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 강진아트센터 스케치
* 한예종 강진아트센터는 강진군이 폐교를 개조하여 도예학교로 쓰던 건물 및 부지를 관리,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전 교수이자 극단 차이무를 이끈 이상우 선생이 센터장으로 있으면서, 지역 중심의 예술 공간으로 성장 중이다. 학기 중에는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과 지역주민이 함께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많은 강과 많은 산에 둘러싸인 이곳에서 강진만 연극단 구강구산(九江九山)이 창단을 앞두고 있다.
강진에 있는 한예종강진아트센터에 다녀왔다. 미리 밝혀두건대 이 글의 장르는 저널이기보다는 다큐다. 7월 25일부터 26일까지 1박 2일 동안 보고 들은 아트센터의 모습을 전달하고, 더하여 어쩔 수 없는 애정을 담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예종강진아트센터장 이상우 선생은 다큐가 저널과 다른 점을 지적했다. 피사체를 향한 애정의 문제라는 것. “객관적으로 사실만을 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대상을 향한 글쓴이의 주관적인 감정이 담긴다.” 새삼 글 쓰는 일을 생각해봤다. 강진만으로 저무는 노을빛을 타고 센터 곳곳이 색을 머금는 저녁이었다.
우리는 음악원이 있는 서초동에서 출발했다. 음악원 학생들로 구성된 킨스 색소폰 콰르텟 색소폰 앙상블 팀과 빠체 보이스 성악 앙상블 팀, 그리고 아트센터 스케치를 위한 K-Arts 취재진이 함께했다. 장장 다섯 시간의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익숙지 않은 먼 고장에 대한 기대를 키워갔다. 커다란 악기들과 함께 덜컹대는 미니버스 안에 이따금 목을 가다듬는 바리톤의 음성이 울리기도 했다. 도착한 아트센터는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모처럼 붐비는 모양이었다. 하나둘 차들이 운동장을 메웠다. 문화마당에 참여한 지역민들이 도자기 만들기, 천연염색, 전통차 체험, 떡메치기 등을 준비 중이었다. 스카프를 천연의 색으로 물들이는 작업이나 큰 떡판을 메치고 콩고물을 입히는 작업엔 여러 손이 필요했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웅성대고 있었다.
강진은 바다, 들, 산이 모두 한데 모여있는 고장으로 아트센터는 흔들다리 건너의 가우도와 마주하고 있다. 아직 해가 쨍쨍한 오후 일곱 시에 잔잔한 바다를 배경으로 강진만 노을빛 누리 축제의 막이 올랐다. 이동무대 차량이 무대의 모습을 갖추고 선 것이었다. 무대이자 자동차의 이름은 ‘산대바람’으로 현대자동차 그룹이 문화가 있는 날을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예술 기부로 기증했다. ‘산대’는 옛날 선조들이 사용했던 이동형 수레 무대를 일컫는 말이다. 선조들이 ‘산대’를 통해 예술의 즐거움을 나눴듯이 현대에서도 그 뜻을 이어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 의미가 강진에도 이어져 아트센터에서 열린 이번 축제의 첫 무대는 킨스 색소폰 콰르텟이 열었다. 네 명의 음악원 학생들로 이루어졌는데, 자신의 소리를 지방 곳곳에 전달하고픈 마음에 지원하여 달려왔다고 했다. 한낮의 여름 볕을 받아 한참 더운 야외 공연장이었지만 주민들이 자리를 지켰다. 다만 노랫말이 없는 클래식 음악을 낯설어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멋진 음악이 연이었고, 부러 익숙한 노래들을 들고 온 이들의 연주에 몇몇 사람이 가사를 입혀 부르기도 했다. 이어서 성악 앙상블 빠체 보이스가 무대에 섰다. 팀명에는 이태리어로 평화를 뜻하는 말이 들어 있다. 빠체 보이스는 평화, 행복, 감동을 노래하며 능숙한 진행 솜씨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 같이 손을 흔들거나 손뼉을 치면서 음악의 힘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두 공연이 지나자 뜨거운 볕이 조금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하모니 합창단의 무대가 올랐다. 이날을 위해 드레스를 입고 턱시도를 입은 강진군민들이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합창단원의 일원 중 한 주민은 자신을 농부라고 소개했다. 유기농 채소를 기르는 그는 한창 바쁜 일이 끝난 후 농한기에 노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했다. 노래라는 취미로 이렇게 무대에 오르는 꿈을 실현하게 한 아트센터의 작은 무대는 결코 소박하게 보이지 않았다.
강진군 대구면의 다인회(茶人會)에서 프로그램에 참석한 한 주민은 아트센터에서의 행사장에 묘한 기대를 표했다. 그는 태양 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의 마당에서 아주 따끈따끈한 차를 우려 잔에 내어놓고 있었다. 빠르게 빠르게, 속도 내기에만 익숙한 아이들에게 다도(茶道)가 좋은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아트센터에서 젊은 학생들을 더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다고도 했다. 나는 뜨거운 찻잔을 건네받으며 땀이 흐르는 더위에 마실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오히려 목 뒤로 넘기니 그 온도가 아주 좋다는 생각을 했다. 말하자면 가쁜 숨이 차분히 잦아드는 온도인 것이다.
한예종강진아트센터도 무릇 그러한 온도로 2016년 11월 8일부터 지금까지 걸어왔다. 그간 아트센터에서는 강진군과 한예종이 협업한 결과 우수한 문화예술 역량을 지역 사회 안에서 실현하려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강진에 내려와 하는 작업들에 대해 묻는 말에, 이상우 선생은 민주주의라는 무거운 말을 먼저 뱉었다. 그것은 연극에 대한 그의 소견 중 하나이기도 했다. 민주주의,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생활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이상우 선생은 “아트센터에서 진행하는 모든 작업들, 이를테면 청소년들에게 디자인, 연극, 영상, 영화를 만드는 일을 소개하거나 극단을 꾸리는 등의 일이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성을 알려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농사일이 끝난 틈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나 아주 뜨거운 차를 천천히 마시는 법을 말하던 사람을 떠올렸다. 거의 서울에 갇혀 살다시피 한 우리에게 강진이 낯선 만큼, 강진의 사람들은 서울에서 온 어떤 예술들을 매우 낯설어했다. 한예종 강진아트센터는 바로 그 낯선 간극을 메우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상우 선생은 “자기도 모르는 잠재력 그리고 희망을 가진 이 지역 청소년들이 ‘예술은 나도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길 바란다”고 했다.
20년 이상을 연극에 몸담았던 그에게 자연히 연극에 대한 질문을 꺼냈다. 현재 이상우 선생은 이 지역 사람들에 의한, 이 지역 말로 이루어진 극을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강진에서 서울 생활을 이야기하고 서울말을 하는, 낯설고 긴 극을 피하려는 의도였다. 여기에는 기존의 극을 지역 사람의 손에 맡겨 조금씩 각색하려는 시도도 포함되었다. 나는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유명한 말을 떠올렸다. 연극이란, 극본이라는 하나의 언어체계를, 배우라는 각각의 존재들이 주체로 변형해 내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본질적으로 연극은 어떤 사람들이 어떤 공기로 함께 풀어내는지에 달려있을 테다. ”예술은 왜 대도시가 중심이어야 하지?” 물음을 던진 선생이 변두리에서 변두리를 중심으로 한 극을 고심하는 까닭이 이해가 되었다. 연기를 하고자 먼 서울에서 돌아온 키 큰 배우의 말도 공감이 가는 순간이었다. 강진의 밤은 충만하게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