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2024 SUMMER50

노숙자는 휴일을 모른다
사기꾼은 휴일을 모른다
예술가도 휴일을 모른다 1

무언가를 지속하는 이들을 생각합니다. 그중에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지속하는 이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가치와 쓸모를 묻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난처함과 체념 사이를 오가는 일에 익숙합니다. 뾰족한 이유를 내놓지 못해 곤란했던 순간, 차라리 입을 닫기로 택했던 기억들은 그런 익숙함을 자조와 우울로 바꾸어 놓습니다. 휴일을 모르는 예술가는 그것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 스스로 끊임없이 되뇌어야 합니다. 그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그럴만한 가치를 갖는 일이라고. 그러나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라 생각했던 믿음이 때로는 한없는 미련함이나 아집으로 비칩니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순간으로부터 우리를 구하기는커녕 더욱 옭아매고 곤경에 빠뜨리곤 합니다.

‘예술가’라는 이름은 생각보다 더 복잡한 것이었습니다. 그 이름은 단순한 지칭을 넘어서 어떤 기준으로부터의 이탈, 부적합, 응당 기대되는 역할, 그러면서도 요구하지는 말아야 할 권리들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일과 휴식, 밤과 낮의 경계로부터 자유로운 나는 그 속에서 예술가이면서 노동자이고, 어제는 아무런 사회적 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잉여인간이었다가 내일은 현실에 없는 새로운 가능성을 멋지게 보여줄 초인입니다. 그러나 끝없는 의심과 자괴로부터 나를 지켜내며, 아무도 그려주지 않는 시간표를 운용하며 만들어 낼 세계의 틈은 우리 모두의 기댈 곳이 되어줄 것임을 기억합니다. 기어코 희망을 쟁취하고야 마는 우리는 또 한 번의 내일을, 그렇게 무한 번의 내일을 선택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50번째 펼쳐냅니다.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그러모으고, 마감을 만들고 또 헤치며 15년간 독자와의 약속을 지켜왔습니다. ‘이것’을 만드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보고 듣고 말하기를 멈추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 그것을 공들여 글로 다듬는 것. 누군가는 구식이라 말할지도 모를 종이 다발로 엮어내기를 고집하는 것으로 우리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해 봅니다. 고민에 답을 찾지 못해 느꼈던 무력함, 이따금 타협했던 부끄러움, 그럼에도 우리의 이야기가 어딘가에 가닿았음을 확인할 때의 안도와 감사함은 시간이라는 눈금 아래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그것이 무엇이라 정의되고 있는가, 그래서 우리는 무엇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가. 매거진 『K-Arts』에서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 사람, 그런 시절을 발판 삼아 온갖 잡지에 대해 말하는 사람, 비평을 이어가고자 전에 없던 ‘나선’을 그리는 사람, 쓰임의 기준을 묻기 위해 공예라는 도구를 선택한 사람, 연결을 지속하려는 흔적으로서의 ‘정류장’을 택한 사람들까지. 우리의 50호는 그런 이야기들을 담습니다. 믿음에 의해 각자의 ‘이것’을 지속하기로 결정하는, 비고정적이고 그럼으로써 더러는 취약한 존재이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1
양혜규의 2007년도 영상 작품 〈Holiday story〉에 등장하는 내레이션의 문장 일부를 번역하여 조금 다르게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