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2024 SUMMER50

전차와 소음

처음으로 고양이에게 밥을 준 사람은
프랑스의 보병이었다
그는 자신의 우유를 고양이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 보병을 죽인
독일의 해병이 두 번째 주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모포 속에 고양이를 키웠다
그 둘의 유언을 들은 것은 고양이가 유일했다


이제 고양이는 작은 시골에서
어느 백발의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할머니도 고양이도 알고 있다
오늘 그녀가 죽을 거란 사실을
할머니는 여느 날과 같이
이불을 빨고 수프를 끓이고
지나가는 집배원에게 인사를 건넨다


좋은 날이네요!


할머니는 무언갈 기다리는 것 같다고
고양이는 생각한다
고양이는 집배원에게 받은
편지 두 통 중 하나를
할머니에게 건넨다
그녀는 편지를 한참 껴안았지만
뜯어보지는 않는다
마치, 미확인 편지가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인 것처럼


마지막 식사에 할머니는 빵 조금을 남기고,
그녀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대문을 살짝 열고 잠이 든다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을 수도 있건만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기듯
할머니는 서서히 잠이 든다
그녀는 의식이 끊기기 전


오늘은 이불이 햇볕에 잘 말랐다고
생각한다
빵이 그럭저럭 맛있었다고
생각한다
발신인 불명의 편지를 뜯어보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멀리서 몇 발의 총성이 들리는 것도 같다
그리고 그녀는 허공에 손을 뻗어 말한다


나의.. 나의..


그렇게 그녀는 죽었다
고양이는 그녀의 이불에서 잠시 뒤척이다
그녀가 열어놓은 상냥한 문틈 사이로
빠져나간다
여기 하나의 위대함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고양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고양이의 옆으로
커다란 소음이 굴러가고 있다


누구도 멈출 수 없는
무심한 공포가
세계를 지나고 있다


추천의 말: 끝나지 않는 리듬에 관한 이야기

조영민은 ‘이야기’가 있는 시를 쓴다. 시에 이야기가 있다는 게 무슨 그리 특별한 개성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다. 이야기는 흔하니까.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는 변별력을 확보할 수 없으니까. 그럼 어떤 이야기여야 할까? 일어난 일을 무작위로 배열한다고 해서 다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듯,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이야기 안에는 그것을 이야기이게 하는 핵심적인 무언가가 반드시 숨어 있을 것이다.

「전차와 소음」도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여러 주인을 전전하는 이름 없는 고양이의 이야기라고 적어볼 수 있겠다. 그런데 이 고양이에게는 어딘가 묘한 데가 있다. 이 고양이는 시에서 ‘카메라의 눈’을 담당한다. 프랑스의 보병과 독일의 해병, 백발 할머니의 임종을 경유해 현재는 제4의 인물을 향해 이동 중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체성과 “위대함”을 비출 때는 카메라가 ‘줌인’ 되었다가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줌 아웃’ 되면서 보다 거시적인 흐름 속에 독자를 데려다 놓는다. 시를 다 읽고 나면 알 수 있다. 시가 데려다 놓은 곳이 “누구도 멈출 수 없는” 시간의 영원성을 감각하는 자리, 전차의 바퀴처럼 쉴 새 없이 구르며 소음을 만들어 내는 크나큰 힘의 복판이었다는 것을.

유한한 인간인 내가 끝나지 않는 리듬 위에 잠시나마 올라탈 수 있었던 건 이 시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문득 깨닫고 나니 나를 둘러싼 세계가 달리 보이는 것 같다. 결국 이야기란 나를 이해하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방편이 아닐까. 우리에게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그건 지긋지긋한 세상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고양이가 그다음으로 찾아올 제4의 인물이 당신이 아닐 이유는 없다.당신의 삶을 증거하고 끝내는 당신의 임종을 지킬 고양이. 어쩐지 나는 그것이 시의 다른 이름인 것만 같아 자꾸만 애틋해진다. 안희연(시인, 연극원 극작과 서사창작전공 교수)

글 조영민
연극원 극작과 서사창작전공 예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