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뉴웨이브를 이끌며 수많은 감독들을 배출해낸 박광수 교수를 만났다. 계속해서 새로운 영역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그의 연구실에는 자료조사를 위해 스크랩한 신문 뭉치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엔 문서 작업만 가능한 시나리오 작성용 노트북이 함께했다. 그래서일까. 치열하게 고민했던 신문의 한 기사처럼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시각으로 시나리오의 한 장면같이 자유롭고 거침없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 김경수

영화와의 만남, 그리고 데뷔작 ‹칠수와 만수›
제가 영화 동아리 ‘얄라셩’의 리더일 때는 영화라는 장르가 형편없는 장르로 인식되었어요. 한국영화가 어떻게 정상적인 문화 안에서 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엔 영화 운동을 시작하며 서울영화집단을 만들었어요. 어떻게 한국영화를 변화시킬 것인가 고민하면서 인적 자원을 확충시키고자 했습니다. 각 대학에 영화 동아리를 확산시키는 운동을 했죠. 당시에 영화과에 영화를 만드는 교수가 없어서 인적 자원의 받침이 되는 곳이 없었습니다. 전국의 대학에 영화 동아리가 생기고 한국 영화에서 뉴웨이브가 시작될 때 그 인력들이 영화계에 들어가서 한국영화에 큰 변화가 생깁니다. 그때 문제가 된 것은 매체였습니다. 저희가 처음에 만들었던 영화들은 슈퍼 8mm 필름으로 찍었어요. 비디오카메라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국내에선 8mm 현상소가 없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매체를 바꿔야 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매체적 환경의 기반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어요. 저는 새로운 매체에 대해 교육을 받기 위해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2년 뒤,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내려오는데 모르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여기가 어디지’ 했는데 강남이더라고요. 그 장면에 관심을 가지고 강남을 배경으로 유리창 닦는 사람이 들여다보는 안과 밤 풍경, 이 두 가지로 영화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흥행했던 극단 연우무대의 연극 ‹칠수와 만수›를 보니까 제가 준비한 부분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더라고요. 그래서 연극을 각색해서 영화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칠수와 만수›, 1988

제3의 인물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제가 만든 영화들은 ‘나는 이것을 이렇게 생각한다’고 주장하는 영화라기보단 어떤 문제에 대해 새로운 논의가 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던지는 형태로 접근합니다. 영화 형식도 주관적인 입장을 전달하는 쪽이 아니라 중간중간 여백을 두어서 관객이 영화 속으로 완전히 몰입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세요”라고 말하는 게 제가 했던 방식들이에요. 감정적인 변화를 적당한 선에서 차단시킨다는 방식을 택했어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도 마찬가지고 ‹이재수의 난›까지도 그런 방식으로 찍었습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 우리는 전태일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고 있잖아요. 영화에서는 전태일에 대해 글을 쓰는 인물인 70년대의 지식인에 대해서 표현하는 데 주력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보는 전태일에 대해 썼기 때문에 전태일을 선동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은 무엇을 하는 인물인지, 이 지점에 포커스를 두었고 전태일이라는 인물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995

다양한 플랫폼 환경에서, 영화
일차적으로 예전과 차이가 나는 것은 감독을 비롯한 관객들도 평소에 영상을 많이 찍기 때문에 영상에 대해 익숙해져 있고 이해도가 높다는 점입니다. 지금 관객들의 이해 수준을 잘못 파악하면 고루한 영화가 될 수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생각했을 때 핵심은 영화가 극장 예술이라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측면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전과 크게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DVD나 TV가 나왔을 때 극장이 무너질 것이라는 이야기 나왔었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오히려 올해 극장의 관객 수는 작년보다 많이 늘었습니다.

작품을 만들 때 중요한 것은
충실히 자유로운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관점으로 나만의 철학을 갖고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품 만드는 사람의 장인적인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만드는 영화의 핵심에 대해서 정확하게 자유로운 이해를 하지 못하면 영화에 끌려다니게 됩니다. ‹이재수의 난›도 20년 정도 준비했던 영화입니다. 배경인 제주도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를 했다고 생각해요. 그곳에 있었던 핵심적인 이야기들, 많은 문제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를 하고 그 시대적 사건에 대해서 자유롭게 컨트롤할 수 있어야지 영화가 생각한 대로 만들어진다고 보거든요. 어떤 소재든지 감독이 그것을 정확하게 알고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준비하는 영화에서 자신이 객관화되는 것은 중요합니다. 영화를 어떤 시선으로 볼 건지 말이죠. 자신이 그 영화에 빠져있으면 만들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에 기술적인 부분은 만드는 사람이 얼마나 훈련되었느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베를린 리포트›, 1991

영화와 정치의 조우 가능성
정치도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죠. 어떤 정치 형태로 정권이 바뀌더라도 작품 하는 사람은 항상 비판적인 시각으로 봐야 합니다. 예술 하는 사람이 정권에 들어가서 같이 일하고 있으면 중심을 잃어버리잖아요. 어떤 정권이든지 간에 권력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항상 거기서 한 발 떨어져서 그 문제점들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획일화된 사고만 한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의 교육
우리가 잘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것과 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에서 영화감독이 되는 것은 차이가 커요. 우리 학교 학생들이 비교적 상을 많이 받는 경향은 있어요. 기술 스텝들이 전문화되어 있기 때문이죠. 한국에 있는 대학들 중 기술 파트를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데는 우리 학교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졸업하면 맥을 못 추슬러요. 제가 영화를 많이 만들진 않았지만 제 영화 연출부 하던 사람들이 감독으로 많이 데뷔했어요. 저는 그게 영화 교육의 핵심이라고 봐요. 영화과에 들어온 학생들은 영화예술을 하려는 것이죠. 영화예술을 하려는 사람들은 시스템에 적응하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학생을 가르치려고 들면 학생들은 거부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볼 때 가장 좋은 교육은 선생님이 솔선해서 자기가 영화를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학생들과 함께 참여하여 영화를 만드는 것이 좋은 교육이겠죠.

‹그 섬에 가고 싶다›, 1993

아시아필름마켓, 부산영상위원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경험
우리가 왜 한국영화를 평가할 때 남의 기준에 맞춰서 웃고 울고 하는지 의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자체 평가를 해야지, 또는 남의 영화를 평가할 수 있어야지, 왜 남들이 하는 평가에 끌려다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당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잘 모르면 영화에 대한 평가를 하기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체적으로 영화에 대해서 평가하고 방향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정상적인 영화 촬영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필름 커미션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원래 필름 커미션의 기능은 촬영 허가를 내고, 촬영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촬영을 지원해주고 특정 장소에서 촬영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이죠. 그러나 당시 도시에서의 영화 산업화가 필름 커미션 추진 과정에 추가됐기 때문에 한국 필름 커미션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봅니다.

감독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학생들 자신이 요구사항이 있으면 그만큼 하게 되거든요. 내가 수준 높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 거기에 맞게끔 노력합니다. 지금 학생들은 대체로 영화감독으로 데뷔를 하는 것이 꿈인 것 같아요. ‘나는 엄청난 영화를 만들어서 한국 사회에 충격을 주겠다’ 이런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졸업 작품을 마지막 작품으로 생각하기보단, 다음 단계를 위한 훈련과정으로 봐야 해요. 이게 자신의 마지막 영화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아닌,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떨어져 묵직한 소리를 내는 박광수 감독의 작품들은 그가 영화를 대하는 태도와 상당히 닮아있다. 작품에 객관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의 자료조사와 꾸준한 연습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이 기본적인 자세가 날카로운 질문을 계속해서 던질 수 있는 힘일 것이다. 그 질문들은 마치 연구실에 있었던 오래된 시나리오 작성용 노트북 같다. 가끔은 무겁게 느껴지지만 그 안에서 치열하게 시작되고 있는 S#01(Scene 1)처럼 깊이 있는 가능성의 움직임을 기대하게 만든다.

글 김연주 | 사진 김경수 | 영상 김지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