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UMN 2017

임정수, <쌓기를 위한 드로잉>, 디지털 프린트, 100×100cm, 2014

Litmus

리,리,리자로 시작되는 말을 찾았습니다. 그리하여 귀하게 얻은 것이 ‘리트머스Litmus’입니다. 만나는 성분에 따라 다른 색으로 반응하는 리트머스 종이처럼 타 장르와 결합하되 그 속에서 자신만의 색을 찾으려는 예술가들과 같아 보여서 말이지요. 가을호는 문장이 수려한 한인준 시인의 글로 문을 여는데요. 그의 말처럼 ‘산성의 붉은색도 알칼리성의 푸른색도 중성의 보라색도 되지 않으려는’ 예술과 ‘변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하지 않으려는’ 예술가를 좇아갑니다.

예술에 있어 리트머스는 무엇일까요? 세계 유수의 비엔날레 수상작들이 영상 작업으로 옮겨오는 걸 보면 시각예술과 영상예술의 경계없는 변화와 결합이 대표적일 듯합니다. 오래된 종이같은 ‘이미지’와 정반대의 성질이 결합하여 큰 변화를 일으키는 리트머스 종이같은 ‘움직임’을 무빙-이미지와 무빙/이미지로 다룹니다. 범람하는 무빙이미지 시대에 무빙과 이미지를 재고찰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또한 유행의 변곡점이 잦은 방송·연예계에서 오랫동안 대중과 호흡하며 장수하는 이들의 비결을 살핍니다. 데뷔 20년차 이효리, 12년차 무한도전, 그리고 현대무용가 김설진의 방송 진출 성공까지. 틀을 깨기보다 넓히는 것을 통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들의 리트머스 비법을 공유합니다. 특히 최근 연극, 전시, 영화 예술계 전반에서 다뤄진 디아스포라현상도 리트머스적 맥락에서 주목합니다. 한예종을 거쳐간 아시아의 예술인재들이 모국에서 펼치는 예술활동과 우리 학생들이 개도국에 파견되어 나누는 예술교육 교류 및 한중일 청년 예술가들의 공동 작업도 그 연장선상에서 다룹니다.

올해 세 번째 만나는 스승은 건축가이자 건축사학자인 김봉렬총장입니다. 제7대에 이어 제8대 총장으로 연임한 그는 지난 20년간 여러 보직을 거치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설계자이자 도편수로서 그 역할을 자임해왔습니다. 개교 25주년을 맞은 지금, 한예종의 중창(重創)을 넘어서 ‘더 깊고, 더 넓게’ 학교의 부피를 확장하며 ‘미래의 고전을 만들기’ 위한 그의 설계도를 꼼꼼히 들여다봅니다. 이어 소리를 다루는 두 예술가를 차례로 만납니다. 먼저 판소리를 바탕으로 창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소리의 영역을 넓히고 있는 소리꾼 이소연입니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옹녀로, <아리랑>의 옥비로, <서편제>의 송화로 무한 변신하는 무대 위 그녀의 카리스마가 과히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녀와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가수 비니셔스도 소개합니다. 프로듀싱, 작사·작곡, 보컬, 악기연주, 믹싱에 뮤직비디오까지 혼자 도맡아 작업하는 그는 그야말로 뮤지션입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의 색채를 지닌, 모호하고 내밀한 그의 음악을 가을 바람과 함께 들어 보길 강추합니다.

애정하는 예술가들의 신작은 노곤한 오후처럼 무뎌진 우리의 감각을 자극합니다. 늘 설렘과 기대를 안기는 세련된 춤, 매정한 현실과 답답한 인물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 모순된 사회를 비트는 형식이 남다른 다큐멘터리. 무엇이라도 하나쯤은 만나는 시간을 내어 보세요. 암요, 가을은 너무 짧으니까요.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