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의 학생증 뒷면에는 ‘Creative Minority’라는 구절이 적혀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개 비주류로 여겨지는 예술이 중심이 되어 꽃피우는 한예종은 ‘Creative Minority, 창조적 소수‘라는 말 그대로 수(數)적으로 몇 안 되는 창의적인 예술가들을 위한 교육기관이다. 세상을 밝힐 예술가들을 양성하겠다는 뚝심 하나로 대한민국 최초이자 유일한 국립 예술학교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만큼 한예종이 세상과 만나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그 역시 비범하고 재미있다.

AMA 장학생들의 AMAzing 축제

2005년부터 지금까지 한예종은 아시아를 거점으로 25여 개국 국가의 예술 인재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하며 문화예술의 공동 실험실을 적극 자처했다. 예술이라는 공통분모로 뭉친 세계 각국의 예술인재들은 때론 학생으로 때론 전문가로 때론 문화예술의 외교관으로서 국경을 넘나들며 함께 소통하였다. 새로운 만큼 낯설고 실험적인 시도들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며 꾸준히 세계 각국의 문화예술인들과 소통해온 한예종에서는 그동안 어떤 예술적 실험들이 이루어져 왔을까. 지금부터 그 역사를 살펴보려 한다.

개도국 꿈니무 프로젝트- 몽골 애니메이션 워크숍

Lit, 처음

Lit: 영어 Lit [lit]
Light의 과거, 과거분사 Light [타동사]
1-a. 불을 붙이다, 점화하다, 켜다
1-b. <불을> 지피다, 때다
2. 등불을 켜다, 비추다
3. 밝게 하다; 명랑하게 하다, 활기를 띠게 하다
4. 등불을 켜서 <사람을> 안내하다

세계 문화예술의 거점으로서 예술교육의 중심으로 성장하기 위해 한예종이 내디딘 첫발은 2005년에 시작한 AMA(Art Major Asian) 프로젝트다. 이는 아시아 각국의 우수한 예술인재들을 한예종 국비 장학생으로 유치하며 대학 생활과 한국적응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후 지속적으로 AMA 프로그램을 통해 한예종은 해마다 몽골,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20여 개국의 예술 인재를 장학생으로 선발하여 현재까지 총 242명의 학생에게 예술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왔다. AMA 장학생들은 한예종 정규 교육 과정 안에서 문화예술을 학습할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를 가장 생동감 있게 접하고 느끼며 예술가로 성장해왔다. AMA 프로그램에서 특히 돋보이는 점을 한 가지 꼽자면 아시아 인재들의 예술 교류 창작을 지원한 것이다. 또한 한예종은 문화예술교육에 있어 언어가 장벽이 되지 않도록 AMA 장학생들의 한국어 교육에도 줄곧 힘써왔다. 졸업 전까지 두 차례에 걸쳐 공식적인 인증시험을 통해 반드시 일정 수준의 한국어 능력을 검증받아야 한다. 그렇게 학교를 마친 후 자국으로 돌아간 이들은 자국의 문화를 선도하고 한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전문가이자 문화예술의 외교관 역할을 수행해왔다.

한중일문화올림픽 일본 도쿄행사 오프닝

Mundo, 확장

Mundo: 스페인어 m. 남성명사
1. 세계
2. 천체
3. 지구의, 지구본

AMA 프로그램에 이어 2006년부터 한예종은 AMFEK(Art Major Faculty Explore K-Arts)이라는 또 다른 새로운 시도를 통해 세계의 예술인들과의 보다 넓은 소통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AMFEK 프로그램에서는 매년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 저개발 주요 예술대학에서 초청된 5명 내외의 교수 및 전문 예술가들은 약 6개월 동안 한예종에 머물며 이곳의 예술 전문가들과 함께 다양한 예술 콘텐츠를 활용한 융복합 예술교육을 받고 협력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그간 AMFEK을 시행해 온 세월만큼 실로 많은 예술가들이 자국에서는 해볼 수 없었던 색다른 도전의 기회를 찾아서 혹은 미디어를 통해 접한 한국의 문화에 매료되어서 등등 각양각색의 이유로 한예종을 찾았다. 올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현재 AMFEK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연극원에 머무르고 있는 미얀마의 파파묘(Papa Myo) 씨는 한예종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AMA 장학생으로서 2011년 예술경영 전공으로 예술전문사 과정을 마친 그는 학생에서 전문가가 되어 다시 돌아와 예술가로서의 의미 있는 행보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새삼 AMA의 세월과 노력의 결실이 느껴졌다. 한때는 학생으로서 그리고 현재는 예술가로서 예종인으로 있는 파파묘씨는 남다른 감회를 이야기하며, AMA 때와 마찬가지로 AMFEK 역시 세계 여러 나라의 참가자들과 함께 예술로 교류함으로써 문화예술에 대한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덧붙여 그는 매년 최대 5명까지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문화예술의 교류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유대, 화합, 소통을 강조한 그답게 현재 그는 이러한 자신의 뜻이 반영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AMFEK 한국문화체험

Us, 우리들

Us: 영어
대명사 [we의 목적격]
1. (동사·전치사의 목적어로 또는
be 동사 뒤에 쓰여) 우리[우리를/우리에게]
2. (英 비격식) 나를, 나에게

이처럼 AMA와 AMFEK을 필두로 오늘날 한예종에서는 더욱더 다양한 방식의 문화예술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 현재 많은 예종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가장 활기를 띠고 진행 중인 사업이 해외 예술교류 봉사이다. 한예종 해외 예술교류 봉사단은 이곳의 예술콘텐츠와 교육 프로그램을 개도국에 보급하여 예술교류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이러한 예술활동 공동 추진을 통해 청년예술가들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이들의 궁극적 목표이다. AMA와 AMFEK이 해외의 예술인재들을 초청하는 방식이었다면, 이 사업은 예종인들이 해외로 떠나는 방식으로 교육 봉사단의 성격을 가진다. 초창기에 ‘개도국 꿈나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2013년부터 외교부와 함께했던 이 사업은 올해부터는 ‘청년예술가 글로벌 역량 강화’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한예종이 단독으로 진행하고 있다.

해외 예술교류 봉사단은 해마다 지도교수를 대동한 총 7개의 팀이 각각 아시아 7개국을 방문하여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예술을 전파하는데 문화 및 경제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예술 꿈나무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회동한 고려인 3, 4세들과 영상원 팀이 고려인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촬영 실습을 진행하였고, 무용원 팀에서는 한국의 전통무용과 현대무용의 미(美)를 캄보디아에 전달하고 돌아왔다. 이 프로그램은 맞춤식 교육으로 보다 유연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그에 따라 2~3주간에 걸친 방문 워크숍 이후 현지에서 발견한 우수인재를 국내로 초청하여 2주간의 초청 캠프를 진행하기도 한다.

한중일문화올림픽 <류류> 공연

지금까지 소개된 프로그램들이 문화예술 교육 수용자들의 필요에 귀를 기울였다면, 2016년에 들어서면서 시행된 ‘캠퍼스 아시아’와 올해 ‘한중일 문화올림픽’의 경우에는 빠르게 변화해나가는 시대의 흐름에 응답한 사례들이다. 통신ㆍ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이동성이 강화되는 현 추세에 따라 청년들이 국가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교류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취지에서 시행됐다. 이 사업들은 한중일 3개국 예술대학 학생들의 공동 작업 형식으로 진행된다.

‘캠퍼스 아시아’는 CAMPUS(Collective Action of Mobility Program for University Students) Asia의 약자로 아시아권 학생들을 위한 이동성 교육 프로그램이며 공동 교육과정 및 복수 학위 공유를 목표로 한다. ‘캠퍼스 아시아’에 참가하는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학생들은 일본 도쿄예술대 및 중국전매대학 학생들과 3분 이내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기획부터 제작까지 전 과정을 함께 협동하고 있다. ‘한중일 문화올림픽’ 높새바람 프로젝트는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바람이 한중일의 문화가 섞이고 합쳐지면서 전 세계로 불어나가는 새로운 문화 패러다임이 되기를 희망하는 취지에서 시행됐다. 한중일 청년예술가들 사이에서의 가상현실 기술을 접목시킨 VR파티 또는 3국 순회공연 및 전시와 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실제적 혹은 장르적 경계를 넘나드는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캠퍼스 아시아 VR 워크숍
Lit·M·Us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시도에서부터 출발한 한예종과 세상의 만남은 그렇게 확대와 발전, 성장을 거듭하며 지금까지 줄곧 이어져 왔다. 여기에서 시작된 도전은 수많은 세상들로 나아가 이제는 모두 함께 하는 것이 되었다. 그동안 실험적이고 생소하기도 했던 시도들이 새로웠던 반면 그 성과를 매번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파파묘 씨가 보여주었듯 시간은 꾸준히 이어져 온 그 끈덕진 노력에 화답하였다.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문화예술로 세상과 만난다는 것이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결과를 마주할 때까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시아 거점의 세계 예술대학으로서 앞으로 한예종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글 | 유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