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염의 바다>의 배경인 람페두사 섬에는 20년간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탈출한 40만 명의 난민들이 도착했다. 6천 5백만 명으로 추산되는 세계 난민의 현실에도 우리는 그들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지배, 남북 간 6·25 전쟁을 지나온 우리 민족도 디아스포라에 속했다. 지금도 어딘가에는 우리와 같은 민족이면서도 다른 국적을 가진 디아스포라가 자신의 삶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전 세계에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6백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스어로 ‘이산(離散)’이라는 뜻의 디아스포라는 오늘날 외부의 폭력적인 요인으로 인해 자신의 터전에서 추방당하거나 흩어진 사람들과 후손들로 정의한다. 변방에 존재하는 그들은 질문한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고민해오던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 내가 속한 곳의 권리를 찾기 위해 우리는 광장에 모였고, 각자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디아스포라는 외부의 폭력에 당당히 맞섰던 우리의 삶 속에 맴돌고 있었던 언어이고, 주변에 존재하던 이야기가 찾아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각자의 공간에 새기기 위해 예술가는 그들의 언어를 빌려 무대에 펼쳐 놓기 시작했다.

연극 <생각은 자유> Ⓒ두산아트센터, 연극 <1945> Ⓒ국립극단
사라진 말들의 무덤, 흔적

올해 국립극단에서 열린 <한민족디아스포라전>은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인 작가의 희곡을 무대에 올린 기획전이다. 5명의 작가가 타국의 국민으로서 한국이라는 민족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들은 오늘날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확장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연출가 부새롬과 박해성, 오세혁은 작가의 세계관을 자유롭게 펼쳐놓고 관객들이 복합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을 시도한다. <한민족디아스포라전>은 세계 각지의 흩어진 시선을 담은 동시대의 작품을 통해 국가와 정체성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게 만든다. 다른 세계에서 바라보는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했던 공연계에 이번 기획전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터전을 낯설게 바라보는 경험을 선사한다.

극장에서 동시대의 사안을 함께 토론할 수 있다는 믿음. 무대가 곧 광장이며, 사회라는 정의를 상정한 공간은 디아스포라를 논의하기에 충분하다.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 연극 <생각은 자유>는 연출 김재엽, 드라마터그 및 조연출 이지현, 무대디자이너 신승렬, 배우 윤안나 등이 참여한 작품이다. 연출가는 다양한 사회적인 논의들이 이루어지는 베를린의 극장을 보고, 우리들의 광장을 무대 위에 만들려고 시도한다. 그 광장은 대안적인 삶의 방법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구성된 공간이며, ‘세계시민, 이주민 그리고 난민’과 공존하려는 독일 연극의 다양한 논의들을 통해 한국의 현실을 반추해보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공존은 우리 안의 갈등을 불화로 멈추는 것이 아닌, 서로 끊임없는 적응 과정으로써의 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1945>는 해방 이후의 기록이 부재한 한국 근현대사 이야기를 당시 만주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난민들을 통해 만들어간다. 그들은 안전한 귀환을 위해 국가가 국민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해야 한다. 하지만 사실 국가라는 구조는 개개인의 뿌리 깊은 차별 의식이 만든 상징적인 공동체 층위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극작 배삼식, 연출 류주연, 무대디자인 박상봉이 보여준 <1945>의 무대는 생존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넘어야 하는 굴곡진 역사의 소용돌이를 언덕으로 형상화해 보여준다. 이렇듯 연극은 무대를 통해 개인의 삶의 궤적을 관찰함으로 국가와 디아스포라라는 추상적인 관념에 구체성을 부여한다.

정수은, <그 날> ⒸDMZ Docs
우리도 어디선가 디아스포라다

인천아트플랫폼 일대에서 열린 2017년 디아스포라 영화제의 주제는 ‘환대의 시작’이다. 차이의 존중으로 나아가고자 한 이번 슬로건은 만연한 차별, 혐오를 넘어선 융화를 꿈꾼다. 5회째를 맞게 된 영화제는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인종, 민족, 젠더, 계급, 성 정체성 등의 문제로 확장한다. 영화제에 선정된 작품들은 사회의 이슈들을 관찰하면서 디아스포라가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상징적인 장소인 비무장지대에서 개막식이 열리는 제9회 DMZ국제다큐영화제는 올해도 주류의 경계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작년 영화제에서는 정수은 감독의 <그 날>을 개막작으로 상영하면서 영화제의 색깔을 보여줬다. 영화 <그 날>은 한국에 남아있는 전쟁의 상흔과 그 경계에 서 있었던 인물을 관찰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역사의 시간에서 소외되고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사연을 들려주는 영화들을 통해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우리 또한 디아스포라임을 깨닫게 한다.

제5회 디아스포라영화제 ⒸDIAFF, 제9회 DMZ 국제다큐영화제 ⒸDMZ Docs
기본적인 권리를 말하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기념비 프로젝트>는 공적인 공간에서 소수자의 목소리를 발현시키려는 목적이 뚜렷한 작품이다. 그의 작품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이나 난민, 이주노동자들의 신체-손이나 얼굴-를 상징적인 기념비에 프로젝션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자 하는 작업으로 채워져있다. 상징적인 장소들은 생명을 가진 듯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내면서, 기념비에 대한 재의미화와 함께 대중의 관심과 소통을 이끌어낸다. 그 목소리를 통해 국가, 민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인 권리들이 왜 그들에게 배제되었는지, 우리는 질문과 동시에 무신경했던 자신을 자각하게 만든다.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히 백범 김구의 동상에 사람들의 얼굴과 신체를 프로젝션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김구의 얼굴에 겹쳐지는 시민의 얼굴과 함께 공간을 울리는 그들의 목소리는 관람자들에게 권리와 공동체의 의미를 반추하게 만든다.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히로시마 프로젝션> Ⓒ국립현대미술관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은 오늘날 사라진 반딧불에 대해 이야기한다. 반딧불이 사라진 이유가 강한 빛과 무자비한 개발이듯, 영화의 이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한 작가는 오늘날 자극적이고 통제당하는 이미지들로 인해 진실한 이미지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발견했던 조그만 미광(微光)들이 있다. 난민들이 경계를 넘어서 탈출을 감행했던 빛의 이미지, 그 이미지를 포착해내려는 움직임이 그에게는 어둠 속에서 하나의 미광처럼 보인다. 현실을 응시하고, 저항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들은 그 스스로 미미한 빛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미광이 모여 우리는 역사의 별자리가 형성되는 과정을 지켜본다. 디아스포라는 이러한 미광이 발현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작은 불빛이 모여 서로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시간, 그 시간은 우리 주변에 끊임없이 맴돌고 있다.

리트머스 종이의 원료가 되는 지의류는 곰팡이와 조류가 만나 서로 도움을 주는 공생체라고 한다. 다양한 화학 반응을 측정하는 리트머스 종이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균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빛의 스펙트럼을 발현하는 포용력은 전혀 다른 존재와의 공생을 통해 얻어진다는 사실. 우리가 끊임없이 공존하며 이야기를 공유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을 위함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함이다.

글 | 송원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