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봉렬

25년의 역사 위에서

인터뷰가 있었던 8월 25일, 석관동 캠퍼스에서는 코스모스 졸업식이 열렸다. 동시에 이날은 연임 총장으로 임명된 김봉렬 총장의 첫 임기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바로 다음 날부터 새로운 임기가 시작될 예정이지만 그에게도 이날이 중요한 분기점임은 분명했다. 방학 동안 조용하던 캠퍼스에도 졸업이라는 분기점을 맞이한 학생들의 두려움과 기대, 아쉬움과 성취감이 한데 섞인 활기찬 소음이 잠시 가득 들어찼다.

4년과 20년

20년 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평교수로 왔을 때 교수 인원이 적어서인지 교수들이 초대 총장과 얘기할 기회가 자주 있었어요. 그때 제가 당돌하게 했던 얘기가 있습니다. “아니, 땅도 없으면서 무슨 대학이라고 세웠습니까?”

1997년 미술원 개원 당시 건축과 교수로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인연을 맺은 김봉렬 총장은 학교의 25년 세월 중 20년을 함께한 한예종 역사의 산증인이다. 건축가인 그가 초임 당시 제일 먼저 주장했던 것은 대학에는 물리적 토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훌륭한 교수들과 예산만 있으면 된다는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제가 지속적으로 주장해서 생각을 많이 바꿨고 마스터플랜도 세웠죠. 또 그때 학교가 작아서 보직교수가 교학처장 딱 한 명이었거든요. 홍보나 대외교류, 이런 건 생각조차 못할 지경이었어요. 학교 발전을 위해서는 기획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서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어려운 업무를 다 기획처로 옮겨놨는데 제가 나중에 기획처장이 될 줄 몰랐죠.(웃음)

‘조용히 연구만 하면 되겠다.’ 20년 전 미술원 교수로 올 때의 마음이었다고 한다. 허나 그 예상과는 정반대로 교학처장, 기획처장, 미술원 건축과장 등 여러 보직을 두루 거쳐 직선제와 간선제로 선출된 최초의 연임 총장이 되었다. 학교의 역사를 함께한 입장에서 개교 25주년을 맞이하는 소회가 궁금했다.
너무 다르죠. 초임 때는 한국예술종합학교라고 하면 ‘고등학교냐,’ ‘전문학교냐’ 그런 질문을 받았고 또 예술계에서는 설립하면 안 되는 학교라고 비판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 학교의 성과나 위상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죠. 미술원을 만들 때 학교가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은 있었습니다만 이렇게까지 성장하고 발전한 건 예상의 두 배쯤 되는 것 같아요.

학교가 단시간에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저력에 대해서 그는 국립학교라는 장점을 꼽았다. 한예종은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의 다섯 배 예산이 학교에 투입된다. 그만큼 투자를 하니 교육의 질은 자연히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이런 수치는 일반 사립대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가장 중요한 건 학생들의 자발성 같아요. 성적순으로 순위가 매겨지고 학교에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배우고 창작에 임하는 분위기, 대학의 유지나 생존에 급급하지 않고 항상 더 큰 목표를 잡고 나가는 분위기가 제일 중요했던 것 같아요.

한편 달라진 위상만큼 학교 안팎으로 많은 변화가 요구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4년 전 취임 당시 김봉렬 총장이 선택한 슬로건은 중창(重創)이었다. 중창은 낡은 건물을 고쳐서 다시 짓는다는 뜻의 건축용어다. 4년간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과제로 남았을까.
학교에는 공간적, 인적, 재정적 인프라가 필요한데 이 부분들은 지난 4년 동안 노력했으며 발전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로 캠퍼스 개설, 서초동 캠퍼스 리노베이션도 있었고 개교 이래 숙원이었던 통합캠퍼스 문제도 어느 정도 가시권 안에 들어와 있죠. 또 교수당 학생 비율을 개선하기 위해 작년과 올해는 연속으로 교수진 정원을 증원하고 있어요.
반면에 아쉬운 것도 많죠. 학교의 완전한 독립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일례로 시간강사 비율이 70%나 되는 우리 학교는 교육부 시각에서는 부실학교예요. 다양한 현장예술가들이 와서 가르쳐야 하는 예술교육의 특성 때문인데 외부에선 이해를 못하죠. 아무래도 한국의 교육 정책이 일반 대학의 보편적인 교육을 추구하기 때문에 우리같이 특수한 목적과 가치관을 가진 대학에는 안 맞는 부분이 있어요. 예술교육이 성공하려면 독자적인 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더 깊게, 더 넓게

수많은 예술작품이 쏟아져 나오지만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인류의 자산인 고전으로 남는 것은 아주 드물다. 현재 김봉렬 총장의 화두는 ‘미래의 고전을 만드는 학교’다.
석굴암은 우리 역사상 딱 하나 존재하는 건축물인데 신라인들이 외국의 석굴사원을 보고 많은 시도 끝에 만들어낸 겁니다. 사실 그 원형은 실크로드의 쿠차라는 지역에 있는데 그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경주 석굴암의 감동은 어마어마하죠. 아마 당시에 신문이 있었다면 ‘최고의 하이테크 건축이 완성됐다’고 보도했을 겁니다. 동시에 많은 비난이 있었을 거예요. 생전 처음 보는 거니까요. 그러나 지금, 석굴암을 빼놓고 한국의 전통을 말할 수 없죠. 이 사례에서 보면 창작은 항상 근원이 있어요. 이때 원작을 뛰어넘는 후속작이 나오면 그게 바로 고전이 됩니다. 그런 고전은 과거의 정의를 뛰어넘어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버려요. 그리고 그것이 역사에 남으면 바로 한국의 전통이 되는 겁니다.
예술대학의 의무가 교육, 창작, 사회참여인데 우리 학교는 교육 성과를 어느 정도 달성했지만 고전을 창작하는 단계까진 가지 못했어요. 많은 스타를 배출해도 그 스타들이 개인적 영달로 끝나느냐, 사회적인 힘으로 발전하느냐는 대학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죠.

김봉렬 총장은 국립대학의 사회적 책무를 자주 언급했다. 이번 총장에 출마하면서 내건 슬로건도 ‘더 깊게, 더 넓게’다. 그는 최근의 융합예술에 대한 요구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장르 간 융합이나 예술과 기술의 접합도 융합예술에 속하지만, 크게 보면 결국 예술과 사회의 융합이라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
‘한예종은 왜 순수예술만 하려고 하느냐. 대중예술 쪽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요구가 흔히 있죠. 진지하게 이 문제를 고민할 때가 왔어요. 음악계에선 이런 얘기까지 합니다. ‘베토벤의 시대는 끝났고 이젠 비틀즈가 현대의 고전이 됐다.’
그럼 기존의 것을 바꿔야 하나? 그건 아닙니다. ‘더 깊게’라는 것은 우리가 해왔던 지고한 예술의 탐구로 더 깊게 들어가서 정말 고전이 나올 때까지 가자는 뜻이고, ‘더 넓게’가 바로 이런 융합적인 부분입니다. 국립대학으로서의 사회적 책무가 있어요. 국내 예술계가 지금 몰락하고 있는 지경인데 우리 학교만 잘된다고 행복한 건 아니겠죠.
그러나 이건 학교 역량만으로는 부족하고 국가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융합예술이 중요하다고 음악과를 없애고 융합예술과를 만들 순 없다는 거죠. 그건 교육부가 인문학과를 없애고 공대를 만드는 식으로 했던 잘못과 똑같아요. 융합예술 부분은 기회가 될 때마다 정부에도 건의를 하고 있어요. 국가적 의지와 우리의 인프라를 결합해 나가야죠.

지금 예술학교의 또 하나의 뜨거운 화두는 취업률 문제다.
국회에서 취업률이 왜 50%밖에 안 되냐고 질책을 합니다. 그럼 이렇게 대답하기도 해요. “우리는 독립예술가를 만드는 게 목표인 학교입니다.” 그러나 이제 독립예술가도 생존하고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죠. 그게 진정한 취업입니다. 글쓰기로 먹고 살 수 없으니까 잡지사에 입사하는 식의 대체 취업은 사실상 잠재적 실업이죠. 그래서 학교에서도 예술가창업프로그램처럼 예술가가 개인 경영체가 되어 생존할 수 있도록 돕는 시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김봉렬, 경주 한옥 설계도

4년 뒤, 그리고

건축가 혹은 건축사학자로서의 활동을 묻자 ‘제일 가슴 아픈 부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총장직을 그만 두면 방대한 연구를 통해 책을 쓰는 것이 늘 꿈이지만 그 기약은 다시 4년 뒤로 미뤄졌다.
종교와 건축 간의 관계에 관심이 많아요. 아시아 건축 문화의 핵심 중 하나가 불교 건축이거든요. 임기가 끝나면 ‘아시아 불교 건축사’, 혹은 불교는 아시아밖에 없으니 좀 크게 봐서 ‘세계의 불교 건축사’라는 책을 쓰고 싶어요.(웃음)
그럼에도 총장 연임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통합캠퍼스 때문인데, 제 임기에 완공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우선 땅을 확보하는 게 목표입니다. 명실상부한 통합 캠퍼스 부지를 마련해서 거기에 금이라도 그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캠퍼스 이전 문제는 재학생들에게도 언제나 큰 관심사였다. 경기도의 모든 지자체와 대전, 부산, 제주까지 유치를 희망할 정도로 학교의 인기가 좋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지자체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지 학교를 위한 건 아니죠. 학교 발전이나 학생 편의를 위해서는 역시 서울 안에서 터를 찾아야 된다는 게 여러 차례 설문조사나 대화를 통해서 확인한 내용입니다.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의 뜻이니까 그건 충분히 지켜지리라고 생각해요. 근데 후보지를 어디라고 꼭 집어서 지금 얘기하면 아마 방해 공작이 있을 테니(웃음) 아직 말하기는 힘든 단계입니다.

마지막으로 학교의 수장이나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을 물었다.
건축학과에서도 자주 강조하는 말이 있는데, ‘현장이 스승이다’거든요. 현장이 별 거 아니에요. 서울 시내 거리, 석관동 앞에 있는 주택가. 보잘 것이 없어도 들여다보고 관찰하면 그 속엔 사람들의 생활이 있고, 욕망이 있고, 수없이 많은 갈등, 희망 이런 것들이 섞여 있거든요.현장을 본다는 건 세상을 좀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거죠. 반면에 다른 작품들을 수없이 섭렵하는 것은 역사적 현장을 접하는 겁니다. <명작 읽기> 수업은 글의 현장들을 보는 거죠. 역사의 현장과 지금 벌어지는 현장, 두 가지가 저한테는 가장 큰 스승이었어요.
그리고 학생들이 역사적인 안목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 세대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겪는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알면서 겪으면 모르고 겪는 것보다 낫고 희망도 생기죠. 역사적 안목을 가지면 관조한다고 할까,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죠. 우리 학생들이 그런 훈련들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글 | 김윤영
사진 | 김경수
영상 | 박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