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들은 나에게 나무의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나무를 산사나무와 오리나무로 써야 한다고 배웠다. 생선은 고등어 한 손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배웠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라는 김춘수 시인의 시 구절을 인용해 들려주면서
그러나, 나는 의아했다.
특정한 명명이 있어야 빛나는 의미나 공감이 탄생하는 것일까. 처음에는 그저 궁금했었다.
등단한 해였다. 시가 쓰이지 않을 때 다른 시인의 시집을 펼쳐본다는 시인을 만났다. 소설이 쓰이지 않을 때 소설책을 펼쳐보기도 한다는 소설가도 보았다. 그들은 그저 옆에 펼쳐둔 다른 작가의 작품 속에서 단어 몇 개나 전체적인 작품완성도에만 자극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것에서 본인이 쓸 작품에 쓰일 감정을 끌어올리며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했다. 나에게 창작자의 입장에서 똑같이 쓰지 않기 위해 꾸준히 다른 작품을 읽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다시 의아했다. ‘예술가’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각자의 방식이 있고 그 방식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등단 후에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다른 시인이 쓴 시를 반드시 필요할 때가 아닌 이상 하나도 읽지 않았다. 내 것인지 내 것이 아닌지도 모르는 것을
쓰기만 했다. 썼다. 쓴 것 같다. 그러나 무식하면 용감도 할까. 그냥 무식했던 것 같지만.
그 전에 나는 일종의 ‘리트머스’였다. ‘리트머스’처럼 산성이 있는 곳에서는 붉은색으로 변했었다. 알칼리성이 있는 곳에서는 푸른색으로 변했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그림을 보고 좋은 글을 읽는 사이에 끊임없이 물들고 있었다. 모방, 창작, 탄생, 재탄생, 소명, 생성, 등. 무엇이든 간에. 판단 없이
물든 다음에는 번지고 싶었다.
창작이라는 떨림에만 나의 구색을 맞춰놓았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와 이미 닮아 있지만 일부러 못 본 척 했었다. 같은 부분은 무시하고 다른 부분에만 주목했었다. 닮아 있다고 이야기를 들으면 불편한 기분이 들었었다. 이미 형성된 공감대에 원래 관심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었다. 이 모든 것에 내가 해당됐다.
그랬더니 나 자신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쓰기 시작했다. 최대한 읽지 않으며, 최대한 듣지 않으며, 최대한 인식하지 않으며, (물론 나만의 방법이었다.) 내가 만든 세계로만, 자꾸 익숙함이라는 것을 경계하면서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역시 색깔을 찾으려는 나만의 리트머스 반응이었다. 이기적인 나의 반응이었다.
다시 나무 이야기로 돌아와서
당신이 어떤 나무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당신 덕분에 나도 그 어떤 나무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서로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나는 당신과 내가 눈앞에 있는 나무의 이름을 동시에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모르겠다는 생각과 모르겠다는 두 개의 생각이 부딪쳐 서로 알게 되는 마음이 있다고 믿어본다. 우리가 말하지 않던 숨겨진 공감이라는 것이 어딘가에 있다고 믿어본다.
공감하지 않음과 공감하지 않음으로 탄생할 수도 있을 이상할 공감을 믿는다.
우리는 비슷한 지점에서만 느꼈다. 사고한다. 슬프다. 해소된다. 안다. 잊는다. 모른다. 다시 느낀다. 사고한다. 슬프다. 해소된다. 안다. 잊는다. 모른다. 다시
느낄까. 느껴야 할까.
산성의 붉은색도 알칼리성의 푸른색도 중성의 보라색도 되지 않으려는 우리가 자꾸 시도를 한다. 변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하지 않으려고 한다. 알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