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두산아트랩 2017>
1.
<두산아트랩 2017>은 하나의 기획으로 작품을 군집하는 대신 서로 다른 매체를 사용하는 다섯 명의 신진 작가를 불러 모았다. 회화,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이질적으로 조합된 작품군은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미술계가 얼마나 동시대와 그 시차를 줄여 현재적인 것과 공명하려는지 잘 보여준다.
2.
이 글은 복수의 작품들을 담론과 관점으로 연결하지 않고 노혜리의 구현한 퍼포먼스 형식을 적용해 기술한다. 텍스트의 편린들은 모두 파편화되거나 부분적으로 묶이거나 하나의 성좌로 읽힐 수 있다.
우정수, <Check on Check out> Ⓒ두산아트센터
3.
노혜리가 사용하는 나무 합판, 주운 돌과 조개껍데기, 언젠가 뽑은 탱탱볼, 먹고 남은 피스타치오 껍질, 주운 것, 발견한 것, 작업실에 있던 것들은 어떻게 완전해질 수 있을까? 오브제는 결국 신체 혹은 동사들과 조응하면서 특정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물성과 수행이 교차하면서 서사는 분절되지만 미시적인 정동(情動)을 일으키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서울과 로스앤젤레스의 17시간의 시차, 아빠가 부재했던 13년 동안, 시간은 몇 개의 장면과 언어 안에서 전체를 이루지 못하고 미완의 것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세계를 인지하는 방식도 언제나 오해를 통해서라는 작은 깨달음에 도달하는 순간이다.
4.
“the 점원 said
where are you from?
i said
from L.A.
he said
사우쓰사우쓰 코리아“1)
5.
레미콘과 달 사이. 다른 리듬으로 움직이는 레미콘과 공전을 멈추지 않는 달의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 길 위를 달리던 레미콘이 신호에 걸려 멈추어 있다. 길을 걷던 손현선은 그것을 조용히 바라본다. 레미콘은 정지해 있으면서 계속해서 몸통을 돌리고, 밤하늘의 달도 함께 선회한다. 회전은 일종의 ‘현재-감각’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사물이 도는 동안에는 시작도 끝도 감지되지 않는다. 순환을 포착한 캔버스에는, 그러므로 ‘지금’의 잔상이 담겨있다.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흘러가지 않는 시간이 정체된 채 한없이 지연되고 있다.
손현선의 작품들 Ⓒ두산아트센터
6.
모든 블랙 코미디처럼 우정수가 그려낸 회화들은 사회 곳곳에 잠재되어 있는 불안과 혼돈, 부조리의 상황들을 풍자하면서 압축적인 이미지로 제시된다. 사회 속 미술가의 역할은 어떻게 기능하는가? <책의 무덤>에서 도서관을 빼곡히 채우던 책들은 무너져 내리고 사방으로 표류하는 가운데 사회적 모순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가 그린 100여 점의 드로잉에는 죽음, 폭력, 혼돈, 억압, 파멸, 구속, 싸움 등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모두 그가 이전부터 탐닉해왔던 문학, 만화, 희곡, 역사서에서 발취한 메타포에서 연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회화이기 이전에 하나에 텍스트일 수 있다. 극도로 절제된 색처럼 그의 회화적 풍경은 감정이 점차 줄어들고 정적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종국에 사회적 상황에 반응하는 예리한 질문으로 안착한다.
7.
임영주는 이상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왔다. 운세를 신봉하고 돌에서 요정님을 찾는 사람들. 그녀는 미신과 무속신앙, 감생설화를 수집하면서 믿음의 구조를 도출해낸다. 과학과 이성주의가 만연한 오늘날 미신적 요소는 여전히 잔재해있으며 많은 현대인에게 내면화되었음을 그녀는 안다. 박멸했으나 사라지지 않는 것들. 확실한 것과 불확실한 것, 진실과 거짓, 믿음과 불신의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며 근대 이후 세워진 기준들은 흔들리고 있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무당과 영매, 사이비종교, 별자리와 풍수지리. 비이성적으로 여겨졌던 것들은 어느새 우리 앞에서 이성과 합리주의를 넘어 다시 그 경계를 모호하게 흐리고 있다.
노혜리, <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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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신안은 발명보다는 기술적으로 난이도가 낮으나 실용성이 있는 기술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다. 이 제도를 통해 고안을 출원하면 독점적인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생산과 소비 체계 안에서 사물을 다루는 독특한 방식 가운데 조혜진은 무언가를 발견한 듯하다. 이전부터 식물과 조경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작가는 화환의 가장자리를 장식하는 ‘도시루’에서 그 기능과 조형성을 메타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이를 실용신안과 사물의 관계와 관련지어 추적하면서 어떤 사물의 계보를 발견해낸다. 하나의 사물이 우리에게 어떻게 생산되고 이미지로 각인되는지 작가는 꽤나 흥미로운 탐정놀이를 하는 중이다.
9.
이미지를 다루는 젊은 작가들은 그 매체의 한계를 넘어 기이한 지점에 놓여있다. 특정한 것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묻는 이들은 어쩌면 가장 정확하게 이미지를 감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표면과 심층의 경계를 넘어 이미지는 우리가 거주하는 세계 안에서 무한히 증식하고 있다. 어떤 이미지를 포착하거나 그것을 모사하거나 혹은 굴절시키면서 그들은 세계의 본질이 사실은 깊은 심연이 아니라 우리가 지각하는 표피적 이미지에 있음을 환기시킨다. 결국 이미지에서 한 발자국도 빠져나갈 수 없는 세계에서 그것을 관념과 추상으로 엮는 대신 온전히 감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필요한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