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그 시대에 늘 새로운 것이었다. 새로운 것이 건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지속될 때 전통이 된다. 새로운 도전을 통해 전통음악이 동시대의 감상자들에게 다가가기를 원한다는 유경화 교수. 연주자이자 음악감독으로서 월드 뮤직과의 크로스오버, 다른 예술 장르와의 만남 등을 통해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이어 온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교육자이기도 하다.

ⓒ 김경수

전통음악 연주자로서 다방면으로 활동해 오셨는데, 그중에서도 ‘철현금’1을 연주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통음악에 입문하게 된 것은 4살 때 한국무용을 시작하면서부터예요. 고등학교와 대학에서는 거문고를 전공하고 석박사 과정에서 타악기를 공부했고요. 철현금을 연주하게 된 계기는 거문고 공부를 위해 임동식 명인의 고음반을 찾아 듣던 중에 함께 연주되던 안향련 명창의 철현금 소리를 처음 듣게 되었는데요. 저음은 거문고보다 더 풍성하고 고음은 가야금보다 더 낭랑한 것이 제게는 영혼을 울리는 소리여서 ‘아, 이 악기를 배워봐야겠다’ 생각했고, 이후 1995년경부터 20여 년간 철현금 연주자로 살아왔죠. 나에게 딱 맞는 악기 철현금을 만나고부터는 하고 싶은 새로운 도전을 더 거침없이 해왔던 것 같아요.

해외에서도 많은 연주 활동을 하시면서, 국악을 해외에 소개하고 여러 음악가들과 협업하며 스펙트럼을 넓혀 가고 계십니다.
하다 보니 국악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우리 음악을 알리게 되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지만, 사실 해외 공연은 전통 예술가로서 자존감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어요. 전통음악은 현재 국내에서는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향유되는 아웃사이더의 느낌이 있죠. 오히려 해외 무대에서 우리의 소리에 더 관심을 가지고 소중히 여겨준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기 때문에 제가 달려가는 입장이 된 것 같아요. 2010년에는 인도에서 열린 월드 뮤직 페스티벌에서 한국 대표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세계 각국의 뮤지션들을 만났지만 인도의 음악이 가장 새롭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국악과의 융합을 상상해보게 되었죠. 1970~80년대 이후 우리 전통음악에서의 크로스오버는 서양 음악의 방향성을 가지고 작업해온 것이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서양 음악과는 달리 인도 음악은 리듬(장단)이 핵심 요소인 우리 전통 음악과 흡사한 부분이 많아 그동안 갈망해 온 ‘우리 음악을 근간에 둔 크로스오버’가 가능할 것 같았어요. 이듬해에 한국에 있는 모든 일을 정리하고, 보따리를 싸 들고 인도로 갔죠. 1년여 간 인도의 대표적인 악기 ‘타블라’의 리듬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그 어법에 대해 공부했어요. 그때 배운 것들을 지금도 제 음악의 많은 부분에 녹여내고 있습니다.

연주하는 유경화 교수

‘월드뮤직 앙상블 이도’의 음악감독이자 연주자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도’는 전통음악의 특수성에 다른 장르, 다른 나라의 음악을 더해 좀 더 보편성을 가지고, 국내외 더 많은 관객들과 나눌 수 있는 음악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앙상블입니다. 현재 4명의 멤버가 함께 작업하는데요. 저는 철현금과 장구를, 베이시스트 서정철 씨는 콘트라베이스와 일렉 베이스를, 박범태 씨는 구음과 장구를, 재즈 피아니스트 원영조 씨는 피아노와 컴퓨터음악(미디) 등을 담당합니다. ‘이도’는 현재 2집을 준비하고 있고, 올 10월에는 강릉아트홀에 초청을 받아 새로운 음악을 발표할 예정이에요. 앙상블의 이름인 ‘이도’는 제가 존경하는 세종대왕의 이름이에요. 국악사에서 세종은 작곡가이자 작사가, 악기 제작자였고, 절대음감의 소유자이기도 했습니다. 세종은 ‘백성과 함께 더불어 즐기는 음악’이라는 의미의 ‹여민락›을 작곡하였고, 음악을 귀족이나 궁에서만 즐길 것이 아니라 백성과 함께 즐겨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것은 제가 월드 뮤직을 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세종이 그랬듯, 음악을 통해 일부 특별한 사람들만이 아닌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다는 것이 제 철학이에요.

서울시청소년국악단 음악감독으로 활동하시면서 ‹꿈꾸는 세종› 공연으로 주목받으셨습니다.
‹꿈꾸는 세종›은 방금 말씀드렸던 음악가로서의 세종에 관한 스토리를 작품으로 만든 것입니다. 음악의 추상성에 구체적인 메시지를 더하기 위해 영상, 퍼포먼스, 춤 등을 더한 예술 장르 간 융합 공연이고요. 첫해 발표하자마자 청소년국악단이 대한민국 창작국악극대상에서 최고연주상을 받았고, 세종문화회관이 선정하는 올해 최고의 작품, 최고 포스터 디자인 부문에서까지 3관왕에 올라 힘들게 작업한 보람을 느꼈던 작품이에요.

한예종 전통예술원 음악과 교수로 오신지 만 4년을 앞두고 계신데요, 전통예술원의 특징과 앞으로의 역할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전통음악은 화성이 아닌 단선율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리듬, 장단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여태까지는 기존 모든 대학에 타악 전공 지도 교수가 없었어요. 한예종에서 최초로 전통음악의 리듬(타악)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전임교수 자리가 생겨 제가 오게 된 것이죠. 저는 전통예술원 전문사를 마친 졸업생이기도 한데요, 제게는 어릴 적부터 공부했던 모든 전통 음악의 이론이 획기적으로 바뀌면서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것이 한예종 전문사 과정이었어요. 철저하게 음악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인문학적 베이스 또한 공부할 수 있었고, 그때 공부에 재미를 붙였던 것 같아요. 한예종 전통예술원은 작년에 2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 커리큘럼과 입시제도 면에서 파격 그 자체였고, 전통음악계의 모든 대학에 큰 충격을 주면서 변화를 이끌었다고 봐요. 이제는 20년이 흘러 입시제도와 커리큘럼 상의 변별력이 예전만큼 크지 않아요. 저는 예술가의 궁극의 목적은 남과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이 예술을 추구하는 예술학교에서는 교훈과도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봐요. 현시점에서 ‘이다음은 무엇인가’, 이 시대에 어떻게 국악 교육을 새롭게 확장할 수 있는가를 다시 고민해야 합니다.

월드 뮤직 앙상블 이도

연주자 혹은 음악감독으로서와 다른 교육자로서의 철학이 있으시다면.
저는 연주자로서 무대에 설 때와 교육자로서 강의실에 설 때의 자세가 똑같다고 생각해요. 무대에서처럼 강의에서도 자유로움을 추구하기도 하고, 연주 무대에서의 감흥을 강의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강의를 듣던 모두의 눈이 동시에 반짝반짝 빛나면서 제 이야기에 집중해 주는 순간이 있는데, 그것은 마치 무대에서 ‘얼씨구’ 하는 추임새로 관객에게 응답받는 순간과도 같아요. 특히 한예종에서의 강의는 음악가로서의 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멘토링 수업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제 교육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수업이 예술교양학부의 융합창의창작 수업이에요. 타 예술 분야와의 융합 작품을 해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의 커리큘럼을 만들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예술 분야의 학생들이 모여 함께 고민하고 학습해나가는 이런 수업은 한예종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늘 이야기하죠. 학생들이 상대방의 예술 장르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지고 서로 존중하기 때문에 한 학기가 끝날 때쯤이면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 보여요. 학생들은 ‘이렇게 다른 분야의 학생들과 예술로서 만날 수 있는 창구가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적어서 아쉽다’고 이야기하기도 해요. 저는 이 수업이 더 확장되면 좋겠어요. 한 학기별로 진행하기에는 짧은 감이 있거든요. 적어도 1년 단위의 수업이 되어 학생들이 융합예술에 대한 고민을 더 깊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수님의 음악 활동에서 ‘소통’과 ‘공감’은 중요한 키워드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 장르 간의 융합뿐 아니라 ‘시대적 공감’은 제 음악 활동에 있어 중요한 키워드이고, 이에 대한 해답을 ‘크로스오버’라는 방식으로 모색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적 공감을 얻기 위한 방법은 다양하게 열려 있다고 생각해요. 이 시대의 중심이 되는 2~30대 청년들의 미감은 저와 또 다를 수 있어요. 후배나 제자들에게는 제가 할 수 없는 동시대적 감각을 더욱 자유롭게 전통음악에 녹여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제 딸도 전통음악 작곡 전공이지만 새벽까지 웹툰을 보거나 힙합을 듣고, 고등래퍼 같은 프로그램을 보는데, 저는 그걸 오히려 독려하는 편이에요. 동시대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얼마든지 새로운 미적 감각을 국악에 녹여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전통에 천착한 학습에 관한 집중력을 놓아서는 안 되죠. 두 가지가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시대의 전통예술가로서 전통의 의미가 어떻게 다가오시는지요. 전통과 새로움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전통의 의미를 이야기할 때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 있는데, ‘전통은 그 시대에 늘 새로운 것이었다’라는 명제가 해답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것이 건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지속될 때 전통이 되는 것이거든요. 새로운 것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반응은 늘 나타납니다. 우리 음악의 ‘산조’나 서양 음악사의 ‘바로크’를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기존 양식에 익숙했던 사람들의 거부반응을 일으켰잖아요. 바로크라는 단어가 원래 ‘일그러진 진주’라는 부정적인 의미였던 것처럼 우리 음악의 산조 또한 ‘흩어진 가락’이라는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였어요. 산조는 당대의 어법에는 맞지 않는 파격적인 양식이었지만 지금은 전통음악의 대표적인 악곡 양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죠. 이것을 잊지 않는다면 전통음악을 전공하는 우리들도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글 김명진 | 사진 김경수 | 영상 김건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