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magai Naoko

안녕하세요. 영상원 영화과 12기 졸업생 이랑입니다. 매거진 ‹K-Arts› 편집부로부터 칼럼 의뢰를 받고 글을 쓰기 전 청탁서를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영상원을 졸업하고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제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를 묻고 있었습니다. ‘아티스트 이랑의 무한한 행진’이라는 가제도 붙어 있었습니다. ‘무한’이라는 단어를 앞에 두고 며칠 동안 한 글자도 쓰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대답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저 머리에 꽉 찬 생각은 ‘이 상태가 무한히 계속 되면 나는 죽겠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지난 6월에 시작한 메일링 서비스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1 9월호 원고에서 제 상태를 묘사한 부분이 있기에 여기에 옮겨 보았습니다.

「영상작가이면서 소설가이면서 에세이스트이면서 페미니스트이면서 선생님이면서 준이치 엄마이면서 만화가이면서 음악가인 정체성을 모두 유지해 나가는 것이 정말 힘들다. 지난 3월부터 시작한 메일링 서비스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를 기획하면서는 그간 안 해본 것들을 새롭게 해내고 있다. (예를 들면 엑셀이랑 엑셀) 주변에서 나를 자주 칭찬하거나 비판하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항상 똑같은 대답을 한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기서 생활이라 함은 곧 돈을 뜻한다.

지난 달 도쿄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가까운 시일 예정되어 있던 북토크 준비로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을 급히 완독했다. 몇 년 전 사두고 펼치지 않은 책을 일 때문에 급히 완독했다는 사실이 지금 나의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작가에게 연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을 때 어떤 자유가 생기는지 말하고 있었다. 방해받지 않고 오직 뛰어오를 것만을 생각할 수 있는, 슬픔과 분노에 차 있지 않은 여성작가는 어떤 글을 쓰게 될까. 과연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시간과 돈과 여유가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말이다. 분노에 차 있지 않은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제 창작의 원동력은 오랫동안 분노였습니다. 가족에 대한 분노가 그 시작이었지만, 사회에 나온 뒤론 일을 하고 마땅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에 큰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 일이 ‘예술’이라는 특성을 지녔을 때 더 그런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것 같았습니다.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면서 왜 돈을 받으려고 하나.’ 상금이 없는 음악상을 받고 트로피를 팔았을 때, 온갖 사람들에게 저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 하는 것들이 제 직업이고 일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창작활동보다 증명활동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무한한 분노를 생각하면 정말 피곤합니다. 분노는 전염성이 강하고 분노하는 사람도 에너지를 많이 빼앗깁니다. 그래서 저는 그 분노를 질문의 형식으로 바꾸어 열심히 팔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 - 이랑 정규 2집 ‹신의 놀이› 中

유/무형의 창작물을 만들고 파는 것이 제 직업이고 일임을 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 요즘은 저를 소개할 때 ‘자영업자’ 혹은 ‘제조업자’라고 말합니다. 그 과정에서 예술가, 작가, 아티스트, 이야기꾼 등의 이름을 하나씩 실험해 보았지만 잘 먹히지 않았습니다.
생활을 위해 창작물을 하나하나 긴급히 팔아야하는 자영업자로서 ‘어떻게 하면 내 질문을 더 잘 들리게 할 수 있을까?’를 자주 생각합니다. ‘말하고 싶다’와 ‘들리게 하고 싶다’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판매실적에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미리 배웠더라면 제가 더욱 성공적인 자영업자가 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1 정중하게 이메일 쓰는 법:
문체, 서명하는 법

2 계약서 쓸 때 주의할 사항:
추후 생길 수 있는 분쟁에 대비해 미리 검토할 점

3 세금신고 및 계산법:
종합소득세와 연말정산, 간편 장부 작성법

4 소득금액 증명:
건강보험료 / 국민연금 부당과금 당하지 않는 법

5 주택청약, 버팀목 전세보증대출, 공공 임대주택, 행복주택 등 저소득층 주거 관련 지식

이 외에도 저금과 적금, 주식과 부동산 등 많은 것들이 있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제 직업을 인정받고 제 노동에 합당한 대가를 받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싸움이 모쪼록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싸움이 유한하기를, 그리고 이 싸움의 결과로 저와 제 친구들에게 연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생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땐 어떤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지 잘 상상은 되지 않지만 어쨌든 기분 좋은 상상이라 더 자주 상상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글 이랑(전방위 아티스트)
1 갑작스런 암 선고로 투병 생활을 시작한 한 친구를 돕기 위해 시작한 메일링 서비스 프로젝트입니다. 시 소설 에세이 인터뷰 만화 일러스트 레시피 사진 영상 믹스트랙 오디오북 등 30인의 작가가 각 1편의 이야기를 제공하면, 총 30개의 이야기를 매일 1편씩 구독자의 메일로 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