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내딛는 발걸음 뒤에서 그의 시선을 따라 세상을 바라본다. 평온한 숨소리로는 감각할 수 없었던 노동의 현실을 마주한다. 미술이 사회를 말한다는 건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읊조림을 듣는 일 아닐까. 개인의 삶 속에 스민 불화와 사회의 이면을 탐구하는 작가 차재민을 만났다. 십 년이라는 시간. 그의 여정을 가늠하며 작업의 어제와 오늘, 변화하는 지점을 함께 살펴보자.
영상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작업할 때 영상 매체의 어떤 면을 특히 고려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학부 졸업 작업으로 드로잉을 영상으로 만들었어요. 그림을 그리고 8mm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뒤에 영상으로 옮기는 과정이 재미있더라고요. 이후에 영국으로 유학을 했는데 당시 유럽 상황이 안 좋았거든요. 시위가 잦아서 학교도 거의 문을 열지 않는 때였어요. 그래서 저도 작은 카메라를 들고 광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찍었어요. 특별한 의도가 있지는 않았지만 제 눈앞에 펼쳐진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 내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 두 가지 경험이 저에게는 영상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고요. 매체의 측면에서는 제가 합성 이미지 또는 파운드 푸티지를 쓰는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무엇을 찍을 것인지를 가장 많이 고민해요. 촬영을 영어로 슛(shoot)이라고 하듯이, 찍는다는 것은 총알을 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면도 있어요. 그래서 촬영은 늘 사려 깊은 선택이 필요한 행위라고 생각해요.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찍는 일은 강력한 힘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요.
작가님의 작업은 사회의 모순과 개인의 관계를 끊임없이 사유하게 합니다. 어떤 순간들을 거쳐 작업의 출발점으로 도달하게 되시나요?
제 첫 개인전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당시 법의학을 독학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독학자>(2014)라는 작업을 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저는 쉽게 풀리지 않는 질문에 천착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매료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수사학처럼 실마리를 찾아가는 행위나, 징후의 뿌리를 따라가는 일들이 미술과 닮았다고 생각해요. 불분명하고 부수적인 세부 정보를 그러모아 핵심을 만드는 일들, 진료, 탐사, 정신분석 같은 행위에 관심이 많아요. 작업의 출발점은 역시 가장 오래 생각하는 질문, 저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이에요.
<안개와 연기>, 2013
초기작 <몽유병자>(2009)와 <안개와 연기>(2013)는 재개발과 불평등, 불안과 불화, 사회 이면의 복잡성을 파고들며 작업하는 작가님의 꾸준한 관점이 드러납니다. 특히 <안개와 연기>로는 제10회 서울 환경영화제에서 아베다 한국환경영화상 우수상을 수상하셨는데요, 개인이자 작가로서 이러한 사회를 바라보는 방법론이 특별히 있으신가요?
저는 취재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중에 인터뷰라는 방법을 자주 쓰고요. 제가 구상하는 내용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아야만 감각할 수 있는 지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뷰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정치적인 화두라든지 그들이 주장하는 이야기들까지도 다 유념해서 듣는 편이에요. 하지만 그 내용을 전부 작업에 직접적으로 쓰지는 않아요. 배움(learning)과 비움(unlearning)의 과정이 뒤따르는데, 취재한 것들을 한편에 밀어 두고 미술 언어로 표현 가능한 부분을 고민하는 단계가 있어요. 돌이켜 보면 저는 특정한 상황을 묘사하거나 단순히 기록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아요. 외려 제가 속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불화의 상황들, 여러 번 묘사되고 설명되어 너덜너덜해진 상황의 본질을 발견하고자 해요. 그리고 그 이면에 있는 이야기들을 감각으로 풀어낼 방법을 고민하기도 하고요. 언젠가 한 평론가가 기존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개인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을 보인다면, 제 작업은 사회적인 문제를 개인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는 방향을 드러낸다고 설명한 적이 있어요.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사회적 이슈를 어떻게 인지하는지를,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한계가 동시에 공존하는 순간을 바라보려고 해요. 그래서 저 자신이 ‘구경꾼’이 아니라 ‘목격자’가 된다는 지점에서 겪는 내적 갈등, 이후에 어떤 실패와 실천을 고민하게 되는지를 따라가는 여정을 자꾸만 선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최근 작업인 <의자 위를 걸으며>(2020), <사운드 가든>(2019)에서는 영상에 등장하는 이미지와 내레이션 간의 충돌이 언어와 이미지 사이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제 작업에서 점차 스크립트의 비중이 많이 늘어나고 있어요. 내용이 많아진다는 뜻인데요. 작업에 등장하는 텍스트는 단순한 서술이 아니라서 제가 다루고자 하는 상황의 맥락과 복잡성을 담아 내려면 분량이 꽤 필요하거든요. 스크립트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음성’이라는 질감에도 큰 의미를 두고 있어요. 제 초기 작업인 <이것은 질문이 아니라 풍선이다>(2010)라는 영상 작업에는 주인공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서 나와요. <사운드 가든>(2019)은 상담사분들이 등장해서 실제로 상담을 하실 때 사용하는 온화한 말투와 작은 음성이 나오고요. <의자 위를 걸으며>(2020)에서는 중국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걸으면서 이야기하는데 굉장히 가쁜 호흡으로 전해져요. 스크립트를 전달하는 음성의 톤과 속도도 제 영상 안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어요.
<미궁과 크로마키>, 2013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재난과 치유》(2021) 전에 참여하셨는데요, 출품작 <미궁과 크로마키>(2013)가 제작된 지 9년 뒤인 오늘날에도 다시금 비대면 시대에 발생하는 노동의 불평등과 부조리를 일깨우며 또 다른 맥락에서 사회와 맞닿고 있습니다. 작업할 당시 어떤 사유를 거치셨는지, 현재에는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영화 <모던 타임즈>(1936)를 보면 찰리 채플린이 나사를 돌리는 손동작을 반복하는 장면이 있어요. 채플린은 단추만 봐도 자꾸 돌리려고 하는데, 그러다 야단을 맞기도 해요. 이 영화뿐 아니라 다양한 레퍼런스를 통해서 단순한 손작업, 그 자체에서 소외가 벌어지는 맥락을 살펴봤어요. 그리고 노동과 노동의 결과물이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에 대한 필드 리서치를 토대로 <미궁과 크로마키>를 만들었어요. 단순 노동하는 손이 칼이나 다른 도구를 쥐기도 하고, 또 그 손이 빈손이 되기도 하는 상황에 크로마키 기법을 이용해서 배경을 바꿔 보기도 했어요. 이때 단순 노동을 다양한 이미지로 바꿔 가면서 음악과 함께 변주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당시에 저에게는 중요한 기획이었어요. 9년이 지난 다음에 이 작업을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대를 재조명하는 《재난과 치유》라는 전시회에서 선보였잖아요. 9년 전에는 오늘날과 같은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제 작업이 전시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저는 정의할 수 없지만 이 전시가 저에게, 예술가들에게 팬데믹 시대의 노동이란 무엇이냐고 질문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비대면이라는 조건 속에서 미술계에서는 작품의 제작과 관람 방식에 변화가 일어나며 가상 현실(VR)과 증강 현실(XR), 메타버스와 같은 새로운 환경이 대두되었습니다. 미술 작업을 관람하는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과 매체 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새로운 매체를 과감하게 미술로 도입하는 작가들도 등장하고 있고요. 그렇지만 딱 이 매체로만 다룰 수 있는 물성을 보여 주는 작업은 아직 보지 못한 것같아요. 인간은 편리함을 줄 수 있는 물리적인 환경을 선호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아직은 HMD(Head Mounted Display) 같은 기구를 쓰거나 부수적인 요소를 착용하는 것이 거추장스럽고 힘들지 않나 싶어요. 예를 들면, 3D 영화 기술도 1950년대에 구현되었다가 침체된 이후에 다시 <아바타>(2009)라는 영화가 나와서 잠깐 주목을 받았고, 또 한동안 안 보이기도 했잖아요. 관객이 관람할 때 어지러움을 느끼거나 안경을 써야 하는 등의 조건 때문에 인기가 줄어드는 것이라고 느꼈거든요. 물리적인 편안함을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가 앞으로의 발전에 관건이라고 생각해요.
<보초 서는 사람>, 2018
작가님께서는 영상을 제작하기 전 자료 조사와 인터뷰 등 사전 작업을 진행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술의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지평에 걸친 폭넓고 깊이 있는 전개 과정과 작업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제가 머리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작업실 밖으로 나가서 실제로 보고 사진을 찍고 인터뷰하는 과정을 즐기는 편이에요. 필드 리서치는 저에게 당연한 과정이 되었죠. 이 과정을 거치면 가장 먼저 제 자신의 생각과 태도가 변하고, 다르게 혹은 다시 질문해 볼 수 있는 계기가 찾아와요. 특히 취재 협조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신중을 기해야 하는데, 때로는 호의적으로 응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후에 작업이 본인에게 어떤 역할을 해 주길 바라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작업 참여자들에게 서비스할 필요는 없지만, 서로를 착취하지 않는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해요. 타인을 도구 삼아 제 욕망을 찾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하고요.
작가님께서는 합성 이미지나 파운드 푸티지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촬영한(Lens Based) 소스로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핸드 헬드보다는 그립, 달리, 지미집, 모비 등 다양한 장비를 이용하는 것을 추구하시는데요, 이러한 무빙이 작업에서 하는 역할이나 선택의 계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미궁과 크로마키>에는 전봇대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위로 긴 물체를 찍기 위해 수직의 움직임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넓은 화각으로 위아래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지미집을 이용했죠. 촬영은 어떤 촬영감독과 협업하는지에 따라서도 많이 달라지지만, 작업마다 어떤 대상을 어떻게 찍을지 고민하면서 결정해요.
<안개와 연기>는 트랙터를 타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사람을 촬영해야 했어요. 트랙터를 따라가는 속도를 유지하면서 흔들림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비를 찾으려 했고요. <보초 서는 사람>(2018)의 경우는 등장인물이 하염없이 걷는 장면을 촬영해야 하는데 어떻게 계속 촬영을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짐벌을 차에 실어 사용했어요. 제 영상 작업에 카메라가 인물 뒤를 쫓아가는 장면이 많은데, 대상을 따라가면서 담기는 배경, 그 풍경이 바뀌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저에겐 중요해요.
프로덕션을 통해 작업할 때, 협업에서 중요하게 고려하는 지점이 궁금합니다. 또한 기억에 남는 제작 경험이 있다면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작업의 내용이 협업을 담보로 하는지부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다수의 사람이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있는 작업을 하고 있는지, 하고자 하는 내용의 부피를 넘는 화려한 장비나 프로덕션의 규모를 가지려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계속 확인해요. 내 상상력의 크기와 예산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어야 해요. 사실 협업이라는 건 예전에도 존재했던 방식인데, 전시 하나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함께 일을 하겠어요? 작은 역할은 호명하지 않았던 것 같더라고요. 관습이었죠. 그렇지만 이제는 전시 하나를 만들더라도 참여한 모든 사람의 크레딧을 명기하는 문화를 찾아볼 수 있는데, 변화하고 있다고 느껴요. 사실 이 부분은 기관과 아웃소싱의 문제와도 얽혀 있긴 하지만, 작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전시에 참여한다는 점을 알린다는 초점에 맞춰 이야기하고 싶어요. 더 넓게는 미술이 미술 자체만으로 남아 있기보다 다른 장르와 접해서 다른 가능성을 찾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차원에서도 협업은 불가피할 거라고 봐요. 협업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는 한국 사회가 품고 있는 문제점들과 맞닿아 있어서 총체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덕션은 <사운드 가든> 이에요. 강원도에서 새벽 두 시에 나무가 트럭에 실려 가는 모습을 촬영했어요. 캄캄한 밤에 나무 끄트머리 붙은 불빛만 보고 뒤따라가는 거예요. 그 여정이 왠지 모르게 슬프고 아름다웠어요. 그때 느꼈던 고요와 어둠을 잊지 못해요.
<사운드 가든>, 2019
올해로 4년째 미술원에서 ‘무빙이미지 창작워크숍’ 수업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중요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실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은 크게 없어요. 대신 ‘잘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누군가가 저에게 미술원에서 배운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동료들과 치열하게 토론했던 경험이라고 말할 것 같아요. 그것이 앎이었다고. 수업에서 서로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하는 경험은 정말로 소중해요. 자신이 예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아는 것, 잊지 못할 예술 작업이 있다는 것, 그런 마음이 각자의 미심쩍은 재능을 돌보고 가꾸게 하니까요. 누구든 졸업 이후에 한동안은 고통스러운 생존의 시기를 겪어야 하는데, 그때를 버틸 수 있는 기억을 수업에서 얻어 갈 수 있었으면 해요. ‘미술 해서 뭐해요’, ‘미술 해서 뭐 먹고 살아요’라며 슬퍼하는 졸업생들에게 어떤 대답도 해 줄 수 없지만 학교에서 나눴던 우리의 대화들로 위로되었으면 해요.
위 수업에서는 작품의 제작뿐만 아니라 설치 계획과 실행 방법을 구체적으로 다뤄 주시는데요, 전시에 관련된 작가님의 경험이나 해 주실 조언이 있으실까요?
저는 전시를 단순히 작업을 보여 주고 발표하는 행위가 아니라 사건을 만드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미술대학을 졸업하고도 전시는 참 어려운 숙제가 되더라고요. 흡족한 공간을 만나기 어려워요. 그래서 항상 어떤 조건에 저항하거나, 타협하거나, 적응해야 해요. 열악함은 늘 제1 조건이고요. 처음 전시를 하게 되면 전시 공간을 얼마만큼 사용하고 싶은지 어떤 조건이 작업을 설치하기 위해 필요한지 커뮤니케이션하는 일부터 시작하게 될 텐데요. 공간과 관련한 모든 것은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게다가 이 물리의 세계를 충분히 경험하기도 쉽지 않아요. 신진 작가가 웬만하게 크고 흥미로운 공간을 만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요. 그래도 저는 전시는 ‘해 볼 만한’ 것이고 재미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스스로 작업 앞으로 오게끔 초대해서 굉장히 적극적인 해석을 요구하고 주체적으로 사유를 나누는 사건이 전시 말고 어떤 게 있을까요. 요새는 핸드폰에서 버튼 하나 누르면 수많은 영상이 바로 재생되는 시대잖아요.
삶과 미술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균형을 잡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창작을 지속하게 하는 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근에 진행하는 작업을 통해서 건강하다는 상태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있어서인지 건강함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여기서 건강하다는 말은 정상성이나 우월함을 뜻하는 게 아니에요. 어디로든 변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상태가 제가 생각하는 건강함에 가까워요. 몇 년 전만 해도 제 작업이 어디서 어떻게 전시되고 소개될지 구체적으로 바라는 게 있었어요. 그런 옹졸함이 전문성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런 생각을 아예 안 하게 되었어요. 어떤 동력이나 목표가 있기보다는 건강한 삶을 살고 싶어요. 그런 내 삶의 한 일부로서 제 작업이 건강한 범위에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삶과 미술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자면, 작가 생활을 한 짧은 십 년 동안에도 이 사회는 달라지고 있어요. 제가 학생일 때만 해도 사람이 별로여도 작업이 좋으면 된다는 결과론적인 생각이 지지를 받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런 생각은 더는 유효하지 않은 시대가 온 것 같아요. 미투 운동, 기후 위기, 팬데믹 등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고, 삶과 예술이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서로에게 반영이 된다는 걸 느껴요. 덧붙이면 저도 작가니까 다른 작가의 작업을 볼 때 그 사람의 삶에 대해서도 눈여겨보게 되기도 하고요. 사는 방식이 작업에 반영이 된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의 다음 작업과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작년부터 <네임리스 신드롬>(가제)이라는 영상 작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진단명 없는 증상을 앓아 온 여성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왔는데요. 간략하게 소개하면 명명되지 않는 고통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에 관한 작업이에요. 이와 관련된 매우 많은 사회학적 요소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의학이 남성의 몸 위주로 발전했기 때문에 동시대 여성이 앓고 있는 증상들이 진단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여성의 통증을 히스테릭이나 징징거림으로 치부하기 때문에 병명이 없거나 심인성(心因性)으로 진단되는 사례도 있어요. 지금은 제작에 착수하기보다는 연구를 많이 하고 있어요. 하반기에는 전작 전시 일정들이 몇 개 있고, 본 작업은 내년 중에 선보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