까요?
협업을 할 때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저도 계속 배워 나가는 중인데요. 상대방과 어떤 작업에 대한 관점을 나누려면 나 자신이 명확한 관점, 입장을 가지고 작업에 참여해야 더 넓은 이해의 고리를 형성할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방법론적으로는 스코어1가 굉장히 중요하고 유용해요. 내가 어떤 것에 주목하게 되었고, 왜 작업을 하고 싶어 하는지 스코어로 표현할 수 있어요. 스코어를 통해 함께하는 작업자들 각자의 지점이 만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발견하면 우리가 어디로 갈 수 있는지 논의할 수 있고요.
<Everything Else>
교수님에게 작업의 동력은 무엇일까요?
요즘 안드레 레페키가 쓴 『코레오그래피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는데요. 안무에 대한 많은 개념들, 철학가가 바라보는 안무, 안무의 개념이 언제 시작됐고 동시대 예술가들이 어떻게 안무에 접근하고 있는지에 관한 책이에요. 안무라는 것은 정말로 많은 걸 포용하고 있구나 다시금 생각하게 되어요.
몸에는 굉장히 많은 것이 담겨 있잖아요. 기억, 역사, 하다못해 오늘 먹은 사과 한 조각까지도. 몸은 그런 것들을 천천히 풀어낼 수 있는 도구인 것 같아요. 내 몸에 담긴 많은 이야기를 안무를 통해 풀어내어 사람과 함께 질문하고 소통하고 싶어요.
요즘에 저의 관심사는 ‘게임(Game)’과 ‘플레이(Play)’에 대한 것이에요. 게임과 플레이는 나란히 있는 단어 같지만 실은 꽤 다르다고 생각해요. 규칙이 있고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게임과 달리, 놀이는 규칙이나 승자와 패자를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없는 개념이라 생각해요. 어떤 태도인 거죠. 사회가 게임의 환경과 맞물려 있다면, 사회에 놀이를 할 수 있는 틈을 의식하고 구축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질문해 봐요. 이는 어쩌면 잘 짜여진 것보다는 자유로운 공간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저의 생각을 담은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나올 수 있는 창조적인 공간을 탐구하고 유지하고 싶고, 그 공간 안에서 움직임이 드러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제 작업의 포인트이자 영감이에요.
몸을 단련하는 교수님만의 방법이 있나요?
움직임을 작업으로 하다 보니 어쩔 땐 단련하지 않는 게 단련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특정한 방면의 움직임을 계속하면 패턴이 되어 버리는 면이 있거든요. 요즘은 자이로토닉으로 몸의 균형을 잡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다양한 움직임을 병행하고 있어요.
<노란 풍경>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일까요?
예술은 정치·철학 그리고 질문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을 통해 많은 담론이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제가 우려하는 것은 예술이 사회에 담론을 제공하고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완벽한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 주력하는 것이에요. 예술은 언제나 질문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실패’의 가치, 그리고 다양한 관점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성과 위주의 환경 안에서는 일반적 평가가 예술의 가치보다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되어요. 예를 들어 콩쿠르의 평가 기준에서는 예술의 가치가 배제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우리가 짧은 몇 분 안에 누군가의 테크닉을 판단하고 누가 누구보다 나은지 결정하는 게 옳을까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다양한 움직임을 소화해 낼 수 있는 테크닉은 중요하고 또 움직임에 대한 연구는 끊임없이 이뤄져야 하겠지만, 작업을 평가하는 기준의 폭이 더 넓어졌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예술이 일반적인 기준을 따라가기보단 오히려 이에 질문을 던질 때 예술 본연의 역할이 드러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학생 지도와 창작, 두 가지 일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계시나요? 어떤 마음으로 학생들을 만나시는지 궁금해요.
저에게 작업은 삶과 뗄 수 없는 부분이기에 교육도 작업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학생들도 작업자라고 생각해요. 함께 배우고 의견을 나누고 싶어요. 학생들을 대하는 방법은 저보다 선배 교수님들을 통해서 많이 배우려고 해요.
<To be (un)seen>
팬데믹으로 인해 대부분의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신체성과 움직임이 제한된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나가셨나요?
코로나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어요. 우선 함께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부재했고, 줌을 통해 수업하다 보니 오롯이 움직임에 집중하기보다 ‘보이는 움직임’을 더 의식하게 되었어요. 스크린을 통해서 자신의 움직임을 보여 줘야 하고 또 상대의 움직임도 스크린을 통해서 봐야 하니까요.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내가 움직일’ 것인지 아니면 움직이는 몸을 ‘보일’ 것인지는 굉장히 중요하고 조심스러운 부분이거든요. 그래서 들리는 움직임은 어떨까 하고 음원을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음원에서 제시하는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프랙티스(Practice)를 제안해 보았어요. 그러자 자신이 생각하는 움직임, 그리고 그 음원을 해석하는 각자만의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온라인 공유 문서를 사용했어요. 공유 문서를 통해 학생들과 아이디어, 레퍼런스, 영상 등을 함께 나누고,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었을 땐 모여서 공유 문서로 나눴던 생각과 기록들에서 움직임을 찾아내어 실제로 움직여 보기도 하고요. 이 과정에서 아름다운 아카이브가 만들어졌고, 책으로 엮었는데요. (연구실 한편의 책을 꺼내 보이며) 학생들과 함께 만든 책이에요. 책 속의 QR코드를 찍으면 학생들의 움직임을 영상으로 볼 수 있어요.
책 만듦새가 무척 좋아요. 학생들이 책을 보고 기뻐했을 것 같은데요, 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아마 코로나로 많은 것이 변화된 상황에서 학생들은 저보다 더 혼란스러웠을 거예요. 하지만 학생들이 지도를 잘 따라와 준 덕분에 더 많은 시도를 할 수 있었어요. 저도 학생들을 통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고요. 고맙다는 말과 차 한번 마시자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학생들 활동에 대해 제가 줄 수 있는 조언의 범위는 작고 단편적인 것 같아요. 다만 학생들이 해외에서 활동하게 된다면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제가 18년 정도 유럽에 있었는데, 한 번도 휴가다운 휴가를 보낸 적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학생들이 해외에 나가게 되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조언을 가지고 돌아올지 궁금해요.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한예종이 벌써 30주년을 앞두고 중요한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는데요, 학교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기를 바라시나요?
한예종은 예술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또한 실천적이고 도전적 제시를 해 왔다고 봅니다. 그만큼 예술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차원에서 이 학교를 이때까지 이끌어 오신 교수님들과 학생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고요, 분명 한예종만이 가지고 있는 커리큘럼의 강점도 있지만 조금 더 유연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더 많은 경험을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학교 안에서 다양한 국적,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와 작업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많은 담론들을 포용하고 더 창조적인 생각들이 발전, 확장될 수 있는 곳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