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2024 SUMMER50
사진 이소정, ©런더앤싸이트닝

오차 앞에서의 톨레랑스,
오차 앞에서의 욕망
〈오차의 범위: 정류장들〉

작품에서 제목은 이정표의 역할을 한다. 지난 5월,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실연한 〈오차의 범위: 정류장들〉 공연을 기다리는 동안 계속 곱씹은 것 역시 제목이었다. 독특한 형식의 연극이라는 점과 작품의 제목만 알고 있는 상황에서, 오차, 범위, 정류장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공연을 본 이후 어떤 의미를 띠게 될지 궁금했다.

극장으로 들어서자, 사방으로 문이 활짝 열린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세트가 들어오거나 분장실로 통하는 모든 문이 열려있다. 보통의 극장에서 기대하는, 세상과 차단된 듯한 감각이 여기서는 발동하지 않는다. 극장이 보유한 수납형 객석은 뒷면을 보인 채 덩그러니 놓여 있고, 관객을 위한 의자는 L자로 따로 배치되어 있다. 어디에 앉을지 잠시 고민한다. 다른 관객들의 옆모습을 향해 놓여 있는 의자를 선택한다. 접힌 수납형 객석의 뒷면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열차 출발 안내’라는 문구가 띄워져 있고, 곧 야간열차가 출발하니 티켓을 확인하라는 안내 방송이 반복적으로 들려온다. 나를 포함한 다수의 관객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공연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음이 느껴진다. 천장에 매달려 소리를 내는 장치들, 어디 앉아야 할지 방황하는 관객들, 이미 객석 사이에 앉아 책을 읽거나 극장 안을 돌아다니는 배우들, 여기에 관객 안내를 위해 대기 중인 공연 관계자들의 움직임까지 합세하여 생경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약간은 지루한 상태로, 한편으로는 낯선 곳에 놓인 사람의 호기심과 경계심으로 여기저기 눈길을 보낸다. 어떤 여행이 될지 모르는 채 출발을 기다리는 여행객이 된다.

열차에 탑승하라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면, 관객은 몇 번이고 탑승권과 지도를 확인하며 정류장을 찾아 나선다. 세 팀으로 나뉜 관객이 정류장에 도착하면, ‘화자’라 지칭되는 출연진이 관객을 이끈다. 나는 ‘우는 새와 울지 않는 새들의 정류장’ 티켓 소지자들과 함께 분장실로 이어지는 통로로 나섰다. 화자(배선희 배우)는 혼자 여행 중인 사람으로 보인다. 해당 정류장 곳곳에 놓인 오로민경의 사운드 설치 작품에서 흘러나오는 새소리와 자연물의 요소를 통해 유추컨대 그녀는 강변에 있는 듯하다. 여행용 트렁크를 끌고 다니며 누군가를 향해 음성 메시지를 녹음한다. 하지만, 이 행위는 반복적으로 중단된다. “당신이 생각났다”며 진솔한 마음을 전하고자 시도하지만, 자꾸만 녹음은 중단되고, 화자는 재차 녹음을 시작했다가 침묵한다. 종국에 메시지를 전달했는지도 알 수 없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언어가 온전히 자신의 마음을 담아내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혹은 상대에게 이렇게 진심을 내보여도 되는지 의문이 들어서일까. 소중한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애쓰는 몸이 애잔하다.

화자를 따라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다시 극장으로 들어간다. 이번에 향한 곳은 무대를 등지고 계단형으로 펼쳐져 있는 극장의 기존 객석으로, 이 정류장의 이름은 ‘묭묭묭묭’이다. 화자는 다이애나밴드의 소리 사물들이 다양하게 배치된 좌석 어딘가에 드러눕더니 갑자기 잠을 청한다. 관객은 당황한다. 마침, 다른 화자(권정훈 배우, 허윤경 안무가)가 또 다른 관객들을 이끌고 극장 안으로 들어온다. 잠시 그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몸을 튼다. 여러 시공간이 서로를 침범하지 않은 채 공존한다. 잠에서 깨어난 화자는 또다시 트렁크를 끌고 이동하고, 누군가와 통화를 시작한다. “찰나의 장면이지만, 그 안에 긴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느껴진 순간들이 있나요?”라는, 그가 언젠가 받았을 질문에 뒤늦은 답변을 전한다. 답변이 조금 독특하다.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고 책에서 읽은 건데, 심지어 그 책을 쓴 사람이 직접 본 장면도 아니고 책의 저자 또한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저자는 고등학생 때 가출한 적이 있는데 집을 나갔다 돌아왔을 때, 봉제 공장을 다니던 어머니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일을 하던 중 창밖을 봤는데 눈이 오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그게 알고 보니 민들레 홀씨였어. 화자는 묻는다. “왜 가출하고 돌아온 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어머니가 본 장면에 대해 그의 딸이 쓴 글을 읽은 화자는 자신의 경험과 상상을 덧대어 낯모르는 타인의 장면에 접속한다. 관객은 왜 이 장면이 화자에게 특별하게 다가왔을지 곱씹는다. 누군가의 경험은 몇 번의 복제와 훼손을 거쳐 전달되고, 다른 몸을 지닌 타인은 그것에 절대로 온전히 가닿을 수 없지만, 둘 사이의 오차는 수신자에게 적극적인 동참과 관심, 인내를 요구한다.

사진 이소정, ©런더앤싸이트닝

공연의 초 중반부를 지나자, 관객은 점점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연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배정된 열차를 이탈하여 다른 화자를 따라다니기도 하고, 주변의 관객을 구경하기도 한다. 어떤 관객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담담하게, 부끄러움 없이. 눈물을 흘리는 관객과 이를 놀란 마음으로 쳐다보는 나 사이의 오차에 잠시 머무른다. 그 순간에도 극장 안에서는 여러 일들이 동시적으로 발생한다. 스크린을 통해 외국의 풍경이 흘러가기도 하고, 전시된 사진을 살펴보기 위해 관객이 모여들고, 관객과 동떨어진 곳에서 한 화자가 알 수 없는 외국어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 목소리는 극장에 울려 퍼진다. 극장 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던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모든 게 어디로 향하는지, 어디로 모이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명확한 목적지를 모르는 채 홀로 돌아다니는 배우와 관객의 존재를 함께 느낄 뿐이다.

창작진은 긴 사전 만남을 통해 이 공연을 만들었다고 한다. 영상, 소리, 언어, 몸 등 각기 다른 매체를 다루는 창작진들은 기존에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낯선 타인을 마주하는 것, 이것이 공연의 출발점이었을 것이다. 때론 서로 다른 나라에 머물며 먼 곳으로 편지를 띄우고, 자신이 놓여 있는 풍경을 전달하기 위해 애썼다. 때론 직접 만나 어딘가를 거닐기도 하며, 서로에게 질문하고 답변했다. 그러한 과정 끝에 극장에 도착한 창작진은 이야기와 풍경을 그럴듯하게 극장 안으로 옮겨 놓는 것을 시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전달하려고 애쓰는 상태 그 자체를 드러내고, 거기서 극장이 탄생하기를 기다렸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 본다. ‘정류장’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왜 관객과 배우는 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여행자가 되어 정류장들을 거쳐야 했을까. 화자들이 전하는 것은 어떤 장면, 풍경과 같이 파편적인 것이다. 자신이 겪은 일화나 에피소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서, 외국에서, 꿈과 책 속에서 만난 순간들을 내민다. 그러한 풍경에 자신이 왜, 어떻게 연루되었는지는 빈칸으로 남긴 채.

여행에 나서면 익숙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외부의 사물, 풍경에 시선을 내어주게 된다. 기존의 삶에서 작동하던 힘에서 이탈하여 몸과 마음을 다른 속도와 감각에 내맡기게 된다. 정류장에 열차가 멈춰 설 때마다 누군가는 타고 또 누군가는 내리며, 각자의 길 위에서 잠시 만났다 헤어진다. 이때, 우리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만나게 된다. 〈오차의 범위: 정류장들〉은 우리가 모두 각기 다른 몸을 가지고 태어나 각자의 삶 하나 밖에 살 수 없다는 조건을 명료하게 인식하며, 타인에게 설명하고 전달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없는 셈 칠 수 없는 각자의 순간들을 감각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화자의 말과 영상 이미지, 극장에 설치된 소리 사물들은 뚜렷한 맥락 없이 배치되어 있다. 이 광경들에 관객은 잠시 접속했다 이탈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누군가의 홀로였던 흔적, 그리고 나와 다른 존재들에 연결되고자 했던 흔적을 마주하게 된다.

사진 이소정, ©런더앤싸이트닝

관극의 순간엔 인상적이었지만 금세 휘발되어 버리는 공연이 있는가 하면, 관극의 순간엔 별 감흥이 없다고 여겨졌는데 뒤늦게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 있다. 이 연극은 후자였다. 일상을 살아가다가 조금 쓸쓸해진 어느 순간, 문득 이 연극이 떠올랐다. 나와 너의 오차를 조금은 더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되었다. 공연의 영어 제목은 〈Tolerance: Stations〉이다. 서로의 오차 앞에서 톨레랑스를 요구하는 윤리. 한편 이런 생각도 든다. 오차 앞에서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극장에 머무는 동안 화자들이 내보내고 있는 수많은 감각과 언어와 이미지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한 순간 또한 있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내가 마주하게 된 오차 앞에서 무관심이나 난감함이 아니라 더 연결되고 접속하고 알고자 하는 욕망이 불러일으켜지길 바랐다. 그것이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2021년도 이래로 총 3편의 작업을 이어온 런더앤싸이트닝과 정혜린 연출의 〈오차의 범위〉 연작의 다음 발걸음을 기대한다

글 황지성
자주 감격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