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모 대학원에 자퇴서를 접수한 뒤 오래 몸담았던 캠퍼스를 마지막으로 걸었던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다. 무엇 하나 끝마치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퇴를 택했다. 시원섭섭한 마음을 안고 이별을 고했다. 그렇게 다른 길로 돌아섰다.
“자퇴를 경험하지 않은 자, 인생을 논하지 말라.”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했지만, 한 우물만 파라는 사회적
압박이 존재하는 시대에 경로를 변경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학교라는
선택지 또한 그러하다.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 하거늘. 잠깐,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를 보라, 천재에게 학교 따위는 억압의 족쇄가
아니었던가! 천재가 아니므로 또다시 학교에 들어와야 했던 나는
다음과 같이 변명해 본다. 요즘은 예술도 학문으로 접근해야 한다던데…
이론적 지식 없이는 뭘 할 수가 없다고… 공동 작업, 기술 융합, 비싼
장비는 또 어떻고! 문득 한예종에서의 학업을 끝마치지 않은 장동건,
김고은 배우, 유운성 평론가가 떠오른다. 아, 역시 자퇴를 해야
성공하는 것인가… 성공했으니, 자퇴도 할 수 있는 건가… 몇 년 전
유행했던 〈고등래퍼2〉의 고교 자퇴생 김하온, 이병재도 떠오른다.
그들의 랩은 경로를 이탈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었지. 이에
대해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학교와 어긋나고 삐뚜로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각각의 삶, 학과, 예술 장르에서 비롯되는 특수성이 있었고, 동시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도 있었다. 개인적인 정보가 드러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는 익명으로 이야기를 실었다. 거대한 바다를 건너고, 높은 산 위를 날아가고, 쉬지 않고 이동하는 철새의 이름으로 익명의 이들을 칭했다. 지구 반대편까지 비행하길 두려워 않는 철새, 이들이 바라본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강가영은 모 대학의 문예창작과를 다니다가 자퇴한 후 한예종 연극원 연출과에 다시 입학하였다. 그는 고등학교 생활이 힘들었기에 학교라는 곳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으나 전적대에서 즐겁게 생활하며 예술이 본인의 길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그러던 중 뮤지컬 관람을 계기로 평면의 활자를 입체로 만드는 장르를 원하게 되었고, 뮤지컬 연출 지망으로 한예종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연극원 연출과는 연극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장르적인 한계가 존재했다. 현재 그는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영화의 꿈을 이루고자 영화과 부전공을 하며 독립 장편영화에서 연출부로 일하고 있다. 전공을 많이 바꾼 편이지만 그는 이러한 과정이 방랑이 아니라 자유여행이라 생각하며, 태어난 이상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누려보는 것이 즐겁다는 주의라고 한다. 한예종에 온 덕분에 더 많은 선택의 장과 더 넓은 세계가 열렸고, 그는 가장 편안한 자리를 찾을 때까지 발걸음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두루미는 평소에 관심 있는 학과에 들어갔지만, 막상 입학하고 보니 잘 맞지 않았다. 원하지 않는 수업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의미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존에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전공을 바꾸어 한예종에 입학했다. 전적대에서와는 달리 한예종 강의를 들을 때에는 많은 질문이 생겨났고, 그만큼 학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다고 느끼고 있다. 대학을 안 다녀보았다면 이곳이, 이 과가 본인과 잘 맞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기에 전적대를 다닌 시간이 아깝지는 않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강의라도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며, 원할수록 의미와 배움의 가치가 커짐을 느낀 그는 원하는 것을 배우는 기회를 소중히 여기며, 충실히 학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김솔은 연극원 연기과에서 예술경영학과로 전과한 경우이다. 성우, 아나운서처럼 목소리를 사용하는 직업을 꿈꾸던 그는 연기 학원 무료 체험 이벤트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한 뒤,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예고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대학도 연기 전공으로 들어오게 되었지만, 연기 전공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이 컸다. 자신을 경쟁 속에 몰아넣던 예고 시절을 지나 연기과에 입학한 2019년의 1학기는 너무나 즐거웠다. 대학 입시라는 압박감이 사라지자 행복하게 연기할 수 있었고, 혼자서 독백만 연습하던 시절을 지나 사람들과 교류하며 연습, 발표하는 과정이 정말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1학기가 다 끝나갈 즈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공허함이 찾아왔고, 왜 연기를 하는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그는 1학년을 마친 뒤,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휴학을 택했다.
휴학 기간은 그의 삶의 태도가 크게 변한 시기였다. 연기 외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일을 경험하자 다른 것도 충분히 잘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구나 깨달았다고 한다. 1년간 다양한 경험을 쌓고 복학했지만, 막상 다시 연기를 하자 부담감이 밀려왔다.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좌절감이 컸다.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연기를 전공했으니, 연기를 잘하는 건 물론이고 이걸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깊이 박혀 있었다. 연기과 전공 타이틀을 내려놓고 싶었던 차에 때마침 보석 같은 예술경영학과를 발견하게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연/예술 쪽에 남아 있는 동시에 연기 전공의 장점을 살리며 새롭게 해낼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예술경영이었다. 그에게는 이것이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고 다방면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알맞은 전공으로 여겨졌다. 21년 2학기부터 예술경영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그는 전과를 후회하지 않는다. 앞으로 배우를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에게 더 많은 기회와 세상을 주고 싶었고, 굳이 한 가지 일만을 하며 살아갈 필요성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올 8월, ‘K-Arts ON-Road’ 선정작인 뮤지컬 공연 〈수정되지 않은 여인〉으로 무대에 선 그는 기회가 오는 모든 것들에 즐겁게 임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예술을 향유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박동빈은 전적대 자퇴, 장기 휴학, 전과를 모두 경험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예고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사범대 음악교육학과에 입학했으나 배움의 폭이 좁다는 생각에 답답함을 느꼈다. 한 학기도 안 다니고 반수를 하여 한예종 음악원 합창지휘과에 입학했지만, 1년을 미처 채우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주변 친구들의 작업물, 경력과 비교하며 자괴감을 느꼈고, 음악을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괴로움이 컸기 때문이었다. 학교를 쉬며 여러 아르바이트, 시골 살기 체험, 공인중개사 자격증 취득, 입대 등 여러 사건을 겪은 뒤 복학했다. 졸업이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돌아왔고, 음악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없어서인지 학교가 재밌었다고 한다. 그는 이미 자신의 진로를 다른 방향으로 정한 상태였으나 음악을 놓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직업으로 삼지는 않아도 음악과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 4~5년 동안 손을 놓았던 부분을 다시 메꾸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무대에 서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음악을 깊이 공부하고 사유하는 힘을 기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전과를 결심했다.
현재 그는 새로운 전공인 음악학과에서의 공부와 병행하고 있는 생활 전반에 만족하고 있다. 음악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글 쓰는 게 너무 좋다는 그는 현재 ‘artandtext’라는 광고 대행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본래의 전공을 떠나왔지만, 합창지휘과 사람들과 함께 사무실을 쓰고, 졸업 후 독일에서 활동하는 지휘과 선배와 연이 닿아 독일에서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자신의 사업을 음악에도 접목할 방법을 찾고 있으며, 아티스트/단체 브랜딩 등 음악 쪽으로 사업을 확장, 변경하고픈 마음이 있다. 그는 과거의 선택들이 현재 자기 모습과 연결되기에 후회되는 부분은 없으며,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 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정리할 힘이 생겼다. 그는 그 힘을 믿으며 또 다른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예종을 자퇴한 분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회사에 다니는 분, 타 대학으로 재입학한 분, 현장으로 진출한 분 각각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꾀꼬리는 전문사 과정을 중퇴하고 입사하여 회사원 생활을 하고 있다. 학업을 지속하는 대신 직장인의 삶을 사는 것이 당시 처한 상황에 더 맞았기에 입사를 택했다. 삶을 이어가는 데 있어 결정한 하나의 선택일 뿐 공부는 언제든 다시 할 수 있기에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에게 한예종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 공부할 수 있었던 곳으로, 예술은 현실을 살아가며 생기는 고민을 잠시 잊게 해 주는 도피처로 기억되고 있다.
한편 기러기는 한예종에서 예술사를 졸업하고 전문사 과정에 진학했지만, 과정을 끝마치지 않고 타 대학원으로 입학한 경우이다. 그가 자퇴를 결정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학위 문제였다. 그는 강사 및 교수 임용을 위해서 학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나 한예종의 전문사 과정은 현재 “석사 학력에 상당하는” 예술전문사 증서를 취득할 수 있다. 또한 그는 미술원 내에서 학문적이고 전통적인 예술을 하기는 용이하지만, 뉴미디어를 활용한 작업을 지속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미술원은 입체 평면 다원 등 전반적인 미술 장르를 다루다 보니 미디어아트에 주력하는 학교들보다는 커리큘럼의 비중이 적을 수밖에 없었고, 특히 영상, 뉴미디어 기술 등은 타원에서 배우거나 스스로 개척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에게 한예종은 삶의 감각을 재정의할 수 있게 해 준 곳으로 덕분에 세상을 배웠고, 사람을 알아갔다. 이젠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갈 때라는 그는 뉴미디어 기술을 활용한 예술 작품을 창작하고, 여러 기술의 의의들을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창작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국내 석사 이후에는 해외 석사 혹은 레지던시를 나갈 예정이며, 현재 전공과 관련하여 운영 중인 사업을 미디어아트로 확장할 계획도 있다.
곽민승은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학교와 멀어졌고, 현장에서 본인의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는 사례이다. 그는 영상원 멀티미디어영상과 전문사 과정에 2013년 입학했고, 같은 해에 제적되었다. 멀영과로 진학한 이유는 영화 후반작업이나 광고,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공부를 하고 싶었고, 그것이 본인의 영상작업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상업적인 기술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학교는 그의 생각과 달랐다. 다양한 수업이 있었으나 그가 배우고 싶은 것은 별로 없었고, 결국 직접 알아보고 독학하는 시간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학교라는 울타리에 잠시 기대고 싶었지만 결국 혼자서 갈고 닦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고, 그렇다면 차라리 학비를 작품 제작비로 쓰며 원래 그랬듯 혼자 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가 작고 나약하게 느껴지던 시기, 학교가 삶의 변곡점이 되어주길 기대했지만, 그런 기적은 없었다.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건 학교라는 시스템보다는 학교 친구들이었다. 친구들로부터 많이 배웠고 영향을 받았다. 영화는 여럿이 같이 만드는 작업이므로 학교의 시스템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면 무척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의 특성상 그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작업은 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학교는 공통의 관심사를 지닌 친구들이 모이기 쉬운 곳이고, 친구들과 대화하며 작업을 도모한다면 학교 시스템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학교를 나와서도 전처럼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큰 드라마 현장에서도 일했다. 여러 친구의 도움으로 첫 장편영화 〈말아〉를 찍었고 작년에 극장개봉을 했다. 학교에 들어올 즈음 꿈꿨던 것들을 어느새 대부분 이룬 셈이다. 계속 영화를 만들고 드라마 연출도 하고 싶은 그는 앞으로는 그저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여건에서 작품을 만들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밖엔 없다고 한다.
취재 과정에서 과 안에서 행해지는 언어적 폭력 때문에 꽤 오랜 기간 휴학을 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학교를 쉬는 동안 오히려 타원 강의를 적극적으로 청강하며 선생님과 동료 학생들로부터 좋은 기운을 얻고, 도서관에서 책도 많이 빌려 읽었다고 한다. 한편, 아직 방황 중이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기 부담스러워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미처 듣지 못하고 담아내지 못한 목소리들이 수면 아래 다수 존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과거를 재의미화하며 삶을 써나가는 숙명을 지녔다. 때로는 머무르고, 때로는 이동하고 거스르고 엇갈리는 등 각자만의 의미를 만들어 간다. 타인의 인정을 받고 때론 외면받으며, 또 걷는다.
그 길에서의 풍경은 어떠한지, 뭍으로 올라온 목소리를 듣는 그날을 희망해본다.
황지성
공연을 위한 글을 쓴다. 요즘은 연출의 재미를 알아갈 듯 모를 듯하다.
기억, 공간, 몸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고민을 이어 나가고 있다.