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순은 라디오포닉스(Radiophonics)로 활동하는 전자음악가이자 뉴미디어 아티스트이다. 그는 음악과 인공지능 기술을 융합한 기업 뉴튠(NEUTUNE)을 공동 창업했으며, 한예종 무용원 이론과 예술경영 전공 겸임 교수이다. 명성과 달리 소박하게 웃는 그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좋아하는, 세상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내면에서 울리는 이야기는 깊은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 최초의 정산서
박승순의 여정은 그가 처음 받은 정산서에서 큰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중학교 시절 비틀즈의 음악에 큰 감동을 받은 이후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 활동을 시작으로 대학교 졸업 후 홍대 앞
공연장에서 인디음악을 했다고 한다. 2010년 첫 번째 전자음악 앨범
《코스모스》를 발매하며 전자음악가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을 때, 그가
처음 마주한 것은 환호보다는 의문이었다. 자신의 모든 애정을 쏟은
음악이 1원의 가치로 환산된다면 예술가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그는
음악을 둘러싼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창작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예술경영을 전공했다는 것이 독특한 이력인
것 같은데요, 그 선택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비틀즈의 음악을 듣고 너무 감동을 받아서 저도 비틀즈 같이 밴드로 활동하는 음악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 활동을 했고, 졸업 후에는 홍대 근처에서 밴드의 일원이자, 솔로 인디 음악가로도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주류였던 힙합보다 인디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어요. 그 점이 아쉬워서 인디 음악가들을 돕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예술경영을 알게 되었습니다.”
음악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 계기가 있으시다고요.
“처음에는 기획일에 매진하게 될 줄 알았지만, 저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강했어요. 3학년 무렵 미디어 아티스트 태싯그룹(Tacit Group)의 이진원(가재발) 선생님이 하셨던 사운드 디자인 수업을 들었는데요, 이때 전자음악을 만드는 방법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기타로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던 이전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컴퓨터 기반의 접근이었죠. 이후 2010년에 라디오포닉스라는 이름으로 첫 번째 전자음악 앨범 《코스모스Cosmos》를 발매했어요. 그런데 처음 저작권료 정산서를 받고 나니 1원이 적혀있더라고요. 제가 만든 음악이 1원밖에 되지 않는 시스템에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음악을 만드는 일보다는 음악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들이 향유하고, 이 가치를 높게 책정하고 향상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다른 길을 모색했던 것 같습니다.”
: 기계 () 예술가
그는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피지컬 컴퓨팅, 즉 아두이노 같은 소형 컴퓨터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2016년에 구글에서 인공지능 모델 ‘알파고’를 처음 공개했을 때, 그는 이 모델이 음악뿐만 아니라 음향적인 표현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독특한 점은 기술을 향한 그의 접근 방식이다.
“악보에 적힌 음표가 컴퓨터로 전달될 때는 숫자로 명확하게 표기됩니다. 제가 탐구하던 실험적인 예술, 예를 들어 존 케이지의 〈4분 33초〉 같은 음악은 악보에 아무것도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오랫동안 예술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 〈4분 33초〉라는 악보를 기계에게 학습시키려면 무엇을 가르쳐줘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다 보니, 이 문제는 단순히 음악적 접근으로 해결될 수 없고, 예술가가 세상을 탐구하고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기계가 학습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기계가 예술가의 시선과 태도를 학습해야 한다는 사고가 고유하게 느껴집니다. 이를 어떻게 구현하셨을까요?
“저는 기계가 하나의 예술가로서 세상을 인지하는 첫 번째 단계는 시각 메커니즘이라고 생각해요. 당시 풍경을 보고 어떤 생각을 떠올릴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구글에서 이미지의 특정 정보를 라벨링을 통해 인식하고 추측할 수 있는 ‘레이블 디텍션’ API(Appl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공개했어요. 이미지를 컴퓨터에 전송하면, 예를 들어 어떤 풍경 사진을 전송했을 때, 이것이 산인지 강인지 추론한 정보의 결괏값을 도출하는 모델이었죠. 그래서 이를 보고 기계가 어떤 사진이든 어떤 풍경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이건 산이야, 이건 강이야”라고 인지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되었다면, 산의 소리, 강의 소리, 숲의 소리 같은 것을 알려줬을 때 이미지를 보고 관련된 소리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뉴로스케이프NEUROSCAPE〉(2017)이라는 작품으로 세상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이미지를 보고 기계가 어떤 풍경 소리를 떠올리는 행위를 신경망이라는 의미의 ‘neuro’와 사운드스케이프 ‘soundscape’를 엮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의 창작은 오늘날에도 갱신을 거듭하고 있기에, 진행하고 있는 새로운 작품에 관해 질문했다.
“올해 8월에는 〈Sweethome.FM〉(2024)이라는 신작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 작품은 이머시브 오디오-비주얼 드라마에 가까운 형태인데요. 특히 이번 작업에서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활동하던 음악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그 시대의 인물들을 연구하며, 그들이 겪었던 어려움과 변절자들이 된 상황들을 살펴보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홍난파라는 인물은 심한 고문을 받은 뒤 변절했어요. 변절하게 된 시점과 이유가 명확하죠. 저는 도대체 얼마나 심한 고문을 당했길래 그런 심경의 변화를 겪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그래서 예술가로서든 한 시민으로서든, 그가 겪었던 일과 예술에 대해 이런 총체적이고 모순적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어요. 한편, 안익태라는 작곡가는 고문받은 적 없이 변절했거든요. 그가 작곡한 〈만주환상곡〉에 우리나라 애국가로 추정되는 마디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우리 애국가가 친일 행적이 있는 예술가의 작품으로부터 파생되었다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걸 현재 시대에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제가 선보일 작품을 통해 우리의 과거사를 어떻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다음 세대에게 정말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관객도 저와 같은 고민을 함께하기를 바라요.”
그는 작품을 창작하며 관객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만큼, 뉴튠의 창업자로서 음악을 향유하는 사용자를 고려하는 깊이도 남달랐다.
“2020년 공동으로 창립한 뉴튠㈜(대표 이종필)에서 생성형 AI 음악 서비스인 ‘믹스-오디오(Mix-Audio)’를 출시했어요. 그래서 이 서비스를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을지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저는 음악가로 활동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 산업을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을지 늘 고려해 왔어요. 우리가 만든 시스템이자 플랫폼에서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창작자와 청취자라는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두 주요 과제는, 첫 번째로 청취자에게 기존의 스포티파이나 애플 뮤직과는 다른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지점이고요. 두 번째는 창작자에게 기존의 음악 정산 시스템과는 다른 어떤 혜택을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고민은 사용자 경험 디자인으로 이어지는데요. 우리의 서비스를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 단순히 기술적인 마케팅 메시지가 아닌, 의미 있는 방식으로 전달할 방법을 고안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결과는 동일할 수도 있지만, 질문이 담긴 서비스와 그렇지 않은 서비스는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렇게 깊이 고민한 서비스는 창작자에게 먼저 닿는다고 믿어요. 새로운 도구나 플랫폼이 등장할 때, 일반 사용자들은 더 입체적으로 소비하거든요. 사용자들이 세밀하게 느낄 수 있는 포인트를 많이 설계하면, 그들의 만족도를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창작자와 소비자 영역을 오가며, 그들의 관점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역할을 기쁘게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민과 경험은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도 진솔한 가르침으로 이어지기에, 그에게 한예종에서 진행하는 수업과 학생들에 대해 물었다.
“저는 〈웹 운영〉 수업에서 웹 기반의 서비스 기획을 다루는데요, 주로 스타트업 비즈니스 쪽 경험을 녹여 수강생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비즈니스 관점에서 풀어낼 수 있도록 합니다. 반면, 〈미디어 활용〉 수업에서는 창작에 무게를 두고, AI 도구 등을 활용하여 창작물을 만드는 방법을 공유합니다. 그래서 최신 미디어나 기술 융합 예술 사례를 최대한 많이 나누려 노력하고 있어요. 이 두 수업 과정에서 한 가지 사안에 대해 다양한 학생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들을 때, 저는 다양한 차원을 경험해요. 예를 들어, 10분 동안 10명의 이야기를 들으면, 혼자 있을 때 알 수 있는 정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를 얻는 것이죠. 각자가 가지고 있는 머릿속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꽤 즐거워요. 이러한 소통이 저의 창작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다양한 세대의 생각을 이해하고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는 그가 여전히 창의적으로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 궁금해진다. 박승순은 전자음악가, 사업가, 교수로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모든 것은 하나의 본질에서 출발한다며, 언제나 자신은 이야기를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영감의 원천으로 다가가 보았다.
: 리서치와 릴렉싱
창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저는 리서치(research) 즉, 무언가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하는 과정과 릴렉싱(relaxing) 즉, 잠깐의 멈춤을 중요하게 여겨요. 논문이나 관련된 책, 영상 자료, 다큐멘터리 영화 등을 깊이 있게 수집하고 나면, 어느 시점에서는 잠시 멈춰 있는 것 같아요. 한 번에 소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정지한 상태에서 이런 자료들이 발효되면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조사한 자료의 맥락과 충돌시켜 보기도 합니다.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이런 생각들이 돌아가는 것 같거든요. 어느 순간 몇 가지 주요한 요소가 명확하게 잡히면, 그것을 바탕으로 논문을 쓰거나 작품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리서치의 방법론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실 저는 이미 봤던 것을 반복해서 보거나, 제가 좋아하는 특정 작가나 작품을 집중적으로 보는 편이에요. 앰비언트 음악1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브라이언 이노, 류이치 사카모토 등의 작품 세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고요. 비틀즈, 핑크 플로이드, 라디오헤드 같은 영국 음악의 고전들도 예전에 들었을 때와 지금 들었을 때의 질감이 다르게 느껴질 때가 많거든요. 그때 몰랐던 의미를 작업하면서 연결 지을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의 원작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보았을 때, 외계 생명체가 이야기하는 것을 지구에서 전혀 모르는 언어로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이 등장하거든요. 저는 이것을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던 원리와 연결시켜 생각해 봤던 적이 있어요. 작품을 보면서 관련이 없는 것을 끄집어내어 붙여보고 혼자 조립해 보면서 망상 같은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좋은 작품의 아이디어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망상으로 끝나기도 합니다만, 그 과정이 혼자 즐거운 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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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bient music, 영국에서 유래된 전자음악의 한 하위 장르로, 최소한의
구성요소를 사용하여 공간감과 분위기에 집중하는 미니멀리즘 형식을
추구한다
릴렉싱 이후에 이어지는 창작, 그리고 또 다른 탐구의 연장도 궁금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우주와 자연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거나 별을 보는 걸 좋아했고, 마음이 불안할 때 자연, 숲, 강, 바다, 우주를 보면 평온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싶다는 생각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생겼는데, 당시 새로운 기술과 음악을 접목하면서 자연스럽게 우주와 자연이 주제가 되었죠.
첫 번째 작업이었던 〈아쿠아포닉스Aquaphonics〉(2014)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물 〈낙수장〉(1935)과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보며 영감을 받았죠. 데미안 허스트의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1991)가 낙수장 위에 있고,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음악을 연주하는 기계적 장치와 연결되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았어요. 이 아이디어를 학교에서 아두이노 보드를 통해 구현할 수 있음을 알게 되면서, 물과 음악, 기계라는 주제로 탐구를 시작했습니다. 탐구를 하다 보니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뉴턴 같은 인물들을 만나게 됐어요. 결국 이들이 고민한 주제들과 저의 탐구가 연결되었어요. 예를 들어, 다빈치가 새의 움직임을 연구한 기록에서 물고기가 물을 헤엄치는 구조와 유사한 점을 발견했어요. 이런 생각은 우리가 공기 중에 살고 있지만, 사실상 물 입자들로 구성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진동과 파동, 음악의 음의 진동이 결국 우주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요소라는 깨달음을 얻었고요. 인간의 청력 범위는 제한적이지만, 다른 생물들은 더 넓은 주파수를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 큰 차원의 세상이 존재함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현실, 인공, 그리고 가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오디오, 비주얼, 스토리의 결합에 관심이 커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양자 컴퓨터가 보편화된 세상에서의 예술 창작과 표현 기법에 대해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과 진동 에너지를 탐구하다 보면, 빛,
건축, 인간관계 등 다양한 요소들과 연결될 수 있음을 발견했어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가 발산하는 에너지가 주변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어요. 그래서 저는 사랑과 기계, 우주와 자연을 항상
진동으로 해석하고 있어요. 이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고,
저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려 해요.”
글 이도현
나는 매거진에서 3년 동안 활동했다. 이 글은 마지막 원고다. 덕분에
많은 이들을 만나 값진 교류 속에서 매번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앞으로 나는 동시대의 다변화된 미디어를 향해 질문해 보려 한다.
그것이 예술에서, 우리의 사회와 누군가의 삶 속에서 단단히 뿌리내려
균열을 만들 날을 고대하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행운이 따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